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파로 살다 - 좋은 삶을 고민한 문제적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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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뉴레프트리뷰
옮긴이 : 유강은
엮은이 : 프랜시스 멀헌
책정보 및 내용요약
2013년 12월 한 대학생의 대자보로 시작한 “안녕들 하십니까”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향은 뜨거웠다. 대학생뿐 아니라 중학생, 고등학생, 나이든 어르신과 해외의 교포들도 각자의 안녕하지 못한 현실을 담아 대자보를 확산시켰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안녕들 하십니까”란 대자보에 시선을 돌리게 만들었을까. 경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주류에 편입하기 위해 매일매일 팍팍한 삶을 사느라 우리 이웃의 아픔을 돌아보지 못한 현실에 대한 미안함과 불만이 “안녕들 하십니까”란 대자보로 표출된 것이 아닐까.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하며 경제적 격차가 심화되고 사람들의 삶이 나날이 황폐해져가는 상황에서 좋은 삶, 좋은 사회를 도모하는 대안 세력이어야 할 좌파 운동조차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는 우울한 현실의 반영이 아니었을까. 한때 젊음과 이상, 헌신을 상징했던 좌파가 ‘낡음’, ‘구태의연함’을 상징하게 된 한국 사회의 슬픈 현실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 안녕하지 못한 시대에 좌파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본주의라는 괴물과 맞서 싸우며 좋은 삶을 꿈꿨던 좌파의 역사는 무의미했던 것일까. 지금도 여전히 비판하고 저항하며 버텨 나가는 좌파들의 존재는 무가치한 것일까. 이 책 『좌파로 살다』는 지난 100년의 시간 동안 세계 곳곳에서 자본과 권력과 불의에 맞서 싸웠던 16명의 좌파 인물들의 고민과 고백을 통해 좌파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캐어묻고 고민하고자 한다.
좌파로 산다는 것의 정치적이고 철학적이고 실존적인 고민들
세계 최고의 좌파 지식인들이 집결해 있는 좌파 저널인 『뉴레프트리뷰』는 창간 직후부터 지금까지 좌파의 주요 인물들의 육성을 담아 왔다. 그중 치열하게 고투했던 16인을 엄선해 이 책 『좌파로 살다』에 담았다. 이 책에 실린 좌파들의 육성은 20세기 초반 활동한 루카치, 코르쉬 같은 인물부터 시작해 2000년대 이후에도 왕성하게 활동한 아리기, 하비, 왕후이 등까지 지난 100년의 시간을 아우르고, 서유럽만이 아닌 동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 각지에서 있었던 투쟁과 고민들을 아우른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처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고민해왔다. 소련식 국가사회주의와 공산당의 획일화를 비판하고 고민한 좌파들과 좌파 이론의 토대를 다지고 마르크스주의의 혁신을 고민했던 좌파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대 좌파 지성들의 치열하고 엄격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또 인도와 브라질, 멕시코, 중국, 일본 등 제3세계에서 활동한 지식인들은 서구 좌파 이론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지역적 조건과 문화적·역사적 차이에 대해 숙고한다. 각기 다른 시대와 다른 지역에서 분투하고 성찰했던 좌파들의 이야기를 끌어내며 좌파로 산다는 것의 정치적이고 철학적이고 실존적인 고민들을 들려준다.
루카치에서 아리기까지, 20세기 좌파 지성사를 정리하다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 상당수는 좌파 이론의 주요한 혁신을 이끌어온 인물들이자, 각국의 혁명적 상황에 누구보다 앞서서 뛰어들어 실천한 대표적 인물들이다. 이들의 인터뷰 면면은 그것으로 이미 20세기 좌파 운동의 흐름과 지성사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역사와 계급의식』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소련식 전통과는 다른,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루카치를 비롯해 마르크스주의가 유럽이라는 지역을 벗어나 아시아 등 제3세계 국가에서 힘을 발휘할 것을 예측한 칼 코르쉬, 소련의 과도한 간섭에 반대해 ‘프라하의 봄’으로 대표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사회주의 개혁 운동을 주도한 이르시 펠리칸,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더 풍부하고 깊이 있게 만들기 위해 칸트 등의 철학과 연결시키려 했던 루초 콜레티, 신좌파 운동과 직접 연계해 활동한 루치아나 카스텔리나, 마르크스 철학을 새롭게 재정립하려 한 사르트르, 마르크스주의의 문제의식으로 지리학의 문제를 파고든 데이비드 하비, 중국에서 좌파가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서구의 좌파 전통과는 또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왕후이, 세계 체계론적 시각으로 자본주의의 기원과 변화를 추적한 조반니 아리기까지, 이 책은 지난 100년 동안 전 세계에서 벌어진 좌파의 지적 활동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게다가 이 책은 그동안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던 좌파 지식인의 고민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칼 코르쉬, 이르시 펠리칸, K. 다모다란, 루초 콜레티, 루치아나 카스텔리나, 아돌포 힐리, 주앙 페드루 스테딜레 등의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된다. 칼 코르쉬의 경우 『마르크스주의와 철학』이 1986년 번역된 적이 있지만 루카치 등 다른 지식인에 비해 지속적으로 논의되지 못했다. 『좌파로 살다』는 미처 알지 못했던 좌파의 운동과 이론을 소개하며 좌파 지성사의 지평을 확장해준다.
당대 가장 탁월한 좌파 이론가들이 맞붙은 대담의 성과물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인터뷰를 담당한 인물들 역시 좌파의 역사에서 주요한 한 축을 담당한 인물들이란 점이다. 페리 앤더슨, 타리크 알리, 실라 로보섬 등 좌파 이론의 혁신을 이끌어왔으며 『뉴레프트리뷰』의 편집위원으로 활약해온 좌파 지식인들이 직접 기획하고 인터뷰를 진행했기 때문에 정치적이고 이론적인 논의에서 치열하고도 밀도 높은 성취를 이뤄냈다. 인터뷰어로 참가한 이론가들은 대담자의 이론적 작업의 성과를 알기 쉽게 이끌어내면서도 날카롭게 허점을 공격하기도 하면서 대담자가 이뤄낸 이론적 · 실천적 성과를 다채롭게 드러낸다. 또 대담자들의 이론적 작업의 공백, 정치활동과 같은 실천 과정에서 저지른 오류 등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지적하면서 치열하게 논쟁을 이끌어가고, 대담자들 또한 자신의 이론적 · 실천적 과오와 실수를 인정하면서 비판과 성찰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기도 한다. 특히 데이비드 하비가 조반니 아리기를 인터뷰한 것에서는 당대 가장 탁월한 좌파 이론가들의 사유와 고민의 정수를 맞볼 수 있다.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이끌어온 문제적 좌파 잡지, 『뉴레프트리뷰』
이 책의 인터뷰를 기획하고 진행한 『뉴레프트리뷰』는 1960년 서구 사민주의 정당과 현실 사회주의를 비판하며 창간한 이래 지금까지 당면한 정치적 쟁점에 대한 논쟁은 물론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대한 쇄신과 자기성찰을 이끌어왔다. 얼마 전 타계한 스튜어트 홀을 비롯, 레이먼드 윌리엄스, 에드워드 파머 톰슨 등 당대를 대표하는 좌파 이론가들이 창간한 『뉴레프트리뷰』는 2세대 편집진인 페리 앤더슨, 타리크 알리 등에 의해 서구의 좌파 지형뿐 아니라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등 제3세계 좌파 운동의 현실과 가능성을 분석하는 등,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지형을 넓히기 위해 노력해왔다. 『좌파로 살다』는 『뉴레프트리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기획이기도 하다. 지난 6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주류가 아닌 비주류 좌파 지식인들을,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등 제3세계 지식인들을 꾸준하고 일관되게 인터뷰한다는 것은 『뉴레프트리뷰』라는 튼튼한 지반이 없었다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목차
해설: 100년의 시간, 20여 개 나라, 16인의 좌파를 만나다 - 장석준(노동당 부대표)
머리말: 아직은 아닌, 이제 더는 아닌, 아직은 아닌 - 프랜시스 멀헌(『뉴레프트리뷰』 부편집인)
1
01. 죄르지 루카치 - 오류와 단절하기
02. 헤다 코르쉬 - 칼 코르쉬의 추억: 좌파로 살다
2
03. 이르시 펠리칸 - ‘프라하의 봄’에 대한 복잡한 기억
04. K. 다모다란 - 식민지 공산주의자의 우여곡절: 인도의 경우
05. 에르네스트 만델 - 어느 정신 나간 젊은이의 행운
06. 도로시 톰슨 -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07. 루초 콜레티 -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인터뷰: 마르크스주의의 고민
08. 루치아나 카스텔리나 - 『선언』과 이탈리아 신좌파 운동
09. 아돌포 힐리 - “현존하는 것이 진리일 리는 없다”
3
10. 장-폴 사르트르 - 어떤 사유의 여정
11. 노엄 촘스키 - 언어학자의 싸움
12. 데이비드 하비 - 지리학의 재발명: 마르크스주의와 지리학
4
13. 주앙 페드루 스테딜레 - 땅 없는 자들의 운동
14. 아사다 아키라 - 전후 일본 좌파 운동의 역사적 재구성
15. 왕후이 - 중국에서 좌파로 산다는 것
5
16. 조반니 아리기 - 자본의 파란만장한 여정
인터뷰 출처
옮긴이 후기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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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추천글
◈ 죄르지 루카치 - 오류와 단절하기
『역사와 계급의식』으로 서구 마르크주의 전통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남긴 죄르지 루카치의 인터뷰는 1968년, 루카치가 죽기 3년 전에 이뤄졌다. 그러나 이 인터뷰는 루카치가 사망한 후 발표되었다. 루카치는 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치적, 이론적 작업의 행로를 되돌아본다. 대표 저서이기도 한 『소설의 이론』이 1차 대전 중 느낀 절망감의 표현이었으며, 러시아혁명이 당시 찾은 해답이었다는 내용부터, 헝가리코뮌 당시 정치적 활동과 혁명의 패배 이후 느낀 좌절감, 소련에서의 활동과 스탈린주의에 대한 고백 등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회주의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다.
◈ 칼 코르쉬 - 칼 코르쉬의 추억: 좌파로 살다
『마르크스주의와 철학』으로 서구 마르크스주의 이론적 발전에 기여한 칼 코르쉬의 인터뷰는 소련 사회주의가 지적으로 활기차고 창조적인 지식인에게 어떻게 족쇄를 달았는지를 보여준다. 독일공산당의 창당에 기여했으며 뛰어난 이론가이자 정치가이기도 한 코르쉬는 코민테른의 경직되고 모스크바 중심적인 중앙집권주의에 반대해 공산당에서 쫓겨났다. 1차 대전 당시 군인으로 징집되었지만, 부당한 전쟁에서 총을 들 수 없다며 항의했던 코르쉬의 강직함은 공산당의 오류와 타협하지 않고 고난의 길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코르쉬의 사후, 아내인 헤다 코르쉬와 진행한 인터뷰는 청년 시절부터 혁명가였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가졌던 코르쉬를 우리에게 소개해준다.
◈ 이르시 펠리칸 - ‘프라하의 봄’에 대한 복잡한 기억
10대 때 파르티잔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르시 펠리칸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의 변모 과정과 소련 공산당의 개입에 대해 생생하게 증언한다. 펠리칸의 증언은 동유럽의 자생적인 공산당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는 소련의 개입에 대한 비판이다. 체코를 점령한 독일군이 소련과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저항하지 말고 환영하라는 소련의 지령과 그 지령을 그대로 받아들인 체코의 공산당 지도자들, 사회주의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를 묵살한 소련의 개입을 비판하면서 과거의 혁명이 아닌 미래에 있을 새로운 혁명을 준비하고자 한다.
◈ K. 다모다란 - 식민지 공산주의자의 우여곡절: 인도의 경우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다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다모다란은 인도공산당의 주요한 지도자이자 발전을 증언해주는 인물이다. 간디와 네루가 이끄는 인도 부르주아 세력과 경쟁하면서 자신이 활동한 케랄라 지역을 인도 역사상 최초로 공산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도록 만들었다. 비록 소련의 영향력 아래 있었지만 인도공산당은 인도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도공산당의 많은 당원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진지하게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스탈린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억압받는 민중들의 틈을 헤치고 들어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다모다란의 인터뷰는 인도공산당의 성공뿐 아니라 케랄라에서 선거로 집권한 공산당 지역 정부의 실패, 공산당의 분열 등 인도공산당이 가지고 있었던 한계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 에르네스트 만델: 어느 정신 나간 젊은이의 행운
제4인터내셔널의 지도자이자 트로츠키주의자, 뛰어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에르네스트 만델은 치기 어린 자신의 젊은 시절을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트로츠키주의자였던 아버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정치의식을 키워나가 트로츠키주의자가 된 사실에서부터, 2차 대전 반전 운동을 벌이다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수용소로 끌려간 이야기, 수용소에서 탈옥했지만 사흘 만에 다시 잡혀서 수용소에서 종전을 맞이한 이야기 등 에르네스트 만델의 인터뷰는 치기 어리지만 기운찼던 만델의 청년 시절을 담고 있다.
◈ 도로시 톰슨: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의 저자인 에드워드 파머 톰슨의 부인인 도로시 톰슨도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자신이 좌파가 된 경로를 추적한다. 노동당 지지자였던 가족을 통해 자연스럽게 정치에 눈뜬 후 역사를 전공하면서 공산당 학생지부에서도 활동했던 도로시 톰슨은 정치에 대한 자신의 경험이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대다수의 학생들과는 많이 달랐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녀에게 공산당 당원으로서의 경험은 하나의 사회적 · 문화적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데 있어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고 한다. 차티스트 운동과 19세기 영국사에 주요한 저서를 낸 역사가로서 도로시 톰슨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다. 만델과 도로시 톰슨의 인터뷰는 유럽에서 젊은이가 당시 어떻게 좌파로 성장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인터뷰이기도 하다.
◈ 루초 콜레티 -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인터뷰: 마르크스주의의 고민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 철학 학파인 델라 볼페 학파의 대표적 이론가인 루초 콜레티는 자신의 지적 근원과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탈리아공산당 이론지인 『소시에타』에서 이론적 논쟁을 이끌어간 경험, 당원이라는 지위가 자신의 이론적 깊이를 더 폭 넓게 만든 것 등 공산당에 가입해 얻을 수 있었던 긍정적인 요소들은 물론 소련 사회주의와 이탈리아공산당에 대한 실망으로 탈당하게 된 일 등 공산당의 한계 또한 말하고 있다. 콜레티는 탈당 후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칸트 철학을 접목하려는 등 이론적 작업을 이어갔다. 콜레티의 인터뷰는 새로운 철학적 시도와 분석을 거쳐간 대장정과 같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콜레티 개인은 결국 우파로 전향하게 되지만 인터뷰 시점에는 새로운 해답을 찾으려는 지식인의 치열한 모습과 솔직한 자기반성을 보여주고 있다.
◈ 루치아나 카스텔리나 - 『선언』과 이탈리아 신좌파 운동
이탈리아공산주의자인 루치아나 카스텔리나는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비판한 후 당에서 쫓겨난다. 이후 동료들과 함께 ‘선언’그룹을 만들어 이탈리아의 신좌파 세력과 연대해 정당 활동을 펼쳐나갔다. 이탈리아공산당의 주목받는 지도자였던 카스텔리나는 당을 나온 이후 기존 공산당에 포섭되지 않았던 다양한 구성원들과 함께 좌파 정당 운동을 펴나갔다. 공산당과 분리된 지 10여 년 만에 다시 공산당과 당을 합치게 되면서, 신좌파 세력과 연계하면서 경험한 다양한 성과를 공산당의 역사 속에 묶어내려고 시도한다.
◈ 아돌포 힐리 - “현존하는 것이 진리일 리는 없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아돌포 힐리는 라틴아메리카 좌파 운동의 한 가지 흐름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제1세계가 아니지만 농민 국가도 아닌 아르헨티나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혁명을 위해 트로츠키주의를 선택한 힐리는 볼리비아와 유럽을 오가며 활동을 펼치다 멕시코에서 구속되었다. 힐리는 라틴아메리카 각지에서 활동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이 마르크스주의라는 하나의 이론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부르주아, 노동자, 농민의 분류로 해명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힐리는 라틴아메리카의 특수성에 주목한다. 멕시코 감옥에서 멕시코혁명에 대한 『중단된 혁명』을 집필했고, 이후 멕시코국립자치대학에서 역사와 정치를 가르치면서 정치 활동을 펼치고 있다. 힐리의 경험은 유럽이 아닌 제3세계의 활동가들에게 고민할 거리를 던져준다.
◈ 장-폴 사르트르 - 어떤 사유의 여정
20세기 중반 프랑스를 대표한 지식인이었으며, 철학자, 소설가, 정치 저술가 등 당대 가장 중요하고 논쟁적인 인물로 손꼽힌 사르트르는 이번 인터뷰에서 자신의 지적 작업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다. 철학 저술뿐 아니라 문학 비평 분야에서도 주요 저서를 내놓은 사르트르는 플로베르의 문학 세계를 분석하는 비평집에 대해 설명하는 한편, 마르크스 철학과 프로이트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소설과 희곡 창작에 대한 견해, 68혁명 당시에 대한 회고 등 사르트르의 지적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눈다. 게다가 인터뷰어가 사르트르의 한계와 취약점을 날카롭게 묻고 사르트르 역시 이러한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답하고 있어 인터뷰 내내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 노엄 촘스키 - 언어학자의 싸움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과 신자유주의의 야만성을 비판해온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자신이 1960년대 민권 운동과 베트남전쟁 반전 운동에 참가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을 일으킨 원인을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한다. 또한 자본주의가 위기를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회관계의 전면적인 재구성을 위해 혁명 이론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또한 생성문법 등 언어학에서 이룬 학문적 성과에 대한 입장도 밝히고 있다.
◈ 데이비드 하비 - 지리학의 재발명: 마르크스주의와 지리학
데이비드 하비는 급진적 지리학자로서 자신의 경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페이비언 사회주의자였던 자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으며 뒤늦게 마르크스 경제이론을 공부하면서 그 성과를 지리학과 결합시킨 일 등 지리학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학문적 경력과 성과를 친절하게 드러낸다.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일하게 되면서 볼티모어라는 도시를 지리적으로 분석하면서 얻게 된 성과(계급적, 경제적, 인종적으로 구획된 도시)와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에 대한 비판 등 지리학이라는 분야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연구를 펼쳐나간 과정을 보여준다.
◈ 주앙 페드루 스테딜레 - 땅 없는 자들의 운동
브라질에서 ‘땅 없는 농업 노동자 운동’을 지도해온 주앙 페드루 스테딜레는 좌파 운동의 현지화에 대한 하나의 모습을 제시한다. 막대한 토지를 보유한 지주에 맞서 놀고 있는 땅의 무단 점거 운동을 펼쳐나간 땅 없는 농업 노동자 운동은 더 좋은 삶을 위한 투쟁 방법이 그 지역의 특징에 따라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브라질의 상황에 맞게 좌파 운동을 이끌어나간 스테딜레의 활동에는 좌파의 전통적 가치인 평등과 해방이 주요하게 작용하지만, 유럽 정치에 익숙한 ‘자유주의’니 ‘사회민주주의’, ‘혁명적 사회주의’라는 틀에는 끼어 맞추기 힘들다. 형식과 이론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시도는 도리어 유럽의 좌파에게 기존 좌파 이론에서 벗어난 활동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해준다.
◈ 아사다 아키라 - 전후 일본 좌파 운동의 역사적 재구성
1980년대 들뢰즈와 가타리 등 프랑스 현대 철학을 소개해 일본 좌파 이론을 혁신하려 한 아사다 아키라는 일본공산당과 좌파 운동의 과거와 현재를 분석한다. 일본공산당의 폐쇄성과 과도한 중앙집권화는 패전 이후 일본의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공산당을 시대에 뒤떨어지게 만들었고, 1970년대 일본의 급진적 지식인들은 하나둘 반공주의자로 돌아서면 민족주의와 결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사다 아키라는 일본의 소비사회를 비판한 자신의 저작이 도리어 일본 자본주의의 유행이 된 상황을 분석하면서 일본의 지적 풍토를 성찰한다.
◈ 왕후이 - 중국에서 좌파로 산다는 것
중국의 근대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사상가인 왕후이는 중국 신좌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인터뷰에서 왕후이는 서구의 정치 용어가 중국에서 그대로 사용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자신을 신좌파라 부르는 것에 거부의 뜻을 밝히면서 중국에서 신좌파는 그 본래의 의미와 달리 상대방을 비난하면서 붙이는 꼬리표에 가까우며, 중국의 자유주의자들은 중국의 시장화를 비판하는 인물들을 보수파라고 공격하는 등, 서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논의되고 있는 중국의 현실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중국의 시장화에 대한 비판과 중국 근대 사상을 새롭게 평가하는 일에 대한 왕후이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조반니 아리기 - 자본의 파란만장한 여정
『장기 20세기』의 저자 조반니 아리기는 자신의 지적 여정을 통해 사회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된 현실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이탈리아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후 아프리카 로디지아니아살랜드연방에서 교직을 잡게 되면서 아리기는 지적으로 다시 태어난다. 로디지아 농민의 현실에 맞춰 자본 축적의 모순을 분석했고, 이탈리아로 돌아온 후 아리기는 노동자 운동에 참가하면서 그람시에서 단초를 얻어 노동계급의 자율성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냈다(흔히 안토니오 네그리가 만들었다고 보지만 사실 1970년대 아리기의 그람시 그룹에서 최초로 제시된 개념이다). 1979년 뉴욕주립대학 빙엄턴에서 월러스틴과 함께 연구하기 시작한 아리기는 자본주의의 기원과 변화에 대한 3부작을 집필하기 시작했다(『장기 20세기』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 아리기는 자본주의 헤게모니가 미국을 떠나 중국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탐구했다. 세계 체계론적 시각에서 아리기는 지구 자본주의의 확장과 함께 좌파 문화 역시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고 바라보았다. 아리기는 ‘사회주의’라는 용어가 오랜 시간 서로 다른 여러 방식으로 남용돼왔으며 불신을 받고 있기 때문에, 역사와 동일시된 관계를 끊고 더 많은 평등과 상호 존중이라는 생각에 어울리는 새로운 용어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아리기의 인터뷰에서 과거나 이상, 정통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좌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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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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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 모음집에서 말을 하는 열여섯 명은 모두 좌파의 서로 다른 세대에 걸쳐 있으며, 각기 다른 사고와 실천의 계보에 속한다. …… 이 열여섯 명이 한데 뒤섞인 상황은 눈길을 사로잡는 집단 초상화를 이룬다. 대다수가 상당한 학문 연구 경험이 있는 각기 다른 종류의 지식인들이 모인 그림이다. 대부분은 훈련받은 전문가인데, 일반적으로 가장 중요한 담론에 곧바로 뛰어들 수 있는 분야에 속한다(언어, 문학, 철학, 사회 이론). 몇몇은 자신이 속한 당이나 운동에서 조직가이자 지도자, 저술가로서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_ 23~25쪽(프랜시스 멀헌)
저는 언제나 최악의 사회주의도 최선의 자본주의보다 더 살기 좋은 사회라고 생각했어요.
_ 48쪽(죄르지 루카치)
소련이 생활수준의 측면에서 미국을 따라잡으면 세계적 차원에서 사회주의가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흐루시초프의 교의는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정식화할 수 있지요. 사회주의는 역사상 최초로 그 체제에 적합한‘경제적 인간’을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내지 않는 경제 형성체라고 말입니다. 물론 이것은 사회주의가 과도적인 형성체, 곧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의 중간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_ 52쪽(죄르지 루카치)
칼은 지적인 사람치고는 결코 회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그이는 또한 열광적이었고 사회화에 관한 그의 글들은 거의 1년 동안 이런 점을 충실하게 반영했습니다. 칼은 러시아혁명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고, 우리 모두는 이 혁명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_ 66쪽(헤다 코르쉬)
그이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을 집중했습니다. 그렇지만 새롭게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마르크스주의를 변형하려고 했습니다. 특히 두 가지 점에서 말이지요. 첫째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식민 세계에 대한 연구를 통한 것입니다. 칼은 초기 마르크스주의는 나름의 이유 때문에 유럽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제는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세계사 전문가들의 연구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습니다.
_ 76쪽(헤다 코르쉬)
오늘날 우리는 다시 변화를 이룰 수 있고 이뤄야 하며, 우리가 변화를 일으키는 데 조력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혁명은 과거에 있지 않습니다. 미래에 있는 거지요.
_ 138쪽(이르시 펠리칸)
저는 트로츠키주의자가 아닙니다. 스탈린이 제 우상이었지요. 그런데 이 우상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저는 설령 멀쩡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부서진 우상 대신 새로운 우상을 믿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 우상숭배 자체를 믿지 않거든요. 공산주의자라면 누구든지 트로츠키, 부하린, 룩셈부르크, 그람시, 루카치 등 여러 마르크스주의자를 진지하게 연구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빼버린다면 마르크스주의 자체가 빈약해질 겁니다.
_ 186쪽(K. 다모다란)
아버지는 안트베르펜의 작은 트로츠키주의 그룹과 연락을 했어요. 우리 집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열세 살이던 저는 트로츠키 동조자가 됐지요. 정식 회원은 아니었어요. 열세 살짜리 아이를 가입시킬 정도로 멍청한 조직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모임에 참석해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똑똑한 아이라고 인정을 받아서 참관하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열다섯 살이 됐을 때 정식으로 가입했습니다. 시기가 흥미로운 게 그 얼마 전에 제4인터내셔널 창립대회가 있었거든요.
_ 194쪽(에르네스트 만델)
어떤 사람이 정치에 참여하는 한,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인간의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정말로 세계를 바꾸고 역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약간 뒤로 물러서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세상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케임브리지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일은 대학 사람들이 저를 보수당 서기와 한 묶음으로 취급한다는 걸 깨달았던 겁니다. 둘 다 정치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말이에요. 저는 우리 둘이 세계 경험에서 절대적인 양극단에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머지 대다수 학생들에게는 정치인이란 좌파든 우파든 간에 대동소이했던 거지요.
_ 211쪽(도로시 톰슨)
우리가 발견한 한 가지 사실은, 아마 누구나 비슷한 깨달음을 얻을 텐데, 학생들이 얼마나 평범한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만난 많은 사람들, 수많은 기술자나 간호사, 공장 노동자 등은 우리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었어요. 성인 교육에 들어가 보면 이런 점이 특히 분명해집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오히려 여러 면에서 줄곧 배우는 입장이 되는 겁니다. 요크셔에서 우리는 우리보다 정치적으로 경험도 훨씬 많고 미묘한 차이도 더 잘 간파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견해와 경험을 교류한 것이야말로 엄청나게 풍부하고 소중한 성과였지요.
_ 214쪽(도로시 톰슨)
마르크스주의는 오늘날 위기에 처했으며, 이 점을 인정함으로써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든 시시한 마르크스주의자든 간에 사실상 모든 이들이 의식적으로 이런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_ 266쪽(루초 콜레티)
우리는 줄곧 민주주의의 진짜 문제는 당 내에 경향의 권리를 보장하는 게 아니라 대중 운동과 새로운 관계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이 대중 운동의 경험에 참여하고 이 경험에 대표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전통적인 레닌주의의 입장은 오로지 당만이 전반적인 견해를 가지며 대중 운동은 부문적 요구나 경제적 요구를 제출한다는 거였어요. 하지만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발전한 새로운 운동들은 이미 그들 나름대로 문제를 검토하고 세계를 해석하는 전반적인 방식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보기에 이 운동들은 정치적 운동으로 간주될 권리가 있었습니다.
_ 289~290쪽(루치아나 카스텔리나)
과거에 도시의 산업 노동자들은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일부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토대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거대한 인간 집단이 배제됐습니다. 농민, 농촌 인구, 원주민, 광대한 식민 세계 등이 말입니다. 지금 제가 보기에, 20세기에 고유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식민 세계에서 벌어진 반란입니다.
_ 326쪽(아돌포 힐리)
20세기는 계몽의 세기가 아니었고, 진보의 세기도 아니었습니다. 20세기는 그렇게 번쩍이는 섬광의 세기였고, 지금 눈앞에 놓인 위험의 순간을 비추려면 이 세기의 기억과 경험을 되찾을 필요가 있을 겁니다.
_ 337쪽(아돌포 힐리)
즉각적으로 전면적 해방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유토피아입니다. 우리는 이미 미래 혁명의 한계와 제약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구실로 삼아 혁명을 하지 말자고 하거나 지금 싸우지 않는 사람은 반혁명 분자일 뿐입니다.
_ 381쪽(장-폴 사르트르)
우리는 가능한 곳에서 새로운 제도의 맹아를 세워야 합니다. 이 사회가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사람들이 깨닫도록 만들고, 또 새로운 사회의 의식적인 전망을 사람들에게 제공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야 절대 다수의 사람들을 위한 행동 강령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민주적 혁명은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지지할 때, 곧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왜 그렇게 하는지 알며 무엇을 실현하고자 하는지 알 때 일어날 겁니다. _ 399쪽(장-폴 사르트르)
자본주의의 적응성이 계급투쟁에서 으뜸가는 무기 중 하나이지만, 또한 동시에 자본주의가 광범위한 저항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이 저항은 파편화되고, 종종 무척 국지화되며, 목표와 방법이 끝없이 다양합니다. 우리는 현실적인 것이든 잠재적인 것이든 간에 이런 저항을 결집하고 조직하는 일을 도울 방도를 모색해야 합니다. 저항이 전 지구적 힘이 되고 지구를 뒤덮을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단결의 표지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론의 차원에서는 차이 안에서 공통점을 확인하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으며, 진정으로 공동적인 관심을 추구하면서도 오늘날의 세계에서 하나로 환원할 수 없는 독자성―특히 지리적인 특징―에는 민감한 태도를 잃지 않는 정치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기본적으로 갖는 희망 중 하나입니다.
_ 451쪽(노엄 촘스키)
아마 가장 큰 성공은 ‘땅 없는 농업 노동자 운동’에 속한 농민들 스스로가 존엄성을 얻었다는 점일 겁니다. 이 사람들은 이제 자존감을 느끼며 고개를 치켜세우고 걸어다닐 수 있어요.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압니다. 자기들이 던진 질문에 어떻게 해서든 답을 얻어내고요.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승리지요. 이제 어느 누구도 계급의식을 앗아갈 수 없습니다.
_ 477~478쪽(주앙 페드루 스테딜레)
저는 엄밀한 의미의 들뢰즈 철학, 곧 잠재적인 것의 존재론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어요. 그보다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일본의 스탈린주의자들에 비해 한결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마르크스를 읽으면서 보여준 사례에 관심이 있었지요. 저는 마르크스를 새롭게 공부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하고, 일본과 세계 자본주의의 모순을 바라보는 새로운 길을 열고 싶었습니다.
_ 510쪽(아사다 아키라)
가령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농촌 지역에는 협동조합식 의료보험 체계가 존재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방 사람들이 상호부조를 위해 스스로 조직을 해서 기금을 설립하고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국영 의료 체계가 붕괴하고 있는 지금, 왜 이런 경험에서 적극적인 교훈을 배우지 않는 걸까요? 오늘날 중국에는 사회주의의 단편적 요소들이 아직 남아 있지만, 이것들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_ 557쪽(왕후이)
‘사회주의’라는 용어의 문제점은 이 말이 서로 다른 여러 방식으로 남용돼왔고 따라서 불신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제게 더 나은 용어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저도 모르겠습니다―우리가 새로운 용어를 찾아야겠지요.
_ 635쪽(조반니 아리기)
대담자
죄르지 루카치: 헝가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문예 비평가. 서구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는 『역사와 계급의식』을 비롯해 많은 저서를 남겼다.
헤다 코르쉬: 마르크스주의의 실천적·철학적 기초를 해명해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기념비적인 저서로 평가받는 『마르크스주의와 철학』의 저자 칼 코르쉬의 부인. 칼 코르쉬와 함께 독일공산당에서 활동했지만 칼 코르쉬가 소련이 주도한 코민테른의 경직된 분위기를 비판하면서 함께 당에서 쫓겨났다.
이르시 펠리칸: 10대 때 파르티잔으로 활동을 시작해 체코공산당의 주요 간부로 성장했다. 프라하의 봄 당시 개혁 운동을 주도해 이탈리아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개혁 운동을 펼쳤다.
K. 다모다란: 인도 독립 운동을 펼치다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1937년 인도공산당 케랄라 지부를 창립했으며, 케랄라 지역에서 인도 최초로 공산당이 지방선거에 승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에르네스트 만델: 당대 가장 탁월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제4인터내셔널의 지도자이자, 탁월한 조직가, 논객으로 활동했으며 대중 연사로도 명망이 높았다. 자본주의 경제 동학에 대한 새롭고 인상적인 설명을 제시한 『후기 자본주의』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서의 업적을 인정받았다.
도로시 톰슨: 차티스트 운동과 19세기 영국사 연구에 주요한 저서를 남긴 역사가. 역사가이자 평화 운동가인 에드워드 파머 톰슨의 부인으로 소련의 헝가리 침공 이후 공산당을 탈당해 평화 운동에 참가했다.
루초 콜레티: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 철학 사조인 델라 볼페 학파를 대표하는 좌파 이론가. 공산당을 탈당한 후 사회당을 거쳐 최종적으로 우파로 전향했다.
루치아나 카스텔리나: 1960년대 이후 이탈리아 좌파의 주요 인물로 활동해왔으나,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등 당의 정책을 비판해 동료들과 함께 공산당에서 쫓겨났다. 이후 ‘선언’그룹으로 불리며 신좌파 운동과 연계해 좌파 정당을 창당하는 등 공산당 외부에서 좌파 운동을 이끌었다.
아돌포 힐리: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라틴아메리카 전역과 유럽에서 혁명 조직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멕시코에서 구속되었다. 수감 생활 중 멕시코혁명에 대한 기념비적인 저서인 『중단된 혁명』을 집필했다. 현재 멕시코국립자치대 역사학·정치학 교수로 있다.
장-폴 사르트르: 20세기 중반 프랑스를 대표한 지식인이며 철학자이자 소설가, 극작가, 정치 저술가로 당대 가장 중요하고 논쟁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68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변증법적 이성비판』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철학적으로 재정립하고자 시도했다.
노엄 촘스키: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자 인문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 중 한 명이며,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중동 문제 등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과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야만성에 대해 가장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는 정치활동가이기도 하다. MIT 언어연구소 교수로 있으며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데이비드 하비: 뉴욕시립대학 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의 여러 분파 중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유연한 마르크스주의자로 평가받고 있다. 급진적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지리공간의 문제에 깊이 천착해왔으며, 포스트모더니티 문제와 마르크스주의 경제이론에 대해서도 꾸준하게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주앙 페드루 스테딜레: 브라질의 토지 개혁 운동가. ‘땅 없는 농업 노동자 운동’의 전국 지도자로 브라질에서 토지 개혁을 위한 투쟁을 이끌어왔다.
아사다 아키라: 들뢰즈, 가타리 등 현대 프랑스 철학으로 일본 좌파 이론을 혁신하며 1980년대 일본의 뉴아카데미즘을 주도했다. 가라타니 고진과 함께 『비평공간』의 편집인을 맡았으며 현재 일본교토조형예술대학원 원장으로 있다.
왕후이: 칭화대 인문학부 교수이자 중국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중국 신좌파의 선구자로 널리 알려져 왔다. 중국 정부 정책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으며, 중국 근대성이란 주제를 일관되게 탐구해왔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 문제의 일부로 중국 문제를 인식하고 아시아의 새로운 연대와 대안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조반니 아리기: 존스홉킨스대학 사회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페르낭 브로델 센터에서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함께 세계 체계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켰다. 세계 자본주의의 기원과 변화를 분석한 3부작으로 유명하고, 말년에는 지구 자본주의의 헤게모니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탐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