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Book] 소년아, 나를 꺼내 줘 (사계절1318문고 110) (사계절문학상 15회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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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김진나
책정보 및 내용요약
청소년문학 20년, 사계절출판사가 선정한 제15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열여덟 살 여름, 소녀 ‘신시지’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지금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고, 한 번씩 지독하게 싫어질 때도 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 ‘얼’을 만나면서 시지의 고요한 세계는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라면 좋았을 걸 그랬어, 네가 거기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 나는 왜 네 마음에 들지 못했을까, 나는 이렇게 심장이 터질 거 같은데 어떻게 이게 아무것도 아니니.’
어른들은 청소년기를, 청소년의 사랑을 ‘다 지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청소년기의 사랑이 가볍고 풋풋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소년아, 나를 꺼내 줘』는 여름이 언젠가 끝난다는 것을 잘 안다고 해서 그 열기가 견딜 만해지는 것은 아니며,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고통’의 무게가 지극히 상대적이라는 태도로 청소년의 사랑을 그린다. 그렇기에 상대에게 가닿지 않는 ‘사랑’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소녀의 모습은, 무엇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기를 견뎌 내는 청소년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책의 제목과 달리 사랑을 시작하고 끝낼 기회를 ‘소년’에게 넘겨주지 않은 채, 오롯이 소녀의 힘으로 ‘의미 있는 짝사랑’을 완성하는 『소년아, 나를 꺼내 줘』는 ‘왕자가 나타나 잠든 공주를 깨우는’ 이야기에 익숙한 독자들을 눈뜨게 하고, 한국 청소년문학에 새로운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목차
1일
2일
3일
4일
일주일
열흘
열흘+3
열흘+5
열흘+6
열흘+10
열흘+16
열흘+19
열흘+20
열흘+23
열흘+29
열흘+34
열흘+40
열흘+41
열흘+43
열흘+51
작품 해설
작가의 말
편집자 추천글
◎ 짝사랑이라는, 고요하게 들끓는 내면에 대한 우아하고 투명한 응시
시지는 엄마와 함께 간 자리에서 엄마 친구와 그 아들 ‘얼’을 만난다. 어릴 적 몇 번 만났을 뿐인 시지와 얼은 나란히 걷고, 대화를 나눈다. 편안한 분위기임에도 시지는 평소 하지 않던 실수를 하고, 당황하는 와중에도 얼의 웃음이 눈부시다.
“알 속에서 2개월쯤 지나면 새끼 거북이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해. 그때 알을 깨기 위해 ’카벙클‘이라고 불리는 임시 치아가 생겨. 새끼 거북이는 카벙클이 온통 부서지고 입에서 피가 나도록 알의 내벽을 깨.”
나는 ‘카벙클’을 발음하는 얼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 발음이 신비롭게 들렸다. 그때 주변의 것들과 상관없이 갑자기 나를 툭 건드린 건 뭐였을까. 소리도 없고 격렬한 동작도 없었다. 묘하게 달라졌다. 나는 조금 더 바짝 당겨 앉았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시지 마음속에 있던 커다란 문이 ‘아무도 힘주어 밀지 않았는데 저절로 열려 버렸다.’ 얼을 만난 다음 날부터 각 장의 제목은 1일, 2일 시간순으로 적힌다. 멈춰 있던 시지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소년아, 나를 꺼내 줘』는 사랑이 시작된 미묘한 순간에서부터 시지의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기도 격렬하게 내달리기도 하는 61일 밤과 낮의 기록이다. ‘너를 만나고 나는 더 커진 것 같아’, ‘사랑을 하면 발꿈치가 투명해진대’ 등 사랑을 표현하는 신선하고 감각적인 문장들은 이 작품을 읽는 큰 재미다. 좋아하는 두 사람이 ‘서로를 끌어당기면’ 새로운 중력과 공간이 생긴다는 낭만적 발상을 바탕으로 시지가 꿈과 현실, 상상 속에서 얼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구성은 진부한 사랑싸움 없이도 독자들을 소녀의 사랑 한가운데로 데려간다.
◎ 나조차도 설명할 수 없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기를
그 여름, 지구도 달도 성실하게 움직이는 세계에 시지는 ‘누워 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특별한 이유나 말 못 할 고민은 없다. 그러나 얼을 만난 이후 시지는 자기 자신을 설명하고 싶어진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도 소용없다. 설명할 만한 그럴듯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내 앞에 절벽이 있었다. 나는 그 끝에 서 있었다. 이렇게 된 게 누구의 고의도 아니듯 나 역시 여기 있는 게 고의는 아니었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지금 네 안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하라고 요구한다. 정작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학교폭력, 가정불화, 성적비관 같은 이유를 들며 모든 원인을 ‘청소년기’로 돌린다. 타인의 단정에 동의할 수 없고, 스스로를 설명할 수도 없는 청소년들은 시지처럼 소통의 문을 닫는다. 그러나 ‘숨기만 하면 힘드니까 고양이를 찾아 줘야’ 한다는 대사처럼, 얼이 좋아할 만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수줍은 고백들 사이에 시지의 바람이 담겨 있다.
난 그동안 좀 그랬어. (중략) 좀 죽어 있었던 거 같아. 냉동이 되었다든가 방부제 처리가 되었다든가 아무튼 좀 그랬어. 그렇다고 문제가 있는 정도는 아니야. 아니, 문제가 있다 해도 그게 내 전부는 아니야. 너 나 어렸을 때 봤잖아? 그런 나도 여전히 있어. 그리고 다시 그런 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겁내지 마. 나 이상한 사람 아니야.
얼은 시지 자신이 ‘자유롭고 반짝거렸’던 어린 시지를 기억하고, 지금의 모습을 모른다. 누구의 평가도 없이, 시지가 원하는 방법으로 자신을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렇기에 시지는 얼에게 ‘유치한 나, 게으름 피우는 나, 꿈이 없는 나, 무엇이든 꿈꿀 수 있는 나, 장점투성이인 나, 단점투성이인 나’를 숨김없이 내보이고, 그럼에도 나를 좋아해 주기를 바란다. 단순히 애정을 넘어, 자신조차도 설명할 수 없는 ‘지금의 나’를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인 것이다. 시지를 이해하려 애쓰는 엄마조차도 ‘사춘기에 스쳐갈 가벼운 감정’으로 여기지만 『소년아, 나를 꺼내 줘』는 청소년에게 ‘사랑’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를 진지하게 바라본다.
◎ 우리는 왜 ‘사랑’하는가
연락이 없는 얼을 향한 시지의 마음은 기쁨과 그리움, 원망, 분노를 오간다. 혼자 시작한 감정에 대해 책임지라고 강요하지 말라는 얼의 비난은 갈등의 절정을 보여 준다.
‘내가 어째서 무엇을 알아야 하니? 내가 어째서 무엇을 결정해야 하니? 내가 어째서 뭔가를 헤아려야 하니? 내가 어째서 무엇이 되어야만 하니?’
얼의 목소리가 예전의 내 목소리 같았다. 나도 그렇게 말했다. 나는 무엇이 되어야만 한다는 게 지겨웠다.
시지는 세상이 자신에게 그랬듯, 얼에게 감정을 강요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얼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네 취향에 맞는 누군가 필요했던’ 것이고 ‘내가 어느 순간 네 생각과 다르다는 걸 발견하면 차갑게 식어’(128쪽) 버릴 거라는 비난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을 좋아하는 건 그냥 좋아하는 거야. 내가 부족할 수도 있어. 내 무엇이 너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어. 내가 네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어. 그렇다고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야. 네가 내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어. 그렇다고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야.
시지와 얼이 나누는 긴장감 넘치는 대화는 모두 시지의 상상이다. 시지가 갈등하는 대상은 ‘연락이 없는 얼’인 동시에 시지를 둘러싼 ‘외부 세계’이고, 시지 자신이다. 시지는 ‘사랑’을 통해 미처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삶의 태도를 바꿔 간다. 이 책은 사랑이 단순히 ‘아름다운 감정’이 아니라 관계 맺기이며, 상처받고 부서진 뒤에 얻는 성숙함 역시 소중하다는 사실을 전한다.
◎ 소녀를 눈 뜨게 한 것
얼(사랑)이 닫혀 있던 세계의 문을 열었다면, 작품 후반으로 갈수록 은은히 빛나는 것은 시지의 세계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가족은 시지가 닫은 문을 억지로 열지 않았고, 시지가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 준 친구들은 사랑에 힘겨워 하는 시지에게 대가 없는 위로와 조언을 준다. 작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지만,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자리가 한 군데 생겼다’(182쪽)는 믿음은 시지에게, 그리고 방황을 끝낸 청소년에게 무척 소중한 감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세계의 오롯한 주인공인 ‘시지’는 『소년아, 나를 꺼내 줘』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자 미덕이다. 시지는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얼을 기다리기만 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새끼 거북이 카벙클로 알을 깨고 나오듯,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여름이 끝날 무렵, 자판에 손을 얹는다. 자신만의 카벙클을 찾았기에 시지는 응답하지 않았어도 얼은 여전히 사랑스러운 존재이며, 닿지 않은 자신의 마음은 ‘초라해도 내가 갖기로’ 하는 해답에 도달할 수 있다.
결국 소녀를 깨운 것은 소년이 아니고, 소년과 소녀가 만나지 않는 사랑 이야기임에도 『소년아, 나를 꺼내 줘』의 역설적인 결말은 충만하고 눈부시다. 이토록 주체적인 짝사랑 이야기가 또 있었을까. 『소년아, 나를 꺼내 줘』는 독자들의 마음에 긴 여운을 남기고, 우리 청소년문학을 확장시킬 새로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