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 - 내 삶을 바꾸는 정치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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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스기타 아쓰시
그는 현재 일본 정부에 가장 비판적인 지식인으로 손꼽힌다. 아베 정권에 대해 “무엇보다도 내각과 국회의 관계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며 정치권력의 주체는 국회이고, 내각은 국회가 만든 법률을 집행하는 기관이므로 내각의 대표인 수상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의 질문에 성실히 답해야 함에도 아베 총리는 국회를 지나치게 경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전권을 수상에게 맡기는 톱다운 방식으로 해야 빨리 결정할 수 있다”, “논의에 시간을 쓰기보다는 다수결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아베 총리의 ‘흔들리지 않는 정치’, 일본 정치권에 만연한 ‘난폭한 결단주의’를 강력히 비판한다.
그는 이런 생각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적인 학자이기도 하다. 연구실에 숨어 있기보다는 정부의 ‘폭주하는 민주주의’를 제어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다함께 결정하자 원전 국민투표’, ‘입헌민주주의 모임’, 헌법 96조 개정에 반대하는 ‘96조의 모임’ 등이 그가 주도적으로 이끄는 단체들이다.
그는 정치학자로서 자신이 할 일은 시민들이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사회의 토대라고 말한다. 정권 교체나 정치인의 각성을 촉구하기보다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생각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헌법과 민주주의, 정치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이 책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는 그 가운데 가장 기초적인 입문서로, 정치에 관한 상식과 전제들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정치의 가능성을 새롭게 모색한다.
옮긴이 : 임경택
책정보 및 내용요약
일본의 행동하는 정치학자 스기타 아쓰시,
요가하듯 천.천.히 잠들어 있던 ‘정치 근육’을 깨우다
정치를 소재로 한 TV 프로그램과 팟캐스트가 호황이다. 하루 종일 정치 이야기만 하는 방송들이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투표율은 여전히 낮고,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참여나 관심은 늘 부족하며,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과 경멸의 정서가 팽배해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정치를 구경하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그것이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행위라는 것, 내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은 별로 의식하지 못한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정치의 당사자이며, 현재의 정치가 안고 있는 많은 병폐들의 공범이기도 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정치의 원점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결정, 대표, 토론, 권력, 자유, 사회, 한계, 거리라는 8개의 키워드를 통해 정치에 관한 상식과 전제들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또한 누가 어떻게 해도 잘 돌아가지 않는 현대 정치의 어려움을 강조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치 공부,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재인식을 제안한다.
추천의 글
우리는 정치라는 것을 늘 호흡하고 살면서도 침만 뱉어댔을 뿐이다. 그 내부 구조가 어떠한지, 어떠해야 하는지는 무관심했다. 스기타 아쓰시 교수는 결정, 대표, 토론, 권력, 자유, 사회, 한계, 거리라는 8개의 키워드로 정치라는 것의 의미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마치 요가를 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이 책의 가이드에 따라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그동안 쓰지 않았던 근육들을 하나하나 소환해 긴장시키고 이완하다 보면 잠자고 있던 몸 안의 ‘정치 근육’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한국 정치는 가슴 설레는 비전과 포부를 잃은 채 공회전만 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우리를 열광시키는 메시아가 아니라 스스로 정치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자각이다. 저자가 제안하듯 ‘손으로 더듬어 찾는’ 방식을 통해 정치라는 것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때다. 나는 이 책이 정치의 복원을 위한 첫 걸음이 되리라 기대한다.
_ 권석천(중앙일보 논설위원, 『정의를 부탁해』 저자)
시중에 떠도는 시국 해설과는 180도 다른 성격의 책. 구체적인 정당이나 인명은 일체 등장하지 않는다. 눈앞의 정책 제언과도 전혀 관계가 없다. 저자는 어디까지나 ‘정치’의 원점으로 우리를 이끈다. 문체는 매우 평이하지만 혜안이 넘치는 말들이 가득하다. 읽은 후 몇 번이고 반추했다.
새로운 헌법만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 기대하는 것은 정치라는 행위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생각이라며 보수파를 견제하고, 다른 한편으로 국가와 시장을 지나치게 적대시하는 자유주의파에 대한 위화감도 숨기지 않는다. 냉정하고 침착한 사고 전개가 설득력을 더한다. 특히 ‘정치’라고 물으면 조건 반사적으로 지론을 주장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오랫동안 계속해서 읽힐 좋은 책이다.
_ 와타나베 야스시(게이오대학 교수, 문화인류학 · 국제정치학)
목차
1장 결정 _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가
12 결정하는 것은 버리는 것
15 ‘누가’ 결정하는가
19 누가 결정할지를 정해두는 장치
22 ‘무엇을’ 결정하는가
24 헌법 개정은 쟁점인가
27 ‘언제’ 결정하는가
31 ‘어떻게’ 결정하는가
34 민주정치에 대한 조바심
37 정치와 속도
2장 대표 _ 왜,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40 대표는 가능한가
43 대표란 무엇인가
47 대표제는 왜 필요한가
49 연극으로서의 대표제
51 직접투표를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
54 직접투표를 해야 할 때
58 대표를 둘러싼 경쟁
3장 토론 _ 정치에 올바름은 있는가
64 ‘대화하고 의논하다’와 ‘결정하다’
67 폭력에 의한 지배
69 사회계약론
71 학문적인 논의와 정치적인 논의
75 정치에 올바름은 있는가
77 이익 정치의 문제
79 윤리와 이익
82 논의에 대한 논의
4장 권력 _ 어디에서 오는가
86 권력과 폭력
90 국가권력, 영토인가 생존인가
92 국가권력의 양면성
97 권력은 어디에 있을까
100 감시하는 권력
103 시장의 권력
105 경제의 글로벌화와 권력
107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
110 권력에 대한 저항이란
5장 자유 _ 권력을 없애면 좋을까
114 자유 대 권력
118 자유의 조건
120 공화주의론, 시민사회론의 함정
125 저항으로서의 자유
127 변화를 막는 ‘벽’
130 목적으로서의 자유의 어려움
134 미완의 자유
6장 사회 _ 국가도 시장도 아닌 그 무엇
136 사회는 존재하는가
138 시장과 사회
143 국민과 사회
148 사회와 국가
152 모호한 영역으로서의 사회
7장 한계 _ 정치가 전면화해도 좋을까
156 정치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158 정치의 폭주
160 교육과 정치
163 문화?과학?학술과 정치
166 위헌 심사와 정치
168 미디어와 정치
171 관료제와 정치
173 자기 안의 대화
177 건전한 정치를 위하여
8장 거리 _ 정치와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180 ‘대중’과의 거리
183 자기 자신과의 거리
184 적대성은 어디에 있나
188 부담 배분의 정치와 내셔널리즘
190 거리의 상실
193 정치의 전제가 바뀌었다
195 정치와 거리 두기
201 후기
203 한국어판 특별 대담 l 정치는 뺄셈이 아니라 곱셈이다
편집자 추천글
출간 의의
이제는 누가 해도 정치가 잘 돌아가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모두가 싫어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대를 위한 새로운 정치학 강의
정치, 라고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대개는 TV 뉴스에 나오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그들을 뽑는 선거, 정치인들의 권모술수나 이전투구 따위일 것이다. 그와 함께 어딘지 모르게 불쾌한 느낌,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의 일이라는 소외감 같은 감정이 따라올 것이다. 저자는 이런 여러 가지 불편한 감정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정치라는 행위가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위화감과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 극대화된 결과로서 얻은 체념의 정서를 출발점으로 삼아, 정치에 관한 상식과 전제들을 하나하나 되짚는다.
언제부터인가 정치는 늘 ‘문제’였다. 특정 인물이나 정책 혹은 정권 교체에 기대를 걸어보지만 속 시원하게 해결되는 일은 거의 없다. 기껏해야 ‘더 나쁜 것’과 ‘덜 나쁜 것’ 정도의 차이를 가져올 뿐이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초래한 원인으로 경제의 글로벌화와 주권국가의 상대화를 꼽았다. 국경을 넘어서는 돈과 사람과 물자의 흐름, 지구온난화나 원전사고처럼 한 국가가 결정하고 통제하기 어려워진 사회문제들 때문에 기존 정치학의 강력한 전제였던 주권국가의 경계가 흐릿해졌다는 것이다. 또한 거의 모든 국가의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정치란 과거와 같은 ‘이익 배분’이라기보다는 ‘부담 배분’이 되기 십상이라는 점도 현대 정치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고 보았다. 이렇게 기본 전제가 달라진 만큼 정치에 관한 생각, 정치를 운용하는 관점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이 책은 정치학의 기초적인 개념들을 재검토하며 새로운 시대를 위한 정치학, 더 나은 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우리 각자는 모두 정치의 당사자이며, 또한 공범이다.
도망치려 해도 정치는 결코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를 위한 정치학의 출발점은 어디일까? 저자는 정치가 TV 뉴스를 켜면 나오는 일, 정치인들만 하는 일이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 내가 성립시키고 지탱하고 때로 망치기도 하는 내 삶의 일임을 인식하는 것이 첫 걸음이라고 말한다. 정치의 어려움도, 그리고 가능성도 모두 이 당사자성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치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인 ‘결정’이 어려운 이유는 누가 결정할 것인지, 즉 내가 직접 결정할 것인지 아니면 나의 대표가 나를 대신해 결정할 것인지, 내 문제를 내가 아닌 누군가가 제대로 대표할 수 있을지가 늘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내 문제를 내가 어쩌지 못하는, 당사자성과 대표성 사이의 묘한 긴장관계를 철저히 인식하는 일이 강한 리더에 의한 손쉬운 결단주의나 나 한 사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을 수 있는 길이다. ‘권력’에 대해서도 나를 억압하는 악으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권력이 성립할 수 있었다는 것,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 권력에 관여하며 권력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런 당사자성이 바탕이 되어야 내가 선출한 권력을 내가 비판하는 것이 결코 모순이 아니라, 자기 안의 대화 혹은 자신에 대한 저항으로서 의미를 획득하며 변화와 개선을 꾀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더 나은 정치를 원한다면, 우리 각자가 정치에 대한 생각을 심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의식을 고양시킨 유권자의 존재가 중요해지는 장면은 몇 번이고 찾아올 것이다. 단념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의 원제가 ‘정치적 사고政治的思考’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어판 특별 대담 수록
“정치는 뺄셈이 아니라 곱셈이다”
이 책의 저자 스기타 아쓰시 일본 호세이대학 법학부 교수는 현재 일본 정부에 가장 비판적인 지식인으로 손꼽힌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무시하고, 수상이 전권을 행사해 신속히 결정을 내리려는 아베 정부의 난폭한 결단주의를 강력히 규탄하며 다양한 강연 및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헌법 개정, 원전 재가동 등 국가의 존재 방식 자체를 규정하는 의제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독단에 맞서 ‘다함께 결정하자 원전 국민투표’, ‘입헌민주주의 모임’, 헌법 96조 개정에 반대하는 ‘96조의 모임’ 등의 단체를 만들어 자신의 정치 이론과 사상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이 책에는 한국어판 특별 대담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와 번역자가 이 책의 원서를 펴낸 일본 이와나미쇼텐 본사에서 2시간가량 나눈 대화를 대담 형식으로 정리했다. 본문에서 논의된 정치의 기초 개념을 바탕으로 한층 구체적인 우리의 삶과 정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의 세월호 사건,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오키나와 문제 등 구체적인 현안을 통해 저자의 주장과 고민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다.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신속한 결정만이 최선이라며 밀어붙이는 정부의 난폭한 결단주의가 한일 양국에서 얼마나 유사한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는지도 확인해볼 수 있다. 저자는 “정치는 뺄셈이 아니라 곱셈이다”라는 말로 대담을 마무리했다. 다 쳐내고 정치만 남겨 ‘흔들림 없이’ 나아가면 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의 지나온 역사가 보여주듯 정치는 쉽게 폭주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정치는, 그리고 권력은 여러 사람의 서로 다른 입장이 교차하고 충돌하는 가운데 토론과 협상, 조율의 과정을 거쳐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작용해야 한다.
주요 내용
빠른 결정이 최선인가?
결정한다는 것은 버린다는 뜻이다. 국경선을 긋는 순간 그 안쪽은 ‘우리’가 되고, 바깥쪽은 배제된다. 또 어떤 제도를 도입하는 순간 그 전과 후는 다른 시간이 된다. 혜택을 받는 사람이 나오고, 동시에 피해를 입는 사람도 나온다. 정치는 이런 모든 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모든 사람과 관련된 사항을 결정하는 행위다. 따라서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결정하는가가 늘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국경을 넘어서고 후세대까지 이어지는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기업의 피라미드형 조직과 결정 방식이 각광받는 요즘 주권국가의 국민이, 당대의 문제를,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한다는 기존의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모두가 만족하는 결정을 내리기란 불가능에 가깝고, 결정 과정 자체도 지난한 싸움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정하지 못하는 정치’를 비난하며 강한 리더의 신속한 결정을 바라는 게 옳을까? 민주정치를 포기하고도 우리는 자신의 의사를 정치적 결정에 반영할 수 있을까?
자신이 정치의 당사자라는 생각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그때야말로 정말 무력해져버릴 것입니다.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당사자성을 주장하기 위한 전제임이 틀림없습니다. _ 35쪽
‘강한 리더십’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환멸의 연쇄를 통해 정치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지 모릅니다. (중략) 최종적인 결정 주체로서의 주권이 성립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가는 가운데, 정치에 과도하게 부하를 거는 일은 정치의 상실로 이어질 것입니다. _ 36쪽
과거와 미래 사이로서의 현재에 버티고 서서 자신의 행동이 초래할 영향을 두루 생각해보는 일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시대의 흐름을 타고 빨리 결정해야 한다거나 정치도 더욱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은 정치의 부정으로 이어집니다. 정치의 커다란 존재 의의는 그러한 흐름을 거슬러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_ 38쪽
연극으로서의 대표제
어느 한 사람이나 정당이 수많은 쟁점에 대해 나의 의사를 완벽하게 대표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모순을 안고 있는데도 왜 우리는 대의 민주제를 유지하고 있을까? 저자는 이에 대한 답으로 ‘연극으로서의 대표제’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어떤 ‘민의’가 존재하고 그것을 대표가 전달한다는 것이 대표제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사실상 확고한 민의가 먼저 존재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모호하거나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대표들이 의회에서 논쟁하거나 정당들이 대립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의견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정치인은 각각의 역할을 연기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논전을 펼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중략) 정치적 쟁점이 어디에 있고, 대립 축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누구의 의견에 가깝고, 어떤 점이 다른가? 대표들이 펼치는 정치극을 보면서 이러한 것들이 명확해집니다. 대표라는 존재가 전혀 없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정치적인 논의를 시작하는 것조차 얼마나 곤란한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_ 50쪽
대표제가 아무리 잘 기능해도 개인의 입장에서는 늘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직접투표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된다. 하지만 직접투표가 대표제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 저자는 직접투표는 대개 찬반을 묻거나 최소한의 선택지를 제시하기 때문에 대표제를 대신한다기보다는 문제를 단순화시켜 사람들 사이의 토론을 활성화시키고, 민의를 형성해가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에 대해 직접투표를 해야 할까? 환경이나 생명, 의료, 정체성 문제 등 정당의 전통적인 대립 구조 안에서 쟁점이 되기 어려운 문제들이야말로 직접 투표에 부쳐야 한다.
기존의 정당정치 안에서 매듭짓지 못하는 문제는 직접투표에 부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정당정치를 지키기 위해서도 의미가 있기 때문에 기존의 정당 입장에서도 투표를 실시하는 편이 좋습니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무리하게 정당정치의 틀 안에서 매듭지으려 하다 보면, 각 정당이 쪼개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정당의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는 문제라면, 직접투표에 부쳐 사람들이 결정하게 하는 것이 하나의 지혜가 될 수 있습니다. _ 57~58쪽
권력은 우리가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권력은 보통 폭력에 의한 강제와 결부되어 권총 강도에 가까운 이미지를 띤다. 그러나 이는 권력의 일면일 뿐이다. 우리는 권총 강도에게서는 도망치지만, 경찰관은 무섭고 세금은 싫다면서도 그런 것들을 강제하는 국가권력은 거부하지 않는다. 그 권력 관계에 기꺼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해도 그 안에 머물고 있다. 이른바 암묵적인 동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권력이 존재한다는 것, 이것이 권력을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이다.
민주정치에서 전쟁과 같은 큰 정치적 사건은 아주 많은 사람이 관여해야만 비로소 실현되기 때문에 누군가 한 사람의 의도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일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사람들의 행동이 결합해 어떤 한 사람의 의도와도 다르고,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는 것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 권력에 관여하며 권력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_ 98~99쪽
국가권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국경선을 긋는 권력과 교육, 공중위생, 복지 등을 통해 ‘무리’의 생존과 번영을 배려하는 권력. 이 가운데 어느 쪽이 정치에 중요한가는 늘 커다란 쟁점으로, 권력을 바라볼 때는 강제적인 측면과 생산적이고 적극적인 측면을 함께 봐야 한다. 권력을 무조건 비판하거나 옹호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왜 권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권력도 일정 부분 우리가 요구했기 때문에 성립한 것이고, 사회의 모든 영역을 잠식해 들어오는 시장이나 기업의 권력도 우리 마음속의 대차대조표가 플러스이기 때문에 존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에 대한 저항은 자신에 대한 저항, 자신이 누려온 생활양식을 바꾸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권력이 일방적으로 행사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권력 과정의 당사자라는 의식을 가질 때, 즉 책임자는 어딘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다고 깨달을 때 권력의 존재 방식을 바꾸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_ 112쪽
모호한 영역으로서의 사회
사회란 무엇일까? 당연한 것처럼 사용하는 말이지만, 실은 잘 모르는 점이 많다. 사회는 없고 개인만 존재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고, 그런 개인들만 있는 ‘자연 상태’에서 계약이 맺어져 사회가 형성되었다고 보는 사회계약론자들도 있다. 개인을 강조하는 논의는 모든 인간의 자립 가능성을 긍정하지만, 그러므로 복지 따위는 필요 없다는 식의 주장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한편 사회를 시장과 구별하면서 ‘사회적인 것’, ‘연대’ 등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시장을 각자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며 적대시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시장에도 ‘서로 도움’을 위한 여러 가지 장치와 관계들이 존재한다. 시장과 사회의 대비는 시장에서 곤경에 빠진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회 속에 존재하는 모순과 권력 관계를 감추기도 한다. 사회를 국민국가의 경계와 거의 같은 것으로 보는 견해도 마찬가지다. 사회에 일정한 안정성을 부여하고 국가권력에 의한 재분배 등을 통해 사회적 연대를 실현할 수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국경선 밖의 문제에는 소홀해지는 폐단을 낳는다.
이처럼 사회든 시장이든 국가든 단순하게 정의를 내려버리면 명확한 대비 효과는 있지만, 동시에 무엇인가를 감추게 된다. 그러므로 사회, 국가, 시장을 각기 분리하여 어떤 한 영역을 전면적으로 옹호하거나 악마화하여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정치는 인간의 복잡함에 대응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은 복잡하기 때문에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지 타인은 물론 자신도 잘 모릅니다.
그러한 인간의 복잡함, 즉 인간이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지, 정체성에 따라 움직이는지, 타인을 걷어차 버리려고 하는지 도우려고 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절망적으로까지 모호한 대상으로 사회라는 말을 감히 사용하는 것이라면 나는 찬성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강제를 필요로 하지 않고, 이해나 관심과 무관해질 수 있고, 단지 타인과의 연대만을 생각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거나 되어야만 한다는 맥락에서 혹은 그와 유사한 단조로운 이념으로서 사회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_ 153~154쪽
정치적으로 생각한다는 것
저자는 정치적 사고에서 중요한 것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정치는 다양한 가치관과 관련되는 것이고 다양한 가치관 사이의 조정이야말로 정치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중략) 극단론을 별도로 한다면, 정치적 의견에는 각자 나름의 부분적인 올바름이 있습니다. (중략) 정치적인 토론을 추진할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정치는 선악을 논하는 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일하게 올바른 답 이외에는 필요 없다는 자세는 더 이상 정치적이지 않습니다. 올바르지 않은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정치의 장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은 정치가 기능하는 장을 없애는 행위로 이어집니다.
둘째, 정치적 사고에서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거리에 대한 감각입니다. 모두가 자신과 비슷한 존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전면적으로는 서로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중략) 사람이 복수로 존재하고 있고, 잘 들어보면 각각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의견을 듣는 민주정치가 필요한 것입니다. (중략) 여기서 말하는 거리 감각이란 ‘간격’과 같은 것으로 극단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도 아니고, 거리를 두지 않고 서로 달라붙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다.
셋째, 정치는 복잡하고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투명성의 세계에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정치는 이해관계를 달리 하는 살아 있는 인간들의 대립을 전제로 조정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중략) 정치적으로 무엇인가를 바꾸려고 한다면, 손으로 더듬어 찾는 작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감각의 문제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정치에 거리를 두는 방식은 틀림없이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정치적 사고를 어떻게 몸에 익힐 것인가가 하나의 물음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_ 196~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