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이 수상하다 (사계절 아동문고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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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성완
그린이 : 방현일
책정보 및 내용요약
『내 동생이 수상하다』는 『다락방 명탐정』시리즈로 비룡소 문학상을 받아 어린이문학의 새로운 다크호스로 떠오른 성완 작가의 장편동화다. 이번엔 한국 판타지와 추리를 재밌게 엮었던 이전 작품들과는 결이 다른 작품으로 도전했다. 개발 바람이 닥친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폐허로 변해 가는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성완 작가 특유의 환상성과 발랄함으로,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보여 준다. 호빵맨처럼 생긴 동생 민국이와 남자아이들과 싸워도 전혀 밀리지 않는 철없는 누나 민영이 캐릭터는 동화를 시종일관 밝고 유쾌하게 이끈다. 그러면서도 독자들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잔상 하나를 남기기도 하는, 근래에 보기 드문 아동문학이다. 덧붙여 섬세한 감성을 잘 담아내는 방현일 화가가 사라져 가는 응달말 풍경과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슴 먹먹하게 그려냈다.
목차
출동! 호빵레인저
의혹
백발마녀를 만나다
최후의 만찬
미운 정, 고운 정
다시 만난 백발마녀
추석
오금교의 비밀
미행
이사 가기 싫어!
한판 승부
힘든 고백
태풍
악몽
서툰 작별
바람재 느티나무
작가의 말
편집자 추천글
지킬 것이 많은 여덟 살, 호빵레인저
사계절 아동문고 여든여덟 번째 책 『내 동생이 수상하다』는 고물상들이 여기저기 뜯어 가 보기 흉한 빈집이 늘고 있는 응달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민영이와 민국이 두 남매의 가슴 먹먹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미처 이사를 못 간 집 대문에 ‘아직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쪽지가 초라하게 붙어 있는 응달말. 여자아이치고 제법 험한 ‘헐크’라는 별명을 가진 5학년 왈가닥 소녀 민영이는 할머니, 엄마, 그리고 이 집의 유일한 남자 여덟 살 민국이와 함께 응달말에서 살고 있다. 최근에는 같은 반 은혜와 은혜의 아버지 권씨 아저씨까지 방 한 칸 세를 들어 한집에 산다.
민영이는 오늘도 학교에서 킹콩 정재욱과 한바탕 싸우고 엄마한테 혼날까 봐 노심초사다. 착한 척 하는 척은혜의 입단속까지 하고 나자 마음이 놓이려는데 호빵레인저가 불쑥 민영이의 비밀을 밝히려고 나타났다. 학교가 작아 민영이가 정재욱과 싸웠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진 것이다. 호빵레인저가 누구냐고? 자신이 지구를, 마을을, 가족을 지키는 파워레인저라고 믿는 동생 민국이다. 하지만 민영이 눈에는 영락없는 호빵맨으로 보여 호빵레인저라고 부른다.
호빵레인저 패션이 뭐냐고? 그러니까 어깨에는 빨간색 보자기를 망토처럼 두르고, 허리에는 태권도 노란 띠를 꽉 조여 매는 것. 그리고 장난감 총을 허리띠에 꽂는 것. 그게 바로 호빵레인저 패션이다.
참! 제일 중요한 ‘매직폰’이 빠졌다. 민국이의 보물 1호. 찍소리도 못 내는 고장 난 휴대폰. 원래는 아빠가 쓰던 휴대폰인데, 4년 전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민국이 차지가 됐다. 녀석은 그 휴대폰을 매직폰이라고 부른다. 다른 게 없어도 매직폰만 있으면 파워레인저로 변신이 된다나 뭐라나.
- 본문 15쪽
동생에게 약점을 잡힌 민영이는 덥석 건담을 사 주기로 약속해 버렸다. 물론, ‘조만간’ 사 준다는 어정쩡한 약속으로 말이다.
수상한 호빵레인저, 수상한 백발할머니
요즘 동생이 수상하다. 민영이에게 무슨 말을 할 듯하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다문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 마을을 떠난 뒤에는 하지 않았던 하늘을 나는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 더 강한 파워레인저가 되기 위해서란다.
더 강해지고 싶어 하는 동생의 슬픈 눈빛을 보면 유치하다고 쉽게 타박하기도 어렵다. 수상한 게 이뿐만이 아니다. 건담을 빨리 사달라고 조르지를 않나 장바구니에 무언가를 넣고 어수선한 동네를 혼자 다니지를 않나. 민영이는 자꾸만 동생의 행동이 수상하다.
동생이 사라지면 엄마는 민영이에게 동생을 찾으라고 타박이다. 동생을 찾는 척하다가 엄마 눈을 피해 대문 밖 평상에 걸터앉았는데 귀걸이를 오른쪽 귀에 두 개, 왼쪽 귀에 세 개씩이나 한 세련된 모습의 백발할머니가 민영이 앞에 나타났다. 70년 전 응달말에 살았다는 할머니. 할머니는 마치 민영이에 대해 다 알고 접근하는 것만 같다. 심지어 민영이가 동생에게 ‘조만간’ 건담을 사 주기로 한 약속까지 아는 것처럼 건담을 선물로 주려고 한다. 하지만 민영이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백발할머니의 호의를 거절한다.
제법 굵은 비가 오는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보니 민국이 녀석, 또 사라졌다. 동생 또래 친구들은 모두 이사를 가서 이젠 놀러 갈 집도 없는데 동생은 어디로 간 걸까? 동생을 걱정하는 민영이에게 다시 백발할머니가 나타난다. 이번에도 백발할머니는 다 안다는 듯이 서둘러 응달천으로 가라고 한다. 엉겁결에 응달천까지 도착했더니 동생이 위태위태하게 응달천 돌다리를 건너는 것이 보인다. 동생은 물살을 이기지 못해 휘청 넘어지고 민영이는 잽싸게 허우적대는 동생의 팔을 붙잡아 구한다. 겨우 물에서 건졌더니 민영이에게 돌아오는 건 동생의 타박이다.
“놓으라고! 만약에 무슨 일 생기면…… 누나가 책임져. 다 책임지라고!”
민국이가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그리고 집을 향해 뛰었다. 우산도 없이 마구 뛰었다. 나는 민국이의 갑작스러운 행동이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래서 따라가 잡을 엄두도 못 냈다. 무엇이 민국이를 저토록 화나게 만들었을까? 무엇 때문에 이 빗속을 뚫고 자기를 찾아다닌 나를 미워하는 걸까? 나는 우두커니 서서, 집을 향해 달음박질치는 민국이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본문 81쪽
도대체 민국이는 어디를 다니는 걸까? 모든 걸 다 아는 듯 말하는 백발할머니의 정체는 뭘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마을을 지키는, 호빵레인저
오늘도 동생은 냉장고를 열어 장바구니에 무언가를 담고 눈치를 보며 집을 나선다. 민영이는 수상한 동생의 뒤를 따라나서는데 민국이가 들어가는 곳은 이미 이사 간 지 두 달이나 되어 허물어져 가는 재영 언니네 집이다. 그곳에는 집에서 가지고 나온 장바구니와 우유 팩, 장난감, 손전등이 보인다. 심지어 휴대용 선풍기까지도 있다. 그리고 쓰러진 의자 밑 그늘진 곳에서 들리는 ‘야옹~’소리. 그곳에선 어미 없는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동생을 기다리고, 조그마한 장난감 로봇이 새끼 고양이들을 지켜 주고 있다.
민국이가 로봇이 새끼 고양이를 지켜줄 거라고 생각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응달천에 오금교 공사가 진행되던 3년 전, 민영이와 동생은 시멘트가 채 마르지 않았던 오금교에 다리를 지켜 줄 장난감 로봇을 묻었다. 이때부터 동생은 로봇이 자기를 대신해서 마을을 지켜 줄 거라 믿는다.
“버리자는 게 아니야. 이 다리를 지켜 주자는 거지.”
“지켜 준다고?”
“그렇지. 너는 우리 응달말을 지켜 주는 파워레인저잖아. 그러니까 다리도 지켜 줘야지. 그런데 네가 맨날 다리에 나와 있을 수 있어? 없지? 그래서 여기에 너를 대신할 파워레인저를 넣어 두자는 거야.”
내 말에 민국이의 눈이 반짝 빛났다.
“알았어! 내가 지켜 줄게!”
집으로 돌아온 민국이는 자기가 아끼는 손가락 크기의 로봇 인형 중 하나를, 나는 내가 직접 만든 팔찌를 챙겼다.
- 본문 92쪽
새끼 고양이에 대한 비밀이 민영이에게 탄로 나자 동생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민영이는 혼자 파워레인저 놀이를 하며 마을을 돌아다니는 동생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 한쪽이 묵직해진다. 그리고 걱정이 된다. 굴착기가 재영 언니네 주변 집들을 허물고 있기 때문이다. 굴착기의 충격 때문인지 재영 언니 집도 곳곳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태풍 소식이 있던 날 민영이는 킹콩 정재욱과 또 싸웠다. 사건이 커져 엄마에게도 소식이 들어가고 호된 야단을 맞는다. 그러는 사이 동생은 비바람으로 떨고 있을 새끼 고양이들을 지켜 주러 가고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가족들은 재영 언니네 집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이미 재영 언니네 집은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무너진 상태다. 무너진 지붕 아래에는 새끼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눈을 감고 있는 동생이 있었다. 고양이들은 조금씩 울기 시작했지만, 어디에도 동생의 울음은 들리지 않았다. 동생은 어른들도 하지 못한 호빵레인저의 임무를 완수하고 아빠 품으로 간 것이다.
『내 동생이 수상하다』가 부리는 마법
발전의 끝일 것만 같은 현대 사회를 살지만 개발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개발의 진행과 함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여전히 생기기 마련이다. 민영이네 집에 세를 살던 은혜네는 더는 갈 곳이 없다. 결국, 은혜는 시골 할머니 댁으로, 은혜 아빠는 여관이나 고시원 같은 곳에 머물며 일거리를 찾아다녀야 한다. 끝까지 버티던 현대슈퍼 아저씨도 더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응달말을 떠날 것이다. 민영이네도 집 크기를 줄여 이사 갈 날짜를 잡는다. 동생이 임무를 완수하던 그날의 미안함을 마음 한구석에 담고선 말이다. 신나게 마을을 놀이터 삼아 뛰놀며 철없이 다니던 민영이는 이제 한귀로 흘려만 듣던 어른들의 일을 생각할 만큼 커 버렸다. 계속 개발을 하면서도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없다는 게, 그리고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는다는 게 원망스럽다.
담장 밖 사람들은 모두 민국이의 죽음을 단순한 사고라고 말했다. 태풍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 그런데 뭔가 억울하다. 태풍이 올 걸 뻔히 알면서도 무너져 가는 집을 놔둔 채 일을 중단한 것도 화가 나고,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안전대책도 없이 개발을 강행한 것도 원망스럽다. 그런데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는다.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롯이 우리만의 몫이라고 한다. 응달말엔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응달말에 있는데…….
‘아직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우리 집 대문에만 붙여 놓는 게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현대슈퍼에도, 마을 어귀에도, 정거장에도, 그리고 재영 언니네 집에도 붙여 놓을 걸 그랬다. 더 크게, 더 많이 붙여 놓을 걸 그랬다.
- 본문 140쪽
『내 동생이 수상하다』는 어른들의 이기로 희생된 아이들, 그리고 남은 가족들에게 조심스레 전하는 진혼곡일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면 단순한 위로를 넘어선 성장을 발견하게 된다. 민영이의 환경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같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민영이의 선택은 변하고 있다. 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누워 있을 엄마와 할머니를 대신해 이삿짐을 꾸릴 거라 한다. 동생이 목숨을 구해 준 고양이들에게 밥을 줄 것이라 한다. 오늘을 기꺼이 살아 내며 희망의 선택을 하는 민영이의 작은 변화를 보면 독자들도 세상이 조금씩 변할 거라 믿게 된다. 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을 좀 더 배려해 주고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변화를 믿는 것, 그것이 『내 동생이 수상하다』가 부리는 마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