[eBook] 편집자의 시대 (일본 출판의 황금기를 이끈 편집자 가토 게이지 회고록)
- 367
• 지은이 : 가토 게이지
• 옮긴이 : 임경택
• 가격 : 12,600원
• 책꼴/쪽수 :
ePUB
• 펴낸날 : 2023-03-06
• ISBN : 9791169810197
• 십진분류 : 문학 > 일본문학 및 기타 아시아문학 (830)
• 도서상태 : 정상
• 태그 : #일본출판 #편집자 #인문학
저자소개
지은이 : 가토 게이지
1940년생으로 도쿄대학 문학부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 미스즈서방에 입사해 인문서 편집자로 일하며 한나 아렌트, 카를 슈미트, 버트런드 러셀, 마루야마 마사오, 후지타 쇼조 등의 저작을 편집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미스즈서방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005년 한국, 일본, 중국, 타이완, 홍콩, 오키나와 출판인이 함께하는 동아시아출판인회의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왕단의 『중화인민공화국사 15강』을 일본어로 옮겼고, 자신의 편집자 이력을 회고한 이 책의 마지막 교정을 보던 중 2021년 4월 세상을 떠났다.
옮긴이 : 임경택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학교 영문과,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거쳐 도쿄대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메이지유신과 패전을 계기로 변화해온 일본의 역사와 문화, 근대 일본의 문화재 제도, 일본의 출판과 기록문화 등에 관해 연구해왔다. 지은 책으로 『아시아의 무형문화유산』(공저), 『문명의 오만과 문화의 울분』(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 『사전, 시대를 엮다』, 『독서와 일본인』, 『일본의 역사를 새로 읽는다』 등이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저자와 함께 한 사회의 지적 성장을 오롯이 책임진 편집자들의 시대
20세기 후반 일본 인문 출판의 찬란한 시절을 담은
미스즈서방 편집자 가토 게이지 유고 산문집
일본의 대표적 인문 출판사인 미스즈서방에서 1965년부터 2000년까지 35년간 편집자로 일한 가토 게이지의 회고록이다. 1946년에 창립한 미스즈서방은 한나 아렌트, 카를 슈미트, 레비스트로스, 롤랑 바르트 등 서구 지성들의 저작을 번역 출간하는 한편 마루야마 마사오, 후지타 쇼조 등 당대 일본 사상가들과도 활발히 교류해온 일본의 저명 출판사이다. 국제 출판 교류의 현장에서 ‘꿈같은 출판사’라는 찬사를 받는 미스즈는 일본이 축적한 거대한 번역 문화를 증명하는 곳이기도 하다. ‘세계 문명에 관한 지식을 얻으려면 일본어를 습득하면 된다, 일본어로 다 준비되어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 문화는 막대한 양의 번역서가 든든히 뒤를 받쳐왔다. 20세기 후반 번역 문화의 중심에는 미스즈서방이 있었고, 가토 게이지는 그곳의 2대 편집장이었다. 이 책은 탐독의 즐거움을 일찌감치 깨달은 한 소년이 인문서 편집자가 되어 제너럴리스트다운 면모를 십분 발휘하며 일한 사적 회고이자, 뛰어난 편집자들이 당대의 주요 사상과 지식을 앞 다투어 소개하며 일본 사회의 지적 성장을 이끌던 ‘편집자의 시대’를 증명하는 역사적 기록이기도 하다.
20세기 후반 일본 인문 출판의 찬란한 시절을 담은
미스즈서방 편집자 가토 게이지 유고 산문집
일본의 대표적 인문 출판사인 미스즈서방에서 1965년부터 2000년까지 35년간 편집자로 일한 가토 게이지의 회고록이다. 1946년에 창립한 미스즈서방은 한나 아렌트, 카를 슈미트, 레비스트로스, 롤랑 바르트 등 서구 지성들의 저작을 번역 출간하는 한편 마루야마 마사오, 후지타 쇼조 등 당대 일본 사상가들과도 활발히 교류해온 일본의 저명 출판사이다. 국제 출판 교류의 현장에서 ‘꿈같은 출판사’라는 찬사를 받는 미스즈는 일본이 축적한 거대한 번역 문화를 증명하는 곳이기도 하다. ‘세계 문명에 관한 지식을 얻으려면 일본어를 습득하면 된다, 일본어로 다 준비되어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 문화는 막대한 양의 번역서가 든든히 뒤를 받쳐왔다. 20세기 후반 번역 문화의 중심에는 미스즈서방이 있었고, 가토 게이지는 그곳의 2대 편집장이었다. 이 책은 탐독의 즐거움을 일찌감치 깨달은 한 소년이 인문서 편집자가 되어 제너럴리스트다운 면모를 십분 발휘하며 일한 사적 회고이자, 뛰어난 편집자들이 당대의 주요 사상과 지식을 앞 다투어 소개하며 일본 사회의 지적 성장을 이끌던 ‘편집자의 시대’를 증명하는 역사적 기록이기도 하다.
목차
머리말
1부 한 인문서 편집자의 회상
1장 내 안의 DNA
2장 살아남은 사람
3장 병아리 오리엔탈리스트
4장 오비 도시토와의 만남
5장 1970년대에는 열심히 일했다
6장 1980년대 이후
7장 두 개의 전람회
2부 내가 만난 사람들
1장 번역가 소묘
오쿠보 가즈오 / 나카노 요시유키 / 마쓰우라 다카미네 / 고바야시 히데오 / 이시가미 료헤이 / 이나바 모토유키 / 미야케 노리요시 / 우사미 에이지 / 나카지마 미도리 / 이케베 이치로 / 볼프강 샤모니
2장 삶은 달걀과 주먹밥 - 오카모토 도시코 씨 이야기
3장 조금 옛날 이야기 - 미스즈서방 구사옥 이야기
4장 나는 얼굴도 못생긴 데다가 상냥하지도 않아 - 『푸레이 집안의 편지』와 그 편집자
5장 당신은 이 세상 사월의 하늘 - 중국의 국장을 디자인한 여성
6장 도다 긴지로 부자 이야기
3부 내가 만난 책들
1장 마루야마문고에 소장된 오규 소라이 관계 자료들
2장 세 개의 『호겐모노가타리』
3장 책장 한구석에서
뉴욕공공도서관 / 쿠란의 중국어 번역가 / 비자야나가라 왕국의 수도에서
4장 타문화 이해를 체현한 책의 형태
후기
옮긴이의 말
색인
1부 한 인문서 편집자의 회상
1장 내 안의 DNA
2장 살아남은 사람
3장 병아리 오리엔탈리스트
4장 오비 도시토와의 만남
5장 1970년대에는 열심히 일했다
6장 1980년대 이후
7장 두 개의 전람회
2부 내가 만난 사람들
1장 번역가 소묘
오쿠보 가즈오 / 나카노 요시유키 / 마쓰우라 다카미네 / 고바야시 히데오 / 이시가미 료헤이 / 이나바 모토유키 / 미야케 노리요시 / 우사미 에이지 / 나카지마 미도리 / 이케베 이치로 / 볼프강 샤모니
2장 삶은 달걀과 주먹밥 - 오카모토 도시코 씨 이야기
3장 조금 옛날 이야기 - 미스즈서방 구사옥 이야기
4장 나는 얼굴도 못생긴 데다가 상냥하지도 않아 - 『푸레이 집안의 편지』와 그 편집자
5장 당신은 이 세상 사월의 하늘 - 중국의 국장을 디자인한 여성
6장 도다 긴지로 부자 이야기
3부 내가 만난 책들
1장 마루야마문고에 소장된 오규 소라이 관계 자료들
2장 세 개의 『호겐모노가타리』
3장 책장 한구석에서
뉴욕공공도서관 / 쿠란의 중국어 번역가 / 비자야나가라 왕국의 수도에서
4장 타문화 이해를 체현한 책의 형태
후기
옮긴이의 말
색인
편집자 추천글
편집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 코피가 날 때까지 책을 읽던 소년이 당대 최고의 인문서 편집자가 되기까지
“가토 군은 어떤 주제에 대해 물어보면 그와 관련된 책을 모두 가져와서 각각의 특징에 대해 설명해준다. 그는 제너럴리스트다.” - 마루야마 마사오(정치학자)
“가토 군은 뭔가 잘 안다.” - 고바야시 히데오(언어학자)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편집자 가토 게이지를 제너럴리스트라 평했고, 가토는 이를 평생의 자랑으로 여겼다. 그의 제너럴리스트적인 면모는 유년 시절부터 줄곧 이어온 다방면의 독서로 형성되었다. 이 책 1부의 회고에 따르면, 1940년생인 가토 게이지는 패전 후 사회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기획 출간되었던 아동문고, 소년‧소녀 잡지, 모험소설 등을 탐독하며 일찌감치 독서가의 길에 들어섰다. 『소년아사히연감』(1947년 창간), 이와나미소년문고(1950년 창간), 『소년 미술관』(1950~53년), 『어린이의 과학』(1924년 창간), 『초보의 라디오』(1948년 창간) 등 그가 어린 시절에 읽은 단행본과 잡지의 목록만 보더라도 당시 일본 출판문화의 발전과 그 영향 아래서 성장한 한 세대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다.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티보가의 사람들』, H. G. 웰스의 『세계 문화사』 등을 경쟁적으로 읽던 고교 시절을 지나 도쿄대학에 진학한 가토 게이지는 1960년에 일어난 안보반대투쟁을 맞닥뜨린다. 격렬한 학생운동의 현장 한가운데서 권력에도, 폭력에도 약한 자신을 직시하고 “그렇다면 한순간의 용감함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저항을 지속할 것인가”(45쪽)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이후 그는 인류학, 언어학, 미술사, 철학, 역사학 등 다방면의 수업을 닥치는 대로 청강하며 교양을 쌓는 데 주력한다. 1960년대 전반 대학에서 얻은 이런 경험과 인식은 그가 훗날 편집자를 지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교양학부를 마치고 동양사학과로 진학한 가토 게이지는 에노키 가즈오(중앙아시아사), 야마모토 다쓰로(동남아시아사), 스도 요시유키(중국사) 등 쟁쟁한 교수진 아래서 아시아학 전문 도서관이자 연구소인 동양문고를 견학하고, 만철사연구회에도 참여하는 등 학문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중국 고대사 쪽으로 전문적인 관심을 키워갔지만 최종적으로는 ‘만주의 조선인 공산주의자’를 주제로 삼아 졸업 논문을 완성하고 1965년 미스즈서방에 입사한다.
가토 게이지는 미스즈서방의 창립자이자 초대 편집장이었던 오비 도시토 아래서 편집자의 기본기를 익혔다. 오비 도시토는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격언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주말마다 『더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 『뉴욕 타임스 일요판』, 『르 몽드』 등 외국의 신문 잡지 서평을 샅샅이 읽고 주요 신간을 발 빠르게 검토 출간하는 한편으로, “시간은 밭이다”라는 말로 미스즈서방의 책들이 시간을 밭으로 삼아 자라나 오래도록 읽힐 것임을 예견하기도 했다. 가토 게이지는 오비 도시토가 기획한 책들을 편집하며 당대 사상과 문화의 지도를 파악해나갔고, 유수의 저자 및 번역가들과 교류하며 인문서 편집자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일본 인문 출판의 중심 미스즈서방과 지식인으로서의 편집자
“편집자는 모든 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자,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그 전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가토 게이지가 편집한 책의 목록과 교류한 저자, 번역가의 이름만으로도 한 시대의 지성사를 쓸 수 있을 만큼 이 책에서는 ‘지식인으로서의 편집자’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카를 슈미트의 『현대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지위』, 알레산드로 당트레브의 『국가란 무엇인가』, 제임스 보즈웰의 『새뮤얼 존슨 전기』, 조지 트리벨리언의 『영국 사회사』, 버트런드 러셀의 『독일 사회민주주의』 등이 모두 가토 게이지가 편집한 책들이다. 2부 1장 「번역가 소묘」에서는 이 책들을 함께 만든 번역가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를 세계 최초로 번역한 언어학자 고바야시 히데오와의 협업,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번역가의 자살과 뒤이은 오역 사건, 3대에 걸쳐 번역가를 배출한 집안 등 각각의 일화를 따라가다 보면 편집자와 저자, 번역가가 함께 지적 토양을 일구어가던 20세기 후반 일본 지식인 사회의 열기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에는 편집자들이 발 빠르게 소개한 해외 저작들이 사회에 새로운 담론과 주제, 연구 방향을 제시한 사례가 많이 등장한다. 일례로 가토 게이지는 편집장 오비 도시토에게 “세계의 절반은 이슬람입니다”(72쪽)라는 말로 이슬람 관련 서적의 출간을 제안하고,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전반에 걸쳐 버나드 루이스의 『아랍의 역사』, 해밀턴 알렉산더 깁의 『이슬람 문명사』, 몽고메리 와트의 『무함마드: 예언자와 정치가』 등을 의욕적으로 펴낸다. 이 책들을 바탕에 두고, 이후 헤이본샤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출간되면서 일본 사회에서도 ‘오리엔탈리즘 논쟁’이 촉발된다. 1973년 마르크 블로크의 『봉건사회』를 시작으로 뤼시앵 페브르, 페르낭 브로델 등 아날학파의 작업이 잇달아 소개되며 역사학의 새로운 영역이 열리던 과정에도 최적의 번역가를 찾아 신속하게 책을 출간해낸 편집자들이 있었다.
미스즈서방은 번역 출판의 명가로 알려진 곳이지만, 일본 사상가들의 저작과 일본사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를 펴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서구 지성들의 저작을 소개하는 한편으로 구가 가쓰난, 쓰다 마미치 등 메이지 사상가들의 전집을 비롯해 마루야마 마사오의 『전중과 전후 사이』, 『고바야시 히데오 저작집』, 『후지타 쇼조 저작집』 등 당대 사상가들의 저작도 꾸준히 출간했다. 가장 인상적인 작업은 1차 대전 이후부터 2차 대전에 이르는 시기 일본 현대사의 기초가 되는 모든 문서 자료를 수집해 간행한 『현대사 자료』(전 45권, 별권 『색인』 1권, 1962~80년)와 『속‧현대사 자료』(전 12권, 1982~96년)이다. 컴퓨터는커녕 복사기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던 시절에 극비 자료나 해외 반출 자료까지 최대한 수집해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을 한 민간 출판사가 해낸 것이다. 그 주역은 물론 편집자들이었다.
“인문서의 벨 에포크, 그 시대의 모습을 전할 수 있다면 기쁘겠다”
- 편집자의 회고를 통해 보는 일본 인문 출판의 찬란한 시절
가토 게이지가 편집자로 일한 기간, 그중에서도 특히 1960~80년대는 일본 출판의 황금기라고 부를 만한 시기이다. 아동문고, 소년‧소녀 잡지부터 고전의 주석이나 최신의 사상을 담은 인문서까지 연령과 분야를 막론하고 다량의 출판물이 쏟아져 나왔고, 그것을 사서 읽고 이야기 나누는 독자들이 있었다. 가토 게이지와 그 동료들은 이런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성장하고 공부하고 일한 사람들이다. 가토 게이지라는 인물 자체가 “모든 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그 시대 제너럴리스트의 표본과도 같은 사람이고, 그와 함께 일한 오비 도시토, 마루야마 마사오, 고바야시 히데오 등도 인문학 전반에 대한 폭넓은 소양과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고루 갖춘 사람들이었다. 이 책 후반부에 실린 여러 산문들에서는 이른바 ‘인문서의 벨 에포크’가 낳은 뛰어난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들이 교류하고 경쟁하며 전후 일본 사회의 지적 성장을 이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아가 가까이는 동아시아, 멀리는 전 세계 학계와 출판계의 흐름을 살피는 편집자의 넓은 시야에 경탄하게 된다.
3부 1장 「마루야마문고에 소장된 오규 소라이 관계 자료들」을 보면, 미스즈서방이 직접 오규 소라이 관련 필사본과 판본의 복사물을 샅샅이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마루야마 마사오가 엄밀한 교주 작업을 진행하는 일화가 나온다. 이 자료 수집의 과정에는 앞서 출간된 이와나미서점의 『국서총목록』(전 8권)과 그 『색인』이 중요한 참조가 되었고, 서지학의 일인자 아베 류이치의 혹독한 질책과 도움도 있었다. 가토 게이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었던 중대한 과실過失에 대해서도 고백하며 “사상사학에서 서지학, 고문서학에 대한 경의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편집이라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근세 사상사 분야의 텍스트 교정이 불충분하다는 점을 통감했다”(221쪽)라고 말한다. 이 일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사상사학, 서지학, 고문서학에 대한 지식을 일정 정도 갖추고 있었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 분류하여 각자의 판본을 출간하던 미스즈서방, 이와나미서점 등의 출판사도 이런 작업의 중요성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학계와 출판계, 그리고 독자가 함께 인문학의 발전을 견인해가던 찬란한 시절이었다.
35년의 경력 가운데 “마지막 무렵에는 그늘이 있었다”(5쪽)라는 저자의 언급처럼 일본에서도 더 이상은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은 개인의 회고를 넘어, 인문 출판이 꽃을 피웠던 한 시대를 증명하는 역사적 기록으로도 읽을 수 있다. “미스즈서방의 구사옥이 있던 삼각형 토지는 지금은 24시간 코인 주차장이 되어 몇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다. 책 만드는 일에 홀렸던 사람들의 꿈의 흔적을 보여주는 현대의 풍경이다”(176쪽)라는 저자의 다소 쓸쓸한 회고처럼, ‘꿈같은 출판사’를 여럿 가졌던 일본이나 그런 기억조차 거의 없는 한국이나 이제 인문서 출판의 현장에는 꿈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책 속으로
코피가 날 때까지 책을 읽던 아이
나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이 책(『소년아사히연감』)을 볕이 잘 드는 마루 끝에서 그야말로 배부른 상태에서 온종일 탐독했고, 그러다 밤에 목욕하러 들어가 코피가 목욕물을 붉게 물들이는 것을 아찔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오타쿠라 해도 코피가 날 때까지 『연감』을 읽는 아이는 드물 것이다. - 25쪽
책으로 가는 문, 세계로 가는 문
열 살 무렵에 만난 책 한 권으로 그 아이는 자기 앞에서 세계가 한순간에 열리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책으로 가는 문’은 ‘세계로 가는 문’으로도 통했다. - 27쪽
한순간의 용감함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저항을 지속할 것인가
이 시기 학생운동의 경험에서 내가 얻은 교훈은 나는 권력에도, 폭력에도 매우 약하다는 점이었다. 목에 달라붙는 경관의 흰 장갑, 내리치는 경찰봉과 함께 이리저리 튀는 피. 무서웠다. 견디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한순간의 용감함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저항을 지속할 것인가. 저항하는 이들은 물론 굴복한 사람들에게도 강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바로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45쪽
편집장의 독재를 옹호하던 오비 씨
오비 씨는 편집 회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회의에서는 보통 평균치의 이야기가 나와서 재미도 무엇도 없다는 것이다. 그가 편집 회의의 존재 의의로 든 것은 원고를 거절할 때 편집 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하면 구실이 된다는 것 정도였다. 그는 편집 회의라는 민주주의보다 단연코 편집장의 독재를 옹호하는 사람이었고, 실제로 일도 그렇게 했다. - 67~68쪽
꿈같은 출판사, 미스즈서방
미스즈서방은 서구 문명에 대한 동경을 형식을 갖춰 만들어내는 출판사로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롤랑 바르트의 기호론 등 서구 지성들의 저작을 번역 출판하는 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가 출간한 번역서의 목록을 프랑크푸르트국제도서전에 가지고 가서 해외 출판인들에게 보여주자 모두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일본에 이런 꿈같은 출판사가 있느냐면서. 평소에는 그다지 자각하지 못하지만, 일본이 축적한 번역 문화는 실로 거대하다. 세계 문명에 관한 지식을 얻으려면 일본어를 습득하면 된다, 일본어로 다 준비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이지만, 절반은 사실이기도 하다. - 71쪽
편집자는 제너럴리스트
내 기억에 오류가 없다면 이때 마루야마 씨는 “블랙웰에는 가토 군 같은 점원이 있어서 어떤 주제에 대해 물어보면 그와 관련된 책을 모두 가져와서 각각의 특징에 대해 설명해준다”라고 했다. 좋은 서점에는 스페셜리스트는 아니어도 훌륭한 제너럴리스트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서점을 출판사로 치환해보면 이것이 아마도 ‘내가 편집자가 된 이유’일 것이다. - 87~88쪽
민간 출판사가 집대성한 현대사 연구의 기초 자료
『현대사 자료』는 누가 뭐라 해도 전후 일본의 기념비적 출판물이다. 이것이 없었다면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일본의 위기 시대의 자료를 우리가 얼마나 가질 수 있었을까? 그것을 한 민간 출판사가 해낸 것이다. 『색인』에 실린 「편집실에서」라는 글에는 그 마음이 담겨 있다.
“생각해보면 이 기획은 패전, 점령으로 이어지는 사회 변동 속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1950년대 도쿄의 고서 시장에 때때로 출현하던, 패전 전의 경찰 자료에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폐지로 내버려져 고물상이 분류하고 구분하는 가운데서 발견된 등사판이나 필사본 등이 특수한 주목자를 기대하면서 돌아다녔던 것입니다.” - 90~91쪽
출판사, 저마다 다른 재능을 가진 편집자들이 모인 곳
그 당시의 편집자 가운데는 그러한 괴물이나 괴짜가 상당히 많았다. 다카하시도 미스즈서방의 편집부를 둘러보고는 감개무량하다는 듯이 “여기에는 무예 전반을 골고루 다 잘한다고는 못 해도 ‘나는 쇠사슬 낫, 나는 수리검’이라고 각자 자신 있는 무기를 말할 수 있는 강자들이 모여 있구나”라고 했다. - 165쪽
출판계의 신기한 힘
출판계에는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출판계는 신기한 일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 - 168쪽
- 코피가 날 때까지 책을 읽던 소년이 당대 최고의 인문서 편집자가 되기까지
“가토 군은 어떤 주제에 대해 물어보면 그와 관련된 책을 모두 가져와서 각각의 특징에 대해 설명해준다. 그는 제너럴리스트다.” - 마루야마 마사오(정치학자)
“가토 군은 뭔가 잘 안다.” - 고바야시 히데오(언어학자)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편집자 가토 게이지를 제너럴리스트라 평했고, 가토는 이를 평생의 자랑으로 여겼다. 그의 제너럴리스트적인 면모는 유년 시절부터 줄곧 이어온 다방면의 독서로 형성되었다. 이 책 1부의 회고에 따르면, 1940년생인 가토 게이지는 패전 후 사회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기획 출간되었던 아동문고, 소년‧소녀 잡지, 모험소설 등을 탐독하며 일찌감치 독서가의 길에 들어섰다. 『소년아사히연감』(1947년 창간), 이와나미소년문고(1950년 창간), 『소년 미술관』(1950~53년), 『어린이의 과학』(1924년 창간), 『초보의 라디오』(1948년 창간) 등 그가 어린 시절에 읽은 단행본과 잡지의 목록만 보더라도 당시 일본 출판문화의 발전과 그 영향 아래서 성장한 한 세대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다.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티보가의 사람들』, H. G. 웰스의 『세계 문화사』 등을 경쟁적으로 읽던 고교 시절을 지나 도쿄대학에 진학한 가토 게이지는 1960년에 일어난 안보반대투쟁을 맞닥뜨린다. 격렬한 학생운동의 현장 한가운데서 권력에도, 폭력에도 약한 자신을 직시하고 “그렇다면 한순간의 용감함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저항을 지속할 것인가”(45쪽)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이후 그는 인류학, 언어학, 미술사, 철학, 역사학 등 다방면의 수업을 닥치는 대로 청강하며 교양을 쌓는 데 주력한다. 1960년대 전반 대학에서 얻은 이런 경험과 인식은 그가 훗날 편집자를 지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교양학부를 마치고 동양사학과로 진학한 가토 게이지는 에노키 가즈오(중앙아시아사), 야마모토 다쓰로(동남아시아사), 스도 요시유키(중국사) 등 쟁쟁한 교수진 아래서 아시아학 전문 도서관이자 연구소인 동양문고를 견학하고, 만철사연구회에도 참여하는 등 학문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중국 고대사 쪽으로 전문적인 관심을 키워갔지만 최종적으로는 ‘만주의 조선인 공산주의자’를 주제로 삼아 졸업 논문을 완성하고 1965년 미스즈서방에 입사한다.
가토 게이지는 미스즈서방의 창립자이자 초대 편집장이었던 오비 도시토 아래서 편집자의 기본기를 익혔다. 오비 도시토는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격언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주말마다 『더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 『뉴욕 타임스 일요판』, 『르 몽드』 등 외국의 신문 잡지 서평을 샅샅이 읽고 주요 신간을 발 빠르게 검토 출간하는 한편으로, “시간은 밭이다”라는 말로 미스즈서방의 책들이 시간을 밭으로 삼아 자라나 오래도록 읽힐 것임을 예견하기도 했다. 가토 게이지는 오비 도시토가 기획한 책들을 편집하며 당대 사상과 문화의 지도를 파악해나갔고, 유수의 저자 및 번역가들과 교류하며 인문서 편집자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일본 인문 출판의 중심 미스즈서방과 지식인으로서의 편집자
“편집자는 모든 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자,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그 전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가토 게이지가 편집한 책의 목록과 교류한 저자, 번역가의 이름만으로도 한 시대의 지성사를 쓸 수 있을 만큼 이 책에서는 ‘지식인으로서의 편집자’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카를 슈미트의 『현대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지위』, 알레산드로 당트레브의 『국가란 무엇인가』, 제임스 보즈웰의 『새뮤얼 존슨 전기』, 조지 트리벨리언의 『영국 사회사』, 버트런드 러셀의 『독일 사회민주주의』 등이 모두 가토 게이지가 편집한 책들이다. 2부 1장 「번역가 소묘」에서는 이 책들을 함께 만든 번역가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를 세계 최초로 번역한 언어학자 고바야시 히데오와의 협업,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번역가의 자살과 뒤이은 오역 사건, 3대에 걸쳐 번역가를 배출한 집안 등 각각의 일화를 따라가다 보면 편집자와 저자, 번역가가 함께 지적 토양을 일구어가던 20세기 후반 일본 지식인 사회의 열기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에는 편집자들이 발 빠르게 소개한 해외 저작들이 사회에 새로운 담론과 주제, 연구 방향을 제시한 사례가 많이 등장한다. 일례로 가토 게이지는 편집장 오비 도시토에게 “세계의 절반은 이슬람입니다”(72쪽)라는 말로 이슬람 관련 서적의 출간을 제안하고,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전반에 걸쳐 버나드 루이스의 『아랍의 역사』, 해밀턴 알렉산더 깁의 『이슬람 문명사』, 몽고메리 와트의 『무함마드: 예언자와 정치가』 등을 의욕적으로 펴낸다. 이 책들을 바탕에 두고, 이후 헤이본샤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출간되면서 일본 사회에서도 ‘오리엔탈리즘 논쟁’이 촉발된다. 1973년 마르크 블로크의 『봉건사회』를 시작으로 뤼시앵 페브르, 페르낭 브로델 등 아날학파의 작업이 잇달아 소개되며 역사학의 새로운 영역이 열리던 과정에도 최적의 번역가를 찾아 신속하게 책을 출간해낸 편집자들이 있었다.
미스즈서방은 번역 출판의 명가로 알려진 곳이지만, 일본 사상가들의 저작과 일본사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를 펴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서구 지성들의 저작을 소개하는 한편으로 구가 가쓰난, 쓰다 마미치 등 메이지 사상가들의 전집을 비롯해 마루야마 마사오의 『전중과 전후 사이』, 『고바야시 히데오 저작집』, 『후지타 쇼조 저작집』 등 당대 사상가들의 저작도 꾸준히 출간했다. 가장 인상적인 작업은 1차 대전 이후부터 2차 대전에 이르는 시기 일본 현대사의 기초가 되는 모든 문서 자료를 수집해 간행한 『현대사 자료』(전 45권, 별권 『색인』 1권, 1962~80년)와 『속‧현대사 자료』(전 12권, 1982~96년)이다. 컴퓨터는커녕 복사기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던 시절에 극비 자료나 해외 반출 자료까지 최대한 수집해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을 한 민간 출판사가 해낸 것이다. 그 주역은 물론 편집자들이었다.
“인문서의 벨 에포크, 그 시대의 모습을 전할 수 있다면 기쁘겠다”
- 편집자의 회고를 통해 보는 일본 인문 출판의 찬란한 시절
가토 게이지가 편집자로 일한 기간, 그중에서도 특히 1960~80년대는 일본 출판의 황금기라고 부를 만한 시기이다. 아동문고, 소년‧소녀 잡지부터 고전의 주석이나 최신의 사상을 담은 인문서까지 연령과 분야를 막론하고 다량의 출판물이 쏟아져 나왔고, 그것을 사서 읽고 이야기 나누는 독자들이 있었다. 가토 게이지와 그 동료들은 이런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성장하고 공부하고 일한 사람들이다. 가토 게이지라는 인물 자체가 “모든 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그 시대 제너럴리스트의 표본과도 같은 사람이고, 그와 함께 일한 오비 도시토, 마루야마 마사오, 고바야시 히데오 등도 인문학 전반에 대한 폭넓은 소양과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고루 갖춘 사람들이었다. 이 책 후반부에 실린 여러 산문들에서는 이른바 ‘인문서의 벨 에포크’가 낳은 뛰어난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들이 교류하고 경쟁하며 전후 일본 사회의 지적 성장을 이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아가 가까이는 동아시아, 멀리는 전 세계 학계와 출판계의 흐름을 살피는 편집자의 넓은 시야에 경탄하게 된다.
3부 1장 「마루야마문고에 소장된 오규 소라이 관계 자료들」을 보면, 미스즈서방이 직접 오규 소라이 관련 필사본과 판본의 복사물을 샅샅이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마루야마 마사오가 엄밀한 교주 작업을 진행하는 일화가 나온다. 이 자료 수집의 과정에는 앞서 출간된 이와나미서점의 『국서총목록』(전 8권)과 그 『색인』이 중요한 참조가 되었고, 서지학의 일인자 아베 류이치의 혹독한 질책과 도움도 있었다. 가토 게이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었던 중대한 과실過失에 대해서도 고백하며 “사상사학에서 서지학, 고문서학에 대한 경의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편집이라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근세 사상사 분야의 텍스트 교정이 불충분하다는 점을 통감했다”(221쪽)라고 말한다. 이 일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사상사학, 서지학, 고문서학에 대한 지식을 일정 정도 갖추고 있었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 분류하여 각자의 판본을 출간하던 미스즈서방, 이와나미서점 등의 출판사도 이런 작업의 중요성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학계와 출판계, 그리고 독자가 함께 인문학의 발전을 견인해가던 찬란한 시절이었다.
35년의 경력 가운데 “마지막 무렵에는 그늘이 있었다”(5쪽)라는 저자의 언급처럼 일본에서도 더 이상은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은 개인의 회고를 넘어, 인문 출판이 꽃을 피웠던 한 시대를 증명하는 역사적 기록으로도 읽을 수 있다. “미스즈서방의 구사옥이 있던 삼각형 토지는 지금은 24시간 코인 주차장이 되어 몇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다. 책 만드는 일에 홀렸던 사람들의 꿈의 흔적을 보여주는 현대의 풍경이다”(176쪽)라는 저자의 다소 쓸쓸한 회고처럼, ‘꿈같은 출판사’를 여럿 가졌던 일본이나 그런 기억조차 거의 없는 한국이나 이제 인문서 출판의 현장에는 꿈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책 속으로
코피가 날 때까지 책을 읽던 아이
나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이 책(『소년아사히연감』)을 볕이 잘 드는 마루 끝에서 그야말로 배부른 상태에서 온종일 탐독했고, 그러다 밤에 목욕하러 들어가 코피가 목욕물을 붉게 물들이는 것을 아찔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오타쿠라 해도 코피가 날 때까지 『연감』을 읽는 아이는 드물 것이다. - 25쪽
책으로 가는 문, 세계로 가는 문
열 살 무렵에 만난 책 한 권으로 그 아이는 자기 앞에서 세계가 한순간에 열리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책으로 가는 문’은 ‘세계로 가는 문’으로도 통했다. - 27쪽
한순간의 용감함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저항을 지속할 것인가
이 시기 학생운동의 경험에서 내가 얻은 교훈은 나는 권력에도, 폭력에도 매우 약하다는 점이었다. 목에 달라붙는 경관의 흰 장갑, 내리치는 경찰봉과 함께 이리저리 튀는 피. 무서웠다. 견디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한순간의 용감함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저항을 지속할 것인가. 저항하는 이들은 물론 굴복한 사람들에게도 강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바로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45쪽
편집장의 독재를 옹호하던 오비 씨
오비 씨는 편집 회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회의에서는 보통 평균치의 이야기가 나와서 재미도 무엇도 없다는 것이다. 그가 편집 회의의 존재 의의로 든 것은 원고를 거절할 때 편집 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하면 구실이 된다는 것 정도였다. 그는 편집 회의라는 민주주의보다 단연코 편집장의 독재를 옹호하는 사람이었고, 실제로 일도 그렇게 했다. - 67~68쪽
꿈같은 출판사, 미스즈서방
미스즈서방은 서구 문명에 대한 동경을 형식을 갖춰 만들어내는 출판사로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롤랑 바르트의 기호론 등 서구 지성들의 저작을 번역 출판하는 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가 출간한 번역서의 목록을 프랑크푸르트국제도서전에 가지고 가서 해외 출판인들에게 보여주자 모두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일본에 이런 꿈같은 출판사가 있느냐면서. 평소에는 그다지 자각하지 못하지만, 일본이 축적한 번역 문화는 실로 거대하다. 세계 문명에 관한 지식을 얻으려면 일본어를 습득하면 된다, 일본어로 다 준비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이지만, 절반은 사실이기도 하다. - 71쪽
편집자는 제너럴리스트
내 기억에 오류가 없다면 이때 마루야마 씨는 “블랙웰에는 가토 군 같은 점원이 있어서 어떤 주제에 대해 물어보면 그와 관련된 책을 모두 가져와서 각각의 특징에 대해 설명해준다”라고 했다. 좋은 서점에는 스페셜리스트는 아니어도 훌륭한 제너럴리스트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서점을 출판사로 치환해보면 이것이 아마도 ‘내가 편집자가 된 이유’일 것이다. - 87~88쪽
민간 출판사가 집대성한 현대사 연구의 기초 자료
『현대사 자료』는 누가 뭐라 해도 전후 일본의 기념비적 출판물이다. 이것이 없었다면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일본의 위기 시대의 자료를 우리가 얼마나 가질 수 있었을까? 그것을 한 민간 출판사가 해낸 것이다. 『색인』에 실린 「편집실에서」라는 글에는 그 마음이 담겨 있다.
“생각해보면 이 기획은 패전, 점령으로 이어지는 사회 변동 속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1950년대 도쿄의 고서 시장에 때때로 출현하던, 패전 전의 경찰 자료에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폐지로 내버려져 고물상이 분류하고 구분하는 가운데서 발견된 등사판이나 필사본 등이 특수한 주목자를 기대하면서 돌아다녔던 것입니다.” - 90~91쪽
출판사, 저마다 다른 재능을 가진 편집자들이 모인 곳
그 당시의 편집자 가운데는 그러한 괴물이나 괴짜가 상당히 많았다. 다카하시도 미스즈서방의 편집부를 둘러보고는 감개무량하다는 듯이 “여기에는 무예 전반을 골고루 다 잘한다고는 못 해도 ‘나는 쇠사슬 낫, 나는 수리검’이라고 각자 자신 있는 무기를 말할 수 있는 강자들이 모여 있구나”라고 했다. - 165쪽
출판계의 신기한 힘
출판계에는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출판계는 신기한 일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 - 1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