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 연구의 시각과 방법 (노태돈 교수 정년기념논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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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노태돈 교수 정년기념논총 간행위원회
-1권-
서의식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동이 연구의 맥락과 과제」
문창로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한국 고대 건국 신화의 이해 방향」
홍승우 강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강사
「한국 고대 국가와 율령律令」
고미야 히데타카(小宮秀陵) 계명대학교 일본학과 초빙교수
「조공·책봉을 둘러싼 논의와 고대 대외관계사 연구: 견당사(遣唐使)의 시대를 중심으로」
송호정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청동기시대 초기 고조선의 중심지 문제를 둘러싼 최근 연구 동향」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유적학과 교수
「고구려 왕릉 연구의 어제와 오늘」
김영관 제주대학교 사학과 교수
「의자왕과 백제 멸망에 대한 새로운 시각」
송기호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발해사 연구의 길」
윤재운 대구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발해 도성 연구의 현황과 과제」
기경량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강사
「한국사에서 민족의 개념과 형성 시기」
김창석 강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공동체론」
김재홍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고대 개발론」
홍기승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수장제론(首長制論)의 기초적 이해」
박남수 국사편찬위원회 연구편찬정보화실장
「한국 고대의 교역사 연구에 있어서 개념의 문제」
오영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낙랑군 연구와 식민주의」
윤선태 동국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가야(加耶),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이재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강사
「신라사 연구에 있어서 ‘귀족’ 개념의 도입 과정」
김수태 충남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역사 연구 방법으로서의 유형화: 이기백의 사상사 연구를 중심으로」
이순근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일본 ‘동아시아’ 용어의 함의」
이성시(李成市) 와세다대학교 문학학술원 교수
「고대사 연구와 현대성: 고대의 ‘귀화인’, ‘도래인’ 문제를 중심으로」
(古代史硏究と現代性: 古代の‘歸化人’‘渡來人’問題を中心に)
박성현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역사 지리에서 공간 구조로」
여호규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국 고대 공간사 연구의 가능성 모색」
강봉룡 목포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국 고대사에서 바닷길과 섬」
김영심 가천대학교 글로벌교양대학 교수
「한국 고대 여성사 연구 현황과 연구의 진전을 위한 제언」
권오영 한신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한국 고대사 연구를 위한 베트남 자료의 활용」
조법종 우석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고조선 및 시조 인식의 계승 관계」
리차드 맥브라이드(Richard D. McBride II) 브리검영대학교-하와이 역사학과 교수
「고구려 불교의 의례와 수행에 관한 고찰(考察)」
(Imagining Ritual and Cultic Practice in Kogury Buddhism)
고경석 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 연구원
「신라시대 인간관계 양상의 변화와 청해진(淸海鎭)」
권덕영 부산외국어대학교 역사관광학과 교수
「중국 산시성 시안의 일본승 구카이(空海) 기념물」
-2권-
나희라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설화와 의례의 해석과 역사 읽기」
이강래 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
「고구려 멸망론의 설화적 파생」
이상훈 경북대학교 역사교육과 강사
「검모잠의 최초 거병지 검토」
전덕재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삼국사기』 신라본기 초기 기록의 원전原典과 활용」
이노우에 나오키(井上直樹) 교토부립대학교 문학부 역사학과 교수
「6세기 후반 신라의 대외 관계와 대왜(對倭) 교섭」
(6世紀後半の新羅の?外?係と?倭外交)
정병삼 숙명여자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구법승과 신라 불교」
남동신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혜초(慧超)와 『왕오천축국전』의 연구」
신동하 동덕여자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해동고승전』-사료의 활용 현황」
마크 바잉턴(Mark E. Byington)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상임연구원
「기원전 45년의 낙랑군 호구부와 패수의 위치 비정」
(The Lelang Census of 45 BC and the Identification of the P’ae River)
임기환 서울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광개토왕비의 건립 과정 및 비문 구성에 대한 재검토」
조나단 베스트(Jonathan W. Best) 웨즐리언대학교 미술 및 미술사학과 명예교수
「왕자 복호(卜好)와 「광개토왕릉비」 명문(銘文): 초기 고구려-신라 관계에 대한 약간의 해석」
(Prince Pokho and the Kwanggaet’o Stele Inscription: A Small Elucidation of Early Kogury-Silla Relations)
김수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강사
「당으로 이주한 고구려 포로와 지배층에 대한 문헌과 묘지명의 기록」
윤용구 인천도시공사 문화재 담당
「『진서』 동이(東夷) 조공 기사(朝貢記事)의 재검토」
강종훈 대구가톨릭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양직공도의 사료적 가치와 독법」
주보돈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백제사 관련 신출토(新出土) 자료의 음미」
이문기 경북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여신라왕김중희서(與新羅王金重熙書)」로 본 헌덕왕의 즉위 사정」
강현숙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환런 왕장러우(望江樓) 적석총으로 본 주몽설화」
강진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강사
「평양도읍기 고구려 왕릉의 선정과 묘주(墓主) 비정」
조영현 대동문화재연구원 원장
「지안(集安) 장군총의 분구에 관한 몇 가지 검토」
박찬규·정경일 연변대학교 역사학부 교수·연변대학교 역사학부 강사
「새롭게 발굴된 호남리 18호 벽화무덤에 대하여」
전호태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고구려 유적·유물로 본 한국 문화의 원형」
최종택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5~6세기 고구려 남진 경영의 고고학적 증거」
이한상 대전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발굴에서 해석까지: 정지산 유적의 사례」
이병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6세기 백제 기와를 보는 시각」
김세기 대구한의대학교 관광레저학과 교수
「가야 제국(諸國)의 존재 형태와 부산 연산동 고분군의 정치적 성격: 묘제와 출토 유물을 중 심으로」
김복순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국사학과 교수
「신라 왕릉과 경주 괘릉(掛陵)」
정영진 연변대학교 발해사연구소 교수
「부거리 동경용원부설에 대한 재검토」
김종일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독일 바이에른 지역 신석기 말기 벨 비이커 문화의 어린이 무덤과 사회적 정체성」
l 정년기념논총 간행위원회 l (가나다순)
위원장
신동하(동덕여대)
간행위원
강봉룡(목포대), 강종훈(대구가톨릭대), 고경석(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 권오영(한신대),
김기흥(건국대), 김영심(가천대), 김영하(성균관대), 김재홍(국민대), 김종일(서울대),
김창석(강원대), 김태식(홍익대), 나희라(경남과학기술대), 남동신(서울대), 서영대(인하대),
서의식(서울대), 송기호(서울대), 송호정(한국교원대), 여호규(한국외국어대), 오영찬(이화여대),
윤선태(동국대), 이우태(서울시립대), 이한상(대전대), 임기환(서울교대), 전덕재(단국대),
전호태(울산대), 주보돈(경북대), 하일식(연세대)
책정보 및 내용요약
우리나라 고대사 연구의 궁극적인 과제는 사료의 한계를 극복해서 역사의 참모습에 다가가는 데 있을 것이다. 사료의 한계는 상고(上古)로 올라갈수록 심각해, 한국 고대사 연구자들은 고조선에서 삼한에 이르는 역사 전개의 대강만이라도 알기 위해 고고 발굴의 성과에 주목하고 인접 학문의 일반론적 가설을 원용해서 사료를 재해석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고대사 연구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문헌 고증을 넘어 다양한 방법론을 활용한 연구가 활성화되었고, 금석문과 목간 등 새로운 문자 자료의 발견으로 연구 내용이 심화되고 주제도 다변화되어 고대사 이해의 폭을 넓혔으며, 어느 정도 체계적인 인식도 가능해졌다. 또한 최근 학계 차원에서 지난 수십 년간의 연구 성과에 대한 정리와 평가가 다양하게 이루어짐으로써 한국 고대사 연구의 성과를 되돌아보고 향후 과제를 전망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한국 고대사 연구에 평생을 바치고, 고조선과 고구려 등 고대사의 대표 학자로 학계를 이끌어오고 수많은 후학들을 양성해낸 서울대 국사학과 노태돈 교수의 정년을 기념해 지난 반세기 한국 고대사 연구 성과를 총결산하고 있다. 또 그동안 집적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법론을 부단히 개발해 연구의 지평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한 국내외 58명의 고대사 연구자가 기존의 문헌 사료와 고고 자료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새로운 자료를 발굴해서 연구 내용을 더욱 심화시켜 한국 고대사상을 다채롭게 구축해냈다. 한국 고대사 연구의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기 위해 펴낸 이 책을 통해 지금의 한국 고대사 연구 과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하고, 보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한국 고대사 인식체계를 정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국 고대사를 다각적으로 조명해, 고대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한국 고대사 연구의 흐름과 방법론’을 다룬 1권에서는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이슈가 되었던 주제와 이론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동이의 실체, 조공-책봉 관계의 실상, 고조선 중심지 문제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소개했으며, 민족의 개념과 형성 시기, 공동체론, 수장제론, 고대 개발론, 공간사론 등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널리 사용된 이론을 새로운 시각에서 검토하거나 새로운 이론에 기초해 연구의 지평을 확장할 것을 제안한 논고들을 실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한국 고대사에서 널리 사용된 용어나 개념, 이론에 대한 이해를 한층 심화할 뿐만 아니라, 향후 한국 고대사에 대한 시각을 다양화하고 연구의 새로운 경향을 예측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한국 고대사 관련 자료의 재해석과 활용’을 다룬 2권에서는 한국 고대사 연구의 기본 사료인 문헌 자료, 금석문과 목간을 비롯한 새로운 문자 자료, 고고 미술 자료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연구 경향을 다루었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 『왕오천축국전』, 광개토왕릉비, 낙랑과 백제 목간 등을 새롭게 해석한 연구들을 소개했으며, 고구려 왕릉과 고분벽화, 백제와 가야, 발해의 유물·유적을 활용한 연구들을 실었다.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문헌과 문자 자료에 대한 최근의 새로운 연구 경향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고학자들이 물질 자료를 기초로 어떠한 과정과 방법을 통해 구체적인 역사상(歷史像)을 구축하는가를 생생하게 살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1부 연구의 흐름과 과제
동이 연구의 맥락과 과제 _ 서의식
한국 고대 건국 신화의 이해 방향 _ 문창로
한국 고대 국가와 율령(律令) _ 홍승우
조공 책봉을 둘러싼 논의와 고대 대외관계사 연구: 견당사(遣唐使)의 시대를 중심으로 _ 고미야 히데타카
청동기시대 초기 고조선의 중심지 문제를 둘러싼 최근 연구 동향 _ 송호정
고구려 왕릉 연구의 어제와 오늘 _ 이도학
의자왕과 백제 멸망에 대한 새로운 시각 _ 김영관
발해사 연구의 길 _ 송기호
발해 도성 연구의 현황과 과제 _ 윤재운
2부 개념과 이론
한국사에서 민족의 개념과 형성 시기 _ 기경량
공동체론 _ 김창석
고대 개발론 _ 김재홍
수장제론(首長制論)의 기초적 이해 _ 홍기승
한국 고대의 교역사 연구에 있어서 개념의 문제 _ 박남수
낙랑군 연구와 식민주의 _ 오영찬
가야(加耶),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_ 윤선태
신라사 연구에 있어서 ‘귀족’ 개념의 도입 과정 _ 이재환
역사 연구 방법으로서의 유형화: 이기백의 사상사 연구를 중심으로 _ 김수태
일본 ‘동아시아’ 용어의 함의 _ 이순근
3부 새로운 주제의 모색
고대사 연구와 현대성: 고대의 ‘귀화인’, ‘도래인’ 문제를 중심으로 _ 이성시
역사 지리에서 공간 구조로 _ 박성현
한국 고대 공간사 연구의 가능성 모색 _ 여호규
한국 고대사에서 바닷길과 섬 _ 강봉룡
한국 고대 여성사 연구 현황과 연구의 진전을 위한 제언 _ 김영심
한국 고대사 연구를 위한 베트남 자료의 활용 _ 권오영
고조선 및 시조 인식의 계승 관계 _ 조법종
고구려 불교의 의례와 수행에 관한 고찰(考察) _ 리차드 맥브라이드
신라시대 인간관계 양상의 변화와 청해진(淸海鎭) _ 고경석
중국 산시성 시안의 일본승 구카이(空海) 기념물 _ 권덕영
노태돈 교수 약력 및 연구 논저
필자 간행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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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추천글
주요 내용
-1권-
동이 연구의 맥락과 과제_서의식
우리 민족의 기원과 형성을 밝히기 위해 반드시 검토해야 하는 ‘동이(東夷)’에 관한 연구는 여러 견해가 뒤섞여 그 실상을 가늠하기 어려운 과제 중 하나다. 민족의 이동과 함께 이루어진 일이라고 여기는 ‘이동설’이 오랫동안 학계의 이해를 얻어 왔으나, 최근에는 이동설을 부인하는 추세가 뚜렷해지면서 선진(先秦) 문헌에 보이는 동이는 중국 민족의 한 갈래로서 한(漢) 대 이후의 사서에 나오는 동이와 서로 연관성이 없는 전연 별개의 존재라는 인식이 생겼으며, 학계의 이런 동향과는 무관하게 민간에서는 동이 전반을 우리 민족과 결부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확산되어 있었고, 이와는 반대로 오히려 한반도 북부에 살던 고조선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 산둥반도와 보하이만(渤海灣) 해안, 랴오둥반도 등지로 진출한 것이었다는 견해도 제시되었다. 이처럼 우리나라 고대사를 이해하는 출발점이자 방향타라고 할 동이에 대한 인식은 그 기본이 오리무중의 난맥 속에 빠져 있는 셈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동이를 둘러싸고 제시된 여러 견해의 분기점이 무엇인지 살피고, 그 내면에 깔린 발상과 그것이 가진 문제점을 점검한 다음, 향후의 이해 방향을 가늠함으로써 한국 고대사 이해체계의 벼리에 해당하는 중요 과제인 동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조공 책봉을 둘러싼 논의와 고대 대외관계사 연구: 견당사(遣唐使)의 시대를 중심으로_고미야 히데타카
조공책봉관계론(朝貢冊封關係論)은 전근대 한반도의 외교에 관한 논의로, 공물(貢物)의 헌상이라는 ‘조공(朝貢)’ 행위와 중국 황제가 한반도에 있는 왕에게 작위를 수여한다는 ‘책봉(冊封)’ 행위가 결합한 것이다. 이것이 전근대 한반도의 대(對)중국 외교를 관통하는 특징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는 한일 양국의 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국사의 입장을 활용한 국제관계론(대외관계사)이었다. 그러나 조공체제론이나 조공책봉관계론은 대외관계사적인 측면에서 한일 양국 연구자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일 양국 고대 대외관계사의 기저에는 조공과 책봉이 존재했기 때문에 적극적인 비판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아직 고대사 연구에서는 이러한 논의들이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측면에 주목해 전후의 한일 학계가 고대의 조공책봉관계론을 바라보는 시각을 비교 검토함으로써 그 안에서 정합성(整合性)을 찾고자 한다.
청동기시대 초기 고조선의 중심지 문제를 둘러싼 최근 연구 동향_송호정
고조선은 청동기 사회의 발전을 바탕으로 철기를 비롯한 금속 문화가 보급되면서 농업 생산력이 한층 발전하고, 그로 인한 사회적 분화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국가를 형성한다. 따라서 고조선사를 정리할 경우 시간적으로는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고조선을 구분해서 서술하는 것이 중요하고, 공간적으로는 고조선 주민 집단의 활동 무대였던 중국 동북 지방과 한반도 북부의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 고고학 자료를 주 대상으로 다루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고조선사의 공간 문제와 관련해 그 중심지와 경계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남만주 지역의 비파형동검 문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랴오시(遼西) 지역의 비파형동검 문화인 쓰얼타이잉즈문화(十二台營子文化)를 초기 고조선의 문화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현재까지의 고고 자료 출토 상황을 고려하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글은 최근 고고학계에서 많이 논의되는 쓰얼타이잉즈문화가 초기 고조선의 문화라는 주장의 문제점을 짚어 보고, 연구자들 간에 합일된 견해를 마련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한국사에서 민족의 개념과 형성 시기_기경량
‘민족(民族)’이라는 용어만큼 널리 쓰이면서도 또 위태로운 용어는 없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민족’의 개념을 범주화해 정의 내리기 힘들다고 하는데, 이는 ‘민족’의 사례와 용도가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민족은 원래 영어 네이션(nation)의 번역어인데, 네이션의 일반적인 한국어 번역은 ‘민족’뿐 아니라 ‘국민’과 ‘국가’도 있다. 이중 국민과 국가는 상호 밀접한 연관성이 있으므로 한데 엮는다 치더라도 민족과 국민은 대단히 큰 의미 차이가 있다. 단적으로 말해 네이션은 민족이 아니다. 민족의 의미와 국민의 의미가 결합되어 있는 네이션이라는 단어에 정확하게 상응하는 한국어는 없다.
한편 한국사에서 민족은 전근대부터 이미 존재했다. 하지만 민족은 생각만큼 단단한 실체는 아니며, 일정한 생물학적 기준의 편차 안에만 들어온다면 귀속의식이라는 관념에 크게 의존하는 존재다. 따라서 민족의 형성 시기를 구명하는 작업은 그러한 자의식이 역사적으로 언제 만들어졌는지를 살피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와 같은 역사적 용어로서의 민족·국민·네이션 개념에 대해 정리한 뒤, 정리된 민족 개념을 한국사에 적용했을 때 그 형성 시기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에 대해 검토함으로써 민족에 대한 더 정확하고 심도 있는 이해를 추구한다.
공동체론_김창석
공동체는 한국 고대 사회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친족’공동체?‘읍락’공동체?‘촌락’공동체 등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저마다 고대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 단위 집단으로 이들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통해 고대 사회의 변화를 이해하고자 했다. 그런데 공동체는 고대 사회뿐 아니라 고려와 조선 시기에 향도공동체, 향촌공동체 등이 존재했으며, 한민족공동체?유럽경제공동체라고 해서 현대의 남북한, 나아가 국제 관계 분야에도 사용되어 인류공동체까지 나올 지경이다.
공동체가 이처럼 남발된 이유는 그 개념이 모호한 데서 비롯한 것으로, 이러한 틀을 가지고는 공동체의 내포와 외연을 분명히 규정하기가 어렵다.
이 글에서는 한국 고대사 연구의 유력한 도구이자 방법론이었던 공동체론이 한국사 연구에 수용되어 논의되어 온 양상과 문제점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고대사 연구에서 공동체를 거론할 때 유의할 점을 짚어 본다. 이를 통해 공동체론이 보다 풍부하고 정교해져, 자료를 해석하는 데 다시 활용됨으로써 생동하는 역사상을 재구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고대 개발론_김재홍
한국 고대 사회의 성격은 생산 양식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생산 양식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역사적 결합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고대 사회에서 농업은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 자체이자 국가 산업의 토대였다. 따라서 노동력?노동 수단?노동 대상의 세 가지 구성 요소가 어우러진 농업 생산력의 발전은 고대 사회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동인이었다.
이 글은 이 같은 한국 고대의 농업 생산력을 해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대 개발론의 시각에서 미개간지인 자연을 경지로 전환하는 고대인들의 생산 활동을 검토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노동 수단인 철제 농구를 실증적으로 검토해 각 시기의 주도적인 농구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농구 개발을 주도한 인간의 역할과 공동체의 구조에 대한 이해도 모색한다.
이와 같이 한국 고대사를 개발의 과정으로 볼 경우 철제 농구, 계층 분화, 촌락의 여러 사회적인 요소를 유기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수장제론(首長制論)의 기초적 이해_홍기승
한국 고대 지방 사회의 모습을 보여줄 만한 자료는 매우 부족하다. 그런 까닭에 우리보다 자료가 풍부하게 남아 있고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가 진전된 일본 고대사의 연구 동향을 살펴보는 작업이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일본 고대사의 여러 성과 가운데 ‘수장제론(首長制論)’은 고대 일본의 지방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관점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한국 고대사의 입장에서 수장제론을 정리하거나 활용한 연구는 찾을 수 없다. 도식적인 대입이나 맹목적인 추종은 금물이겠지만, 새로운 관점에서 한국 고대사를 돌아보는 작업은 그동안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을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글은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수장제론의 기초적 이해를 시도해 본 것으로, 수장제론의 기폭제가 된 이시모다 쇼(石母田正)의 논의를 정리하고, 이후 제기된 여러 견해를 소개한다. 또한 수장제론의 시각에서 한국 고대의 지방 사회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시론적인 차원에서 검토한다.
한국 고대 공간사 연구의 가능성 모색_여호규
인간은 공간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삶을 영위해 왔다. 공간은 시간과 더불어 인류 역사의 근본 조건을 이루는 것이다. 인간은 처음에는 자연 공간 속에서 천연 식량 자원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했지만 농경과 정착 생활을 하면서 인공 공간을 생산하고, 도시의 발달이나 국가 형성과 더불어 공간은 더욱 거대하고 복합적인 양상을 띠며 인간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곧 공간은 단순히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 전개와 더불어 끊임없이 재생산된 사회적 산물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각 시기의 공간 조직은 해당 시기의 사회관계나 정치체제를 형성하는 배경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한국 고대 사회를 구성하던 여러 장소를 다각도로 분석한다면, 한국 고대사의 다양한 면모를 보다 다채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고대 도성이나 국가 전체의 공간 구조를 새롭게 고찰할 실마리를 확보함으로써 한국 고대 공간사 연구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본문 속으로
-1권-
동이에 관한 논의에서 선진시대의 동이와 한(漢) 대 이후의 동이가 같은 계통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문제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신석기시대부터 중국 동부 지역에 거주하던 제 민족의 분포와 이들이 형성한 사회관계의 구조와 변화, 추이를 전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것이 밝혀지면 우리는 물론이고 중국 고대사도 그 진면목을 드러낼 것이다. _ ‘동이 연구의 맥락과 과제’ 30쪽
건국 신화는 누가,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건국했고, 그 나라를 세운 행위가 얼마나 정당한지를 알리려는 신화이기 때문에, 건국의 주인공이 가장 중요한 존재로 부각된다. 한국 고대의 건국 신화 역시 시조황의 신성한 탄생에서 건국의 기원을 찾았다. _ ‘한국 고대 건국 신화의 이해 방향’ 45쪽
삼국의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설명할 때, 율령제 내지는 율령 국가의 개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율령은 죄와 벌을 규정한 현재의 형법에 해당하는 ‘율(律)’과, 사회와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각종 제도 등을 규정한 비형법적인 ‘영(令)’을 결합한 용어로 원래는 ‘법률제도’를 의미하는 일반 명사라 할 수 있다. _ ‘한국 고대 국가와 율령’ 69~70쪽
한국에서는 조공 책봉 관계가 한국사에 내면화되어 있어, 그 내실을 비판하는 연구가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1997년부터 시작된 동북공정에 의해 고구려사, 발해사가 중국사의 일부로 전개되었던 정치적 영향이 크게 반영되어 있다. 동북공정은 조공 책봉 관계에서 나타난 지배와 종속의 관계를 보다 광범위하게 넓히고, 고구려나 발해를 퉁구스 계통 민족의 한 지방 정권에 불과하다고 하며 중국사에 편입하려고 했다. 국사의 쟁탈로서의 동북공정은 한국 고대사에서 조공 책봉 관계의 ‘신속화(臣屬化)’의 실체를 검토하고, ‘동아시아’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을 야기했다. _ ‘조공?책봉을 둘러싼 논의와 고대 대외관계사 연구’ 102쪽
현재 중국에서 동북삼성(東北三省)이라고 부르고, 우리는 만주(滿洲)라고 일컫는 곳 가운데 하나인 지린성(吉林省) 지안시(集安市)의 퉁거우(通溝) 평원에는 높다란 비석 하나가 우뚝 서 있다. 만고풍상을 겪으면서 풍운의 만주 대륙 역사의 부침을 묵묵히 지켜보았던 이 비석은 고구려 도성인 국내성의 동쪽, 국강(國岡)이라는 언덕 위에 자리 잡았다. _ ‘고구려 왕릉 연구의 어제와 오늘’ 130쪽
낙화암과 더불어 3000궁녀가 등장하는 최초의 기록은 조선 초기 김흔(金?)이 지은 시 「낙화암(落花巖)」과 성종과 명종 대의 문신인 민제인(閔齊仁)이 지은 「백마강부(白馬江賦)」다. 「백마강부」는 낙화암 아래 절벽에 세운 고란사에 목판으로 새겨져 오래전부터 걸려 있었다. 그리고 고란사 극락보전 남쪽 벽에는 3000궁녀가 나당연합군에 쫓겨 강으로 몸을 던지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백제 멸망과 의자왕을 비난하는 얘기를 할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 벽화다. 이 벽화를 보고는 마치 의자왕과 3000궁녀 얘기가 역사적 사실인 양 이야기한다.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 벽화가 언제 그려졌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벽화를 조성하면서 남긴 기록에는 1983년 3월 송은(松隱) 유병팔(庾炳八)이 그린 것이라고 적혀 있다. 불과 30년 전에 그린 것이다. 고란사 벽화는 『삼국유사』의 낙화암 전설을 토대로 창작된 것으로 그렇게 유래가 오래된 것이 아닌데, 역사적 진실을 증명하는 자료로 쓰이고 있다. 과연 역사적 사실은 그럴까? _ ‘의자왕과 백제 멸망에 대한 새로운 시각’ 153~154쪽
발해는 천손(天孫)의식을 가진 동북아시아의 패자로서 천하에 그 위엄을 드러낼 수 있는 도성을 만들고자 했다. 때문에 고구려의 도성과 수당의 도성을 연구하고, 일본의 도성도 참고해 도성 계획을 수립했다. 발해가 상경성의 전체 구도와 구획에서 수당의 장안성을 참고한 것은 황제국의 위상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고, 궁전의 배치를 고구려의 안학궁과 같이 한 것은 천손으로서의 고구려 계승의식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_ ‘발해 도성 연구의 현황과 과제’ 212쪽
이시모다는 마르크스(Marx)가 제시한 아시아적 생산 양식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를 일본 고대 사회의 기초 단위로 파악했다. 이시다모가 수용한 아시아적 공동체 개념은 마르크스가 일찍이 『자본제 생산에 선행하는 제(諸) 형태』에서 제시한 것이었다. 여기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등장하기 전 공동체의 토지 소유 형태는 아시아형, 그리스-로마의 고전고대(古典古代)형, 게르만형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가운데 아시아형은 토지사유제가 발달하지 못하고 촌락공동체가 토지의 소유권을 갖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아시아적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바로 수장이었다. _ ‘수장제론(首長制論)의 기초적 이해’ 296쪽
문헌사를 중심으로 한 한사군의 역사지리 연구가 다수 이루어지는 것과 별개로, 1910년대 이후 고대사 체계에서 한사군의 존재는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를 낙랑군(대방군을 포함해)이 대체하면서 시대 구분에서 ‘낙랑군 시대’가 별도로 설정된다. 낙랑군과 대방군이 갑자기 부각되는 배경으로 우리는 1909년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진 소위 ‘고적조사(古蹟調査)’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평양 일대의 고분 발굴 자료와 명문 자료의 증가에 따라 고고학 분야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러한 성과는 낙랑군과 대방군에 대한 지식과 정보뿐 아니라 성격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_ ‘낙랑군 연구와 식민주의’ 353~354쪽
가야를 후진적이며 열등한 존재로 설명하는 시각의 지속성과 그 힘을 보면서, 필자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 떠올랐다. 필자가 여기서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정의했던, “동양을 서양과는 다른 후진적이며 수동적인 성향을 지닌, 그래서 서양에 의해 지배되고 교정되어야 할 열등한 타자로 바라보는” 의식을 말한다. 가야를 삼국보다 못한 열등한 존재로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속에서 ‘오리엔탈리즘’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야를 삼국보다 ‘못한’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버린 기준이 오랫동안 무너지지 않고 지속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_ ‘가야(加耶),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368쪽
베트남과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 유교와 불교, 쌀농사를 기초로 한 경제 형태, 문화적 전통, 중국과의 교섭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고대에는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한 사회 발전 과정, 중국 문명의 영향, 진·한 제국의 침입, 중국계 주민의 이주와 국가 건설, 한 무제(武帝)에 의한 군현의 설치와 이에 대한 저항, 육조 문화의 영향, 수·당 제국과의 항쟁 등 매우 많은 비교 대상을 공유하고 있다. 지중해에서 인도를 경유해 이어지던 바닷길은 베트남을 거쳐 중국 남부에서 멈추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한반도를 경유해 일본 열도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미 고대에 베트남과 한반도는 바닷길을 통해 연결되어 있었던 셈이다. _ ‘한국 고대사 연구를 위한 베트남 자료의 활용’ 5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