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과 사람을 담은 우리 옛 지도 (징검다리 역사책 7)
- 920
저자소개
지은이 : 이기봉
그린이 : 홍선주
책정보 및 내용요약
세계 지도부터 작은 고을 지도까지 우리나라의 대표 옛 지도 30점을 만나 보세요.
편집자 추천글
어린이를 위한 옛 지도 여행
우리나라는 ‘지도의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훌륭한 지도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영역에 따라 세계 지도, 동아시아 지도, 전국 지도, 도별 지도, 서울 지도, 고을 지도 등 종류가 무척 많습니다. 크기도 다양해서 높이 6미터가 넘는 『대동여지도』가 있는가 하면,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휴대용 지도책도 있습니다. 만드는 방식에 따라 거리와 방향을 정확하게 담은 지도도 있고 중요한 것을 자유롭게 강조한 그림식 지도도 있습니다. 이런 지도들은 지금도 박물관과 도서관에 많이 남아 있어서 선조들의 지리 사상과 지도 제작 기술을 보여 줍니다.
땅과 사람을 담은 옛 지도
옛 지도는 땅의 모습과 정보를 종이에 옮겨 그린 그림입니다. 그래서 옛 지도를 보면 우리 선조들이 국토에 관해 가진 생각이 무엇이었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지도를 누가 왜 그렸는지 알면 그 무렵의 역사와 사회 모습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는 1400년대 초 조선 사람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담겨 있습니다. 또 1872년에 그려진 「낙안군 지도」에는 서울을 닮으려는 지방 도시의 소망이 엿보이고요.
우리나라 대표 옛 지도 30여 점 수록
‘지도의 나라’답게 우리 박물관과 도서관에는 수많은 옛 지도들이 숨어 있습니다. 『땅과 사람을 담은 우리 옛 지도』는 이 가운데 우리나라 지도의 역사를 대표하는 7점을 골라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설명을 위해 꼭 알아야 할 지도들까지 더해서 모두 30여 점을 모았습니다. 어린이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옛 지도가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 어떤 종류가 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옛 지도 냄새를 가장 많이 맡아 본 사람
『땅과 사람을 담은 우리 옛 지도』를 쓴 이기봉 선생님은 우리나라에서 옛 지도 냄새를 가장 많이 맡아 본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서울대학교에 있는 규장각 한국학연구원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13년 동안 옛 지도를 직접 만지면서 연구했으니 그럴 법도 합니다. 어린이들에게는 아무래도 어렵게 느껴지는 옛 지도지만, 전문가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을 따라가면 어느 새 흥미진진한 옛 지도 여행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내용 소개>
조선이 만든 가장 뛰어난 세계 지도
1402년에 지도 제작자 이회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세계 지도를 만들어 냅니다. 바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입니다. 그 무렵에 나온 어떤 지도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만큼 많은 지역을 자세하게 담지 못했습니다. 특히 서양보다 100년 앞서 아프리카 대륙을 표현했는데요, 이는 조선의 지도 제작 전통을 바탕으로 세계 제국 원나라의 지리 정보를 받아들인 결과였습니다.
가만히 보면 조선이 중국에 비해 너무 크게
그려졌지요? 지도를 만든 이회도 조선이 그만큼 큰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조선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나라라는 당당한 기상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크게 그린 것입니다. 선조들은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보다는 ‘이해한 것에 소망을 더해’ 지도를 그린 것입니다.
서양 지도의 충격에서 나온 우리만의 세계 지도
반면 조선 후기에 이르러 정확한 측량 기술을 활용한 서양식 세계 지도가 들어왔습니다. 이는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알고 있던 조선 선비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서양 지도에서 중국은 유럽,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여러 지역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거든요.
그래서 나온 것이 「천하도」입니다. 실제 땅 모양과는 하나도 닮지 않은데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지명들까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지도는 조선 후기 선비들이 가장 널리 이용한 세계 지도였습니다. 왜 이런 지도가 만들어진 걸까요? 그 무렵 조선 선비들은 밀려오는 서양 문물로부터 우리만의 세계관을 세우고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비록 정확성에서는 빵점이지만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세계를 담은 「천하도」가 탄생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전도는 어떻게 발달해 왔을까?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한반도의 땅 모양은 하루아침에 알려진 것이 아닙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조금씩 지리 정보를 축적하고 그것을 종합한 다음에야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전국 지도가 발달하는 과정을 보면 국가의 통치력이 발달한 곳부터 자세하게 표현되고 두만강과 압록강 유역같이 통치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나중에야 제대로 모양이 갖추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전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이전에 거의 실재에 가까운 모습을 표현하게 됩니다. 정확한 측량 기술 없이 오직 걸음걸이로만 거리를 측정하던 시대에 이 정도로 정확하게 국토의 모습을 표현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위대한 지리학자 김정호의 꿈,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는 우리나라에서 지도와 지리지를 가장 많이 펴낸 사람이었습니다. 『대동여지도』만큼 큰 전국 지도를 무려 10점이나 만들고 보급용 중형 낱장 지도도 최소 5점을 만들었지요. 거기에 지도 편찬의 바탕이 되는 지리지도 5종 70권을 편찬했답니다. 그야말로 평생을 지도와 지리지 제작에 바친 지리학자이자 지도 제작자였습니다.
김정호는 이미 최고의 지도를 만든 후에도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내용을 고치고 형식을 수정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대동여지도』는 전통 옛 지도 가운데 가장 정확하고, 아름다우며, 이용하기에도 편리한 전국 지도가 되었답니다.
누구나 하나쯤 갖고 싶어 하는 「도성도」
조선 시대에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에서도 양반이라면 누구나 서울 지도, 「도성도」를 하나쯤 가지려 했습니다. 서울이 나라의 정치, 문화 중심지인데다 양반들은 과거 시험 때문에 평생에
한 번은 서울로 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울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바로 임금이 사는 ‘하늘의 도시’였습니다.
서울은 처음 도읍을 정할 때부터 ‘하늘이 임금에게 나라를 다스릴 권한을 내려 주었다.’는 의미를 담기 위해 계획적으로 조성된 도시였습니다. 이런 의미를 「도성도」 역시 잘 담고 있었습니다. 지도를 보면 맨 북쪽에 북악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아래 경복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동, 서, 남쪽에도 산이 있어 서울을 감싸고 있습니다. 이 산들은 단순히 지형으로서의 산이 아닌, 하늘의 뜻이 전달되는 생명의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힘차게 뻗은 산줄기의 모습이 유난히 강조되어 있지요.
서울을 닮으려는 지방 도시들
조선은 전국 330여개 고을에 수령을 파견해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임금은 궁궐에 앉아서도 나라 곳곳의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어야 했기에 전국에 파견한 관리에게 그 고을의 지도를 그려 올리게 했습니다. 그 중 「낙안군 지도」를 보면 재미있는 점이 발견됩니다. 바로 도시의 형세가 서울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낙안군은 서울을 본 따서 만든 도시였습니다. 수령은 임금을 대신하는 사람이었고, 수령이 파견된 고을은 서울과 마찬가지로 임금의 권위가 표현된 ‘하늘의 도시’라야 했습니다. 다른 고을 지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로 자기 고을이 서울과 비슷한 모습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고을 주변의 산을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꿈틀 힘차게 표현했답니다.
<우리 옛 지도’ 더 알아보기>
옛 지도에 대한 오해(?)와 진실!
김정호는 정말 전국을 답사하며 『대동여지도』를 만들었을까?
: 지도를 그릴 때 직접 가 보아야 한다면 아무도 정확한 지도를 그리지 못할 거예요. 설사 가 본다 한들 지도를 그릴 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답니다. 김정호 같은 지도 제작의 전문가들은 지도에 표시할 곳에 관한 정확한 위치 정보만 있으면 지도를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정호는 책상에 수많은 지도와 지리지 등 자료를 쌓아 놓고 『대동여지도』를 만들었습니다. 책상 위에서 전국 고을 곳곳을 다 들여다보는 지도 제작자의 능력이 참 대단하지요?
옛 지도는 현대 지도에 비해 정확하지 않아서 가치가 낮다?!
: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정확한 지도만이 꼭 좋은 걸까요? 지금도 간단한 약도나 관광용 그림 지도를 보면 지역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보다는 중요한 부분을 강조해서 편리하게 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옛 지도 역시 그리는 사람이 공간을 이해하는 대로 표현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작게 그리거나 빼버렸습니다. 그래서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부정확한 지도’로 보일 수 있는 것이지요.
크고 화려할수록 좋은 지도일까?
: 정상기의 「동국지도」는 펼쳤을 때 남북으로 2.5미터였습니다. 그리고 『대동여지도』는 6미터가 넘었지요. 이런 지도는 딱 한 군데, 경복궁의 근정전 같은 곳에만 걸어 놓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일반인들은 도저히 한 번에 펴서 볼 수 없는 지도였지요. 그리고 내용이 복잡하고 채색이 화려한 지도일수록 아름답기는 하지만 베껴 그리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퍼져나갈 수 없었지요. 김정호 같은 최고의 지도 제작자도 이러한 점이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용하기 편리하고 널리 퍼트릴 수 있는 지도를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답니다. 그 결과 조선 지도학의 금자탑인 『대동여지도』 목판본 22첩이 탄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