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휴먼 (장애 운동가 주디스 휴먼 자서전)
- 2317
• 지은이 : 주디스 휴먼(Judith Heumann), 크리스틴 조이너(Kristen Joiner)
• 옮긴이 : 김채원, 문영민
• 가격 : 17,000원
• 책꼴/쪽수 :
140x210mm, 336쪽
• 펴낸날 : 2022-03-18
• ISBN : 979-11-6094-911-7
• 십진분류 : 사회과학 > 사회과학 (300)
• 도서상태 : 정상
• 태그 : #주디스휴먼
저자소개
지은이 : 주디스 휴먼(Judith Heumann)
1947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생후 18개월에 겪은 소아마비로 인해 휠체어를 탄다. 휠체어를 탄다는 이유로 다섯 살에 학교 입학을 거부당하면서 장애인의 권리를 위한 긴 투쟁을 시작한다. 1970년 장애를 이유로 교사 면허를 불허한 뉴욕시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교사 면허를 취득했고, 1972년 장애인 시민권 단체 동료들과 닉슨 대통령의 재활법 개정안 서명 거부에 항의하며 맨해튼 매디슨 애비뉴의 차선을 점거했다. 1977년 재활법 504조 시행 규정에 서명하지 않는 보건교육복지부 장관에 항의하며 100명이 넘는 장애 동료들과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을 24일간 점거한 끝에 서명을 이끌어냈다. 1980년 에드 로버츠, 조앤 리언과 함께 세계장애인기구를 설립하고, 1990년 미국장애인법이 제정되기까지 투쟁의 최전선에 섰다. 1993~2001년 클린턴 행정부의 특수교육 및 재활 서비스국 차관보, 2002~2006년 세계은행 최초의 장애와 개발 자문위원, 2010~2017년 오바마 행정부의 국제 장애인 인권에 관한 특별 보좌관으로 일하며 세계 장애 운동의 리더로 활약했다. 2020년 이 모든 투쟁을 함께한 주디스 휴먼과 장애 동료들의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크립 캠프〉가 공개되었다.
지은이 : 크리스틴 조이너(Kristen Joiner)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이자 활동가이다.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를 비롯해 수많은 매체에 배제, 불평등, 사회 변화에 관한 글을 실었다.
옮긴이 : 김채원, 문영민
김채원
미국 네바다주립대학교 호텔경영학과, 성공회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근무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람중심계획’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문영민
서울대학교에서 화학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장애인의 생애사와 장애 운동사의 상호 작용에 관심이 있고, 장애인 건강에 관한 생애사 연구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미국 네바다주립대학교 호텔경영학과, 성공회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근무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람중심계획’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문영민
서울대학교에서 화학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장애인의 생애사와 장애 운동사의 상호 작용에 관심이 있고, 장애인 건강에 관한 생애사 연구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 건물 출입구의 경사로, 텔레비전 방송에서 제공하는 수어 통역과 자막, 점자 보도블록, 장애인 활동 지원 제도 등은 어느 날 갑자기 사회의 인권 의식이 향상되어서 도입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장애인 당사자와 운동가들이 자신의 삶을 걸고 온갖 비난과 모욕을 무릅쓰며 투쟁한 끝에 하나씩 겨우 마련된 것이다. 주디스 휴먼은 1970년대의 재활법 504조 투쟁부터 1990년 미국장애인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소송과 시위, 조직과 점거를 불사하며 최전선에서 싸운 장애 운동가이자, 클린턴‧오바마 행정부와 세계은행 등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법과 제도를 통해 실현하려 한 장애 권리 행정가이다. 또한 모든 투쟁과 업무의 현장에서 겹겹의 차별과 배제를 돌파해나가야 했던 여성이자 유대인 이민자 가정 출신이기도 하다.
『나는, 휴먼』은 휠체어를 탄다는 이유로 학교에 갈 수 없었던 어린 시절부터 사회의 모든 영역에 장애인의 자리를 만들고, 소외된 이들의 시민권이 보호받는 사회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디스 휴먼의 일대기를 그 자신의 말로 정리한 자서전이다. 이 책은 오늘의 우리가 다다른 장애에 관한 인식, 시민의 권리와 평등에 관한 생각들이 긴 시간에 걸쳐 수많은 사람이 저항하고 연대하고 협력한 결과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자, 공고한 차별과 배제의 벽을 결국에는 시민의 힘으로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주는 하나의 증언이기도 하다.
『나는, 휴먼』은 휠체어를 탄다는 이유로 학교에 갈 수 없었던 어린 시절부터 사회의 모든 영역에 장애인의 자리를 만들고, 소외된 이들의 시민권이 보호받는 사회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디스 휴먼의 일대기를 그 자신의 말로 정리한 자서전이다. 이 책은 오늘의 우리가 다다른 장애에 관한 인식, 시민의 권리와 평등에 관한 생각들이 긴 시간에 걸쳐 수많은 사람이 저항하고 연대하고 협력한 결과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자, 공고한 차별과 배제의 벽을 결국에는 시민의 힘으로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주는 하나의 증언이기도 하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주디의 메모
들어가며
1부 뉴욕 브루클린, 1953
1장 나비
2장 반항하는 사람
3장 싸울 것인가, 싸우지 않을 것인가
4장 비행 공포
2부 캘리포니아 버클리, 1977
5장 억류
6장 점령군
7장 전쟁터의 군사들
8장 백악관
3부 캘리포니아 버클리, 1981
9장 결실
10장 친고나, 유능하고 나쁜 여자들
11장 사람들
12장 우리 이야기
감사의 말
주
옮긴이의 글
추천의 글
주디스 휴먼 연보
찾아보기
주디의 메모
들어가며
1부 뉴욕 브루클린, 1953
1장 나비
2장 반항하는 사람
3장 싸울 것인가, 싸우지 않을 것인가
4장 비행 공포
2부 캘리포니아 버클리, 1977
5장 억류
6장 점령군
7장 전쟁터의 군사들
8장 백악관
3부 캘리포니아 버클리, 1981
9장 결실
10장 친고나, 유능하고 나쁜 여자들
11장 사람들
12장 우리 이야기
감사의 말
주
옮긴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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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휴먼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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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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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택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삶을 관람하거나 고민을 들어주는 조금은 비켜난 위치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책을 읽을 때도 보통은 멀찌감치 앉아 있는 관람객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주디의 이야기는 곧 내 이야기였고,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관람객이 아니라 무대 위의 주인공이었다. 장애인도 이 사회에 한 사람으로 살고 있음을 위해 투쟁했던 내가 시공간을 넘어 주디와 만나는 지점이 있어 좋았다. 참 좋았다. - 박김영희(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 대표)
주디스 휴먼은 장애인 인권 운동의 길이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힘을 모아 싸우고 버티고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삶을 통해 보여준 인물이다. 소송, 점거, 시위, 조직과 연대, 그리고 법률과 제도의 마련까지 주디의 인생을 채운 모든 이야기는 곧 우리 장애 운동가들이 걸어온 길이다. 오늘도 거리에 선 우리는 주디의 책을 읽으며 힘을 얻는다. 이 책을 통해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장애인 당사자의 힘이 어떻게 결집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 박경석(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 대표)
주디는 자신이 이룬 성과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디라는 한 사람의 힘이 작은 파동을 만들고 결국에는 큰 파도를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학교 가는 옆집 아이를 부러워하던 내 어린 시절의 마음, 집회에서 힘이 부족해 다른 사람들 손에 들려 나갈 때의 분함이 떠올라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내 감정을 해방시킨 뒤에는 다시 힘이 솟았다. 독자들도 주디를 만나 울고 웃고 대화하고 힘을 얻기를 바란다. - 박찬오(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이 중요한 책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기회를 얻고, 언제나 자기 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 힐러리 클린턴(정치인)
활동가로서 살아온 주디의 인생 이야기는 세상 곳곳의 독자들에게 깊은 깨달음을 줄 것이다. - 글로리아 스타이넘(페미니스트, 사회 운동가)
우리의 가장 위대한 활동가 중 한 사람의 잊을 수 없는 초상화이자, 더 정의롭고 포용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한 로드맵으로서 모두가 읽고 소중히 여겨야 할 책이다. - 니콜 뉴넘 & 짐 러브렉트(다큐멘터리 〈크립 캠프〉 감독)
미국장애인법 제정 과정의 원동력이었던 인물이 평생에 걸친 투쟁 이야기를 회고한다. 행동하는 정치에 관한 환영할 만한 서술. - 『커커스 리뷰』
모든 활동가와 시민권 지지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사려 깊고, 분명하며, 영감을 주는 이야기. - 『퍼블리셔스 위클리』
주디스 휴먼은 장애 운동의 대모라 불린다. 그리고 끝내주게 멋진 사람이다. - 『워싱턴 포스트』
출간 의의
나는 장애인이 되었고, 시민이 되었고, 결국 내가 되었다
1947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주디스 휴먼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사지마비 장애를 얻었지만, 가족과 이웃 사이에서는 장애를 의식하지 못한 채 자랐다. 같은 블록에 사는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휠체어를 밀었고 주디가 같이 할 수 없는 놀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휠체어를 타기 때문에 ‘화재 위험 요인’이라며 유치원과 학교 입학을 거부당하고, 지나가던 아이에게 “너 아프니?”라는 공격적인 질문을 듣고,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점차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 할 수 없는 일과 갈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특수학교, 이어서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며 장애인을 위한 여름 캠프에 참가하던 휴먼은 장애 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한편, 장애인이 동등하게 누려야 할 기회와 권리,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는 삶을 위한 싸움에도 눈을 뜨게 된다. 롱아일랜드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고자 했던 그는 1970년 장애를 이유로 교사 면허를 불허한 뉴욕시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교사가 되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인들이 주체가 된 시민권 단체 ‘행동하는 장애인’을 설립한다. 1972년 이 단체의 동료들과 함께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이나 활동에 따른 혜택에서 배제, 거부되거나 차별받을 수 없다”고 규정한 재활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항의하며 맨해튼 매디슨 애비뉴의 차선을 점거한다.
이후 휴먼은 미국 서부의 대표적 장애 운동가 에드 로버츠의 제안으로 당시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성장하던 자립생활 운동에 합류하고, 장애 동료들과 미국장애인시민연합을 설립하여 보건교육복지부 장관에게 재활법 504조 시행 규정에 서명할 것을 요구한다. 포드 행정부에서 카터 행정부로 넘어오는 동안에도 서명이 이루어지지 않자, 1977년 4월 100명이 넘는 장애 동료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을 24일간 점거하고 청문회, 언론 보도, 백악관 방문 등 다방면의 압력을 가한 끝에 마침내 보건교육복지부 장관 조지프 칼리파노의 서명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서명 이후에도 장애인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보다 포괄적인 영역에서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인의 권리를 시민권법의 틀에서 보장하는 미국장애인법이 제정되기까지 휴먼은 늘 투쟁의 최전선에 섰다. 1990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미국장애인법에 서명하던 순간을 휴먼은 이렇게 썼다. “나는 마흔한 살에 마침내 동등한 시민이 되었다.”(246쪽)
이후 휴먼은 클린턴, 오바마 행정부에서 장애 권리 행정가로 일하며 장애 당사자로서 정부 최고위직에 올랐고, 세계은행 최초의 장애와 개발 자문위원으로 활약하며 세계 장애 운동의 리더로 활약했다. 그는 정부와 기관의 모든 업무에서 장애인의 권리가 배제되지 않도록 제도와 인식 개선에 힘썼으며, 자신을 비롯한 장애인들이 어떤 자리에서든 일할 수 있도록 시설과 서비스를 갖추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이 모든 과정을 회고하며 휴먼은 “나는 내가 되고자 했던 그 사람이다”(289쪽)라고 말했다. 남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던 아이가 부당한 사회에 맞서며 스스로 시민이 되고, 마침내 자기 자신으로 살게 된 이 긴 이야기는 오늘도 거리에 선 장애 운동가, 당사자들의 투쟁이 향하는 곳을 짐작케 한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으로, 내 목소리를 내며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사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들을 조직하고 투쟁을 이어갈 것인가
24일간의 점거 농성, 그 안에서 꽃핀 소통과 존중의 문화
주디스 휴먼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서사의 정점에는 1977년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을 24일간 점거한 끝에 보건교육복지부 장관의 재활법 504조 시행 규정 서명을 이끌어낸 과정이 놓일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점거 농성에 돌입한 100명이 넘는 장애인들은 서로의 눈이 되고, 귀가 되고, 팔과 다리가 되어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각자의 장애 유형과 건강 상태, 가능한 소통 방식을 고려하여 음식과 약품 조달, 언론 홍보 등을 담당할 위원회를 꾸리고, 중요한 의사 결정은 반드시 모든 사람의 동의를 거친 뒤에야 했다. 회의는 수어 통역사 없이는 시작되지 않았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가 발언을 하기 전에는 끝나지 않았다. 느린 속도, 어눌한 발음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음식과 약품 반입이 금지되고, 온수와 전화까지 끊기며 고립되어가던 시위대가 수어를 통해 창문 밖의 시위자들과 소통하는 모습은 공통의 목표 아래 모인 사람들이 각자가 가진 능력과 자원을 동원해 협력을 도모하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리는 비밀 병기를 가지고 있었다. 수어였다. 우리는 모든 발표 자료와 메시지를 청각장애인 시위자들에게 주고, 그들을 우리의 지지자들이 철야 농성을 하고 있는 광장이 내다보이는 창가로 데려갔다. 바깥의 청각장애인 시위자들과 수어 통역사들이 관심을 보이자, 그들은 창문을 통해 수어로 우리의 메시지를 전했다. 바깥의 청각장애인 시위자들과 수어 통역사들이 그 메시지를 받아 다시 전해야 할 사람들에게 전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 167~168쪽
휴먼은 목표한 바를 실현하기 위해 물러서지 않는 신념가였지만, 성의를 다해 동료들을 설득하고 움직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거창한 약속을 하기보다는 “하루만 더 함께해주시겠어요? 하루만 더 버티면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예요”(160쪽)라며 시위대를 독려했고, 결국 함께 시위를 시작한 열 개 도시의 시위대 가운데 샌프란시스코의 시위대만 유일하게 100명이 넘는 인원을 유지한 채 끝까지 버텼다.
상호 소통과 존중을 통해 운동 내부에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한 휴먼은 장애 운동을 바깥의 다른 시민권 운동과 연결해야 한다는 것도 분명히 알았다. 장애 유형별로 모이거나 장애 자녀의 재활이나 교육 등 한정된 주제로만 접근하던 부모 세대와 달리, 휴먼과 동료들은 그들의 운동이 강력한 권력에 맞서는 약자들의 연대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흑인, 노동조합, 게이 커뮤니티, 교회 등 다른 시민권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장애인의 권리도 시민권 이슈로 다루어야 함을 역설했다. 흑인 운동 단체 블랙팬서가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 안의 ‘불구자 점령군’을 위해 매일 밤 따뜻한 음식을 가져다주는 모습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다양한 시민권 운동이 어떻게 손을 잡아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64년에 제정된 시민권법Civil Rights Acts은 인종, 피부색, 종교, 출신 국가에 따른 차별을 없애기 위한 조항은 포함하고 있었지만 장애에 대한 조항은 없었다. 장애인을 시민의 범주에 넣지 않은 것이다. 휴먼과 동료들의 오랜 투쟁과 설득, 협력의 결과 1990년 7월 마침내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시민권법인 미국장애인법이 제정되었다. 이 책은 주디스 휴먼이라는 한 인물의 일대기이지만, 동시에 여러 시민권 운동이 교차하는 가운데 성장한 미국 장애 운동의 역사로도 읽을 수 있다. 이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성장해온 한국의 장애 운동에는 일종의 거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 여성은 여성 운동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여성, 장애인, 운동가로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주디스 휴먼은 장애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도 싸워야 했다. 정당한 요구를 하더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타협을 모른다거나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며 모인 장애 운동가들 사이에서도 비난을 당하기 일쑤였고, 이유 없이 자리를 빼앗기기도 했다. 재활법 504조 투쟁 당시 서부의 샌프란시스코 시위대가 동부의 워싱턴으로 대표단을 파견했을 때, 동부의 시위대는 여성이 다수였던 서부의 지도부가 싸우려고만 들고 시민적 저항의 관행을 무시한다며 불편해했다. 동료 활동가인 에드 로버츠, 조앤 리언과 공동 대표로 세계장애인기구를 설립했을 때도 몇 년 후 이사회에서는 아무런 절차도 설명도 없이 남성인 에드 로버츠를 단독 대표로 세웠다. 세계은행에서 만난 한 비장애인 남성 상사는 가장 취약한 존재였던 ‘장애인 여성’ 휴먼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휴먼은 자신이 늘 같은 문제에 직면한다는 것을, 이것이 매우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가 장애를 가진 딸이 동등한 기회를 얻는 일에서는 투사였지만 아버지에게 의지했던 것처럼, 휴먼 자신도 타협 없는 투쟁가이면서 동시에 착한 딸이었다. 사회 운동의 리더로서는 강한 모습을 보여야 했지만, 여성으로서 우호적이지 않아 보일 만큼 강해서는 안 되었다. 모든 여성이 두 가지 진실을 살고 있었지만, 휴먼을 비롯한 장애 여성들은 여성 운동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장애 여성의 80퍼센트가 살아가는 동안 성적 학대를 당하는데도 이는 여성의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여러 겹의 차별을 돌파해나가야 했다.
여성인 우리는 매번 옳은 일을 하고, 수천 가지 일을 제대로 해내고, 모든 약속을 지켰다. 우리는 150명이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을 점거하도록 이끌었고, 장애인을 위한 법을 바꿔냈다. 그러나 우리는 책임자의 자리에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우리가 과도하게 밀어붙인다고 말했다. 에드에게는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이런 상황은 내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물론 캘리포니아에 사는 내 여자 친구들은 내 편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늘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나는 내면적으로 성장해야 했다. 장애인 여성인 우리는 여성 운동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늘 우리의 문제가 여성 운동 쪽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지지를 받도록 애를 썼지만 대체로 무시당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리 자신뿐이었다. - 233쪽
그러나 휴먼은 모든 취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더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취약하고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차하는 여러 정체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휴먼의 이야기에서 작은 출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그러니까 모든 사람, 특히 소외된 사람들은 함께 일해야 한다. 넓은 범위의 시민권 운동 안에 장애는 늘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보이는 장애와 보이지 않는 장애는 모든 소수자들 사이를 가로지른다. 우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고, 라틴계 혹은 아시아계 미국인 혹은 아메리카 원주민이며, 게이 혹은 이성애자 혹은 트랜스젠더이고, 중산층 혹은 부유층 혹은 빈곤층이며, 힌두교도 혹은 기독교도 혹은 무슬림이다. 우리는 어떤 소외된 집단이 앞으로 나아갈지 선택할 수 없다. 결국 우리 모두는 가족과 세상을 돌보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 300쪽
민주주의 정부를 소중히 여겨라
선거에 출마하고 투표에 참여하라
‘우리’와 ‘함께’는 주디스 휴먼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다. 자신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이기 마련인 ‘자서전’의 위험성을 잊지 않으려는 듯 그는 “세상을 바꾼 이야기는 어떤 것이든 항상 많은 사람이 함께 만든 이야기”(20쪽)임을 부단히 강조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1970년대 이후 미국 장애 운동의 역사에서 주디스 휴먼, 에드 로버츠 등 몇몇 운동가와 정치인의 역할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결단과 행동 뒤에는 늘 수많은 장애인 당사자와 활동가들의 협력과 헌신이 있었다. 휴먼과 같은 리더는 이 싸움이 나를 위한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행동할 때 비로소 탄생한다.
내가 이 책에서 언급한 각각의 이름 뒤에는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수천 명의 다른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위원회를 만들고 만들고 또 만들었다. 모든 사람에게 자기 역할이 있었고, 모두가 주인이었다. 왜 그랬을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성공이 협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의 힘은 오로지 운동과 일체감을 느끼고 주인의식을 갖는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이런 방식으로 일한다. - 299~300쪽
사회의 약자, 소수자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받기까지는 지난한 투쟁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훼손되고 퇴보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장애인을 위해 마련된 법과 제도를 대거 축소하려 들었다. 취임 첫날 오바마케어를 건드렸고, 이어서 백악관 웹사이트에서 미국장애인법에 관한 페이지를 닫아버렸다. 그의 초대 법무부 장관은 장애 어린이의 교육을 지원하는 장애인교육법을 공격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장애 활동가들은 상원의 다수당 대표의 집 앞에서 ‘죽은 듯이 드러눕는 시위’를 벌이는 등 다각도의 저항 운동을 펼쳤다. 오바마케어를 폐지하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했다.
휴먼은 트럼프 당선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서술하며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 어떤 정부를 구성하는지는 시민 개개인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사회를 공정하게 만들고, 모든 사람에게 목소리를 주고, 소외된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할 ‘민주주의’라는 수단이 있음을 강조한다. 휴먼과 장애 동료들이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사회를 조금씩 움직여 오늘의 모습으로 만들었듯이, 당장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더라도 끈질기게 함께 목소리를 낸다면 결국에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장애 운동을 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이 증명하고 호소하는 바다.
우리 정부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정부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고, 사람들이 모여 변화시킨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한 가지 선택지를 준다. 신뢰할 만한 정부를 창조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치든 그저 수용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 민주주의 정부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에 지속적으로 투자한다면 우리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것이 복잡하다고 느껴질 때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복잡하고 그 과정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선거에 출마하라. 투표에 참여하라. “당신의 목숨이 거기 달려 있다는 생각으로 투표하라. 진짜로 당신 목숨이 달려 있으니까!” - 292~299쪽
책 속으로
나비였던 나는 애벌레가 되었다
온 세상은 내가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픈 사람은 집 안에서 침대에 누워 있다. 아픈 사람은 밖에서 놀지 않고, 학교에 가지도 않는다. 아무도 그들이 밖에서 놀거나, 어떤 무리의 일원이 되거나, 세상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가 세상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다. 마치 그 사실이 내 몸 구석구석에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것 같았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구역질이 날 정도로 굴욕감을 느꼈다. 사람들이 나에게 계속 숨겼던 걸까? 부끄러움이 배 속 깊숙한 곳에 차가운 덩어리로 자리 잡고 있다가 팔다리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날씨가 맑았던가 흐렸던가. 모르겠다. 알린이 내 휠체어를 밀었고, 우리는 함께 가게에 가서 사탕을 사고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나비였던 나는 애벌레가 되었다. - 35~36쪽
장애는 의료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장애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연관시켰다. (…) 장애는 개인이 싸우거나 정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동의하지 않았다. 우리의 문제를 ‘고쳐서’ 해결되는 의료적 문제라고 보지 않았다. 우리는 접근성 부재가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고 보기 시작했다. 우리의 관점에서 장애는 누군가에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이러한 삶의 진실을 중심으로 인프라와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옳았다. 우리는 시민권 운동과 함께 성장했다. 로자 파크스가 버스의 백인 전용 구역에 앉지 못하는 것에 저항했을 때 나는 여덟 살이었고, 1964년 시민권법이 통과되었을 때는 막 대학생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사회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 아닐까? - 74~75쪽
내가 싸우지 않는다면, 누가 이 싸움을 할까
많은 사람이 휠체어에 앉은 여성이 얼마나 잘 가르칠 수 있는지 궁금해하며 지켜볼 것이다. 만약 내가 이 싸움에서 승리한 후에 형편없는 교사로 평가받는다면 나의 실패는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내가 가르치는 일을 잘 해내지 못해 사람들이 장애가 있는 사람은 누구를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장애를 가진 교사가 수천 명 있다면 실력 없는 교사 한 명이 눈에 띌 일은 없다. 그러나 내가 장애를 가진 유일한 교사로서 실패한다면 사람들은 장애인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게 될까? 생각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다. (…) 그러나 만약 내가 싸우지 않는다면, 누가 이 싸움을 할까? - 88~89쪽
정부가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시민권 침해다
나는 장애인이 교육, 고용, 교통 접근성 측면에서 마주하는 삶의 장벽이 일회성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리기 위해 내 이야기를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우리의 장애는 재활로 치료될 수 있는 의학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소아마비로 인한 신경 세포 손상을 극복해서 걷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그것이 내 삶의 목표도 아니었다. 베트남전쟁에서 장애인이 되어 돌아온 퇴역 군인의 팔과 다리는 다시 자라지 않으며, 척수 치료를 한다고 해서 그들이 다시 걸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근육위축증을 가진 친구들이 장애 없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사고, 병, 유전적인 요인, 신경학적 장애, 노화 등은 성별이나 인종과 같이 인간의 기본적인 상태를 나타낸다. 따라서 학교나 고용주, 시의회가 장애인이 참여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정책을 만들고 건물을 세우고 버스를 설계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우리의 시민권을 침해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우리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책임을 가져야 했다. - 91~92쪽
불구자 점령군,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을 점거하다
이런 모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곳에서의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복도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 경주를 하고 게임을 하고 기타를 치며 노래도 불렀다. 사생활은 거의 없었다. 모두가 다른 모든 일을 하는 가운데 옷도 갈아입고 챙겨야 할 일들을 챙겼다. 그러면서 유대감을 형성해갔다. 사람들은 몇 시간이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우정이 만들어졌다. (…) 그곳에서는 느리거나 다르다는 이유로 열등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짐이 되어도 괜찮았다. 사과를 할 필요도 없었다. 건물 안에서 우리는 마치 캠프에서처럼 가족이나 친구, 혹은 신뢰할 수 없는 대중교통에 의존하지 않고도 쉽게 서로를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를 자주 고립시켰던, 도달할 수 없는 바깥세계가 아득히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더 큰 무엇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 178~180쪽
평등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는 것이 아니다
평등은 공정성에 관한 이야기다. 접근 기회의 형평성에 대한 이야기다. 나 같은 사람,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는 수천수만의 우리는 주거나 건강, 교육, 고용 등의 문제에서 접근 기회의 형평성을 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경사로, 더 넓은 출입구, 안전 손잡이, 수어 통역사, 자막, 접근 가능한 기술, 음성 안내, 점자로 된 문서, 지적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을 위한 활동 보조인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권리를 요구하는데도 ‘불만이 많다’, ‘이기적이다’라는 틀에 갇히고 만다. 이런 일은 특히 여성에게 일어난다. 우리는 ‘끝없이 요구하는 사람들’이라 불리고, 물러서지 않으면 ‘끈질기다’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에게 ‘끝없이 요구하는’, ‘끈질긴’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것은 우리를 ‘굴복하게’ 하려는 또 다른 방식일 뿐이다. - 221~222쪽
장애 정체성의 힘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 일에 대한 고유의 시각과 유일무이한 기술들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특수교육과 재활의 수혜자였고, 자립생활 운동의 리더였다. 전 세계의 장애 이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상원에서 보낸 1년 반이라는 시간은 비록 짧기는 했지만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음이 분명했다. 그 시기를 통해 의회 청문회와 증언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게 되었고, 참모진과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OSERS의 차관보 자리에 앉기 전에는 완전히 깨닫지 못했지만, 그동안 나를 준비시켜온 이 모든 경험의 정점이 바로 이 자리였다. (…) 나는 더 많은 사람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힘껏 문을 밀고 창문을 열었다. 내 목표는 권력을 나누는 것이었다. 그리고 듣는 것, 협력하는 것. - 259~263쪽
장애는 인간사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다
“비장애 어린이의 교육 문제 먼저 다루죠. 그런 다음 장애 어린이를 걱정합시다.”
(…) 하지만 이것은 무슨 논리인가? 여기에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배울 수 있는 잠재력이 떨어지고, 사회에 기여할 능력도 부족하며, 덜 유능하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즉 우리가 덜 평등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가? 장애는 인간사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전쟁을 일으킬수록, 의학이 발달할수록 이전 시기라면 아마 죽었을 사람들이 점점 더 오래 살게 될 것이다. 아마도 장애를 가진 채.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을 중심으로 사회를 설계해야 한다. - 280~281쪽
우리 사회를 위한 우리의 비전은 무엇인가
당신은 우리 지역 사회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그 안에 머물고 싶다고 선택할 만한 마을과 도시가 되길 바라는가? 우리 혹은 우리 자녀 중 누군가에게 사고가 발생했을 때 변함없이 삶을 유지하며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곳이기를 바라는가? 우리는 우리의 인간성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중심으로 세계를 디자인해야 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하고, 개인 활동 보조인을 지원하고, 고용 방식을 바꿔야 한다. 우리의 도시와 사회를 분리와 고립 대신 소속감과 공동체를 키우는 방식으로 디자인할 수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하는 쪽에서 그런 일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옮겨갈 수 있다. 비관론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옮겨갈 수 있다. 어린이처럼. - 300~301쪽
나는 선택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삶을 관람하거나 고민을 들어주는 조금은 비켜난 위치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책을 읽을 때도 보통은 멀찌감치 앉아 있는 관람객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주디의 이야기는 곧 내 이야기였고,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관람객이 아니라 무대 위의 주인공이었다. 장애인도 이 사회에 한 사람으로 살고 있음을 위해 투쟁했던 내가 시공간을 넘어 주디와 만나는 지점이 있어 좋았다. 참 좋았다. - 박김영희(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 대표)
주디스 휴먼은 장애인 인권 운동의 길이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힘을 모아 싸우고 버티고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삶을 통해 보여준 인물이다. 소송, 점거, 시위, 조직과 연대, 그리고 법률과 제도의 마련까지 주디의 인생을 채운 모든 이야기는 곧 우리 장애 운동가들이 걸어온 길이다. 오늘도 거리에 선 우리는 주디의 책을 읽으며 힘을 얻는다. 이 책을 통해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장애인 당사자의 힘이 어떻게 결집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 박경석(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 대표)
주디는 자신이 이룬 성과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디라는 한 사람의 힘이 작은 파동을 만들고 결국에는 큰 파도를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학교 가는 옆집 아이를 부러워하던 내 어린 시절의 마음, 집회에서 힘이 부족해 다른 사람들 손에 들려 나갈 때의 분함이 떠올라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내 감정을 해방시킨 뒤에는 다시 힘이 솟았다. 독자들도 주디를 만나 울고 웃고 대화하고 힘을 얻기를 바란다. - 박찬오(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이 중요한 책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기회를 얻고, 언제나 자기 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 힐러리 클린턴(정치인)
활동가로서 살아온 주디의 인생 이야기는 세상 곳곳의 독자들에게 깊은 깨달음을 줄 것이다. - 글로리아 스타이넘(페미니스트, 사회 운동가)
우리의 가장 위대한 활동가 중 한 사람의 잊을 수 없는 초상화이자, 더 정의롭고 포용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한 로드맵으로서 모두가 읽고 소중히 여겨야 할 책이다. - 니콜 뉴넘 & 짐 러브렉트(다큐멘터리 〈크립 캠프〉 감독)
미국장애인법 제정 과정의 원동력이었던 인물이 평생에 걸친 투쟁 이야기를 회고한다. 행동하는 정치에 관한 환영할 만한 서술. - 『커커스 리뷰』
모든 활동가와 시민권 지지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사려 깊고, 분명하며, 영감을 주는 이야기. - 『퍼블리셔스 위클리』
주디스 휴먼은 장애 운동의 대모라 불린다. 그리고 끝내주게 멋진 사람이다. - 『워싱턴 포스트』
출간 의의
나는 장애인이 되었고, 시민이 되었고, 결국 내가 되었다
1947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주디스 휴먼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사지마비 장애를 얻었지만, 가족과 이웃 사이에서는 장애를 의식하지 못한 채 자랐다. 같은 블록에 사는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휠체어를 밀었고 주디가 같이 할 수 없는 놀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휠체어를 타기 때문에 ‘화재 위험 요인’이라며 유치원과 학교 입학을 거부당하고, 지나가던 아이에게 “너 아프니?”라는 공격적인 질문을 듣고,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점차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 할 수 없는 일과 갈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특수학교, 이어서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며 장애인을 위한 여름 캠프에 참가하던 휴먼은 장애 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한편, 장애인이 동등하게 누려야 할 기회와 권리,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는 삶을 위한 싸움에도 눈을 뜨게 된다. 롱아일랜드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고자 했던 그는 1970년 장애를 이유로 교사 면허를 불허한 뉴욕시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교사가 되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인들이 주체가 된 시민권 단체 ‘행동하는 장애인’을 설립한다. 1972년 이 단체의 동료들과 함께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이나 활동에 따른 혜택에서 배제, 거부되거나 차별받을 수 없다”고 규정한 재활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항의하며 맨해튼 매디슨 애비뉴의 차선을 점거한다.
이후 휴먼은 미국 서부의 대표적 장애 운동가 에드 로버츠의 제안으로 당시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성장하던 자립생활 운동에 합류하고, 장애 동료들과 미국장애인시민연합을 설립하여 보건교육복지부 장관에게 재활법 504조 시행 규정에 서명할 것을 요구한다. 포드 행정부에서 카터 행정부로 넘어오는 동안에도 서명이 이루어지지 않자, 1977년 4월 100명이 넘는 장애 동료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을 24일간 점거하고 청문회, 언론 보도, 백악관 방문 등 다방면의 압력을 가한 끝에 마침내 보건교육복지부 장관 조지프 칼리파노의 서명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서명 이후에도 장애인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보다 포괄적인 영역에서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인의 권리를 시민권법의 틀에서 보장하는 미국장애인법이 제정되기까지 휴먼은 늘 투쟁의 최전선에 섰다. 1990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미국장애인법에 서명하던 순간을 휴먼은 이렇게 썼다. “나는 마흔한 살에 마침내 동등한 시민이 되었다.”(246쪽)
이후 휴먼은 클린턴, 오바마 행정부에서 장애 권리 행정가로 일하며 장애 당사자로서 정부 최고위직에 올랐고, 세계은행 최초의 장애와 개발 자문위원으로 활약하며 세계 장애 운동의 리더로 활약했다. 그는 정부와 기관의 모든 업무에서 장애인의 권리가 배제되지 않도록 제도와 인식 개선에 힘썼으며, 자신을 비롯한 장애인들이 어떤 자리에서든 일할 수 있도록 시설과 서비스를 갖추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이 모든 과정을 회고하며 휴먼은 “나는 내가 되고자 했던 그 사람이다”(289쪽)라고 말했다. 남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던 아이가 부당한 사회에 맞서며 스스로 시민이 되고, 마침내 자기 자신으로 살게 된 이 긴 이야기는 오늘도 거리에 선 장애 운동가, 당사자들의 투쟁이 향하는 곳을 짐작케 한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으로, 내 목소리를 내며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사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들을 조직하고 투쟁을 이어갈 것인가
24일간의 점거 농성, 그 안에서 꽃핀 소통과 존중의 문화
주디스 휴먼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서사의 정점에는 1977년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을 24일간 점거한 끝에 보건교육복지부 장관의 재활법 504조 시행 규정 서명을 이끌어낸 과정이 놓일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점거 농성에 돌입한 100명이 넘는 장애인들은 서로의 눈이 되고, 귀가 되고, 팔과 다리가 되어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각자의 장애 유형과 건강 상태, 가능한 소통 방식을 고려하여 음식과 약품 조달, 언론 홍보 등을 담당할 위원회를 꾸리고, 중요한 의사 결정은 반드시 모든 사람의 동의를 거친 뒤에야 했다. 회의는 수어 통역사 없이는 시작되지 않았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가 발언을 하기 전에는 끝나지 않았다. 느린 속도, 어눌한 발음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음식과 약품 반입이 금지되고, 온수와 전화까지 끊기며 고립되어가던 시위대가 수어를 통해 창문 밖의 시위자들과 소통하는 모습은 공통의 목표 아래 모인 사람들이 각자가 가진 능력과 자원을 동원해 협력을 도모하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리는 비밀 병기를 가지고 있었다. 수어였다. 우리는 모든 발표 자료와 메시지를 청각장애인 시위자들에게 주고, 그들을 우리의 지지자들이 철야 농성을 하고 있는 광장이 내다보이는 창가로 데려갔다. 바깥의 청각장애인 시위자들과 수어 통역사들이 관심을 보이자, 그들은 창문을 통해 수어로 우리의 메시지를 전했다. 바깥의 청각장애인 시위자들과 수어 통역사들이 그 메시지를 받아 다시 전해야 할 사람들에게 전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 167~168쪽
휴먼은 목표한 바를 실현하기 위해 물러서지 않는 신념가였지만, 성의를 다해 동료들을 설득하고 움직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거창한 약속을 하기보다는 “하루만 더 함께해주시겠어요? 하루만 더 버티면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예요”(160쪽)라며 시위대를 독려했고, 결국 함께 시위를 시작한 열 개 도시의 시위대 가운데 샌프란시스코의 시위대만 유일하게 100명이 넘는 인원을 유지한 채 끝까지 버텼다.
상호 소통과 존중을 통해 운동 내부에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한 휴먼은 장애 운동을 바깥의 다른 시민권 운동과 연결해야 한다는 것도 분명히 알았다. 장애 유형별로 모이거나 장애 자녀의 재활이나 교육 등 한정된 주제로만 접근하던 부모 세대와 달리, 휴먼과 동료들은 그들의 운동이 강력한 권력에 맞서는 약자들의 연대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흑인, 노동조합, 게이 커뮤니티, 교회 등 다른 시민권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장애인의 권리도 시민권 이슈로 다루어야 함을 역설했다. 흑인 운동 단체 블랙팬서가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 안의 ‘불구자 점령군’을 위해 매일 밤 따뜻한 음식을 가져다주는 모습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다양한 시민권 운동이 어떻게 손을 잡아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64년에 제정된 시민권법Civil Rights Acts은 인종, 피부색, 종교, 출신 국가에 따른 차별을 없애기 위한 조항은 포함하고 있었지만 장애에 대한 조항은 없었다. 장애인을 시민의 범주에 넣지 않은 것이다. 휴먼과 동료들의 오랜 투쟁과 설득, 협력의 결과 1990년 7월 마침내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시민권법인 미국장애인법이 제정되었다. 이 책은 주디스 휴먼이라는 한 인물의 일대기이지만, 동시에 여러 시민권 운동이 교차하는 가운데 성장한 미국 장애 운동의 역사로도 읽을 수 있다. 이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성장해온 한국의 장애 운동에는 일종의 거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 여성은 여성 운동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여성, 장애인, 운동가로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주디스 휴먼은 장애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도 싸워야 했다. 정당한 요구를 하더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타협을 모른다거나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며 모인 장애 운동가들 사이에서도 비난을 당하기 일쑤였고, 이유 없이 자리를 빼앗기기도 했다. 재활법 504조 투쟁 당시 서부의 샌프란시스코 시위대가 동부의 워싱턴으로 대표단을 파견했을 때, 동부의 시위대는 여성이 다수였던 서부의 지도부가 싸우려고만 들고 시민적 저항의 관행을 무시한다며 불편해했다. 동료 활동가인 에드 로버츠, 조앤 리언과 공동 대표로 세계장애인기구를 설립했을 때도 몇 년 후 이사회에서는 아무런 절차도 설명도 없이 남성인 에드 로버츠를 단독 대표로 세웠다. 세계은행에서 만난 한 비장애인 남성 상사는 가장 취약한 존재였던 ‘장애인 여성’ 휴먼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휴먼은 자신이 늘 같은 문제에 직면한다는 것을, 이것이 매우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가 장애를 가진 딸이 동등한 기회를 얻는 일에서는 투사였지만 아버지에게 의지했던 것처럼, 휴먼 자신도 타협 없는 투쟁가이면서 동시에 착한 딸이었다. 사회 운동의 리더로서는 강한 모습을 보여야 했지만, 여성으로서 우호적이지 않아 보일 만큼 강해서는 안 되었다. 모든 여성이 두 가지 진실을 살고 있었지만, 휴먼을 비롯한 장애 여성들은 여성 운동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장애 여성의 80퍼센트가 살아가는 동안 성적 학대를 당하는데도 이는 여성의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여러 겹의 차별을 돌파해나가야 했다.
여성인 우리는 매번 옳은 일을 하고, 수천 가지 일을 제대로 해내고, 모든 약속을 지켰다. 우리는 150명이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을 점거하도록 이끌었고, 장애인을 위한 법을 바꿔냈다. 그러나 우리는 책임자의 자리에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우리가 과도하게 밀어붙인다고 말했다. 에드에게는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이런 상황은 내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물론 캘리포니아에 사는 내 여자 친구들은 내 편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늘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나는 내면적으로 성장해야 했다. 장애인 여성인 우리는 여성 운동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늘 우리의 문제가 여성 운동 쪽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지지를 받도록 애를 썼지만 대체로 무시당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리 자신뿐이었다. - 233쪽
그러나 휴먼은 모든 취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더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취약하고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차하는 여러 정체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휴먼의 이야기에서 작은 출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그러니까 모든 사람, 특히 소외된 사람들은 함께 일해야 한다. 넓은 범위의 시민권 운동 안에 장애는 늘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보이는 장애와 보이지 않는 장애는 모든 소수자들 사이를 가로지른다. 우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고, 라틴계 혹은 아시아계 미국인 혹은 아메리카 원주민이며, 게이 혹은 이성애자 혹은 트랜스젠더이고, 중산층 혹은 부유층 혹은 빈곤층이며, 힌두교도 혹은 기독교도 혹은 무슬림이다. 우리는 어떤 소외된 집단이 앞으로 나아갈지 선택할 수 없다. 결국 우리 모두는 가족과 세상을 돌보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 300쪽
민주주의 정부를 소중히 여겨라
선거에 출마하고 투표에 참여하라
‘우리’와 ‘함께’는 주디스 휴먼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다. 자신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이기 마련인 ‘자서전’의 위험성을 잊지 않으려는 듯 그는 “세상을 바꾼 이야기는 어떤 것이든 항상 많은 사람이 함께 만든 이야기”(20쪽)임을 부단히 강조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1970년대 이후 미국 장애 운동의 역사에서 주디스 휴먼, 에드 로버츠 등 몇몇 운동가와 정치인의 역할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결단과 행동 뒤에는 늘 수많은 장애인 당사자와 활동가들의 협력과 헌신이 있었다. 휴먼과 같은 리더는 이 싸움이 나를 위한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행동할 때 비로소 탄생한다.
내가 이 책에서 언급한 각각의 이름 뒤에는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수천 명의 다른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위원회를 만들고 만들고 또 만들었다. 모든 사람에게 자기 역할이 있었고, 모두가 주인이었다. 왜 그랬을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성공이 협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의 힘은 오로지 운동과 일체감을 느끼고 주인의식을 갖는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이런 방식으로 일한다. - 299~300쪽
사회의 약자, 소수자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받기까지는 지난한 투쟁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훼손되고 퇴보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장애인을 위해 마련된 법과 제도를 대거 축소하려 들었다. 취임 첫날 오바마케어를 건드렸고, 이어서 백악관 웹사이트에서 미국장애인법에 관한 페이지를 닫아버렸다. 그의 초대 법무부 장관은 장애 어린이의 교육을 지원하는 장애인교육법을 공격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장애 활동가들은 상원의 다수당 대표의 집 앞에서 ‘죽은 듯이 드러눕는 시위’를 벌이는 등 다각도의 저항 운동을 펼쳤다. 오바마케어를 폐지하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했다.
휴먼은 트럼프 당선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서술하며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 어떤 정부를 구성하는지는 시민 개개인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사회를 공정하게 만들고, 모든 사람에게 목소리를 주고, 소외된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할 ‘민주주의’라는 수단이 있음을 강조한다. 휴먼과 장애 동료들이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사회를 조금씩 움직여 오늘의 모습으로 만들었듯이, 당장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더라도 끈질기게 함께 목소리를 낸다면 결국에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장애 운동을 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이 증명하고 호소하는 바다.
우리 정부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정부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고, 사람들이 모여 변화시킨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한 가지 선택지를 준다. 신뢰할 만한 정부를 창조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치든 그저 수용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 민주주의 정부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에 지속적으로 투자한다면 우리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것이 복잡하다고 느껴질 때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복잡하고 그 과정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선거에 출마하라. 투표에 참여하라. “당신의 목숨이 거기 달려 있다는 생각으로 투표하라. 진짜로 당신 목숨이 달려 있으니까!” - 292~299쪽
책 속으로
나비였던 나는 애벌레가 되었다
온 세상은 내가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픈 사람은 집 안에서 침대에 누워 있다. 아픈 사람은 밖에서 놀지 않고, 학교에 가지도 않는다. 아무도 그들이 밖에서 놀거나, 어떤 무리의 일원이 되거나, 세상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가 세상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다. 마치 그 사실이 내 몸 구석구석에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것 같았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구역질이 날 정도로 굴욕감을 느꼈다. 사람들이 나에게 계속 숨겼던 걸까? 부끄러움이 배 속 깊숙한 곳에 차가운 덩어리로 자리 잡고 있다가 팔다리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날씨가 맑았던가 흐렸던가. 모르겠다. 알린이 내 휠체어를 밀었고, 우리는 함께 가게에 가서 사탕을 사고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나비였던 나는 애벌레가 되었다. - 35~36쪽
장애는 의료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장애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연관시켰다. (…) 장애는 개인이 싸우거나 정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동의하지 않았다. 우리의 문제를 ‘고쳐서’ 해결되는 의료적 문제라고 보지 않았다. 우리는 접근성 부재가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고 보기 시작했다. 우리의 관점에서 장애는 누군가에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이러한 삶의 진실을 중심으로 인프라와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옳았다. 우리는 시민권 운동과 함께 성장했다. 로자 파크스가 버스의 백인 전용 구역에 앉지 못하는 것에 저항했을 때 나는 여덟 살이었고, 1964년 시민권법이 통과되었을 때는 막 대학생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사회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 아닐까? - 74~75쪽
내가 싸우지 않는다면, 누가 이 싸움을 할까
많은 사람이 휠체어에 앉은 여성이 얼마나 잘 가르칠 수 있는지 궁금해하며 지켜볼 것이다. 만약 내가 이 싸움에서 승리한 후에 형편없는 교사로 평가받는다면 나의 실패는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내가 가르치는 일을 잘 해내지 못해 사람들이 장애가 있는 사람은 누구를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장애를 가진 교사가 수천 명 있다면 실력 없는 교사 한 명이 눈에 띌 일은 없다. 그러나 내가 장애를 가진 유일한 교사로서 실패한다면 사람들은 장애인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게 될까? 생각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다. (…) 그러나 만약 내가 싸우지 않는다면, 누가 이 싸움을 할까? - 88~89쪽
정부가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시민권 침해다
나는 장애인이 교육, 고용, 교통 접근성 측면에서 마주하는 삶의 장벽이 일회성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리기 위해 내 이야기를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우리의 장애는 재활로 치료될 수 있는 의학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소아마비로 인한 신경 세포 손상을 극복해서 걷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그것이 내 삶의 목표도 아니었다. 베트남전쟁에서 장애인이 되어 돌아온 퇴역 군인의 팔과 다리는 다시 자라지 않으며, 척수 치료를 한다고 해서 그들이 다시 걸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근육위축증을 가진 친구들이 장애 없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사고, 병, 유전적인 요인, 신경학적 장애, 노화 등은 성별이나 인종과 같이 인간의 기본적인 상태를 나타낸다. 따라서 학교나 고용주, 시의회가 장애인이 참여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정책을 만들고 건물을 세우고 버스를 설계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우리의 시민권을 침해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우리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책임을 가져야 했다. - 91~92쪽
불구자 점령군,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을 점거하다
이런 모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곳에서의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복도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 경주를 하고 게임을 하고 기타를 치며 노래도 불렀다. 사생활은 거의 없었다. 모두가 다른 모든 일을 하는 가운데 옷도 갈아입고 챙겨야 할 일들을 챙겼다. 그러면서 유대감을 형성해갔다. 사람들은 몇 시간이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우정이 만들어졌다. (…) 그곳에서는 느리거나 다르다는 이유로 열등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짐이 되어도 괜찮았다. 사과를 할 필요도 없었다. 건물 안에서 우리는 마치 캠프에서처럼 가족이나 친구, 혹은 신뢰할 수 없는 대중교통에 의존하지 않고도 쉽게 서로를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를 자주 고립시켰던, 도달할 수 없는 바깥세계가 아득히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더 큰 무엇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 178~180쪽
평등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는 것이 아니다
평등은 공정성에 관한 이야기다. 접근 기회의 형평성에 대한 이야기다. 나 같은 사람,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는 수천수만의 우리는 주거나 건강, 교육, 고용 등의 문제에서 접근 기회의 형평성을 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경사로, 더 넓은 출입구, 안전 손잡이, 수어 통역사, 자막, 접근 가능한 기술, 음성 안내, 점자로 된 문서, 지적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을 위한 활동 보조인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권리를 요구하는데도 ‘불만이 많다’, ‘이기적이다’라는 틀에 갇히고 만다. 이런 일은 특히 여성에게 일어난다. 우리는 ‘끝없이 요구하는 사람들’이라 불리고, 물러서지 않으면 ‘끈질기다’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에게 ‘끝없이 요구하는’, ‘끈질긴’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것은 우리를 ‘굴복하게’ 하려는 또 다른 방식일 뿐이다. - 221~222쪽
장애 정체성의 힘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 일에 대한 고유의 시각과 유일무이한 기술들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특수교육과 재활의 수혜자였고, 자립생활 운동의 리더였다. 전 세계의 장애 이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상원에서 보낸 1년 반이라는 시간은 비록 짧기는 했지만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음이 분명했다. 그 시기를 통해 의회 청문회와 증언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게 되었고, 참모진과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OSERS의 차관보 자리에 앉기 전에는 완전히 깨닫지 못했지만, 그동안 나를 준비시켜온 이 모든 경험의 정점이 바로 이 자리였다. (…) 나는 더 많은 사람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힘껏 문을 밀고 창문을 열었다. 내 목표는 권력을 나누는 것이었다. 그리고 듣는 것, 협력하는 것. - 259~263쪽
장애는 인간사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다
“비장애 어린이의 교육 문제 먼저 다루죠. 그런 다음 장애 어린이를 걱정합시다.”
(…) 하지만 이것은 무슨 논리인가? 여기에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배울 수 있는 잠재력이 떨어지고, 사회에 기여할 능력도 부족하며, 덜 유능하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즉 우리가 덜 평등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가? 장애는 인간사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전쟁을 일으킬수록, 의학이 발달할수록 이전 시기라면 아마 죽었을 사람들이 점점 더 오래 살게 될 것이다. 아마도 장애를 가진 채.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을 중심으로 사회를 설계해야 한다. - 280~281쪽
우리 사회를 위한 우리의 비전은 무엇인가
당신은 우리 지역 사회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그 안에 머물고 싶다고 선택할 만한 마을과 도시가 되길 바라는가? 우리 혹은 우리 자녀 중 누군가에게 사고가 발생했을 때 변함없이 삶을 유지하며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곳이기를 바라는가? 우리는 우리의 인간성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중심으로 세계를 디자인해야 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하고, 개인 활동 보조인을 지원하고, 고용 방식을 바꿔야 한다. 우리의 도시와 사회를 분리와 고립 대신 소속감과 공동체를 키우는 방식으로 디자인할 수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하는 쪽에서 그런 일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옮겨갈 수 있다. 비관론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옮겨갈 수 있다. 어린이처럼. - 300~3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