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의 역사 - 유라시아의 교차로
- 1331
저자소개
지은이 : 제임스 A. 밀워드
옮긴이 : 이광태
책정보 및 내용요약
수천 년에 걸쳐 수많은 문화가 조우하고 중첩된 신장의 역사를 이해한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문
1장 고대의 마주침들(고대~8세기)
지리적 환경
선사 시대의 신장
고전 시대
제한적인 자치와 지속되는 관계: 3~6세기
당, 돌궐 그리고 티베트
2장 중앙유라시아의 우위(9~16세기)
신장의 위구르 왕국
카라한조
투르크의 이슬람화
호탄의 개종
카라키타이
쿠출루크의 카라키타이 정복
몽골 제국 시기
몽골 시기의 위구르
모굴리스탄: 무슬림 차가타이가
차가타이가의 몰락과 새로운 민족의 형성
중국-중앙아시아의 관계와 동서 대상 무역
근세의 실크로드
3장 이슬람과 중국 사이에서(16~19세기)
타림 분지에서의 수피 교단의 포교
낙슈반디 교단과 호자들
중가르-만주의 대결과 청 치하 ‘신장’의 탄생
청 치하의 신장
1864년 반란과 야쿱 벡의 아미르국
4장 제국과 민족 사이에서(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재정복
재건
일리 유역의 수복
신장의 건성
건성의 완성
20세기 전환기 타림 분지 오아시스에서의 삶
청의 멸망
이슬람식 근대 교육
신장의 자디드 운동과 투르크 민족주의
5장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1910년대~1940년대)
양쩡신의 통치
대홍수: 1930년대의 대립
동투르키스탄 공화국: 1933~1934년
성스차이의 시대
국민당 치하의 신장
삼구(三區) 혁명과 제2의 동투르키스탄 공화국
중국 공산당이 신장을 장악하다
6장 중화인민공화국에서(1950년대~1980년대)
통치의 확립과 사회주의의 이행: 1949~1958년
20년간의 문화 대혁명: 1957~1978년
개혁, 회복 그리고 타협: 1978년~1980년대
7장 중국과 세계 사이에서(1990년대~2000년대)
실크로드와 유라시아의 교량
발전
‘공작이 서부로 날아가다’: 신장으로의 이주
건조 지역과 반건조 지역: 신장의 환경
불화와 분리주의
21세기 초의 중국령 투르키스탄
결론 줄타기
‘모든 위구르인의 어머니’: 라비예 카디르
먼 서쪽의 동화 같은 성공: 쑨광신
줄 위의 애국자: 아딜 호슈르
부록: 신장의 역사 연대표
주
참고문헌
도판 목록
찾아보기
편집자 추천글
<출간 의의>
중국의 화약고, 신장을 이해하는 첫걸음
2009년 197명이 숨지고 1700여 명의 부상자를 낸 우루무치 유혈 사태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세계의 관심을 받는 지역이 되었다. 중국의 통치를 받고 있는 이 지역에서 중국에 대항해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와 폭력 사태가 꾸준히 발생하자 외신들은 신장에 ‘중국의 화약고’라는 별명을 붙였다. 도대체 왜 신장의 위구르인들은 중국 정부에 저항하고 있을까? 신장 위구르인들의 분노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먼저 소수 민족을 차별해온 중국 정부에 대한 오랜 불만이 첫 번째 원인이라면, 경제 성장의 과실이 한족에게만 돌아가는 현실에 대한 상실감도 크게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 정부의 민족 동화 정책으로 인해 위구르족의 전통 문화가 말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원인 중 하나이다.
신장 지역의 역사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먼저 ‘신장’이라는 단어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한 번 살펴보자.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신장(新疆)’은 18세기 중반 청(淸)의 건륭제가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새로운 강역’이라는 뜻으로 처음 사용한 단어이다. 중세의 이슬람 작가들은 이 지역을 ‘투르크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의 땅’이라는 의미에서 투르키스탄(Turkestan)이라고 불렀다. ‘투르키스탄’이 ‘신장’으로 바뀌면서 이 지역은 공식적으로 중국 역사에 편입되었다. 중국의 영토가 된 이후에도 위구르족과 한족의 민족 갈등과 종교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신장의 현재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족, 경제, 종교 등 역사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한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신장의 역사를 다루는 이 책은 뒤엉킨 조각을 맞추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신장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신장을 둘러싸고 다양한 물음들이 있다. 고대의 신장에는 어떤 부족이 살았나? 이 지역이 언제부터 중국의 역사에 등장했는가? 이 지역에서 이슬람교의 역할과 특징은 무엇인가? 중국 공산당의 사회주의 정책 아래에서 이슬람교도인 위구르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 책은 이러한 의문에 답을 제공해주는 유일한 개설서이다. 신장 지역은 지금까지 실크로드와 동서 문명 교류사를 다루면서 부가적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고대 시기 이 지역의 지리적 환경에서부터, 현대에 벌어지고 있는 민족 분쟁까지 수천 년에 걸쳐 신장에서 이루어진 역사를 정리하고 있는 역사서는 이 책이 국내에서 첫 번째이자 유일하다.
신장의 통사를 다룬 첫 번째 책이라는 점 이외에도 이 책은 전문가뿐 아니라 신장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A. 밀워드(James A. Millward) 교수가 1978년 하버드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래 신장에 대한 대중적이고 개괄적인 역사서를 서술하려고 마음먹어 왔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신장에 대한 마땅한 개설서가 없어 고생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누구보다도 신장에 대한 개설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저자의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다양한 민족들이 등장했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여정이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으로 서술될 수 있었다. 또한 신장의 역사를 통사의 체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수천 년의 시간을 헤매지 않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신장에 대한 가장 최신의 연구 성과를 담고 있어 신장 지역 역사와 정치를 연구하고자 하는 전문가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실크로드의 명성 뒤에 가려져 있던 ‘신장 사람들’의 역사
지금까지 신장은 동서 문명의 가교라는 측면만 강조되어 왔고, 그런 교류가 이루어진 역사 현장은 주목받지 못했다. 이 책은 이러한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신장의 민족들이 다양한 외부 세력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만들어간 역사를 다루고 있다. 언어(토하라어, 투르크어, 중국어, 소그드어), 종교(대승 불교와 소승 불교, 조로아스터교, 네스토리우스 기독교, 이슬람교), 왕조(한, 당, 카라한조, 칭기스칸의 몽골 제국과 그 후예들, 중가르, 카자흐, 청) 등, 다양한 민족과 문화의 만남은 이 지역의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가령 투루판(Turfan)이라는 도시의 지명은 어떤 민족이, 언제 지배했느냐에 따라 거사(車師), 고창(高昌), 코초(Qocho), 카라호자(Qarakhoja), 토로번(吐魯番) 등 다양한 언어로 알려졌다. 이처럼 신장의 역사는 여러 문화가 만나 때로는 서로 배척하고, 때로는 서로를 받아들이며 만들어졌다. 신장의 역사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어떤 문화적 요소가 한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갈 때, 그것이 경유하는 지역들에서 변용되고 가공되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를 거쳐 간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신장이 갖는 교류의 ‘현장’으로서의 역사에 주목해야 한다.
가장 ‘정치적인 신장’에 대해 학문적 객관성을 유지한 책
이 책은 전체 분량의 절반 이상을 신장의 근현대사 서술에 할애하고 있다. 이는 최근 정치적으로 불안한 이 지역의 현재 상황을 보다 자세하고 객관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저자가 의도한 것이다. 저자인 밀워드 교수는 이 책에서 정치적 객관성을 유지해 학문적 엄밀성을 높이려 노력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신장의 현대사를 다루면서 신장 지역의 분리 독립 운동과 중국의 신장 정책 중 어느 한쪽의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또한 저자는 최근 일어나고 있는 민족주의적인 논쟁을 신장의 역사에 소급 적용해, 신장의 역사를 ‘중국적’이라든지, ‘위구르적’으로 분류하려는 시도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대륙적·민족적·국가적 범주를 근대 이전의 역사에 적용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현재 중국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지역을 다룬다는 사실 때문에 정치적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자신이 신장의 역사에 대해 서술한 다른 책 때문에 중국에서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신장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직접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독자들이 책을 읽고 판단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추천사>
여러 소수 민족을 포함하고 있는 현대 중국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또 동서 문명의 교류와 실크로드의 역사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유라시아의 교차로’였던 이 지역의 역사에 대해서 보다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중앙아시아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에 대한 지평을 넓혀 주는 좋은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 김호동(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이 책은 독자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역사를 매우 탁월하게 서술한 책이다. 제임스 A. 밀워드 교수는 신장의 이야기에 흥미롭고 다양한 여러 등장인물을 선보인다. 이 분야에서 이 책에 필적할 만한 연구는 없다.
― 피터 C. 퍼듀Peter C. Perdue(예일대 중국사학과 교수)
저자는 신장의 복잡한 역사가 지닌 각기 다른 여러 가닥을 다채로운 태피스트리와도 같은 한 권의 책으로 솜씨 있게 엮어 낸다. 이 책은 학자와 일반 독자 모두에게 신장에 대한 최고의 참고 도서가 될 것이다.
― 로브 기퍼드Rob Gifford(전 미국공영라디오NPR 중국 특파원)
<주요 내용>
1. 다양한 민족, 여러 역사의 무대로서의 신장
사카족, 월지, 흉노, 한족, 소그드, 몽골, 위구르, 만주족 등 다양한 민족들이 신장을 거쳐 가면서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기도 했고, 자신들의 문화를 흔적으로 남겨 놓기도 했다. 이처럼 신장의 역사는 다양한 민족들이 각축하며 만들어낸 역사이다. 기원전 1800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누란의 미녀’(누란 인근에서 발견된 미라)는 인도유럽어족의 한 지파가 이 지역에 정착했음을 알려준다. 이 책은 한(漢)의 진출 이전에 이 지역에 살았던 사카족, 월지 등 초기 거주민부터, 한, 당(唐)과 몽골 제국의 침략, 중앙아시아 유목 민족이 세운 중가르 제국, 불교를 믿는 도시 국가였던 호탄, 청(淸)의 서진 등 신장을 지나갔던 무수한 민족과 국가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한다. 신장은 때로는 중국 등 주변 강대국의 정복 대상이기도 했고, 오아시스에 자신들의 도시 국가를 발전시키기도 했고, 유목민들의 국가를 세우기도 했다. 이 책은 각각의 민족이 만들어낸 사회조직과 정치체제, 그들에게 영향을 준 종교와 문화를 망라하고 있다. 저자는 다양한 민족들의 고향이자 여러 역사의 무대로서 신장을 조명하고 있다.
2. 중앙유라시아 민족과 중국이 벌인 경쟁의 역사
신장은 중앙유라시아의 유목 민족과 중국 등 주변 강대국의 끊임없는 경쟁이 치러지던 현장이었다. 기원전 120년 무렵 한이 처음 이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한 이후, 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의 장군인 이광리(기원전 102년), 반초(73~102년)와 같이 눈에 띄는 군사적 성공도 있었지만, 중국 왕조들은 이 지역에서 지속적인 영향력을 확보하기 힘들었다. 당의 장군인 고선지는 군사 원정을 통해 파미르 고원의 국가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던 티베트인들을 몰아내고 당의 우위를 가져왔지만 당의 국력이 쇠퇴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했다. 반면 중앙유라시아는 9~16세기 강성한 유목 세력들이 각축전을 벌이던 장소였다. 돌궐 제국의 붕괴로 투르크어를 사용하는 부족들이 신장으로 유입되어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위구르국은 현대의 위구르인들에게 민족명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민족들의 각축전 사이에서 소그드인들은 자신들만의 상업 네트워크를 만들어 신장과 북중국의 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3. 다양한 종교들이 전파되고 영향을 미친 교차로
오늘날 신장의 주민들은 대다수 이슬람교를 믿고 있지만, 원래 이 지역은 다양한 종교들이 교차하던 길목이었다. 조로아스터교, 불교, 마니교, 기독교 등이 이 지역을 거쳐 중국으로 전파되었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천축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던 중국 승려들도 신장을 거쳐 인도로 갔다. 9세기 말 대표적인 불교 국가인 호탄의 왕가는 둔황의 불교 사원을 방문하고 후원했으며, 자신들의 초상화를 막고굴 벽에 그리도록 돈을 기부하기도 했다. 조로아스터교는 이 지역에서 상업을 장악하고 외교 업무를 담당한 소그드인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졌다.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역시 신장을 거쳐 중국까지 전파되었는데, 특히 몽골 제국의 지배층과 위구르인들의 후원을 받았다. 이슬람 국가인 카라한조가 9세기부터 서부 타림 분지 및 중가리아 서부를 완전히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에도 이슬람교가 전파되기 시작했고, 17세기에 이르러서는 신장 전 지역의 이슬람화가 완성된다. 이슬람교는 신장 주민들을 페르시아 (이슬람) 문화권과 연결시켰으며, 이슬람 율법에 따르는 삶은 신장 주민들에게 공통의 문화적 체험을 가능하게 했다. 이슬람교는 신장 주민들의 삶에 뿌리 내려, 현재까지도 그 영향력이 계속되고 있다. 신장 지역의 갈등과 소요 사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슬람교가 신장에 미친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4. 민족 분쟁의 기원을 찾아서
이 책은 근현대사 부분에 많은 비중을 할애해, 최근 신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족 갈등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18세기 중반 청의 영토가 된 이후 중국의 지배자들은 신장을 중국화하려고 노력해 왔다. 위구르족 아이들에게 유교 경전과 중국어를 가르치며 중국 문화에 동화시키려고 한 청의 시도가 실패한 이후 이러한 시도는 중화인민공화국 치하의 신장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서부 대개발 정책을 펼치며 한족을 대거 이주시켰는데, 한족의 이주는 위구르인들의 경제적 기반을 뒤흔들어 이 지역의 사회 분위기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 책은 중국 치하에서 차별받고 있는 신장 위구르인들의 불만과 현실을 그대로 서술함으로써, 중국 속의 신장이 처해 있는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5. 중국과 소련에 의해 좌우된 신장의 근현대사
신장의 근대사는 중국과 소련 사이를 위태롭게 항해한 역사이다. 신해혁명으로 청이 사라지자 신장은 중국 출신 군벌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이 시기 신장의 주민들은 지배자들의 폭정에 저항해 봉기를 일으켰으며, 1933년 11월에는 동투르키스탄 공화국 건립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국민당과 소련의 후원을 받은 군벌 세력에 의해 탄압을 받는다. 1900년대 초반의 혼란기에 신장을 지배한 중국인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소련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소련은 신장의 석유와 광물 자원을 얻기 위해, 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신장의 지배자들에게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유지했다. 신장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은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이 지역을 장악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6. 신장의 현재와 미래를 말하다
이 책은 신장의 현 상황에 대해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해결책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신장의 영웅적인 인물 세 사람을 이야기하면서 결론을 대신한다. 세 인물은 신장의 현재를 상징할 뿐 아니라 신장의 오랜 역사를 응축하고 있다. 그들은 중국 당국에 저항하여 미국 망명의 길을 택한 ‘모든 위구르인의 어머니’ 라비예 카디르, 한족 출신으로 신장에서 세계 굴지의 갑부가 된 쑨광신, 그리고 위구르의 줄타기 전통 곡예인 다와즈(dawaz) 예술가로 각종 세계 신기록을 달성해 국가적·민족적 영웅으로 떠오른 아딜 호슈르다. 저자는 민족 저항 운동의 지도자와 한족 출신의 재벌 사업가, 중국의 영웅이자 위구르의 슈퍼히어로로서 미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아딜 호슈르를 대비시키며 여러 민족의 고향이자 여러 역사의 무대였던 신장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한다.
<본문 속으로>
따라서 ‘중국령 투르키스탄’이라는 호칭은 이 지역 역사의 주요 특징―종족적 다양성과 문화 영역의 중첩 지역이라는 상황―을 반영하며 지난 세기의 대부분 동안 이 대륙의 교차로를 괴롭혀 왔던 종족적·정치적 정체성의 융화라는 문제를 구체화하고 있다. _ 25쪽
언급했듯이 ‘중국령 투르키스탄’이라는 용어는 이 지역의 문화적·정치적 다양성, 즉 여러 문화와 정치적 영향력이 서로를 배척하기보다는 중첩되는 이 지역의 성질을 함의하고 있다. 실크로드의 교차로로서 신장은 지중해 지역, 페르시아, 인도, 러시아 그리고 중국을 연결하는 통로에 걸쳐 있다. 따라서 신장은 유라시아 전역의 예술과 기술, 사상 및 교역 물품이 이동하는 통로이자 용광로였다. 구석기 시대의 수렵·채집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뒤를 잇는 초기 유라시아의 농부들과 유목민들 역시 신장을 횡단했다. 그리고 승려와 선교사, 상인, 군인, 정착민 및 여행자가 그 뒤를 이었다. 신장은 또한 유목 사회와 정주 사회의 접점이자 초원 출신의 유목민인 흉노족, 투르크족 및 몽골족과 타림 분지 오아시스의 농민들이 만나는 공간이었다. _ 27~28쪽
흉노의 쇠퇴와 한의 붕괴 이후 이어진 300년 동안 신장의 상황은 역사적으로 충분하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중국의 정치·군사적 혼란으로 인해 북중국에 기반을 둔 국가들은 타림 분지에 단지 제한적이고 간헐적으로만 개입할 수 있었다. 비록 이 시기가 중국에서는 종종 암흑의 시대처럼 다루어지고 있지만, 타림 분지에서는 교역 및 외교적·종교적 왕래가 여전히 활발했으며 심지어 중국의 서북부는 계속해서 인도 및 소그디아나와 연결되어 있었다. 실제로, 3~6세기 동안 소그드인의 상업적 네트워크는 타림 분지와 간쑤 회랑으로 확대되었으며 불교는 바로 이 연락망을 통해 발달하고 크게 융성했다. _ 68쪽
이슬람화의 결과 신장 지역은 문화적으로 그 서쪽 지역, 곧 중앙 및 남아시아의 광범위한 페르시아 또는 차가타이 투르크어 문화 지대와 연결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신장은 전략적으로 여전히 북중국에 기반을 둔 세력과 몽골에 기반을 둔 세력 사이의 역학 관계에 얽혀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패턴에는 하나의 단계가 더 있었는데, 북중국에 기반을 둔 세력은 초원 제국에 대한 원정의 일환으로 신장을 향해 서진(西進)했다는 사실이다. _ 138쪽
1864년의 반란은 현재 많은 경우 위구르인들의 독립 운동 중 하나로 다루어지고 있다. 의심의 여지없이 청 체제와 벡들에 대한 적개심이 그 원동력이었고 물라 무사 사이라미(Mulla Musa Sairami)와 같은 무슬림 역사가들에 의해 성전이라는 수사를 얻기는 했지만, 1864년의 반란에 대한 이와 같은 묘사는 다양한 상호 적대적인 행위 주체들을 비롯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일련의 사건을 대단히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_ 185쪽
정복 후의 신장을 겨냥하여 좌종당은 자신이 계획한 개혁의 이면에 있던 한화에 대한 열망에 발맞추어 무슬림들을 중국식으로 교육할 것을 주창했는데, 이는 “만약 우리가 그들의 독특한 풍습을 바꾸고 이들을 중국의 방식[화풍(華風)]에 동화시키고자 한다면 의숙(義塾)을 세우고 무슬림 아이들이 (중국의) 책을 읽고 한자에 익숙해지며 구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_ 219쪽
제2동투르키스탄 공화국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은 라쇼몽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학자, 국가 및 정치 행위자들은 최초의 반란과 일리 체제의 배후에 실제로 누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이견을 보인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기록들은 후일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의 지도자가 된 몇몇 인물들(특히 중화인민공화국의 저자들이 반란의 격렬한 반한족적 경향에 반대한 것으로 인해 영웅시하고 있는 압둘 케림 아바스Abdul Kerim Abbas)에 대한 중국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을 강조한다. 동시에 이들은 은밀히 소련의 역할도 인정하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의 자료에서 ‘삼구(三區) 혁명’은 공식적으로 전반적인 중국 혁명의 일부, 즉 소련의 후원을 받아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 아래 발생한, ‘반동적인’ 국민당 통치에 대항하는 소요 사태로서 다루어지고 있다. _ 321쪽
문화 대혁명 초기의 고조된 사회적 불안과 중앙의 통제력 상실 속에서, 신장의 투르크 민족들이 정치 운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이는 정말 놀라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중앙의 지도부 중에서 저우언라이 총리는 적어도 신장의 ‘소수 민족들’이 정치화되거나 파벌 투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기를 원했던 것처럼 보인다. _ 383쪽
신장의 국제적인 면모는 스카이라인과 함께 높아지고 있다. 한때는 중국 외부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인권과 종교적 자유, 테러리즘, 에너지, 중앙아시아에서의 중국의 위상이라는 문제들이 이 지역을 헤드라인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터넷과 인쇄 매체에 오르내리도록 하기 때문에, 신장과 위구르인들은 이제 세계 언론의 보도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_ 402쪽
신장은 여러 민족의 고향이며 여러 역사의 무대였다. 신장이 특정 집단을 위한 배타적인 무대가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두를 위한 공동의 고향이라는 사실에 서로 다른 민족들이 동의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이들이 이 지역의 역사를 어떠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또한 이 문제는 서로 다른 민족들이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서로를 그리고 신장의 환경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의해 더욱 좌우될 것이다. 미래의 영웅들은 민족 간의 분열을 봉합할 뿐만 아니라 신장, 중국 그리고 세계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그들은 균형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_ 5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