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판 스캔들 ― 저작권과 해적판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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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야마다 쇼지
옮긴이 : 송태욱
책정보 및 내용요약
저작권법은 원래 저작자의 권리와 이용자의 권리를 균형 있게 보호함으로써 문화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에서 생겨난 제도이다. 저작물이 가지는 재산권으로서의 권리와 공공이 저작물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출판 인쇄 문화의 발달과 함께 확립된 저작권 개념은 무한 복제와 가공 변형이 가능한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기술 환경의 출현에 따라 흔들리게 되었다.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재산권으로서의 권리가 위협받게 되고, 저작권의 이해 당사자들은 지적 재산권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고 확장하고 있다. 이 책은 18세기 영국에서 저작권 개념이 확립되던 시기에 저작권의 개념과 기한을 둘러싸고 벌어진 영구 저작권 분쟁이라는 역사적 재판을 집중 조명한다. 이를 통해 오늘날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재산권으로서의 저작권을 옹호하고, 이를 침해하는 행위를 해적질로 비난하고 있는 현실에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목차
주요 등장인물
1장_책의 '해적'과 독점
2장_카피라이트로 몰려드는 사람들
3장_19일간의 법정투쟁
4장_스코틀랜드 '악덕 지식'의 계보
5장_현대에 남긴 유산
에필로그
저자의 글
해제 : 저작권의 재구성을 위하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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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추천글
굿다운로더 캠페인에 던지는 질문
자신이 목욕하던 모습을 훔쳐보던 나무꾼에게 선녀는 두 눈을 부릅뜨며 이렇게 일갈한다. “아직도 훔쳐보는 게냐?” 굿다운로더 캠페인의 한 장면이다. 보고 싶으면 대가를 지불하고 보라는 것이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에 대해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권리를 인정하고 이를 침해하는 행위를 일종의 범죄 행위로 규정한다. 인터넷 펌질이나 P2P 파일 공유 및 웹하드 서비스 이용 등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저작물의 사적 이용에 대해서도 무단 복제 및 해적 행위라는 비난과 낙인이 확산되고 있다.
저작권법은 원래 저작자의 권리와 이용자의 권리를 균형 있게 보호함으로써 문화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에서 생겨난 제도이다. 저작물이 가지는 재산권으로서의 권리와 공공이 저작물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출판 인쇄 문화의 발달과 함께 확립된 저작권 개념은 무한 복제와 가공 변형이 가능한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기술 환경의 출현에 따라 흔들리게 되었다.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재산권으로서의 권리가 위협받게 되고, 저작권의 이해 당사자들은 지적 재산권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고 확장하고 있다. 이 책은 18세기 영국에서 저작권 개념이 확립되던 시기에 저작권의 개념과 기한을 둘러싸고 벌어진 영구 저작권 분쟁이라는 역사적 재판을 집중 조명한다. 이를 통해 오늘날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재산권으로서의 저작권을 옹호하고, 이를 침해하는 행위를 해적질로 비난하고 있는 현실에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식의 독점과 공유를 둘러싼 논쟁의 기원을 찾아서
디지털 환경에서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콘텐츠 제작사들이 법원에서 벌이는 힘겨루기와 저작권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의회에 로비를 벌이는 모습 등 현재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분쟁 구도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도널드슨 대 베케트 재판의 구도와 거의 판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사하다. 저작권 시한이 만료될 때마다 저작권법을 개정하며 이익을 방어하는 소위 ‘미키마우스법’을 비롯해 소리바다, 냅스터,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과 에이즈 치료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와 리눅스의 대결, 종자와 식물 품종 등에 관한 생명 특허 등을 둘러싼 논쟁은 지적재산권의 보호가 과연 누구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책은 18세기 영국의 법정에서 저작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세기의 재판을 한 편의 법정 드라마로 재구성해 보여줌으로써 저작권이 영구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기한이 정해지게 된 역사적 배경을 펼쳐 보인다. 영구 저작권을 주장하는 독점 출판업자 베케트와 해적 출판업자 도널드슨이 벌이는 치열한 법적 공방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하면서 저자는 오늘날 너무나 당연한 권리로서 인식되는 저작권이 사실상 서로 충돌하는 이해관계의 산물에 불과하며 또한 흔히 불법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해적판이 문화 발전에 상당히 기여했음을 드러낸다. 저자의 권리를 방패삼아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독점 세력들의 행태는 도널드슨 대 베케트 재판으로부터 2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저작권법이 탄생한 18세기 영국의 사례를 통해 저자는 저작권 및 지적재산권 문제를 ‘재산권 대 도둑질’의 구도가 아니라 ‘지식의 독점이냐, 공유냐’라는 구도로 논의함으로써 지금의 저작권 분쟁이 갖는 의미를 되짚어본다.
저작권의 탄생, 저작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저작권법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해적 출판업자 도널드슨과 독점 출판업자 베케트의 대립하는 이해관계와 그 배후 세력들 간의 알력, 출판 인쇄 문화의 발달, 재산권의 형성과 강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관계, 계몽주의와 종교개혁의 흐름, 신교의 등장과 식자율의 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저작권 제도라는 것이 보편타당한 것이 아니라 근대로의 전환기였던 18세기 영국이라는 특정한 시기와 장소의 역사적 산물로서 성립한 것임을 보여준다.
애초에 저작권은 저작자의 권리가 아닌 카피라이트copyright, 즉 인쇄할 권리를 뜻했다. 하지만 저작권은 저작권자의 권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확대되었고,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 시장 논리가 지식과 정보에 투사되면서 저작권 제도는 창조자인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한다기보다는 저작권을 확보한 저작권자, 즉 거대 문화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디즈니사 애니메이션의 저작권 보호 기한을 연장하기 위해 거듭 개정되어 ‘미키마우스법’이라는 조롱을 받고 있는 미국의 저작권법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작권법을 독점 이익을 방어하고 확장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2004년 한해에만 지적재산권 로열티로 513억 달러(약 60조 원)에 달하는 수입을 올렸다.
오늘날 문화 산업 혹은 문화 콘텐츠 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인식은 개인과 기업을 넘어 국가 차원으로 확대되어가고 있고, 저작권법은 다국적 기업의 세계 시장 지배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글로벌 스탠더드를 빙자하여 각국의 고유한 역사적 배경과 현실을 무시하며 미국 자본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 있다. 18세기 영국에서 공유지였던 토지를 귀족이 사유화하는 인클로저 운동이 진행됐던 것처럼, 저자는 저작권 소유자들이 문화의 영토를 사유화하면서 마치 대농원의 소유자인 양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이 책은 저작권의 역사적 탄생 과정을 되짚으며, 저작권이 과연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를 되묻고 있다.
추천사
책장을 열면 바로 18세기 영국이다. 해적판을 출판하는 후발 출판업자와 독점권을 주장하는 대형 출판업자들이 흥미진진한 대결을 벌인다. 제한된 권리로서의 저작권 개념이 성립되던 당시의 논쟁이 왜 지금에 와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저작권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_우지숙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18세기 영국 법원의 소송사건 하나를 통해 저작권 제도의 본질을 이처럼 흥미진진하게 파헤친 책이 또 있을까? 독점과 공유 사이의 긴장과 대립, 이는 저작권 제도의 키워드다. 독점과 공유,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이 책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이다. _남희섭 변리사,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정책위원장
저작권에 관한 모든 오해는 저작권과 소유권을 구분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오해를 푸는 출발점은 소유권과 달리 저작권이 왜 영구적 권리가 아닌지를 깨닫는 것이다. 이 책이 들려주는 드라마틱한 저작권의 역사는 문화적 풍요의 시대에 우리가 어떤 실수를 하고 있는지 알려줄 것이다. _윤종수 판사,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결합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었지만, 저작권법과의 갈등과 불화는 끊이지 않고 있다. 무릇 어떤 문제가 얽히고설켜 혼돈스러울 때는 처음부터 모든 논의의 구석구석을 차근히 뜯어보고 전체 맥락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저작권’이라는 문제의 근원을 탐색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_박성호 변호사,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책의 내용
저작권을 둘러싼 법정 투쟁, 도널드슨 대 베케트 재판
이 책은 저작권의 영구적인 독점을 꾀하는 대형 서점주들에게 도전한 ‘해적 출판업자’ 도널드슨의 법정 투쟁을 축으로 저작권법의 탄생 과정을 다루고 있다. 1774년 2월 22일, 영구 저작권을 둘러싼 세기의 분쟁이었던 도널드슨 대 베케트 재판에서 역사적인 판결이 내려진다. 당시 스코틀랜드의 시인 톰슨의 시집인 『사계절』의 출판권을 놓고 벌인 재판에서 독점 서점주가 패하고 해적 출판업자가 승리한 것이다. 당시에는 세계 최초의 저작권법으로 평가되는 앤여왕법이 있었다. 앤여왕법은 저작권자에게 인쇄의 독점권을 인정하는 대신 14년의 기한과 작가의 생존시 1회의 연장, 1710년 이전 출판물의 경우 21년의 독점권을 인정한다는 법률이었다. 독점 서점주들은 앤여왕법으로 보호되는 기간이 끝나가자 학문의 진흥을 명목으로 보호기간 연장을 의회에 청원한다. 이들은 책이란 고귀한 정신을 지닌 저자의 노력이 담겨 있는 것이므로 그 출판권을 영구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곧 저자의 인권을 지켜주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해적 출판업자 도널드슨은 천부의 재능을 독점하는 것이야말로 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19일간의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재판부는 결국 해적 출판업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재판 이후 저작권 개념은 저작권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동시에 그 권리를 기한을 정해 제한하는 것으로 확립되었고, 오늘날 저작권법의 근간이 되어주고 있다.
18세기 저작권 분쟁을 생생히 재현한 한 편의 법정 시대극
저자는 이러한 저작권 분쟁 과정을 재판 서기가 법정 일지를 써내려가듯 날짜와 요일별로 기록해 당시 상황을 생생히 재현한다. 여기에는 도널드슨 측과 베케트 측 양 진영의 법률가들과 귀족들의 치밀한 논리와 팽팽한 대결 구도에 근거하여 진행되는 재판과정, 그리고 당시 가면재판을 열어 해적판을 몰아내고자 했던 독점 서점주들의 책략과 음모가 드라마틱하게 담겨 있다. 끈질긴 사투 끝에 저작권은 관습법이며 저자가 가진 권리는 영구적이라는 판결을 얻어낸 독점 서점주들과 이에 맞서 상황을 역전시키려는 도널드슨의 치밀하면서도 험난한 시나리오가 극적으로 펼쳐진다. 특히 서로 라이벌 관계에 있는 당대의 지식인과 귀족, 법률가들의 명예욕과 원한 등 사적인 관계가 저작권 분쟁을 둘러싼 재판에 개입되고, 재판 이후를 소개하는 이들의 후일담 등은 한 편의 시대극을 읽는 것처럼 흥미롭다. 저자는 도널드슨이 저작권 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까지 19일 동안의 법정 투쟁 과정을 다양한 기록들의 증언을 통해 극적인 드라마로 구성해내고 있다.
18세기 영국의 문화적 풍경을 생생히 재현하다
이 책은 저작권 분쟁을 중심으로 책의 인쇄에서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던 18세기 서점의 풍경, 지금의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당대 지식인들의 활동, 최초의 세책점과 당시의 식자율, 교육 제도와 종교의 관계, 저작권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런던의 ‘고든 폭동’ 등 문화사적으로 풍부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칼뱅의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교에서 분리되어 나온 장로파 교회는 성서절대주의를 신봉하고 있었기 때문에 민중들에게 성서를 보급하고 읽히는 문제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장로파 교회의 성서절대주의는 교리문답서, 성서, 찬송가책 등이 이른바 해적판으로 대량생산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스코틀랜드 출판업의 기반이 되었다. 장로파 교회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쇄업자가 늘어나면서 스코틀랜드에서 출판업이 융성한 것이고, 교회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수많은 해적판들이 당시 스코틀랜드의 문예 부흥에 커다란 기여를 한 셈이다. 실제로 18세기 스코틀랜드는 근대 문명의 요람이라고 할 만큼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흄, 제임스 와트, 애덤 퍼거슨 등 기라성 같은 인재들을 많이 배출했다. 그 밖에도 이 책은 18세기 전반 에든버러에서 문화인으로 활동했던 시인 램지의 생애를 추적하며 산업혁명 시기 광산 노동자의 일상이나 문인들의 문예그룹 혹은 근대사회의 기초를 만든 사람들의 네트워크 등 18세기 영국의 다양한 문화적 풍경을 소개한다.
본문 발췌
1774년 2월 22일, (…) 이날 역사적인 재판의 판결이 내려졌다. ‘영구 저작권’을 둘러싼 ‘도널드슨 대 베케트 재판’의 상원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재판에서 싸운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의 ‘해적 출판업자’ 부자父子였다. 그들은 아버지 알렉산더 도널드슨과 아들 제임스 도널드슨이다. 재판에 회부된 사람은 토머스 베케트를 비롯한 열다섯 명이었다. 모두 런던의 독점적인 대형 서점주들이다. 도널드슨과 베케트 측은, 스코틀랜드 태생의 시인 제임스 톰슨의 시집 『사계절』의 저작권을 둘러싸고 싸우고 있었다. 도널드슨은 『사계절』의 저작권 보호 기간이 소멸되었기 때문에 누가 출판하든 자유라고 했고, 베케트 측은 저작권은 영구적으로 자신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_ pp.11~12
만약 ‘도널드슨 대 베케트 재판’에서 베케트가 이겨 영구 저작권이 인정되었다면 오늘날의 문화는 어떻게 되었을까? (…) ‘영구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아 작자의 인권이 무시되었을까? 나는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권리가 보장되는 기간을 작자의 수명과 관련시킴으로써 작품이 작자의 것이라는 사실을 오히려 부각시킨다. 저작권은 언젠가 소멸된다는 원칙에 의해 작자의 생명·인궈과 작품의 관련성이 강해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을 성취한 사람은 ‘해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쪽이었다. _ pp.16~17
서점주 조합은 정부의 검열을 대신했기 때문에 독점이 허락되었다. 그런데 17세기 말이 되자 서점주 조합으로부터 검열 기능을 박탈했고, 조합은 자신들의 독점을 정당화할 수 있는 다른 명분을 내세울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서점주 조합이 들고 나온 것이 ‘학문의 진흥’이라는 명분이었다. ‘학문의 진흥’을 위해서는 책의 저자에게 이익이 주어져야만 한다. ‘해적판’이 횡행하면 권리자의 몫이 줄어들어 저자의 의욕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책에 씌어진 것의 재산권을 지켜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지금도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는 주장인데, 17세기 말에 생긴 논법이다. 그러나 ‘학문의 진흥’이라는 명분은 서점주 조합의 독점을 지키기 위한 ‘명목’에 지나지 않았다. 서점주는 권리와 함께 원고를 다 사버렸고, 서점주가 그것을 출판하여 아무리 많은 돈을 벌더라도 이익이 저자에게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서점주 조합은 ‘학문의 진흥’을 위해 ‘문학의 소유권’을 법률로 정해달라고 의회에 청원했다. 이 청원이 결실을 맺어 1710년 세계 최초의 저작권법인 ‘앤여왕법’이 만들어졌다. _ pp.76~77
‘앤여왕법’의 역사는 주목할 만합니다. 서점주들이 어떤 견해를 취하고 있었는지, 그 어리석음이 뻔히 들여다보일 뿐입니다. 그들이야말로 14년간의 소유권을 담은 법률을 요구했는데, 지금에 와서야 그것은 관습법에 의한 권리이므로 앞으로도 계속 보호되어야 한다고 큰소리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영구적인 권리라며 의심하지 않던 것을, 단 14년간이라는 기한이 정해진 권리로 요구한다는 걸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 ‘앤여왕법’은 문학의 진흥을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만, 그 실상은 그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앤여왕법’은 저자가 아니라 서점주를 진흥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법률로 무엇을 얻었을까요? 영구적이어야 할 것에 14년이라는 기한이 붙게 된 것은 왜일까요? (…) 소유권이 영구적이라고 생각했다면 ‘앤여왕법’에 반대했겠지요. ‘앤여왕법’의 조목을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는 “저작권을 정해진 기간에 귀속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그때까지 갖고 있지 않았던 권리를 새롭게 주었던 것입니다. 영구적인 권리에 기한을 붙이고 벌칙을 부과하는 바보 같은 법률이 어디 있겠습니까? _ pp.147~148
‘도널드슨 대 베케트 재판’으로 영국의 출판계에는 변화가 나타났다. 그 첫 번째가 고전의 해방이다. ‘앤여왕법’ 이전부터 있었던 책의 인쇄·출판이 자유로워진 덕분에 고전을 다시 간행하는 사업이 대두했고, 그것이 오랫동안 출판계를 떠받쳐주었다. 두 번째는 신인이나 신작에 대한 투자가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권리는 최장 28년밖에 보호되지 않기 때문에 서점은 새로운 필자를 키워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힘을 쏟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18세기 말부터 영문학이 융성하게 된 이유다.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 문화를 진흥시킨 것이다. _ p.305
저작권이 연장되면 가장 득을 보는 것은 저작자가 아니라 저작권자이고 저작물을 유통시켜 이익을 얻는 회사다. 콘텐츠 유통 산업은 저작자들로 하여금 정에 호소하는 주장을 하게 하고, 그것을 이용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저작자들은 콘텐츠 유통 산업으로 착취를 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산업의 이익 구조를 지키기 위해 떠받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창작의 인센티브를 높이기 위해 저작자들은 보호 기간을 연장할 것이 아니라 인세율을 올려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보호 기간의 연장을 요구하는 저작자들 사이에서 그러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그들이 콘텐츠 유통 산업의 대변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좋은 증거일 것이다. _ pp.32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