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
- 744
• 지은이 : 이정록
• 그린이 : 최보윤
• 가격 : 11,000원
• 책꼴/쪽수 :
135x190mm, 120쪽
• 펴낸날 : 2020-11-30
• ISBN : 979-11-6094-692
• 십진분류 : 문학 > 한국문학 (810)
• 도서상태 : 정상
• 태그 : #시 #청춘 #공감 #위로
저자소개
지은이 : 이정록
대학에서 한문교육과 문학예술학을 공부했다. 고등학교에서 청소년들을 가르치며 부지런히 시와 이야기를 쓰고 있다. 1989년 대전일보,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고, 박재삼문학상, 윤동주 문학대상, 김달진문학상,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 시집 《동심언어사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정말》 《의자》 《까짓것》 등과 산문집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 《시인의 서랍》을 썼고, 어린이 책 《달팽이 학교》 《콧구멍만 바쁘다》 《똥방패》 《대단한 단추들》 등을 썼다.
그린이 : 최보윤
만화, 일러스트레이션, 동화, 캐릭터 작가. 뒤끝 작렬에 소심하고 찌질한 매력이 돋보이는 ‘히리위리’의 일상을 그린 웹툰 <히리위리>를 연재하고 있다. 불닭볶음면의 호치와 친구들 캐릭터를 만들었다. (instagram: hiri.wiri)
책정보 및 내용요약
원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를 뜻하는 부 캐릭터, ‘부캐’가 대세인 세상이다. 하지만 부캐는 이미 작가들의 세계에선 존재해왔는지도 모른다. 김수영문학상, 윤동주 문학대상 등을 받은 이정록 작가는 30년 넘도록 시를 써온 시인이자, 30년 넘는 세월을 청소년들과 함께하고 있는 고등학교 한문 교사이다. 그는 《의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같은 시집뿐만 아니라 동시집 《콧구멍만 바쁘다》, 동화 《대단한 단추들》 등 어린이 책 영역까지 전방위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는 이정록 시인의 ‘청춘 시집’으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잘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불안한 하루를 보내는 청춘들에게 보내는 다정하고 명랑한 위로와 응원이다. 시인은 꼰대처럼 가르치려 하지 않고 거창하게 미화하지 않으면서 젊은 세대가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감정을 예민하게 포착해낸다. 뒤끝 작렬, 소심하고 찌질한 매력이 돋보이는 웹툰 <히리위리> 의 최보윤 작가가 ‘히리위리’ 캐릭터로 시의 재미와 감성을 더했다.
2020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사업 선정작.
2020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사업 선정작.
목차
1부 청춘 작명소
별명의 탄생 / 청춘 작명소 / 공부 중 / 사랑해 / 열 개의 달 / 함박꽃 / 모래알 / 나에게 쓰는 쪽지 / 선풍기 / 원근법 / 융합 / 새 / 청소년 보호석
2부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네 시간 / 빵빵한 소 / 한심한 위로 / 활짝 / 청춘 / 업그레이드 / 낙타 / 콩알 하나 / 신호등 / 딱 / 단무지 / 꽈배기의 시간 / 비 오는 날에는 / 취업 / 밀당 / 개밥에 도토리
3부 돌멩이가 웃었다
나무늘보 / 욕 주머니 / 봉사 활동 / 겨울이 오는 소리 / 풀밭 학교 5교시 / 아빠 / 가장 어려운 일 / 약봉지 / 날라리벌 / 보호 관찰 / 대학생 / 두더지 게임 / 돌멩이가 웃었다
4부 벽을 넘는 자세
삶의 부호 / 쌍자음 속에는 / 여행 / 옷걸이 자국 / 노란 주전자 / 삶은 감자 / 모기에게 / 한가위 / 실컷 / 살림 / 꽃대 / 맨손 / 울음 장례식 / 출발선 / 별 / 희망
별명의 탄생 / 청춘 작명소 / 공부 중 / 사랑해 / 열 개의 달 / 함박꽃 / 모래알 / 나에게 쓰는 쪽지 / 선풍기 / 원근법 / 융합 / 새 / 청소년 보호석
2부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네 시간 / 빵빵한 소 / 한심한 위로 / 활짝 / 청춘 / 업그레이드 / 낙타 / 콩알 하나 / 신호등 / 딱 / 단무지 / 꽈배기의 시간 / 비 오는 날에는 / 취업 / 밀당 / 개밥에 도토리
3부 돌멩이가 웃었다
나무늘보 / 욕 주머니 / 봉사 활동 / 겨울이 오는 소리 / 풀밭 학교 5교시 / 아빠 / 가장 어려운 일 / 약봉지 / 날라리벌 / 보호 관찰 / 대학생 / 두더지 게임 / 돌멩이가 웃었다
4부 벽을 넘는 자세
삶의 부호 / 쌍자음 속에는 / 여행 / 옷걸이 자국 / 노란 주전자 / 삶은 감자 / 모기에게 / 한가위 / 실컷 / 살림 / 꽃대 / 맨손 / 울음 장례식 / 출발선 / 별 / 희망
편집자 추천글
물 말아 먹기 십상인 청춘일지라도
찬밥과 청춘의 공통점은? 그건, 물 말아 먹기 십상이라는 것.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이 비유는 고스란히 한 편의 시(<청춘>) 가 되었다. 이정록 시인이 펴낸 청춘 시집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의 시 세계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시다. 30년 넘게 시를 써온 시인이자, 오랜 세월 청소년들과 함께 해온 고등학교 현직 교사 이정록이 이번에 선보인 시집은 젊은 세대에게 보내는 명량하고 다정한 위로와 응원으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시인은 꼰대처럼 가르치려 하거나 '젊음'을 거창하게 미화하거나 이미 겪어서 다 안다는 듯이 나서지도 않는다. 그저 젊은 세대가 현실에서 느끼는 복잡하고 고단한 감정들의 파편들을 예민하게 포착해 일상의 가벼운 언어로 펼쳐 보인다. 청춘을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보낸 선배로서, 또 그런 청춘들을 세상으로 내보내는 일을 업을 삼은 재야의 고수답게 위로와 응원은 짧고 명료하되, 깊이가 있다.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라는 제목은 <네 시간>에 나오는 시어에서 따왔다. "스물네 시간 중에 / 네 시간은 너를 위해" 쓰면서 스스로를 재충전하라는 밑돌로 삼아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 선물"하라는 조언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 "스물네 시간 중에 / 네 시간은 / 오로지 네 시간"으로 만들 수 있는 삶의 비기(祕器)가 이 시집에 담겨 있다.
1부 '청춘 작명소'에는 재기발랄한 청소년들의 마음결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들이 많다. 돈은 자기가 냈는데 짝궁이 하나 더 먹은 어묵에 살짝 분노해 "오뎅 더하기 오뎅은 십뎅이"(<별명의 탄생>)라는 욕 같지만 욕은 아닌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킬킬거리기도 하고, '서울대정문, 독수공방, 열면삼수, 놓고가라' 등 교실 사물함에 붙은 청춘 이름표들은 입시의 노예가 된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씁쓸한 현실과 그럼에도 개성과 유머를 잃지 않는 그들의 정체성을 동시에 비춘다.(<청춘 작명소>)
그런가 하면 풋풋한 청춘의 시어가 살아 숨쉬는 <사랑해>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비유로 가득하다. "실내화처럼 편한 사이"에서 "때가 묻을까 봐 조심조심 걷는" 새 운동화 같은 사람으로 변하는 과정은 독자들에게도 설렘을 안겨준다.
친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취급받는 건 아닐까 / 운동장 응원석에 벗어 놓은 실내화처럼 / 속이 뜨거워질수록 외로워졌어 / 오늘 네가 먼저 사랑한다고 말해 줘서 고마워 / 넌 처음으로 매듭을 묶은 하얀 운동화 같아 / 오래도록 함께 먼 길을 걸어 가고 싶어 / 뒤꿈치가 아프고 쓰라려도 좋아 / 간혹 발길을 멈추고 붉은 발가락에 / 호, 입김을 불어 주고 싶어 / 때가 묻을까 봐 조심조심 걷는 / 너는 새 운동화 같은 사람이야 / 조금은 불편하지만 설레서 좋아 - <사랑해> 부분
운동화를 빨다 든 단상을 시로 옮긴 것도 있다.
나는 달을 신고 다닌다/ 나는 달의 고약한 냄새를 안다/ 나는 달을 씻어 햇살에 말린다/ 나는 열 개의 달을 손가락으로 쓰다듬는다―<열 개의 달> 부분
운동화 깔창에 선명하게 남은 열 개의 발가락 자국에서 시인은 고단한 청춘의 하루를 떠올린다. 달의 고약한 냄새를 안다는 것은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자의 모습일 것이다. 때로는 바닥까지 자존감이 추락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걸 다시 끌어올리는 것도 스스로의 몫이기에 깨끗하게 운동화를 빨아 햇살에 말리듯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힘차게 시작할 마음을 먹게 해준다.
지금은 초록을 기다리는 시간
2부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에선 청년이 되었지만 그닥 달라질 것 없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홀로 잎을 피우고 그늘을 경작해야"(<콩알 하나>) 하는 청춘들을 가슴 뜨겁게 위로하며 지치더라도 가볍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삶의 처신술'을 알려준다.
시인은 "지금은 초록을 기다리는 시간"(<신호등>)이라며 우리 모두에게 "초록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너무 앞만 보며 살다 문득 "해가 뜨는 쪽인 줄 알았는데 서녘 낭떠러지"였음을 깨닫고 번 아웃이 왔다면 잠시 고요하게 멈춰도 된다.
국민타자 이승엽의 은퇴 소감에서 시상을 얻은 <딱>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간명하게 보여준다. '됐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태해지고, 나태한 못브으로 시간을 끌면 안 되기에 은퇴한다'는 이승엽의 은퇴 소감에서 시인은 "몸과 마음을 다한 끝자리가 은퇴"임을 알아챈다. 그러면 청춘은 나태해지기보다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니 은퇴 시기는 아직 먼 셈이다. 시인은 '백반집 반찬들 가운데 있는 단무지 세 조각'은 "보잘것없고 초라하지만" "중국집 / 짜장면 / 한 그릇에" 든 단무지 한 조각은 "무지무지 독보적"이라며 아직 오지 않은 나를 기다리는 청춘들에게 작은 희망을 안겨준다. (<단무지>) 그렇게 견디다 보면 달콤한 시간이 찾아오리라 말한다.
너무 뜨겁다./ 자꾸 꼬인다./ 언제 끝날지 무한대다./ 고생 끝에 낙이 오리라./ 곧 축복처럼 설탕이 쏟아지리라./ 꽈배기의 시간은 짧다./ 설탕 가루 반짝이는/ 추억만이 손짓할 거다.―<꽈배기의 시간>
스스로를 “막사발이니 막국수”처럼 잘못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싱크대 가장 높은 곳이나 장식장 서랍에 있”는 “아직 식탁 에 오르지 않은 접시 세트”로 귀하게 여기며 자신이 나갈 “이삿날이나 잔칫날”을 기다리는 취준생의 마음을 보여주는 시도 있다. <취업>에서 화자는 취직을 못 하는 자신이 잘못된 게 아니라며, 자신을 몰라보거나 부품처럼 한 번 쓰고 마는 사회에 이렇게 일침을 놓는다. “이렇게 예쁘고 좋은 그릇을 여태 처박아 두었다니, 인심 쓰듯 한 번 쓰고는 젖은 저를 다시 처박아 두지 말아요.”
최전선으로 진보하고 최첨단으로 무장하는 청춘들에게
3부 ‘돌멩이가 웃었다’와 4부 ‘벽을 넘는 자세’에서는 청춘을 둘러싼 사회 관계망을 조명한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봉사가 아니라 점수를 위해 억지로 봉사해야 하는 청소년들의 현실을 꼬집은 <봉사 활동>은 읽다 보면 쓴웃음이 나온다. 학생들이 봉사 활동 계획서에 쓴 ‘커튼 빨기, 풀 뽑기, 마당 쓸기, 말벗해드리기, 안마’ 같은 선행은 노인들에겐 별로 소용이 없다. 시인은 노인정 노인의 입을 빌려 말한다.
입학시험에 필요하다니까 오기 싫어도 오는 거 아니겠어. 여기 오는 이유가 뻔해도 싫진 않아. 진짜 마음이었다면 대학생이 되고 취업한 뒤에도 찾아와야지. 첫 월급 타면 베지밀이라도 들고 와야지. 안 그래?―<봉사 활동> 부분
이혼한 엄마와 함께 친구 자취방에 머무르며 고단한 현실을 살아내는 청소년이 마지막 의지처로 삼은 선생님한테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아빠>)이나 “아무 생각 없이 떠돌아다니는” 날라리로 치부하는 부모에게 자신은 날라리가 아니라 “모두 나아갈 길을 잃었을 때 돌아오는 길까지 알려 줄 날라리벌”(<날라리벌>)이라며 당당하게 자기 길을 걷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래서 청소년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관찰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간다.
얼룩말은/ 얼룩이 생명이다// 막대벌레는/ 막대기가 몸인지/ 몸이 막대기인지/ 헷갈릴수록 막대벌레답다// 탱자나무는 가시가 최전선이다/ 쐐기벌레는 쐐기 털이 최첨단이다/부릉거려야 자동차다/ 식식대고 빵빵거려야 전진한다// 나는 얼룩으로 무늬를 짠다/ 가시와 쐐기 털을 하늘 쪽으로 세운다/ 나는 최전선으로 진보하고/ 최첨단으로 무장한다// 나는 나 를 보호 관찰한다―<보호 관찰>
이런 마음들이 모여 “도토리 키 재기처럼 어깨를” 치더라도 “손을 맞잡고 봄으로”(<쌍자음 속에는>) 가는 힘을 키운다. 장애물 같은 삶의 복병이 나타나면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지만 그건 결코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모든 청춘들이 "벽을 넘는 기본자세"로 여기고 "바닥만이 바닥을 넘"(<맨손>)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오늘도 어깨를 펴고 당당히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시인은 특유의 다정함과 명량한 시어로 우리 모두를 다독인다.
찬밥과 청춘의 공통점은? 그건, 물 말아 먹기 십상이라는 것.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이 비유는 고스란히 한 편의 시(<청춘>) 가 되었다. 이정록 시인이 펴낸 청춘 시집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의 시 세계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시다. 30년 넘게 시를 써온 시인이자, 오랜 세월 청소년들과 함께 해온 고등학교 현직 교사 이정록이 이번에 선보인 시집은 젊은 세대에게 보내는 명량하고 다정한 위로와 응원으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시인은 꼰대처럼 가르치려 하거나 '젊음'을 거창하게 미화하거나 이미 겪어서 다 안다는 듯이 나서지도 않는다. 그저 젊은 세대가 현실에서 느끼는 복잡하고 고단한 감정들의 파편들을 예민하게 포착해 일상의 가벼운 언어로 펼쳐 보인다. 청춘을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보낸 선배로서, 또 그런 청춘들을 세상으로 내보내는 일을 업을 삼은 재야의 고수답게 위로와 응원은 짧고 명료하되, 깊이가 있다.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라는 제목은 <네 시간>에 나오는 시어에서 따왔다. "스물네 시간 중에 / 네 시간은 너를 위해" 쓰면서 스스로를 재충전하라는 밑돌로 삼아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 선물"하라는 조언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 "스물네 시간 중에 / 네 시간은 / 오로지 네 시간"으로 만들 수 있는 삶의 비기(祕器)가 이 시집에 담겨 있다.
1부 '청춘 작명소'에는 재기발랄한 청소년들의 마음결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들이 많다. 돈은 자기가 냈는데 짝궁이 하나 더 먹은 어묵에 살짝 분노해 "오뎅 더하기 오뎅은 십뎅이"(<별명의 탄생>)라는 욕 같지만 욕은 아닌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킬킬거리기도 하고, '서울대정문, 독수공방, 열면삼수, 놓고가라' 등 교실 사물함에 붙은 청춘 이름표들은 입시의 노예가 된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씁쓸한 현실과 그럼에도 개성과 유머를 잃지 않는 그들의 정체성을 동시에 비춘다.(<청춘 작명소>)
그런가 하면 풋풋한 청춘의 시어가 살아 숨쉬는 <사랑해>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비유로 가득하다. "실내화처럼 편한 사이"에서 "때가 묻을까 봐 조심조심 걷는" 새 운동화 같은 사람으로 변하는 과정은 독자들에게도 설렘을 안겨준다.
친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취급받는 건 아닐까 / 운동장 응원석에 벗어 놓은 실내화처럼 / 속이 뜨거워질수록 외로워졌어 / 오늘 네가 먼저 사랑한다고 말해 줘서 고마워 / 넌 처음으로 매듭을 묶은 하얀 운동화 같아 / 오래도록 함께 먼 길을 걸어 가고 싶어 / 뒤꿈치가 아프고 쓰라려도 좋아 / 간혹 발길을 멈추고 붉은 발가락에 / 호, 입김을 불어 주고 싶어 / 때가 묻을까 봐 조심조심 걷는 / 너는 새 운동화 같은 사람이야 / 조금은 불편하지만 설레서 좋아 - <사랑해> 부분
운동화를 빨다 든 단상을 시로 옮긴 것도 있다.
나는 달을 신고 다닌다/ 나는 달의 고약한 냄새를 안다/ 나는 달을 씻어 햇살에 말린다/ 나는 열 개의 달을 손가락으로 쓰다듬는다―<열 개의 달> 부분
운동화 깔창에 선명하게 남은 열 개의 발가락 자국에서 시인은 고단한 청춘의 하루를 떠올린다. 달의 고약한 냄새를 안다는 것은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자의 모습일 것이다. 때로는 바닥까지 자존감이 추락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걸 다시 끌어올리는 것도 스스로의 몫이기에 깨끗하게 운동화를 빨아 햇살에 말리듯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힘차게 시작할 마음을 먹게 해준다.
지금은 초록을 기다리는 시간
2부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에선 청년이 되었지만 그닥 달라질 것 없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홀로 잎을 피우고 그늘을 경작해야"(<콩알 하나>) 하는 청춘들을 가슴 뜨겁게 위로하며 지치더라도 가볍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삶의 처신술'을 알려준다.
시인은 "지금은 초록을 기다리는 시간"(<신호등>)이라며 우리 모두에게 "초록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너무 앞만 보며 살다 문득 "해가 뜨는 쪽인 줄 알았는데 서녘 낭떠러지"였음을 깨닫고 번 아웃이 왔다면 잠시 고요하게 멈춰도 된다.
국민타자 이승엽의 은퇴 소감에서 시상을 얻은 <딱>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간명하게 보여준다. '됐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태해지고, 나태한 못브으로 시간을 끌면 안 되기에 은퇴한다'는 이승엽의 은퇴 소감에서 시인은 "몸과 마음을 다한 끝자리가 은퇴"임을 알아챈다. 그러면 청춘은 나태해지기보다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니 은퇴 시기는 아직 먼 셈이다. 시인은 '백반집 반찬들 가운데 있는 단무지 세 조각'은 "보잘것없고 초라하지만" "중국집 / 짜장면 / 한 그릇에" 든 단무지 한 조각은 "무지무지 독보적"이라며 아직 오지 않은 나를 기다리는 청춘들에게 작은 희망을 안겨준다. (<단무지>) 그렇게 견디다 보면 달콤한 시간이 찾아오리라 말한다.
너무 뜨겁다./ 자꾸 꼬인다./ 언제 끝날지 무한대다./ 고생 끝에 낙이 오리라./ 곧 축복처럼 설탕이 쏟아지리라./ 꽈배기의 시간은 짧다./ 설탕 가루 반짝이는/ 추억만이 손짓할 거다.―<꽈배기의 시간>
스스로를 “막사발이니 막국수”처럼 잘못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싱크대 가장 높은 곳이나 장식장 서랍에 있”는 “아직 식탁 에 오르지 않은 접시 세트”로 귀하게 여기며 자신이 나갈 “이삿날이나 잔칫날”을 기다리는 취준생의 마음을 보여주는 시도 있다. <취업>에서 화자는 취직을 못 하는 자신이 잘못된 게 아니라며, 자신을 몰라보거나 부품처럼 한 번 쓰고 마는 사회에 이렇게 일침을 놓는다. “이렇게 예쁘고 좋은 그릇을 여태 처박아 두었다니, 인심 쓰듯 한 번 쓰고는 젖은 저를 다시 처박아 두지 말아요.”
최전선으로 진보하고 최첨단으로 무장하는 청춘들에게
3부 ‘돌멩이가 웃었다’와 4부 ‘벽을 넘는 자세’에서는 청춘을 둘러싼 사회 관계망을 조명한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봉사가 아니라 점수를 위해 억지로 봉사해야 하는 청소년들의 현실을 꼬집은 <봉사 활동>은 읽다 보면 쓴웃음이 나온다. 학생들이 봉사 활동 계획서에 쓴 ‘커튼 빨기, 풀 뽑기, 마당 쓸기, 말벗해드리기, 안마’ 같은 선행은 노인들에겐 별로 소용이 없다. 시인은 노인정 노인의 입을 빌려 말한다.
입학시험에 필요하다니까 오기 싫어도 오는 거 아니겠어. 여기 오는 이유가 뻔해도 싫진 않아. 진짜 마음이었다면 대학생이 되고 취업한 뒤에도 찾아와야지. 첫 월급 타면 베지밀이라도 들고 와야지. 안 그래?―<봉사 활동> 부분
이혼한 엄마와 함께 친구 자취방에 머무르며 고단한 현실을 살아내는 청소년이 마지막 의지처로 삼은 선생님한테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아빠>)이나 “아무 생각 없이 떠돌아다니는” 날라리로 치부하는 부모에게 자신은 날라리가 아니라 “모두 나아갈 길을 잃었을 때 돌아오는 길까지 알려 줄 날라리벌”(<날라리벌>)이라며 당당하게 자기 길을 걷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래서 청소년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관찰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간다.
얼룩말은/ 얼룩이 생명이다// 막대벌레는/ 막대기가 몸인지/ 몸이 막대기인지/ 헷갈릴수록 막대벌레답다// 탱자나무는 가시가 최전선이다/ 쐐기벌레는 쐐기 털이 최첨단이다/부릉거려야 자동차다/ 식식대고 빵빵거려야 전진한다// 나는 얼룩으로 무늬를 짠다/ 가시와 쐐기 털을 하늘 쪽으로 세운다/ 나는 최전선으로 진보하고/ 최첨단으로 무장한다// 나는 나 를 보호 관찰한다―<보호 관찰>
이런 마음들이 모여 “도토리 키 재기처럼 어깨를” 치더라도 “손을 맞잡고 봄으로”(<쌍자음 속에는>) 가는 힘을 키운다. 장애물 같은 삶의 복병이 나타나면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지만 그건 결코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모든 청춘들이 "벽을 넘는 기본자세"로 여기고 "바닥만이 바닥을 넘"(<맨손>)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오늘도 어깨를 펴고 당당히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시인은 특유의 다정함과 명량한 시어로 우리 모두를 다독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