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짝꿍의 비밀 (사계절 아동문고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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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김소연
그린이 : 손령숙
책정보 및 내용요약
『명혜』와 『꽃신』 등 아동문학의 역사 팩션 장르를 탄탄하게 다져 나가며 흡입력 있는 서사와 안정감 있는 문체로 많은 독자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김소연 작가의 생활동화 『내 짝꿍의 비밀』. 2009년에 출간된 『선영이, 그리고 인철이의 경우』를 제목을 바꾸어 다시 펴내면서 표지 역시 좀 더 발랄한 느낌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조선시대 후기를 배경으로 한 역사 팩션과 새로 쓰는 옛이야기를 주로 선보였던 김소연 작가가 그려 낸 생활동화는 어떠한 색채를 띠고 있을지, 독자라면 자연스레 이런 궁금증을 가질 것이다. 이에 『내 짝꿍의 비밀』은 명쾌한 답이 될 법한 작품임에 분명하다.
이 책은 짝꿍인 선영이와 인철이의 이야기이다. 선영이와 인철이라는 이름은 어느 학교에나 한둘씩 꼭 있는, 평범하디 평범한 이름이다. 그만큼 작가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작가는 속속들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별 탈 없이 학교생활을 잘해 나가는 수많은 선영이와 인철이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그 아이들의 아픔을 가만히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고 한다. 6학년 들어 짝이 된 선영이와 인철이. 두 아이는 과거에 이혼을 했거나 이제 막 이혼한 부모를 두었다. 어쩌다가 서로의 상황에 대해 알게 되면서 선영이와 인철이는 균형감각을 잃고 기우뚱거리는 서로에게 어깨를 내준다.
90년대 중반부터 아동문학에서 수차례 이혼 문제를 다뤄 왔다. 부모의 이혼은 단순한 가정환경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첨예한 주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혼 가정의 꽤 자란 아이의 상황과 심리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예리하게 묘사해 낸 작품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요즘 초등 6학년 아이들은 중학교 1, 2학년보다 더 조숙하다고 느끼고, 스스로 다 자랐다고 인식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부모의 이혼은 삶에서 첫 번째로 느끼는 별리의 순간이며,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이다. 애어른이라 생각했던 자신들이 해결해낼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당황하고 두려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작가는 꼼꼼하고 세세하게 잘 그려 냈다.
목차
2. 리모델링
3. 형 노릇
4. 구두 가게 아저씨
5. 비밀 나누기
6. 사랑 손님과 엄마
7. 독후감 숙제
8. 오해와 이해
9. 마음속 난로
편집자 추천글
#1. 선영이의 비밀
여름방학 전까지만 해도 내 성격은 만사태평이었다. 체육복이 사물함 바구니 밑에 처박혀 있어도 상관 안 했고, 짝꿍이 마음대로 내 필통을 열어 지우개를 꺼내 써도 짜증 부리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이혼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여름방학 때 아빠가 엄마와 나를 두고 집을 나가 버린 뒤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더 이상 놀랄 일도 새로운 일도 없어져 버렸다. 그냥 모든 게 지겨울 뿐이다.
아빠가 나갈 때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던 엄마는 집을 통째로 리모델링을 하듯 집 안 정리를 시작했다. 가구, 벽지를 모조리 바꿨다. 엄마는 새집처럼 낯선 집에 물건을 잔뜩 사다 놓았다. 치약, 비누, 샴푸는 물론이고 쌀은 두 포대씩 사다 쌓아 놓았다. 피난민도 아니고, 다용도실이 슈퍼마켓 창고도 아니고, 뭐가 떨어져도 늑장을 부리며 사다놓지 않던 엄마가 갑자기 변한 것 같아 낯설기만 하다.
이혼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엄마는 엄마가 하는 약국 맞은편에 있는 구두 가게 아저씨와 데이트를 한다. 아빠는 또 어떤가? 평생 한집에 같이 산 아빠를 한 달에 한번 약속하고 만나야 하는 것도 슬픈데, 그 약속마저 지켜지지 않는 때가 많다. 헤어진 사람은 엄마 아빠인데 왜 내가 엄마 아빠와 이별한 느낌이 드는 걸까?
#2. 인철이의 비밀
아빠는 내가 세 살 때 나를 낳아 준 엄마와 이혼했다. 그리고 이듬해, 지금 새엄마와 재혼했다. 새엄마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성철이를 낳았다. 성철이는 저랑 나랑 똑같이 새엄마 아들인 줄 안다. 아빠는 새엄마와 맞벌이를 하면서도 새엄마가 가끔 뭐라 하면 “밖에서 일하는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나와 성철이에 대한 일은 모두 새엄마에게 미룬다. 아빠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빠가 새엄마보다 더 멀게 느껴질 때가 많다.
다행히 새엄마는 성철이와 나를 차별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게 더 잘해 줄 때가 많다. 똑같은 잘못이라도 성철이가 하면 더 무섭게 야단친다. 내가 잘못했을 때는 야단치는 일을 아빠에게 미룬다. 아빠가 큰 소리로 화를 내면 얼른 내 편을 들어 주기도 한다. 나는 그런 새엄마가 고마우면서도 왠지 서먹서먹하다.
나는 솔직히 새엄마가 ‘계모’ 같다는 느낌은 없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엄마로 알고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내 믿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왜일까? 나는 왜 새엄마를 다르게 보기 시작한 걸까?
아이들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하는 이야기
선영이와 인철이의 비밀은 다른 듯 비슷하다. 부모의 이혼 시기가 달라 삶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어른들의 헤어짐으로 아이들이 느끼는 관계의 박탈감과 결핍감은 같다. 그래서 선영이가 인철이에게 처음으로 자기 집안 이야기를 했을 때 인철이는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낀다. 선영이는 어렵게 털어놓은 자신의 비밀을 인철이가 소문도 내지 않고 잘 들어주는 것이 고맙다. 인철이는 선영이 얘기를 들으면서 자기의 상황에 대해 더욱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자연스레 자기 이야기도 털어놓게 된다.
선영이와 인철이는 어느새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나누어 가진 동지처럼 친밀감을 느낀다. 인철이는 선영이의 문자를 받고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선영이는 인철이가 ‘커플’이니 남친, 여친 어쩌고 하면서 호들갑 떨지 않는 녀석이라 믿음직스럽다. 집안 문제로 속상하거나 쓸쓸할 때도 친구 얼굴 떠올리며 힘을 낼 수 있어 좋다.
부모가 이혼을 하면 아이는 한 부모와 살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이는 두 부모를 다 잃은 듯한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선영이에게 확 변한 엄마가 낯선 것처럼, 인철이에게 새엄마보다 못한 존재감을 가지는 아빠처럼 말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아빠들의 존재가 유명무실에 가깝다. 친엄마든 새엄마든 선영이와 인철이의 엄마들은 억척스럽거나 현실적이거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 그런데 아빠들은 집을 나가거나, 아이들에게 무관심하다. 현실의 무수한 아빠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대목이다.
작가는 또 작품 속에 주요한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자연스럽게 언급하면서 시대에 따라 달라진 사회 통념에 대해서도 얘기하고자 한다. 1930년대 작품인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서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재가를 하면 ‘화냥년’이라는 소리를 피할 수 없다. 선영이는 엄마의 재혼을 바라지도 않지만, 엄마의 재혼이 화냥년이라는 소리를 들을 상황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고, 그러면서 엄마의 진정한 행복을 바라게 된다. 인철이도 갈등을 통해 우연히 마음속 이야기를 아빠에게 털어놓고, 새엄마에 대한 껄끄러운 마음도 풀리는 계기를 갖게 된다.
아이들이 힘들어한다고 해서 이혼한 현실을 되돌리거나 고칠 수는 없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경험을 하면서 자란다. 『내 짝꿍의 비밀』은 자기에게 닥친 시련에 급급한 나머지 아이들의 상처를 놓친 부모들이 보기에도 좋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