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옛 성 - 1938 (평화그림책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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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차이까오
옮긴이 : 전수정
그린이 : 아오쯔
책정보 및 내용요약
중일전쟁 중이던 1938년, 중국 후난 성 창사에 큰 불이 났습니다. ‘창사 대화재’(‘장사대화長沙大火’ 또는 ‘문석대화文夕大火’라고도 합니다)라 불리는 이 사건으로, 춘추시대 이후 3천년 역사가 켜켜이 쌓인 이 도시의 대부분이 불타 버리고 3만 이상의 인명이 희생되었습니다. 화재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사건이 전쟁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그림책은 그 비극이 이 도시의 모습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대화재에서 살아남은 아이의 시선을 통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이 도시는 오래된 성벽 위로 맑은 하늘 높이 연을 날리던 유년 시절이었고, 옛이야기 도란대던 골목들이었으며, 재미난 내력담이 가득한 유서 깊은 거리였습니다. 배와 사람이 끊임없이 오가며 흥청거리는 부둣가였고, 날마다 등하굣길에 지나다니던 화강암 깔린 거리였으며, 각양각색의 가게들과 사람들을 마주쳤던 한 권의 이야기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암울한 기운이 몰려오면서 이 도시는 항전구국을 외치는 격문과 벽보의 거리가 되었고, 전선에 나간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애태움의 골목이 되었으며, 피난민과 부상병이 몰려들고 시도 때도 없이 폭탄이 떨어지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한밤중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울부짖고 고함치고 저주하는 소리와, 집들이 불에 타는 요란한 소리가 뒤섞인 채 구름 같은 연기로 피어오르는 불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거리가, 학교가, 집이, 옛 성 전체가…….
그리고 길고 긴 세월이 흐른 뒤, 그 엄청난 참사에서 살아남은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어, 비극의 시종을 그 자신이 화자인 한 편의 유장한 서사시로 이 그림책 속에 펼쳐놓고 있습니다.
편집자 추천글
한중일 공동기획 평화그림책은
어린이들이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한중일 세 나라의 작가들과 출판사들이 함께 만드는 그림책 시리즈입니다.
한중일 세 나라는 가까운 이웃 나라들이지만 서로 동등하고 평화롭게 지내 오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근대에는 힘을 앞세운 제국주의 세력의 욕심 때문에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괴롭히는 불행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 나라 사람들이, 나아가 온 세계 사람들이 평화로이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그림책 시리즈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난날을 정직하게 기록하고, 오늘의 아픔을 서로 나누며, 평화로운 내일로 함께 나아갈 것을 목표로 서로 의논하고 격려하면서 한 권 한 권 정성껏 만들고 있습니다.
2005년 10월, 다시마 세이조, 다바타 세이이치 등 일본 원로 그림책 작가 4명의 발의로 시작, 2007년 난징에서의 기획회의를 기점으로 본격 진행되어 7년이 지난 지금 6번째 그림책을 펴내게 되었습니다.
불타 버린 천년 옛 성에 바치는 비극의 서사시
중일전쟁 중이던 1938년, 중국 후난 성 창사에 큰 불이 났습니다. ‘창사 대화재’(‘장사대화長沙大火’ 또는 ‘문석대화文夕大火’라고도 합니다)라 불리는 이 사건으로, 춘추시대 이후 3천년 역사가 켜켜이 쌓인 이 도시의 대부분이 불타 버리고 3만 이상의 인명이 희생되었습니다. 화재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사건이 전쟁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그림책은 그 비극이 이 도시의 모습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대화재에서 살아남은 아이의 시선을 통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이 도시는 오래된 성벽 위로 맑은 하늘 높이 연을 날리던 유년 시절이었고, 옛이야기 도란대던 골목들이었으며, 재미난 내력담이 가득한 유서 깊은 거리였습니다. 배와 사람이 끊임없이 오가며 흥청거리는 부둣가였고, 날마다 등하굣길에 지나다니던 화강암 깔린 거리였으며, 각양각색의 가게들과 사람들을 마주쳤던 한 권의 이야기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암울한 기운이 몰려오면서 이 도시는 항전구국을 외치는 격문과 벽보의 거리가 되었고, 전선에 나간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애태움의 골목이 되었으며, 피난민과 부상병이 몰려들고 시도 때도 없이 폭탄이 떨어지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한밤중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울부짖고 고함치고 저주하는 소리와, 집들이 불에 타는 요란한 소리가 뒤섞인 채 구름 같은 연기로 피어오르는 불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거리가, 학교가, 집이, 옛 성 전체가…….
그리고 길고 긴 세월이 흐른 뒤, 그 엄청난 참사에서 살아남은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어, 비극의 시종을 그 자신이 화자인 한 편의 유장한 서사시로 이 그림책 속에 펼쳐놓고 있습니다.
잿빛으로 되살린 옛 성의 기억들
대화재 8년 뒤인 1946년 창사에서 태어난 작가에게, 복구되지 못한, 아니 복구될 수 없는 옛 성의 모습은 평생토록 인간과 세계, 전쟁과 평화에 대한 질문과 사유를 재촉하는 커다란 화두였습니다. 또한 교사 출신 그림책 작가로서 어린이들에게 그 내력과 의미를 해명해야 할 하나의 과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2007년에 시작된 한중일 공동기획 평화그림책 프로젝트는 작가에게 그 과제를 실행할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가는 7년간의 작업 과정에서 치밀한 고증을 통해 되살린, 참사 이전의 소박하고도 아기자기한 옛 성의 평화와, 전쟁으로 그 평화가 부서져 가는 모습을, 전통적인 두루마리 책의 이미지 전개 방식과 사실적 화풍으로 재현해 보여줌으로써 그 과제를 풀었습니다.
그런데 그 표현은 시종일관 잿빛, 즉 회색의 음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담아 전하는 이야기가 암울한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인 까닭도 까닭이거니와, 작가에게 회색은 모든 색의 근본을 이루는, 존재의 색이요 기운의 색인 까닭입니다. 단 한 획의 선도 쓰지 않고 순전한 빛과 어둠, 그리고 그 경계의 윤곽으로만 표현한 인물과 배경, 하늘과 땅과 강, 불길과 연기 들은, 평화로운 일상과 전쟁의 참상 그 사이의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의 의미를 차분히 생각하게 합니다.
폐허 뒤에 남은 것
불길이 닷새 밤낮을 타오른 뒤, 천년 옛 성은 폐허로 남고 말았습니다. 높은 누각이 우뚝하던 오래된 성벽도, 옛이야기 도란대던 골목길도, 흥청거리던 부둣가도, 각색의 가게들과 사람들이 북적대던 거리도, 학교도, 집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시커멓게 그을린 뼈대만 앙상한 집 앞에서 엄마는 그저 망연할 뿐입니다. 그 엄마와 똑같은 처지의 이웃들, 불타 죽은 사람들, 그 앞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 모든 일상이 한순간에 멎어 버린 비극은 고스란히 인간의 몫일 뿐, 무심한 강물은 멈출 줄 모르고 세차게 흘러갑니다.
마지막 장면, 화자인 아이가 어린 동생의 어깨에 손을 얹고 황량한 폐허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오늘날 후난 성의 수도인 창사는 현대 중국의 고도성장을 상징하는, 마천루 즐비한 대도시가 되었습니다. 3천년 역사와 수많은 사람들을 삼켜버린 비극일랑은 잊힌 듯만 싶습니다. 그 도시의 아이들에게 작가는, 폐허 앞에 서 있는 아이의 생각에 대해 상상해 보기를 간절히 권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 권유가 우리나라 아이들의 마음에도, 일본 아이들의 마음에도, 온 세계 아이들의 마음에도 가 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