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바보 (사계절 아동문고 81)
- 945
저자소개
지은이 : 우오즈미 나오코
옮긴이 : 고향옥
엮은이 : 조성흠
책정보 및 내용요약
목차
미주쿠
에이, 바보
단짝이 되고 싶어
두 대의 전철
- 이하 생략 -
편집자 추천글
미성숙한 시기, 사춘기를 맞이한 여자아이들
초등학교 5, 6학년 여자아이들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 새 학기 들어 친해진 아이들 무리가 싫어지더라도 쉽게 그 무리에서 나오지 못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왕따나 외톨이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단짝 친구가 다른 아이와 더 친해 보이면 괜히 질투가 난다. 나만의 단짝 친구로 남기를 바란다. 친구의 옷이나 패션 아이템에 관심이 많아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촌스럽게 하고 다니다가는 금세 공공의 놀림거리가 될 수도 있다.
사춘기에 들어선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예민한 신경과 친구를 향한 묘한 촉수가 곤두서 있다. 또래 친구들 사이의 관계 맺기가 세계 전체를 자치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주 작은 말 한마디로 확 틀어지기도 하고, 어떤 친구를 불현듯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런 초등 5, 6학년 여자아이의 성향은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비슷비슷한 듯하다. 교육심리학을 전공하고 청소년들의 심리 상태를 잘 표현해내는 작가로 유명한 우오즈미 나오코는 이번에도 자신의 강점을 살려 5, 6학년 여자아이들의 거미줄처럼 가늘고 섬세한 심리를 아주 잘 그려냈다. 표제작 「에이, 바보」를 비롯하여 총 5편의 단편은 모두 그 또래 여자아이들의 사귐, 틀어짐, 오해, 우정, 정체성 등을 그려내고 있다. 아주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있어 지금, 친구 문제로 고민하는 아이라면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풀지 않으면 오해는 계속된다
전학 온 에리나는 자기소개를 해야 한다. 근데 목소리도 안 나오고 다리만 떨린다. 창피해서 더 말이 안 나온다. 그런데 맨 앞에 있는 애가 입만 벙긋대면서 “힘, 내!”라고 말하고 있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은 에리나는 그 친구의 응원에 힘입어 자기소개를 무사히 마친다. 그 친구 이름은 ‘기노 짱’. 에리나는 잘 웃고 활달한 기노 짱과 금세 친해졌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에리나가 무슨 얘기를 할라치면 기노 짱이 “에이, 바보!”라고 한다. 순간 에리나는 머리가 멍해진다. 그런 놀림에 쉽게 상처를 받는다. 그러다 점점 기노 짱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왜 나한테만 그럴까? 다른 친구들에겐 안 그러면서.
에리나는 식구들과 전에 살던 동네에 갔다가 우연히 옛 친구 가오리를 만난다. 엄마는 “이사를 해도 지금까지 것은 쭉 계속되고 있고 그것 위에 새로운 것을 쌓아간다”고 했다. 에리나는 예전 학교에서 가오리와 불편했던 관계 때문에 지금 역시 기노 짱과 틀어졌나 싶은 생각도 든다. 모른 척하고 가오리를 지나쳐 가려다가 문득 에리나는 가오리에게 말을 건다. “왜 나한테 못되게 군 거니? 내가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말해 줘!” 하지만 가오리는 적반하장이라 말한다. 에리나가 먼저 자기를 무시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에리나는 자기가 말을 할 때 가오리가 자꾸만 자기 말을 가로막고 끼어들었다고 기억한다. 그래서 가오리가 자신을 싫어하는 거라 짐작했고 기분이 점점 나빠지자 가오리를 멀리 했던 것이다.
“5학년이 되고 너랑 같이 반이 돼서 무척 기뻤어. 나랑 마음이 가장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너한테 무시를 당하니까 되게 충격이더라. 네가 왜 나를 무시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겁이 나서 물어볼 수도 없었어.”
가오리의 이 말에 에리나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럼 반년이 넘도록 오해 때문에 틀어져 있었단 말인가. 오해가 풀렸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에리나는 기노 짱과도 툭 터놓고 말해 본다. 기노 짱 역시 나쁜 의도로 “에이, 바보!”라고 한 것이 아니다.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기도 모르게 무심코 내뱉는 감탄사였을 뿐이다. 끙끙 앓을 것이 아니라 진작 물어봤어야 했다.
‘에이, 바보’와 ‘미주쿠’의 상관관계
“에이, 바보!”라는 말은 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상징어와 같다. 쓸데없는 오해를 했고, 알고 보니 상대의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깨달음, 자신의 엉뚱한 상상을 꾸짖는 표현이다. 「미주쿠」의 ‘미주쿠’라는 말의 뜻도 비슷하다. 아이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아이들의 놀림을 고스란히 받고 마는 유약해 보이는 음악 선생님 별명이 ‘미주쿠’이다. 미주쿠란 ‘미숙하다. 서투르다는 뜻’이다. ‘에이, 바보!’와 미주쿠는 통하는 데가 있는 표현이다. 미주쿠로 놀림받던 선생님은 남편이 죽고 나서 끝내 학교를 떠나고 만다. ‘나’는 아이들 몰래 선생님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 떠나시기 전에 부직포로 인형을 만들어 선물했다. 예상 외로 선생님의 냉랭한 반응에 상처를 받았는데 몇 년 뒤 우연히 만난 선생님은 나의 인형을 고맙게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초보 선생님으로서 음악 선생님도 ‘미주쿠’였지만 선생님을 마구 놀려댔던 아이들 역시 ‘미주쿠’였고 선생님을 오해했던 나 역시 ‘미주쿠’였다.
초등 5, 6학년이라면 친구, 선생님과의 관계를 실수 없이 세련되게 풀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그 또래 아이들 모두 ‘미주쿠’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단짝이 되고 싶어」의 나쓰미도 마찬가지이다. 새 학기 들어 친구에게 어른스러운 배려를 하는 리사코가 한눈에 맘에 들었다. 리사코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리사코 무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리사코만 보느라 친구 가나코가 배푸는 친절과 우정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산 속에서 가나코가 길을 잃고 나서야 나쓰미는 가나코의 진심이 보였다. 스스로에게 “에이, 바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성숙한 상태에서 좀 더 나아가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도 있다. 「변심」의 노도카는 남자아이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같이 다니던 친구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나서 홀로서기에 나선다. 무리에서 벗어나면 외톨이가 될까 두려웠는데 막상 자신을 찾아가는 일이 그리 외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단 외모의 변신부터 시도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면의 진정한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 것도 깨닫는다. 늘 혼자 다니는 사토 유코처럼 진짜 ‘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두 대의 전철」의 히나타는 엄마 아빠의 이혼 뒤 친구 사귀기에도 서툴고 한 달에 한번 만나는 아빠마저 낯설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 있는 피아노학원을 가느라 히나타는 일주일에 한번씩 아빠 집을 지나쳐간다. 베란다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오는데 히나타는 자신의 이런 기분을 엄마와도 나누지 못한다. 우연히 전철역에서 만난 고무라라는 친구에게 자신의 기분을 털어놓는다. 할아버지 병간호를 하러 오는 고무라도 히나타만큼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어 아주 짧은 찰나에 만나는 히나타가 반갑다. 「두 대의 전철」은 부모와 나누지 못하는 고민과 감정을 우연히 만난 친구와 나누는 두 아이의 특별한 우정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미성숙한 시기를 지나 미래로 가는 전철이라도 탈 것 같은 두 아이의의 쉽지 않은 발걸음이 남달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