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극단 (사계절1318문고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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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지크프리트 렌츠
렌츠는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도스토예프스키, 포크너, 헤밍웨이의 영향 아래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51년에 첫 장편소설 『창공의 보라매』로 작가적 명성을 얻은 뒤 주로 극한 상황에 처한 고독한 인간의 운명, 사회 상황에 대한 개인의 적응 문제, 권력과 대립된 인간 문제 등 보기 드물게 폭넓은 사회 상황을 담은 작품을 발표해 왔다. 1968년에 발표한 『독일어 시간』은 권력과 예술의 갈등을 그린 소설로 출간되자마자 독일 출판계를 뒤흔들었다.
렌츠는 비단 소설뿐 아니라 희곡과 방송극 영역에서도 문학적 성공을 거두었고, 그런 성과를 바탕으로 레싱 문학상, 브레멘 문학상,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상, 동독 문학상, 게오르크 마켄젠 문학상, 괴테 상 등을 수상했다.
국내에 소개된 작품으로는 『독일어 시간』을 비롯해 『아르네가 남긴 것』, 『줄라이켄 사람들』 등이 있다.
옮긴이 : 박종대
책정보 및 내용요약
목차
1. 고귀한 방문
2. 미로
3. 중단된 공연
4. 작별
5. 패랭이꽃 축제
6. 버스 안에서의 결정
7. 전망
8. 제안
9. 그뤼나우의 미래가 시작되다
10. 향토 박물관
11.. 저지된 출발
12. 영광의 금요일
13. 보상
14. 나뭇잎
15. 조언
16. 포기
옮긴이의 말
편집자 추천글
“친애하는 관객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보시는 것은 미로입니다.
한번 들어서면 길을 잃을 수밖에 없는 놀라운 미혹의 길이죠.”
아흔을 바라보는 노작가가 던지는 결코 가볍지 않은 농담
하인리히 뵐, 귄터 그라스 등과 함께 전후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지크프리트 렌츠가 『유랑극단』으로 다시 한 번 국내 독자들을 찾아 왔다. 2009년 독일에서 처음 출간되었을 때, 평단과 언론은 예상치 못한 그의 변신에 주목했다. ‘닮은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두 사내의 탈옥 이야기’라는 구체적이고도 흥미로운 설정, 농담처럼 주고받는 인물들의 대화는 지금껏 렌츠가 보여 준 작품 세계와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평론가와 기자들을 비롯해 많은 독자들은 “역시 렌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렇듯 『유랑극단』은 주로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운명, 사회 상황에 대한 개인의 적응 문제, 권력과 대립된 갈등 등을 다룬 그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여러모로 새롭고 신선하다. 마치 물살을 타듯 유유히 흐르던 내적 독백 대신 은근한 유머와 풍자가 묻어나는 대사들도 그렇거니와,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이야기 방식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렌츠의 작품 중에서 서사적 매력이 가장 돋보이고, 또 다루고 있는 주제 역시 보편적이어서 여러 시각에 따라 폭넓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렌츠는 클레멘스와 하네스라는 두 인물을 통해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를 생생하고 유쾌하게 형상화한다. 탈옥에 성공한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을 탈출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모습이 자연스레 겹쳐지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렌츠는 ‘감옥’이라는 공간과 ‘탈옥’이라는 행위가 지닌 대중적인 코드에 치우치기 보다는 탈옥 이후의 삶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집중한다. 그래서 이 소설의 매력은 스펙터클한 탈옥 과정이나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 있지 않다. 높디높은 감옥 담장 너머의 세계를 경험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그들의 사소하지만 엄청난 변화, 그것이 바로 『유랑극단』이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이다.
감방 동료로 만난 대학교수와 사기꾼, 두 남자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미로 탈출기
이젠뷔텔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클레멘스와 하네스는 감방 동료이다. 클레멘스(1인칭 화자)는 ‘슈투름운트드랑’(질풍노도)을 전공한 독문학과 교수인데, 여자 제자들에게 잠자리를 한 대가로 최고 점수를 준 것이 발각되어 유죄를 선고받았다. 사기꾼 기질이 농후한 하네스는 교통경찰을 사칭해서 한적한 도로에서 법규 위반 차량들로부터 돈을 뜯어내다가 구속되었다. 무뚝뚝한 데다 감방 안에서 하는 일이라곤 잠을 자는 것밖에 없는 하네스의 모습은 평생 학자의 길만 걸어온 클레멘스의 눈에 이상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닮은 구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두 남자 사이엔 어느새 친밀한 교감이 생겨난다.
그러던 어느 날, 교도소에 지방 유랑극단이 위문공연을 온다. 예술 애호가를 자처하는 교도소장의 야심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유랑극단은 수감자들을 위해 <미로>라는 제목의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 하네스는 연극 중간 쉬는 시간을 이용해 죄수 십여 명을 이끌고 유랑극단 버스를 타고 탈옥을 시도한다. 클레멘스 역시 하네스의 손에 이끌려 유랑극단 버스에 몸을 싣는다.
버스가 부르르 떨더니 출발했다. 버스가 교도소의 나무문을 향해 굴러가는 모습이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제 곧 초소를 지키는 남자가 나와 문을 열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다. 문은 버스가 경적을 두 번 울린 뒤에야 열렸다. 경비병이 창가에 서 있던 동료에게 소리쳤다.
“유랑극단 광대들!”
버스는 경사진 도로를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우리는 모두 몸을 일으켰고, 몇몇은 박수를 치거나 고함을 질렀다. 승리의 함성이자 기쁨의 외침이었다. 저 멀리 호수 위로 붉디붉은 낙조가 아름답게 타오르고 있었다. 하네스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마치 축하라도 하듯이.
“저게 보이오, 교수 양반? 우린 지금 낙조 속으로 들어가고 있소.” - 본문 31쪽
어디로 갈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그들은 우연히 ‘그뤼나우’라는 소도시에 도착한다. 그뤼나우는 지방 소도시로, 때마침 ‘패랭이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 시장을 비롯한 많은 시민들은 그뤼나우를 찾은 유랑극단을 열렬히 환영한다. 그들이 탈옥수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그저 자신들의 축제를 빛내 주기 위해 온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하네스 일당은 시민들의 열화 같은 환영에 당황하지만, 곧 하네스의 빛나는 연기력으로 위기를 넘기며 공연을 진행한다. 공연은 성공리에 끝나고 그뤼나우 시장은 그들에게 이곳에 계속 머물며 문화 사업에 활력을 넣어 주기를 부탁한다. 별 볼일 없는 소도시를 최고의 문화 도시로 키우는 것이 시장의 야망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제안을 두고 죄수들 사이에서는 논쟁이 벌어진다. 그러나 결국 ‘공개된 장소보다 훌륭한 은신처는 없다’는 하네스의 말에 모두 공감하며 그뤼나우에 남기로 결정한다. 이들의 활동은 곧 지역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리고, 시장은 클레멘스에게 시민대학 교수직을, 하네스에게는 박물관 관장 직을 권유한다. 두 사람은 시장의 뜻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평화롭던 시간도 잠시, 사건은 조금씩 꼬이기 시작한다. 언젠가는 붙잡힐 거란 두려움에 떨던 죄수들은 더 이상 위험해지기 전에 그뤼나우를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떠나려는 찰나 그들이 패랭이꽃 축제의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들은 시장과 시민들의 호의를 차마 뿌리치지 못한다. 그런데 수상식장에 이젠뷔텔 교도소장과 진짜 유랑극단 단장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그들은 붙잡혀 다시 교도소로 돌아온다.
타우버 소장과 제복을 입은 운전사가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랐다. 운전사는 종이를 들고 좌석을 차례로 돌면서 승객들에게 몸을 숙여 무언가를 물었다. 아마 종이에 적힌 명단과 대조하는 모양이었다. 운전사는 가끔 자신이 물어본 사람의 어깨에 한 손을 올리기도 했는데, 아마 성실한 답변에 대한 감사의 표시인 듯했다.
마침내 그가 타우버 소장에게 명단을 넘기자 소장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이크를 잡고 우리에게 몸을 돌렸다.
“친애하는 수감자 여러분, 정의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입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원래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게 제 의무입니다. 그러니 양해 바랍니다.” - 본문 93~94쪽
이로써 넓은 세상으로의 짧은 유랑은 탈출 때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끝이 난다. 다시 좁은 감방에 갇힌 죄수들은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고, 그들 중 한 명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교도소장은 절망한 사람들에겐 위로가 필요하다며 다시 유랑극단을 부른다.
이번에 공연할 작품은 <고도를 기다리며>. 하네스는 또다시 탈출 계획을 세우고, 클레멘스에게도 함께하기를 청한다. 하지만 클레멘스는 동참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하네스는 교도소를 탈출할 절호의 기회를 포기하고 감옥에 남는다. 클레멘스를 혼자 감방에 남겨두고 떠날 수가 없고, 무엇이든 함께 이겨내는 것이 더 수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두 사람은 자발적으로 다시 감옥에 남는다.
한번은 하네스가 열린 창문 앞으로 나무를 옮겨다 놓았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부드럽게 살랑거렸다. 머릿속으로 나도 모르게 두 방랑객이 떠올랐다. 그들은 나뭇잎도 말을 한다고, 속삭이고 중얼거리고, 살랑대면서 대화를 나눈다고 말했다. 둘 중 한 사람은 나뭇잎이 삶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 궁금해 하기도 했다. - 본문 110쪽
‘여기가 아닌 곳’을 꿈꾸는 두 남자의 희비극
인간은 누구나 가 보지 않은 길을 꿈꾼다. 여기가 아닌 저기, 상상 속에서나 그리던 낯선 세계를 갈망한다. 소설 속 두 남자는 그러한 욕망을 직접 실행에 옮긴다. <미로>라는 연극을 보다가, 마치 연극처럼 미로 같은 감옥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짧지만 강렬한 감옥 너머의 세계를 경험한 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이다. 렌츠는 인간이란 무엇인지, 생(生)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관념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독자들을 미로 속으로 초대한 뒤 그 안에서 마음껏 헤맬 수 있도록 놔둔다. 그리고 미로 바깥의 세계를 살짝 보여줄 뿐이다. 미로 속에 남든지, 밖으로 나가든지, 그 선택은 오로지 독자들의 몫이다.
『유랑극단』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재미는 작품 속에서 중요한 장치로 등장하는 연극이다. 연극은 ‘여기’와 ‘저기’를 이어주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다. 실제로 클레멘스와 하네스의 모습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을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연극은 소재로써만 기능하지 않는다. 렌츠는 인생이라는 연극 무대를 감옥이라는 상징적인 공간 안에 옮겨다 놓는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앙상한 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리듯 이들 역시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의 속살이 드러나기를 기다린다.
예술을 통한 판타지 여행은 한순간에 백일몽처럼 끝나고, 그로써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는 감옥의 높은 담장만큼이나 다시 확고하게 그어진다. 현실로부터 일탈의 결과도 만만찮다. 1인칭 화자의 감방 동료 하네스는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또 다른 죄수는 자살까지 감행한다. 그런 가운데 탈출 계획이 다시 수립된다. 이번에는 예전보다 훨씬 기회가 좋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하네스는 탈옥을 포기하고 화자와 함께 감옥에 남기로 결정한다. 그사이 감옥에서 새로 상연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처럼 삶은 결국 끊임없는 기다림이라는 인식과 함께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며 현실을 버텨 나갈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하네스가 말한다. 어차피 견뎌 내야 하는 것이라면 슬픔을 같이 나눈 사람과 함께 견뎌 내는 것이 한결 수월할 거라고. 인간은 실존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현실을 버텨 내야 한다는 것이다. 슬프면서도 따스한 위안을 담은 메시지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실존은 인류의 영원한 과제이자 테마인 동시에 많은 예술가들이 화두로 삼아 온 주제 중 하나이다. 렌츠는 이 보편적이면서도 난해한 주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변죽 울리기’를 택한다. 대상의 가장자리를 쉼 없이 때리면서 결국에는 그 심연(본질)에 다다르는 것,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노작가는 결코 길지 않은 이 한 편의 희비극에 그것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평소 렌츠의 팬이었다면 『유랑극단』에서 보여 준 그의 변신에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 그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 할지라도 현실과 상상을 자유롭게 오가는 사유의 확장이 주는 깊은 울림을 경험할 것이다.
렌츠의 소설은 지리한 일상의 위기에서 언제나 독자들을 구해 낸다. 인간에 대한 통렬한 문제의식, 명쾌하고 지적인 문장, 시종일관 잃지 않는 유머러스함까지, 모름지기 멋진 이야기라면 가졌을 법한 미덕을 빠짐없이 갖춘 까닭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바깥’으로 나가고 싶을 때, 언제나 렌츠를 찾고, 또 기다린다. - 유희경 (시인, 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