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쿠라 (평화그림책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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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다바타 세이이치
옮긴이 : 박종진
그린이 : 다바타 세이이치
책정보 및 내용요약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벚꽃 무리 떨어지는데, 제복 입은 소년 하나 부동자세로 서 있습니다. 바로 이 책을 만든 작가 다바타 세이이치의 어린 시절입니다. 표지가 말해 주듯 이 그림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편집자 추천글
한중일 공동기획 평화그림책은
어린이들이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한 중 일 세 나라의 작가들과 출판사들이 함께 만드는 그림책 시리즈입니다.
한 중 일 세 나라는 가까운 이웃 나라들이지만 서로 동등하고 평화롭게 지내 오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근대에는 힘을 앞세운 제국주의 세력의 욕심 때문에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괴롭히는 불행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 나라 사람들이, 나아가 온 세계 사람들이 평화로이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그림책 시리즈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난날을 정직하게 기록하고, 오늘의 아픔을 서로 나누며, 평화로운 내일로 함께 나아갈 것을 목표로 서로 의논하고 격려하면서 한 권 한 권 정성껏 만들고 있습니다.
2005년 10월, 다시마 세이조, 다바타 세이이치 등 일본 원로 그림책 작가 4명의 발의로 시작, 2007년 난징에서의 기획회의를 기점으로 본격 진행되어 7년이 지난 지금 7번째 그림책을 펴내게 되었습니다.
<사쿠라> 작품 소개
벚꽃과 사쿠라
봄마다 벚꽃이 만발합니다. 무수한 흰 꽃이 일제히 피어나 봄빛에 반짝이는 그 눈부신 풍경은, 춥고도 긴 겨울을 나느라 움츠러든 마음을 한껏 설레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벚꽃놀이를 즐깁니다. 낮이면 낮대로 밤이면 밤대로, 자연이 베푸는 아름다운 모양과 색깔의 향연에 몸과 마음을 맡깁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벚꽃은 우리에게, 좀체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없는 ‘불편한 꽃’이기도 합니다. 식물학의 여러 연구들이 대한민국 원산임을 밝히고 있음에도, 불행한 근대 역사의 경험은 우리 인식 속에서, 식민지배 세력에 의해 계획 식재된 ‘사쿠라’라는 벚꽃의 또 다른 이름을 지워내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까요.
이처럼 ‘사쿠라’는 단지 ‘벚꽃’을 뜻하는 일본어일 뿐이지만, 그 둘 사이에는 언어 이상의 커다란 간극이 존재합니다. 일본어가 ‘벚꽃’이라 말하는 그것을, 우리말이 그대로 받아 ‘벚꽃’이라 옮기기 어려운 것이지요. 이 책의 제목이 <사쿠라>인 까닭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평화 그림책 작가가 들려주는 군국 소년 이야기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벚꽃 무리 떨어지는데, 제복 입은 소년 하나 부동자세로 서 있습니다. 바로 이 책을 만든 작가 다바타 세이이치의 어린 시절입니다. 표지가 말해 주듯 이 그림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올해 83세를 맞은 작가는, 1931년 사쿠라꽃 피는 3월에 태어났습니다. 일본이 소위 ‘만주사변’이라 부르는 중국 동북 침탈이 일어난 해입니다.
책장을 넘기면 꽃 핀 나뭇가지 아래 아기를 안은 엄마의 모습과, 풍습대로 아기에게 선물하기 위해 커다란 도미를 들고 시골에서 올라온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 차례로 펼쳐집니다. 유복한 가정이 누리는 일상의 평화이지요. 아기는 당연히 몰랐습니다. 그것이 이웃나라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 누리는 식민 본국의 거짓 평화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이는 쑥쑥 자라 소학생이 됩니다. 제도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쿠라’의 선동에 고스란히 노출됩니다. 입학식 날, 학교 마당에 한 가득 피어 있던 꽃도 사쿠라, 모자에 반짝이던 배지의 모양도 사쿠라, 1학년 국어 교과서의 첫 장에 쓰여 있던 낱말도 ‘사쿠라’였습니다. 교과서의 그 다음 장 문장은 ‘앞으로 앞으로 우리 군대 앞으로’. 동네 이발사 아저씨가 빨간색 소집 영장을 받고 전쟁터로 떠나는 날, 작가는 사쿠라나무 아래서 일장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쳤지요. 그렇게 국가의 선동 속에 자라난 작가는, 이제 아무도 멈출 수 없는 전쟁 앞에서 ‘진심으로 나라를 위해 죽으리라 결심’하는 군국소년으로 성장합니다.
성장기 내내 이어지는 전쟁 속에서도 봄마다 사쿠라꽃은 피는데, 이제 꽃놀이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군가만 온 거리에 흘러넘칩니다. “사쿠라꽃처럼 아름답게 져라, 져라! 나라를 위해 죽어라, 죽어라!” 그러나 전황은 뒤집어져 패색이 짙은 가운데 군수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변변히 손도 쓰지 못한 새 죽어 버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져 정의롭지 못한 전쟁은 패전으로 끝이 납니다.
그때 작가 나이 열네 살, 혈기 방창한 군국소년은 패전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서랍장 깊숙이 있던 낡은 칼을 찾아내 마구잡이로 휘둘러댔지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날뛰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곧 숨 막히는 가난이 닥쳐왔기 때문입니다.
밥벌이와 학업을 함께 하면서 작가는 차츰 깨닫습니다. 자기 아버지뿐만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아시아의, 세계의, 좀 더 오래 살고 싶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드디어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전쟁이란 게 도대체 뭐지!”
이제 벚나무이고 싶은 사쿠라나무가 하는 말
그로부터 65년이 지난 어느 날, 공원에서 작가는 오래된 사쿠라나무가 건네는 말을 듣습니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기분이 상쾌해지는군. 그건 그렇고, 나한테는 괴로운 추억이 있다네. 젊은이들을 우리들 꽃에 비유해 ‘져라, 져라!’ 하며 죽음으로 몰아넣었지. 젊은이들이 죽어서 남긴 것은 원한과 슬픔뿐이었다네. 전쟁이 있어서는 안 돼! 전쟁만은 절대로 안 돼!”
어느덧 팔순을 바라보는 원로 그림책 작가가 되어 ‘한중일 평화그림책’을 제안하고, 작품을 만들어 가던 무렵이었습니다.
그가 들은 것은, 더는 선동의 수단인 ‘사쿠라’가 아닌, 평화로운 꽃 잔치의 주인공이고 싶은 ‘벚나무’의 목소리였을 겁니다. 동시에, 이제 군국소년의 기억을 떨쳐 버리고 아이들과 함께 평화를 노래하는 할아버지로 살다 가고픈, 작가 자신의 목소리였을 겁니다.
하늘하늘 벚꽃 잎 떨어지는데, 작가의 아기 적 모습과 꼭 닮은 아기 하나 유모차에 앉아 꽃비를 맞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