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과 흙의 아이 변구, 개경에 가다 (역사 일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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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서성호
그린이 : 이영림
책정보 및 내용요약
목차
흙과 나무를 준비하다
가을걷이
청자를 두 배로 구워 내라고?
운명을 건 불 때기
터지는 소리
목숨을 건 도망
가라앉은 청자배
소래사에서 기도를
벽란도에서 개경까지
황제의 도시
장사는 어려워
개경의 밤거리
누구나 뭐든지 사고팔고
팔관회 구경
신분의 굴레
감옥에 갇히다
나를 미워하지 마
나도 용 됐다
새로운 시작
편집자 추천글
청자와 대장경의 나라, 고려
-그곳에는 누가 살았을까
다시 통일된 우리나라
왕건이 세운 고려는 우리 역사에서 신라에 이어 두 번째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비록 거란이나 몽골 같은 북방의 강한 외적들에게 침입을 받기도 했지만 고려 왕조는 500년 가까운 긴 세월 동안 이어졌습니다.
고려의 대표적인 문화 유산인 청자와 팔만대장경
고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청자와 팔만대장경 같은 문화 유산입니다. 교과서에도 오랫동안 수록된 그 시대의 대표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청자를 만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습니다. 단지 고려는 향·소·부곡이라는 특수행정구역을 두어 일반 군현에 비해 차별했다고만 나오지요. 그럼 지금까지 사랑받는 최고급 도자기를 만들었던 장인 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청자 공물을 피하려고 마을을 떠난 장인들
향·소·부곡 중에서 청자를 만드는 곳을‘자기소’라고 불렀습니다. 산과 바다가 가까워 땔감이나 원료가 되는 흙, 뱃길을 두루 갖춘 곳에 가마를 짓고 구워낸 청자는 배로 실어 날랐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한 해 농사를 짓고서 또 청자를 구웠습니다. 일부는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지만, 일반 군현이 내는 세금에 더해 청자까지 바쳐야 하는 부담 때문에 자기소의 주민들은 늘 가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정기적인 공물 외에 별공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별공이 너무 과중할 때 자기소의 장인들은 몰래 마을에서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고려 청자 보물선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서 고려 시대 청자 운반선이 발견되었습니다. 배에는 2만 3천여 점이 넘는 청자와 항해용 물품이 남아 있었습니다. 청자 묶음에 달려 있는 목간을 연구해보니 이 배는 강진에서 만들어진 청자를 가득 싣고 개경으로 가다가 충남 태안 대섬 앞바다에 가라앉은 것이었습니다.
‘역사 일기’의 상상력
이번 역사 일기 6권 고려 편은 바로 강진에 있던‘대구소’라는 도자기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자기소의 주민들이 청자 공물을 피하려고 도망쳤다는 기록과 청자를 싣고 개경으로 향하다 침몰한 배의 유물을 모티브로 해서“불과 흙의 아이 변구, 개경에 가다”라는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자기소의 주민들이 농사를 짓고, 도자기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당시의 배와 항해 방법, 그리고 이야기의 주인공이 도착한 수도 개경의 생활 모습까지,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려의 다양한 이야기와 관련 역사 지식을 담고 있습니다.
본문 소개
청자를 만드는 자기소 마을에 사는 변구와 마을 사람들은 한 해 농사일이 끝나도 쉬지 못하고 또 청자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변구는 아버지와 함께 나라에 바칠 청자를 굽다가 깜빡 잠이 드는 바람에 일을 망쳐 버렸습니다. 살아갈 길이 막막해진 두 사람은 다음날 새벽, 강진에서 개경으로 가는 청자배를 타고 몰래 마을을 떠납니다. 하지만 중간에서 풍랑을 만나 배는 가라앉고 변구는 아버지와 헤어지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개경에 다다른 변구는 청자와 비단을 파는 시전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하다 노비로 팔려갈 위기를 넘기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변구는 상점에 들어온 싸구려 청자를 정확하게 판별해 내는 능력으로 시전 상인의 눈에 들어 상점의 정식 점원이 됩니다.
일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쉬지 않으니 조금씩 밭 모양새가 났다. 산비탈에 이 조그만 밭을 만들려고 아버지와 나는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했다. 지금 농사짓는 땅만으로는 먹고살기가 너무 힘이 들어서다. 논밭을 새로 만들면 얼마 동안은 세금을 안 내도 된다지만 세상에 공짜는 정말 없나 보다. 황소도 나만큼 힘들게 일하지는 않을거다.
- 1104년 8월 20일「산비탈에 밭 만들기」(본문 6~7쪽)
“얼마 전부터 마을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청자 별공이 떨어질 때가 된 것이다. 며칠 쉴만하다 싶었는데 오늘 드디어 읍사에서 향리가 왔다.
(…)
촌장님 옆에 서 있던 아버지가 향리에게 말했다. “이번 별공은 양이 너무 많습니다. 청자 한 가마에 꼬박 두 달 잡는데, 이번은 양이 두 배라 서너 달은 걸릴 겁니다.”
(…)
“위에서 만들라면 만들어야지 웬 잔말이 이렇게 많아! 기한은 두 달이다.”
- 1104년 10월 10일「청자를 두 배로 구워 내라고?」(본문 12~15쪽)
배가 밀물을 타고 포구를 떠나자 털보 아저씨가 우리를 불러냈다.
“돛줄을 당겨! 그거 말고 반대쪽 줄 말이야! 허리가 부러지도록 당겨! 정신 놓으면 돛 활대에 치여 바다에 빠진다!”
뱃삯이 충분하지 않았는지 털보 아저씨는 아버지와 나를 마구 부려 먹었다. 배 위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뭐가 뭔지 이름도 잘 모르겠고, 뭘 하라는 건지 잘 알아듣지도 못했다.
- 1104년 11월 23일「목숨을 건 도망」(본문 22~25쪽)
성벽 가운데에 우뚝 선 큰 문을 지나 한참을 걸었다. 길이 점점 넓어지더니 빽빽한 기와집과 길가의 상점들, 저만치 보이는 궁궐과 높은 탑, 떠들고 소리치는 사람들 목소리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 1104년 12월 3일「황제의 도시」(본문 36~37쪽)
털보 아저씨는 나를 앞세우고 말없이 개경으로 향했다. 날이 저물고 있어서 얼마 가지 않아 주막에 들어야했다. 나는 벌컥벌컥 술을 들이켜는 털보 아저씨를 보며 고민했다. 또 도망가야 하나?
- 1105년 1월 22일「나를 미워하지 마」(본문 52~53쪽)
“청자는 빛이야. 빛은 곧 색이지. 색이 깊고 맑은 청자를 만들려면 불을 제대로 먹어야 되는데, 색이 뜬 걸 보니 이 청자는 만들 때 불 온도를 올리다 말았어.”
(…)
“제법이구나! 어디 그 말이 맞는지 한번 보자.”
주인어른이 청자 감정인 노인과 함께 서 있었다. 청자를 건네받은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애 말이 맞소이다. 어린 눈으로 쉽지 않은 감정을 하다니 신통하구려.”
- 1105년 1월 23일「나도 용 됐다」(본문 54~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