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평화그림책 5)
- 1837
저자소개
지은이 : 다시마 세이조
옮긴이 : 황진희
책정보 및 내용요약
‘도대체 누구를 위해 싸우는 걸까? 누구를 위해 죽이고, 누구를 위해 죽음을 당하는 걸까? 무엇을 위한 죽음인가?’
편집자 추천글
전쟁에 희생된 어느 병사의 영혼이 들려주는 피맺힌 외침
<전쟁론>을 쓴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나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적에게 굴복을 강요하는 폭력행위”이며, ‘근대전쟁은 국민전쟁이고 국민의 사기와 용기 같은 주체적 요소가 승패에 결정적’이라 주장했습니다. 이를테면 ‘전쟁은 국가 의지의 관철행위이며, 전쟁 앞에서 국민은 애국심과 용기를 가지고 국가와 일치단결해야 한다’는 뜻일 텐데, 군 고위직으로서 여러 차례 전쟁을 수행한 사상가다운 통찰입니다.
하지만 전쟁은 반드시 쌍방의 충돌이고 그 양측에는 반드시 각각의 고귀한 애국심이 있을 것이므로, 그의 논리는 자국의 승리를 위한 전략적 논리이자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언제나 전쟁의 말단 도구로만 동원되는 갑남을녀들에게 있어서야 그러한 고담준론은 한낱 사탕발림에 불과합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전쟁이란, 그것이 애국인 줄 알고 나아가서, 명령에 따라 적의 병사들을 죽이다가, 자신 또한 적에게 죽음을 당하고 마는 허망하고 처참한 비극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성을 잃은 ‘말단의 도구’들은 죽음을 죽음으로 갚는 피의 복수전을 펼치고, 그 비극 앞에 가슴이 찢겨 망연히 우는 이는 그들을 낳은 엄마, 자식을 빼앗긴 모성일 뿐이지요. 평화그림책 다섯 번째 권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소용돌이치는 푸른 붓질 위에 붉은 갈필로 제목을 얹은 책 표지를 열면, 일상의 거리가 펼쳐집니다. 아이를 안고 나들이하는 여인, 출근하는 남자, 데이트하는 연인,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아이와 손자의 손을 잡고 장 보러 가는 할머니, 어디론가 여행을 가는 여자와 뛰노는 아이들...... 또 한 장을 넘기자 이 평화로운 사람들은 깃발을 흔들며 거룩한 참전을 종용하는 애국 군중이 되어 버립니다. “나라를 위해 싸워라!” 응원을 받으며 ‘나’는 전쟁터로 나아가는데, 울고 있는 사람은 오직, 엄마뿐입니다.
명령을 따라 나와 똑같은 사람을 향해 총을 쏘던 나는, 날아온 적의 포탄에 온몸이 찢기어 죽어 버리고, 다리도 몸뚱이도 얼굴도 없어져 버립니다. 죽어버린 내가 느끼는 세상은 춥고 어둡습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뒤에야, 눈도 귀도 모두 없어진 뒤에야 내 마음은 무언가를 보고 무언가를 듣고 무언가를 느낍니다. 비로소 웅크린 채 울고 있는 어머니가 보이고, 동생의 미친 듯한 분노가 보입니다. 적의 분노와 증오도 보입니다. 그리고 나는 성찰합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싸우는 걸까? 누구를 위해 죽이고, 누구를 위해 죽음을 당하는 걸까? 무엇을 위한 죽음인가?’
끔찍하게 죽은 사람들이 뒤섞여 넋이 되어 올라오고....., 복수에 나선 동생도 죽었습니다! 엄마의 슬픔은 극한에 이르러 어떤 분노보다도 강하고 깊고 처절합니다. 죽어서야 비로소 내 편도 네 편도 아닌 ‘우리들’이 된 병사의 넋들은 산 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 이야기를, 여러분과 똑같이 살았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 간절함으로 애타게 묻습니다.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형상이 절제된 반추상의 고졸한 그림이, 이 어둡고 무겁고 처참한 이야기의 중압감을 덜어 줍니다. 그러면서도 전쟁의 광기와 슬픔, 분노, 증오의 격한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붓질에서 오랜 세월 반전, 평화, 생명의 예술을 추구해 온 작가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기획에서 출간까지 5년의 세월과, 그 사이에 오고간 한중일 세 나라 작가들의 열정적인 토론도 작품 속에 오롯이 녹아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