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노 구라파식 이층집 (사계절1318문고 68)
- 793
저자소개
지은이 : 박선희
책정보 및 내용요약
『파랑 치타가 달려간다』로 제3회 블루픽션상을 수상한 박선희의 신작으로, 30년 된 구라파식 이층집에 모여 사는 어느 ‘문제적 가족’에게 일어난 마술 같은 이야기를 그렸다.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무너져 가는 낡은 집과 그 집에 사는 가족에게 소리 없이 찾아든 균열과 갈등을 절묘하게 연결시킨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목차
편집자 추천글
제3회 블루픽션상 수상 작가 박선희의 신작 장편소설
여기, 한 가족이 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구라파(유럽)식 이층집에서 삼대가 모여 산다. 가장인 남자는 퇴직 후 피시방을 운영하고 있고, 그의 아내는 매일 남편의 점심 도시락을 챙기는 평범한 가정주부다.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인 할머니는 자식들의 대소사를 일일이 챙길 만큼 영향력을 갖고 있다. 적당한 나이에 좋은 여자 만나 결혼한 장남은 얼마 전 분가를 한 상태이며, 영문학을 전공한 큰딸은 제법 괜찮은 회사에 다닌다. 물론 스킨십까지 스스럼없이 나누는 애인도 있다. 고등학생인 막내딸은 비록 공부에는 소질이 없지만, 모난 데 없는 밝은 성격을 지녔다. 이들은 저녁이면 다 같이 모여 밥을 먹고, 후식으로 신선한 과일과 갓 내린 원두커피를 마신다. 구라파식 이층집에 어울릴 만한 우아하고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이다. 많은 이들이 꿈꾸는 ‘스위트 홈’의 전형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가족의 행복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 시작은 30년 된 집이 삐거덕거리면서부터다. 근사한 외관과는 달리 실제로 집 여기저기가 소리 없이 병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타일이 깨지고 마루가 주저앉더니, 급기야 대문 담장까지 무너져 버린다. 담장과 함께 ‘가족’이라는 단단한 외벽이 무너지는 순간, 꽁꽁 감춰 두었던 개개인의 속살이 드러난다. 그것을 가장 먼저 목격하는 건 막내딸이다. 야동 마니아 아빠와 에스프레소 중독자 엄마, 일흔 넘어 독립을 선언하는 할머니에 흑인 이슬람교도와 사랑에 빠진 언니까지……. 과연 이 가족에게는 무슨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일까? 또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도미노 구라파식 이층집』(사계절1318문고 68)은 『파랑 치타가 달려간다』로 블루픽션상을 수상한 박선희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로, 30년 된 구라파식 이층집에 모여 사는 어느 ‘문제적 가족’에게 일어난 마술 같은 이야기를 그렸다. 마치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무너져 가는 낡은 집과 그 집에 사는 가족에게 찾아든 위기의 과정을 절묘하게 연결시킨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30년 된 구라파식 이층집에 모여 사는 어느 ‘문제적 가족’의 위기 탈출 프로젝트!
여고생 몽주는 얼마 전 학교 마술부에 가입했다. 할머니의 생신 선물로 마술쇼를 보여 드리기 위해서다. 열심히 실력을 갈고닦아 카드 배니싱을 멋지게 성공하는 것이 여름방학 최대 목표. 그러나 마음만큼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아 고민이다. 몽주는 무궁무진한 마술의 세계를 경험하면서 점점 그 매력에 빠져든다.
그러던 어느 날, 몽주는 마술 연습을 하기 위해 마술부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유일한 마술부원인 도현과 무열은 몽주의 집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집을 둘러보던 두 사람은 금이 간 담장과 삐거덕대는 마룻바닥 등 집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심상치 않은 징후들을 발견한다. 그때부터 집은 기다렸다는 듯이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할머니는 박살난 타일 위에 할 말을 잃고 서 있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이 금방이라도 쿵 쓰러질 것 같았다. 통 큰 할머니가 이 정도로 충격을 받을 줄 몰랐는데.
“전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타일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게 몇 년 전부터였으니까.”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들이마시고 엄마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아주 남의 집 얘기하듯이 하는구나. 그럴 줄 알았다면 식구들한테 조심이라도 시켰어야지. 집이 이 모양이 된 걸 보고 태연하게 그럴 줄 알았다니.”
할머니는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뭐가 뒤바뀌어도 한참 뒤바뀌었다. 이층 테라스는 엄마의 장소가 아니었던가?
“어머니, 이 집 이제 수명이 다한 거예요. 이사를 갈 때가 된 거죠.” - 본문 31~32쪽
몽주는 마술에 사용할 스카프를 찾기 위해 언니 방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일기장을 보게 된다. 언니의 일기에는 시시콜콜한 직장 동료 험담부터 다소 민망한 연애 이야기, 심지어 몰래 엿들은 아빠 엄마의 은밀한 대화까지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그때부터 몽주는 언니 몰래 일기를 훔쳐보기 시작하고, 본능적으로 가족에게 닥쳐 올 위기를 감지하게 된다. 무너지고 있는 건 집뿐만이 아니구나, 하고.
무엇보다 심각한 건 엄연한 ‘부부 관계’임에도 오랫동안 ‘관계’가 없는 아빠 엄마의 보이지 않는 갈등. 게다가 늘 무기력해 보이던 엄마는 동네 카페에서 바리스타 강습을 받으면서 하루하루 생기를 되찾아 가는 것 같다. 몽주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위태롭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하루 종일 피시방 계산대에 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때우는 아빠를 생각하면, 자꾸 밖으로만 겉도는 엄마가 이해되기도 한다.
아빠는 ‘야동’에 푹 빠져 있었다. 기가 차서. 모니터에 거의 얼굴을 갖다 대고 앉아서는 누가 가는지 오는지도 몰랐다. 어린 손님이 카운터 탁자를 두드릴 때서야 몽롱해진 눈을 위로 향했다. 출입문 옆에서 잠깐 야동을 훔쳐보던 나는 얼른 피시방을 나갔다가 잠시 후 “아빠!” 소리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기겁해 허둥지둥 화면을 내리는 모습이라니. 피시방에서 인생을 망치는 건 어린 손님들뿐만이 아닌가 보다. ?본문 49쪽
이층 테라스의 타일이 깨진 뒤로 수도 파이프가 고장 나고 보일러도 작동을 멈춘다. 그리고 며칠 뒤 급기야 집 담장이 무너진다. 마치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쓰러져 가는 집을 보면서 할머니는 점점 더 의기소침해진다. 엄마는 더 이상 이 집에 의미가 없다며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자고 제안하지만 할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전에 없던 냉기가 집 안 가득 흐르는 가운데, 설상가상 결혼하고 몇 해 동안 아이가 없던 오빠 부부는 아이를 입양해 기르겠다고 한다.
결국 집을 팔기로 결심한 할머니는 이사 자금을 대 주는 조건으로, 자신은 따로 나가 살겠다고 선언한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할머니의 독립 선언에 정신이 멍한 것도 잠시, 그나마 믿었던 언니마저 흑인 이슬람교도 애인을 따라 캐나다 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만다.
인간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든 신은 망치로 자기 머리통을 치며 반성해야 한다. 나 같은 애는 어떡하라고. ‘이 집이 주는 의미’ 때문에 가장 골치가 아픈 사람은 복잡 미묘한 내면을 지닌 엄마도 아니고, 그런 엄마를 꿰뚫어보는 언니도 아니다. 바로 단순 무식한 머리통을 가진 나란 말이다. 아무튼 꽤나 발칙한 척하는 언니와 달리 난 엄마가 경계를 넘어서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구라파식 이층집에 사는 사람들이 산산조각 난 타일처럼 어지럽게 흩어지는 건 원치 않으니까. ?본문 187쪽
몽주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한 가족을 구해 내기 위해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감행하기로 마음먹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상 최대의 마술쇼. 이제 막 초보 수준에서 벗어난 몽주는 과연 마술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과연 몽주의 바람대로 당최 답 안 나오는 이 가족에게 마술과도 같은 기적은 일어날 수 있을까?
마술은 기다림이다. 조심스런 기대와 달콤한 약속 같은 꿈, 간절한 바람이 만들어 내는 순전한 믿음이다. 조각조각 깨진 테라스 타일이 오색찬란한 모자이크로 펼쳐지길 기다릴 때, 삐걱삐걱 앓던 계단으로 아름다운 나비들이 날아오르길 기다릴 때, 심술궂게 멈춰 있던 보일러가 순한 소리를 내며 다시 움직이길 기다릴 때……. 진정한 마술은 기적을 기다리는 바로 그 시간이 아닐까. 마음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르는 그 시간. ?본문 262~263쪽
가족, 세상과 통하는 작은 창
『파랑 치타가 달려간다』, 『줄리엣 클럽』 등으로 우리 시대 청소년들의 고민과 아픔을 진지하면서도 속도감 있게 그려낸 작가 박선희가 이번에는 ‘집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이전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밝고 경쾌한 느낌이었다면, 『도미노 구라파식 이층집』에선 더욱 웅숭깊어진 작가의 시선을 만날 수 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 속에서 집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집은 한 가족의 기억이자, 그것 자체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핫,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의 다섯 번째 집이 골목 끝에서 나를 흘겨보고 있었다. 지붕만 초록색으로 바뀌었을 뿐 고령의 티가 역력한 그 집은 고집스레 자기 모습을 고수하고 있었다. 기억이 되살아났다. 내 방 창문을 통해 20년 나의 성장기,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새어 나왔다. 그 집의 보이지 않는 주름들에 배어 있는, 굴곡 많았던 우리 집의 이야기를 한참 동안 찾아냈다. 집은 곧 이야기였다! - ‘작가의 말’
구라파식 이층집은 몽주네 가족의 가장 행복했던 한때를 기억하고 있는 장소인 동시에 몽주가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러한 집의 상징성을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한 가족의 이야기와 절묘하게 결합시킨다.
무엇보다 이 소설이 ‘청소년문학’으로서 이룬 중요한 성과는 몽주라는 주체적인 청소년 캐릭터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다. 30년 된 구라파식 이층집을 수리하는 일은 물론 가족의 역사 복원 또한 소설의 화자인 몽주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인 몽주는 가족 구성원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며, 그렇기에 누구보다 상처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몽주는 복잡다단한 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만 보는 관찰자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고민하며 직접 나서서 행동한다. 한 가족의 운명이 열일곱 살 몽주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마술의 진정한 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된 몽주가 자신만의 마술쇼를 선보이는 소설의 결말은, 그래서 감동적이다.
가족은 세상을 바라보는 작은 창이다. 특히 집과 사회의 경계에 서 있는 청소년들에게 있어 가족의 의미를 제대로 정립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가는 구라파식 이층집이라는, 불완전한 인간의 미욱한 삶을 감싸 안는 상징으로서의 집 한 채를 정성껏 지은 뒤 독자들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있다. 무너진 것이 집이든 사람의 마음이든 간에, 결국 그것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건 ‘사랑’이라는 마술과도 같은 기적이라고.
『도미노 구라파식 이층집』을 읽는 동안 자정 넘어서까지 불을 켜 놓는 맞은편 집 창이 떠올랐다. 그 집의 누군가는 돌아오지 않는 이를 위해 불을 켜 놓는 것이다. 너를 기다리고 있다고, 어서 돌아오라고. 『도미노 구라파식 이층집』은 어둠 속에서 길 잃지 말라고 켜 놓은 노란 불빛 같은 소설이다. - 하성란(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