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낡은 사진 속 이야기 (평화그림책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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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천롱
옮긴이 : 전수정
책정보 및 내용요약
국가와 민족의 거대한 전쟁 뒤에 가려진
평범한 사람들의 우정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편집자 추천글
여느 시절의 여느 나라에서처럼, 20세기 초 중국의 산골마을에 공부를 하고 싶은 가난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이 소년은 날마다 마을 어귀의 학교로 달려가 창문 너머로 열심히 수업을 들었지요. 그 열정에 감동한 선생님은 소년에게 교실로 들어와 공부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소년은 자라서 대학에 들어가 문화인류학을 연구하는 청년이 되었고, 당시 학문이 앞서 있던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여느 시절의 여느 나라에서처럼, 20세기 초 일본에도 가난한 이국의 유학생을 따뜻이 대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동병상련의 일본인 청년과 그의 어머니가 중국의 청년을 가족으로 맞아 주었고, 두 청년은 한 어머니 아래 함께 학문의 열정을 키우며 영원한 우정을 다짐했습니다.
인류의 여느 역사에서처럼, 두 청년을 갈라놓은 것은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자행된 거대한 폭력, 전쟁이었습니다. 중일전쟁이 일어나, 중국 청년은 조국으로 돌아가 항일전선에 뛰어들었고 일본 청년은 군인으로 징발되어 동남아 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둘 사이엔 소식이 끊어졌지요. 그 사이 중국의 청년은 항일운동이 맺어준 인연과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았고, 고향이 함락되어 피난길에 나섰다가 일본군의 폭격으로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청년은 일본의 어머니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 네가 귀국한 뒤 전쟁 때문에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너를 그리워하며 걱정하고 있었단다. 야마모토는 늘 네 걱정을 하면서 평안하기만을 바란다고 했지.”
중국인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으로 시작한 편지에는, 일본인 아들의 전사 소식과 함께 생전에 아들이 간직하고 있던 사진 두 장이 담겨 있었지요. 한 장은 중국인 청년이 일본인 친구에게 우정의 증표로 건넸던 중국 청년과 그 어머니의 사진이었고, 또 한 장은 일본인 청년이 전쟁터로 끌려가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일본 청년과 그 어머니의 사진이었습니다. 편지는 슬픈 소회와 간절한 당부로 끝을 맺고 있었습니다.
“…… 올해에도 벚꽃이 피었구나. 하지만 내 아들은 이 아름다운 벚꽃을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네가 일본에서 맺은 형제와 이 일본 엄마를 잊지 말고 영원히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이제 나처럼 연로하실 네 어머님께 안부를 전해다오.……”
이 이야기는 날마다 석양 무렵 낡은 사진 두 장을 묵묵히 들여다보곤 하던 생전의 아버지를 추억하는, 딸 ‘나’를 화자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나’는 폭격으로 돌아가신 할머니가 피격 당시 온몸으로 지켜준 덕분에 살아남은, 피난길의 아기였지요. 이야기의 말미에서, 어른이 된 나는 벚꽃이 활짝 핀 어느 날 일본으로 건너가 아버지와 야마모토 아저씨를 대신해 아름다운 벚꽃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름처럼 안개처럼 슬픈 아름다움을 간직한 벚꽃이 오랫동안 자신의 가슴 속에서 피어나고 또 피어날 것을 예감합니다.
이 안타까운 이야기에서처럼, 전쟁은 거대한 폭력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는 우정과 연대는 전쟁이 종용하는 서로간의 증오와 멸시를 초월하여 지속되지요. 그 우정을 질시하고 그 연대를 깨뜨리려 하는 자는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며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제 잇속을 차리려는 세력들입니다.
이 그림책은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열두 작가와 출판사들이 연대하여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어린이들에게 전하는 ‘한중일 공동기획 평화그림책’의 아홉 번째 작품입니다. 그림책을 쓰고 그린 중국의 작가 천롱은 이 이야기 속의 화자 ‘나’의 동생이지요. 그러니까, 이야기의 주인공은 실제 인물이며 이야기의 사건 또한 실제 있었던 일로, 작가는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누나의 입을 빌어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화그림책’은 이 이야기 속의 아버지와 야마모토 아저씨처럼 순전한 민간의 평범한 사람들이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우정과 연대를 모색하는, 그리하여 평화에 이르고자 애쓰는 안간힘의 하나입니다. 이러한 안간힘이 하나둘 모여, 낡은 사진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슬픔에 잠기는 사람들이 더는 생기지 않는 세상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중일 공동기획, 3국 12작가가 모여 만드는
‘평화그림책’ 시리즈
어린이들이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한중일 세 나라의 작가들과 출판사들이 함께 만드는 그림책 시리즈입니다.
한중일 세 나라는 가까운 이웃 나라들이지만 서로 동등하고 평화롭게 지내 오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근대에는 힘을 앞세운 제국주의 세력의 욕심 때문에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괴롭히는 불행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 나라 사람들이, 나아가 온 세계 사람들이 평화로이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그림책 시리즈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난날을 정직하게 기록하고, 오늘의 아픔을 서로 나누며, 평화로운 내일로 함께 나아갈 것을 목표로 서로 의논하고 격려하면서 한 권 한 권 정성껏 만들고 있습니다.
2005년 10월, 다시마 세이조, 다바타 세이이치 등 일본 원로 그림책 작가 4명의 발의로 시작, 2007년 난징에서의 기획회의를 기점으로 본격 진행되어 8년이 지난 지금 9번째 그림책, 『낡은 사진 속 이야기』를 펴내게 되었습니다.
참여 작가
한국 : 이억배(『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권윤덕(『꽃할머니』), 김환영(『강냉이(근간)』), 정승각(『춘희는 아기란다(근간)』)
중국 : 야오홍(『경극이 사라진 날』), 차이까오(『불타는 옛 성-1938』), 천롱(『낡은 사진 속 이야기』), 저우샹(『토요일, 맑음(근간)』)
일본 : 하마다 게이코(『평화란 어떤 걸까?』), 다시마 세이조(『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와카야마 시즈코(『군화가 간다』), 다바타 세이이치(『사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