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알고 있다! (사계절 아동문고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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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전성희
지은 책으로는 『거짓말 학교』, 『난 쥐다』, 『요괴 소년』, 『불가사리와 함께한 여름』이 있다.
그린이 : 손지희
책정보 및 내용요약
목차
빅토리아는 알고 있다
너로 정했어!
낯익은 목소리
토리를 만난 적 있나요?
고양이 따라 하기
선생님의 고백
도둑고양이
보리의 인사
편집자 추천글
알쏭달쏭 알다가도 모르겠는 너. 너란 녀석은 바로…… 고, 양, 이!
사계절 아동문고 여든일곱 번째 책 『고양이는 알고 있다!』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고 서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양이’의 습성에 빗대 그린 동화집이다. 타인과 타인이 만나 낯섦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점점 서로를 이해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면서,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계속해서 궁금증을 갖게 한다. 신비로운 동시에 조금은 두렵기도 한 고양이에 대한 이미지를 섬세하게 포착하여 모든 이야기에서 저마다 독특한 고양이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신선하다.
서로 다툰 후 친구와의 통화가 조금은 어색하고 불편해져 버린 아이의 심리를 섬세하게 다루는가 하면, 꼬리 끝만 하얀 고양이가 나오는 꿈을 동생과 공유하게 되면서 얄밉고 귀찮던 동생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아이를 통해 형제자매 간의 관계를 그리기도 한다. 또 늘 공부 타령뿐인 엄마 대신 차라리 고양이와의 대화를 선택한 아이, 도둑고양이의 실체를 밝히며 새엄마와 아빠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해 가는 아이, 이것저것 참견하는 엄마와 얄미운 동생에게 나 대신 야유를 보내 주는 고양이가 그저 신통방통할 따름이라 여기는 아이도 만날 수 있다. 특히, 우연히 가까워진 길고양이가 안내하는 곳까지 따라간 아이가 겪게 되는 기묘한 이야기는 기존의 동화에서 좀처럼 느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고양이를 소재로 다양한 인간관계를 다채롭게 그린 단편동화 여덟 편을 만나 보자.
고양이를 통해 ‘나’와 ‘너’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진심으로 소통하기
「빅토리아는 알고 있다」에서 주인공 세연이는 고양이 ‘빅토리아’ 덕분에 엄마의 이야기 속에 숨은 거짓을 귀신처럼 골라낸다. 세연이의 마음은 조금도 몰라주고 늘 이것저것 참견하는 엄마와 얄미운 동생에게 세연이 대신 야유(?)를 보내는 고양이를 만날 수 있다.
엄마는 아무리 자식이라도 사생활을 존중해야 하고 가족 사이에도 지켜야 할 예의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세연이는 화장실에 갈 때도 휴대 전화를 가져갈 수밖에 없다.
“네가 잘못 기억하는 거겠지. 난 네 방에 들어간 적도 없어.”
엄마는 냉장고에 붙여 둔 메모지를 확인하고 있다. 여전히 세연이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아우, 아우.”
빅토리아가 엄마를 보고 울었다. 꼭 “아유, 아유.” 하고 야유하는 것만 같다. “아유, 아유, 거짓말.”이라고.
세연이는 빅토리아가 꼭 자기편을 드는 것 같아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 본문 12쪽
“아우, 아우.” 하며 목을 빼고 우는 고양이의 모습에는 단짝과의 비밀을 공유하는 일기장을 엄마가 몰래 훔쳐보는 것도 물론 싫지만, 보지 않았다고 잡아떼는 게 더 싫은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너로 정했어!」의 길고양이 숙자는 어김없이 나를 기다린다. 떠돌이 생활에 지친 모습이 역력하지만 절대로 집 안에는 들어오려 하지 않는 가여운 녀석. 여느 날처럼 날 따라오겠거니 했는데, 숙자는 웬일로 앞장서서 재개발 지역의 으슥한 건물로 나를 이끈다. 녀석을 따라 건물 엘리베이터에 들어선 순간,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워 서 있는 것조차 힘이 드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나와 고양이의 영혼이 바뀌어 버렸다. 이대로 죽을 때까지 고양이로 살아야 할까? 이젠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방법은……? 가엾게 여기던 길고양이를 따라갔다가 겪게 되는 오싹한 이야기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낯익은 목소리」의 나은이는 지은이와 다툰 게 못내 맘에 걸려 먼저 전화를 걸어 본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낯설다. 정말 내 친구 지은이가 맞는 걸까? 지은이가 아니라면, 혹시 고양이 ‘비비’?
나은이는 휴대 전화에서 얼굴을 떼고 잠시 숨을 골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은이 같지가 않았다. 누가 지은이 흉내를 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너 지은이 아니지?”
“너 누구한테 전화했는데?”
“지은이한테.”
“그래 놓고 왜 아니래?”
평소 지은이 말투와 조금 다르지만, 계속 듣다 보니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또 딱히 지은이 흉내를 낼 만한 사람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지은이는 외동딸이고, 친하게 지내는 보람이와 수진이 목소리와도 전혀 다르다. 그래도 알쏭달쏭 이상한 기분이 여전하다.
“너 좀 이상해.”
“네가 이상한 게 아니고?” - 본문 39쪽
아무도 없는 틈을 타 고양이가 친구 흉내를 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아이다운 상상력을 통해 별것 아닌 일로 다투고 토라지고 또 화해하는 아이들만의 심리를 다루는 작품이다.
「토리를 만난 적 있나요?」는 제법 의젓한 오빠처럼 구는 주인공과 귀여운 여동생의 이야기를 담았다. 나는 일곱 살이나 먹고도 꿈과 현실을 구분 못 하고 늘 잠투정이나 부리는 철부지 동생이 못마땅하다. 그러다 온몸이 까맣고 꼬리 끝만 하얀 고양이가 나오는 꿈을 동생과 공유하게 되면서 마냥 귀찮던 동생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친구나 형제자매보다 진짜 어려운 건 엄마와의 관계다. 날마다 잔소리를 늘어놓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엄마와의 갈등은 「고양이 따라 하기」에서 다룬다. 말이 통하지 않는 엄마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고양이들을 따라 하는 행위로 해소하려는 엉뚱한 아이의 이야기가 익살스럽게 펼쳐진다.
“엄마도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 내 봐. 나처럼. 자, 해 봐.”
수림이가 말을 할 때마다 엄마 얼굴색이 점점 붉으락푸르락 변해 갔다. 엄마는 다시 수림이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뭐라고 소리쳤다. 엄마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수림이는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어렴풋이 짐작할 수는 있었다. 아마도 “너 계속 엄마를 화나게 할 거야? 엄마 놀리니?” 같은 말과 함께, “너 자꾸 그러면 가만 안 둘 거야.”라는 협박을 하고 있을 게 뻔했다.
제제가 수림이 가까이로 다가왔다.
“듣기 싫은 잔소리 안 들어도 되고, 잘된 거 아냐?”
수림이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본문 72?73쪽
언제나 지독하게 공부를 강요하는 엄마와 말을 섞느니, 고양이와 대화하기로 결정한 아이의 모습에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된다.
「선생님의 고백」에는 고양이를 쏙 빼닮은 ‘고양이 선생님’이 등장한다. 출산 휴가에 들어간 담임 선생님을 대신해 우리 반을 맡아 온 고양이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 날, “사실은 나, 고양이다!”고 말하며 훌쩍 떠나 버린 선생님과 함께 학교를 배외하던 갈색 고양이도 감쪽같이 사라진다. 가까워지기 참으로 어려운 선생님과의 관계를 ‘사실은 우리 선생님이 고양이가 아닐까?’ 하는 발칙한 설정으로 풀어낸 점이 흥미롭다.
「도둑고양이」에는 동생이 태어나면서, 갑자기 새엄마와 멀어진 것 같고 늘 바쁜 아빠와도 점점 더 소원해져서 외로운 아이가 등장한다. 주인공은 동생의 얼굴을 할퀴고 도망가거나, 장난감을 찾기 힘든 곳에 숨기고서 사라지는 도둑고양이가 있다고 말하지만, 새엄마와 아빠는 도무지 믿어 주질 않는다.
내가 동생이 생겨서 얼마나 기쁜지도 모르면서 어른들 마음대로 내 마음을 결정해 버렸다. 내 마음속에 들어와 본 것도 아니면서 도대체 어떻게 안다는 거지?
새엄마는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내가 아기 근처에라도 가면 신경을 바늘처럼 곤두세우는 게 느껴진다. 그럴 때는 새엄마의 날카로워진 신경이 내 뒷목을 콕콕 찌르는 것만 같다. 끝내 어제는 새엄마가 나에게 화를 냈다.
“권하은, 너 왜 그러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새엄마가 아기 얼굴을 가리키며 나를 매서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아기 얼굴에는 언뜻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가늘고 긴 선이 그어져 있었다. 난 그게 뭔지 몰라 새엄마만 멀뚱히 바라보았다.
“어떻게 아기 얼굴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놨어, 응?”
“내가 한 거 아니야. 난 보기만 했어.”
새엄마는 무서운 얼굴로 한숨을 토해 냈다.
“그럼 누가 이런 짓을 했다는 거야? 또 고양이 짓이란 말이니?”
새엄마의 말에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 말은 무조건 거짓말이라고만 여길 테니까. - 본문 94?95쪽
억울함과 원망이 머리끝까지 쌓일 무렵, 마침내 도둑고양이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리고 주인공은 자신처럼 외롭고 연약한 고양이와의 진심 어린 대화를 통해 오히려 자신의 상처를 치유받고 야속하기만 하던 새엄마와 아빠를 이해하게 된다.
「보리의 인사」는 일찍이 아빠를 여의고 엄마와 단둘이 사는 주인공에게 커다란 위로와 사랑을 주었던 반려묘 보리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과 이별에 대처하는 방법을 담담히 그린다. 아빠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는 주인공을 위해 보리가 남기고 간 마지막 발자국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관계 맺기와 소통에 서툰 아이들에게 내미는, 고양이처럼 말랑하고 따뜻한 손길
학교 수업을 마치고도 바쁜 일정에 시달리는 요즘 아이들. 방과 후에도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옮겨 다녀야 하니, 친구들과 몸을 부대끼며 뛰어노는 즐거움을 느낄 새가 없다. 온종일 공부에 치이다가 가끔 누리는 자유 시간에는 TV나 컴퓨터, 스마트폰에 빠져 지낸다. 저물녘까지 동네를 누비며 함께 자라야 할 또래들이 뿔뿔이 흩어진 학교 운동장은 그저 삭막할 뿐이다.
아이들이 맘껏 뛰놀 공간과 시간을 빼앗아 간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어른들이다. 항상 바쁜 엄마 아빠 때문에 텅 빈집, 친구를 경쟁자로 만들곤 하는 학교……. 활력을 잃고 외로운 섬처럼 자라난 요즘 아이들은 부모님과 눈을 맞추며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풀어 놓거나 친구들과 온종일 어울려 노는 즐거움을 모른다. 이 동화집은 관계 맺기와 소통에 서툰 요즘 아이들이 타인의 마음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갈 수 있도록 조용히 이끌어 주는 책이다. 작가는 왠지 모르게 새침하면서 도도한 느낌을 주는 고양이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감정 대립과 소통의 어려움을 묘사한다. 여덟 편의 동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고양이와 주인공을 보며 독자들은 저마다 고양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고, 자기 내면에도 고양이 같은 묘한 면모가 있음을 깨달으며 이야기 속으로 더욱 빠져들게 될 것이다.
『거짓말 학교』, 『난 쥐다』, 『요괴 소년』 등 그동안 주로 그로테스크한 작품으로 아이들이 처한 세계의 어두운 단면에 천착해 온 전성희 작가는 신간 『고양이는 알고 있다!』를 통해 보다 가벼운 소재, 톡톡 튀는 문장, 발랄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로 친구, 부모, 형제자매와 갈등을 겪는 아이들의 현실적이고도 평범한 일상을 그린다. 고양이 특유의 기묘한 분위기와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로 이루어 낸 작가의 변신이 놀랍고 새롭다. 맞벌이 부모 밑에서 나 홀로 자란 탓에 관계 맺기에 서툴고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요즘 아이들이라면 깊이 공감할 이야기가 단편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어서 더욱 매력적인 진짜 고양이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작가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