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사계절1318문고 29)
- 1477
• 지은이 : 띠너꺼 헨드릭스
• 옮긴이 : 이옥용
• 가격 : 9,800원
• 책꼴/쪽수 :
225*145mm, 298쪽
• 펴낸날 : 2004-05-15
• ISBN : 9788958280194
• 십진분류 : 문학 > 기타 제문학 (890)
• 추천기관 :
한국출판인회의, 학교도서관을사랑하는사람들,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모임
한국출판인회의 33차 이달의 책 선정도서
한국출판인회의 33차 이달의 책 선정도서
• 태그 : #청소년 #1318 #소설 #입양 #자아 #뿌리찾기
저자소개
지은이 : 띠너꺼 헨드릭스
1949년 네덜란드의 덴하그에서 태어났다. 사회복지사로 활동했고, 노인을 돌보는 간호사로 일했으며, 입양아 중개소에서도 일했다. 1992년 『집으로 가는 길』을 펴내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노란 별을 단 얀』 등을 비롯하여 사회 현실 가운데서도 예외적인 상황들을 주로 다루었다. 특히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옮긴이 : 이옥용
서강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콘스탄츠 대학교에서 독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 동화 「꼬불이」와 동시 「미안해!」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새벗문학상(동시 부문)과 아동문학평론 신인문학상(동화 부문)을 수상했다. 어린이를 위한 글을 쓰면서 외국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도 하고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인따는 지금까지 자기가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오빠의 친구 리차드를 짝사랑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외모가 남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문득 식구들은 물론 주변의 것들이 모두 낯설어진다. 나는 누구지?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이 사람들은 누구지?
수많은 물음과 고민 끝에 인따는 친엄마를 찾아 한국에 오지만, 자신이 발딛고 설 곳은 삶의 뿌리가 있는 네덜란드이며, 삶만이 사람과 사람을 묶어 주는 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열다섯 살 해외 입양 소녀에 대한 심리 묘사가 탁월하며 해외 입양인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 주는 문제 의식이 돋보이는 작품.
‘어느 해외 입양 소녀의 정체성 찾기’라는 주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제든 어느 곳에서든 살아가고 있을 오늘날 청소년들의 ‘진정한 자기 정체성 찾기’이자 ‘진정한 삶의 길찾기’를 진지하고도 매우 흥미롭게 풀어 가고 있다.
수많은 물음과 고민 끝에 인따는 친엄마를 찾아 한국에 오지만, 자신이 발딛고 설 곳은 삶의 뿌리가 있는 네덜란드이며, 삶만이 사람과 사람을 묶어 주는 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열다섯 살 해외 입양 소녀에 대한 심리 묘사가 탁월하며 해외 입양인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 주는 문제 의식이 돋보이는 작품.
‘어느 해외 입양 소녀의 정체성 찾기’라는 주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제든 어느 곳에서든 살아가고 있을 오늘날 청소년들의 ‘진정한 자기 정체성 찾기’이자 ‘진정한 삶의 길찾기’를 진지하고도 매우 흥미롭게 풀어 가고 있다.
편집자 추천글
1. 책을 펴내면서
해외 입양인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1989년 MBC에서 해외 입양아의 문제를 다룬 3부작이 방영되어 해외 입양아의 문제가 큰 반향과 관심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그 중에서 수잔 브링크라는 스웨덴 입양인의 이야기는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으로 만들어져 자못 화젯거리로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후 해외 입양아의 문제는 조금도 풀리지 않은 채 15년이 흘렀다.
얼마 전엔 MBC에서 다시 가정의 달 특집으로, 15년 전에 다루었던 입양인들을 취재하여 그들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해 보는 <해외 입양 50년 특별기획 MBC 스페셜 - 어머니, 나 여기 있어요> 유럽 편과 미국 편을 2회에 걸쳐 내보냈다. 10대 미만과 20대 전후의 입양인들이었던 그들은 이제 어엿한 성년과 중년으로 성장해 있었다.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것도 모자라 생김새와 문화가 전혀 다른 머나먼 타국에서 2중 3중의 고통과 극심한 정체성의 위기로 소녀 소년 시절을 힘겹게 보내야만 했던 이들은 과연 15년이 지난 지금, 그 고통과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불행하게도 그들의 처지는 15년 전과 별다르지 않았다. 다만 성년이 되어 나름의 정체성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은 여전히 이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우리 나라는 6·25 이후부터 지금까지 ‘입양 수출국’, ‘아기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국내 입양 숫자가 조금씩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직도 해마다 평균 2200여 명의 아이가 해외로 보내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입양된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집으로 가는 길』(원제:청기와집)은 우리에게 여러 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이 작품의 작가는 특이하게도 네덜란드의 작가 띠너꺼 헨드릭스이다. 1949년 네덜란드의 덴하그에서 태어난 헨드릭스는 사회복지사로 활동했고, 노인을 돌보는 간호사로 일했으며, 입양아 중개소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다. 헨드릭스는 입양아 중개소에서 일하면서 네덜란드로 입양된 아이들을 많이 접해 왔으며, 누구보다도 해외 입양 문제를 가까이서 늘 접해 왔을 것이다. 작가는 이 책의 원서 맨 첫장에 청기와집(한국사회봉사회)에서 온 입양아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그들과 청기와집에서 온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했다. 헨드릭스는 직업상 아마도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고, 한국 입양아들은 물론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으로 짐작된다.
입양아들은 외모가 다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고, 마찰을 빚으며, 소외감을 맛볼 것이다. 또 그러한 것들로 인해 어느 때고 한 번은 자신의 ‘뿌리’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한국에 와서 친부모를 만나고 뿌리를 확인한다 해도 이곳에 와서 적응해 살아가거나 친부모와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 가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뿌리를 찾았다 해도 한국에 뿌리내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바로 이 점에 작가는 주목한다. 이 책의 주인공 인따가 소설의 끝부분에서 깨닫는 것처럼 십수년 간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는 그곳에서 새 뿌리를 단단히 내리는 것, 그것이 입양인에게 가장 바람직한 삶의 방향이 아닐까?
이 책은 한국인 해외 입양이라는 소재를 통해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갖가지 문제점들을 다각적이고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여전히 우리 나라는 해외 입양 3위 국가로 기록된다. 미혼모에 대한 인식과 대책의 미흡, 여전히 양산되는 미혼모와 버려지는 아이들, 청소년 문제, 사회복지 문제 등등……. 『집으로 가는 길』에서도 주인공 인따의 정체성 위기와 힘겨운 싸움은 다른 입양아들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정형성’을 띠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 해결 방법을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제시한다. 이미 입양되어 해외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핏줄보다 ‘삶만이 서로를 연결시켜 주는 끈’이라는 메시지와 ‘현실에 든든하게 뿌리내리는 삶’의 문제이다. 이것은 비단 해외 입양아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작품의 핵이 ‘어느 해외 입양 소녀의 정체성 찾기’라는 주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제든 어느 곳에서든 살아가고 있을 오늘날 청소년들의 ‘진정한 자기 정체성 찾기’이자 ‘진정한 삶의 길찾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 작품 내용
> 나는 누구일까
인따는 지금까지 자기가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니, 오히려 자신을 완전히 네덜란드 사람으로 여겨 왔다. 인따는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달이 차기 전에 아기가 세상에 나온 것쯤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그러나 오빠의 친구 리차드를 짝사랑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어느 날 오빠의 방에서 흘러나온 리차드의 한마디. “금발 머리와 파란 눈에 난 약해!” 이전에도 물론 인따는 자신의 외모가 유럽인들과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입양되어 왔다는 사실까지도. 이제껏 인따는 학교 숙제도 잘해 가고 성적도 괜찮은데다 피아노 치기를 좋아하는 모범생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리차드를 좋아하게 되면서부터 인따는 자신이 남과 다를 뿐 아니라 지독히 못생겼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네모진 얼굴에 툭 튀어나온 광대뼈, 쭉 찢어진 눈. 눈 수술을 하면 좀 나을까 싶어 성형외과를 찾아가지만, 여의사는 인따가 한국에서 온 입양아임을 재차 확인시켜 줄 뿐이다. 오빠 친구의 이상형이 될 수 없다는 생각, 자신의 외모를 주위 사람들과 같게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은 처음으로 인따에게 자신의 뿌리에 대한 궁금증을 일게 한다.
생모는 왜 아이를 버렸을까? 친부모는 어떤 사람들일까? 그리고 문득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낯설어진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까지. 인따는 고민에 휩싸인다. 나는 누구지?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이 사람들은 누구야? 인따는 성형 수술을 포기하고 방 안에 틀어박혀 내면으로 침잠한다. 그러는 동안 양부모가 보관하고 있던 입양 서류에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 이름:김영자 생모 이름:김미숙, 18세.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 생부 이름:모름 인따는 네덜란드의 입양 기관을 통해 서울에 있는 입양 기관으로 편지를 보낸다. 생모에 대해 간단히 묻는 그 편지는 수개 월 뒤 생모의 손에 들어간다. 그리고 일년 뒤 인따는 생모가 보낸 성탄절 카드를 받는다. 인따가 알고 싶어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평범한 안부 인사만 쓰여진 짤막한 편지를.
> 또 하나의 이야기
미혼모 김미숙 미숙은 열여섯 살 꽃다운 소녀이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에 못 가고 재킷 만드는 봉제공장에 다닌다. 미숙의 집은 전통적이고 고루한 집안으로, 할아버지는 벌써부터 미숙의 신랑감을 점찍어 두었다. 하지만 미숙은 그 사람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오래 전부터 좋아해 온 최태수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최태수.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이미 결혼한 사람이다. 미숙은 그를 좋아하거나 가까이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매일 아침 출근길에 보는 최태수를 지울 수가 없다. 태수 역시 언제부터인가 미숙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리고 어느 날 둘은 아무도 없는 태수의 집에서 일을 치른다. “미숙아, 아들 하나만 낳아 줘.”
미숙은 태수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고 자신을 허락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두려워하면서도 마음속으로 바라던 일이 현실로 다가온다.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미숙은 자신이 아들만 낳으면 태수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신의 아내를 떠날 거라 믿고 아기를 낳기로 결심한다. 미숙이 식구들 앞에서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집안은 발칵 뒤집어지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 역시 미숙이 사내아이를 낳기만을 기다려 보기로 한다.
그러나 미숙이 딸을 낳자 상황은 달라진다. 태수는 물론 경제적으로 기반이 잡힌 사위 얻기를 기대했던 집안 식구들은 미숙과 갓난아기를 철저히 외면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아기에게 이름도 지어 주지 않고, 아기는 집안 식구들로부터 짐짝 취급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미숙은 이웃 여자에게서 해외 입양에 대해 전해 듣는다. 남편 몰래 아이를 입양시킨 아낙네였다. 가족의 냉대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심해지자, 미숙은 더는 견디지 못하고 첫돌이 갓 지난 영자를 입양 기관(청기와집)으로 데려간다.
미숙은 아이와 헤어진 얼마 뒤 집안에서 정해 놓은 남자와 결혼한다. 미숙의 남편은 밤늦게까지 리어카에 생선을 놓고 팔지만 마음은 넉넉한 사람이었다. 미숙은 아들을 낳은 후 아들의 미래를 위해 돈을 벌기로 결심하고 버스에서 껌을 판다. 그리고 십여 년이 흐른 뒤, 이름이 달라진 영자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 고국은 인따에게 무얼 보여 주었을까
인따가 자기 방에서 꼼짝도 않고 혼자 틀어박혀 있자, 인따의 양엄마는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그 나이 때 그녀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인따는 친아들 떼이스보다 더 자신을 닮았다. 엄마는 최근 일어난 인따의 변화가 십대라면 누구나 거치는 통과의례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인따의 상태가 심각해지고, 입양 서류를 찾아 확인하는 모습을 보고 우울해진다. 그렇게도 원하고 기다려서 품에 안게 된 딸, 친자식같이 공들여 키운 딸이 이제 자신이 온 곳으로 가려 한다고 생각하자 엄마는 큰 슬픔에 잠긴다. 인따는 엄마와 깊이 이야기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만 자신의 입양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아빠와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을 때, 인따는 비로소 엄마의 기대감과 사랑을 알게 된다.
아빠는 아시아 출장 여행에 인따와 아내를 데려간다. 일본에서 볼일을 끝내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인따. 인따의 심정은 몹시 복잡해진다. 그 동안 인따의 엄마와 아빠는 신문과 방송에 간간이 소개되는 한국 관련 기사를 놓치지 않고 수집해서 인따에게 보여 주며 인따가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애써 왔다. 그러나 인따에게 그런 것은 자신과는 무관한 제3의 보도와 정보일 뿐이었다. 인따에게 남한은 지구상에 있는 하나의 외국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인따는 한국의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엄마는 모든 것이 못마땅한지 계속 툴툴거린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리는 사람들, 주문 내용을 못 알아듣고 제멋대로 차 대신 콜라를 갖다 주는 호텔 종업원, 영어를 하나도 못 알아듣는 택시 기사, 호텔 라운지에서 홀짝홀짝 소리를 내며 차를 마시는 사람들……. 인따 역시 불만은 있지만 엄마가 자신의 고국에 대해 사사건건 툴툴대는 게 영 편치 않다. 인따는 평범한 한국 사람들의 삶을 피부로 느끼고 싶어 김포공항 근처에 있는 허름한 산동네를 찾아간다. 자신이 태어나 입양되기 전까지 살았을지도 모를 그곳에서 인따는 동질감과 함께 이질감을 동시에 느낀다. 인따는 네덜란드에 있을 때보다 더 이방인이 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인따의 진정한 길찾기
어렵사리 생모와 만나게 된 인따. 인따는 청기와집(한국사회봉사회)에서 두 엄마 사이에 앉는다. 인따와 미숙은 얼굴이며 손은 서로 닮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거리감을 느낀다. 이제 서른세 살이 된 생모는 오십이 다 된 양엄마보다도 더 나이 들어 보인다. 통역을 통해 모녀는 몇 가지 의례적인 질문을 주고받는다. 인따는 그토록 궁금했던 사실을 묻는다. 왜 날 보냈나요? 친아빠는 누구죠? 그러나 미숙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잠시 후 미숙은 인따의 양엄마에게 깊이 인사하며 감사의 말을 전한다. 미숙은 인따에게 연락처도 가르쳐 주지 않고 인따가 선물한 사진첩도 의자에 내버려 둔 채 총총히 사라진다. 인따는 이튿날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로 돌아온다. 한국 여행이 인따의 삶에 무엇을 가져다 주었을까? 인따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을까? 너무나도 궁금한 게 많았건만, 그 어떠한 것도 인따는 속 시원히 알아 낼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자신이 친숙하게 여기는 모든 것들이 있는 곳,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고 자신을 사랑해 주는 가족이 있는 곳은 그곳이 아니라 바로 네덜란드라는 걸. 자신의 생물학적인 뿌리는 그곳에 있지만, 생활의 뿌리는 이곳에 있는 것이다.
한국에 다녀온 두 달 뒤, 인따는 따사로운 9월의 햇살을 느끼며 꺾꽂이로 가지치기를 하는 엄마를 보면서 ‘뿌리를 찾아 나선 여행’과 ‘뿌리를 내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묻는다. “식물은 뿌리가 없으면 살지 못하는 거죠, 그렇죠?” “그럼, 물론 못 살지. 하지만 조금만 각별히 신경 쓰면 어린 식물은 새 뿌리를 내릴 수 있어. 근데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 넌 정원 일에 별로 관심이 없지 않았니?” “정원 일엔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뿌리를 찾아 나선 여행’이란 말이 생각났지 뭐예요. 좀 웃기는 말이죠! 내가 여기 사는 한 어차피 그쪽에 뿌리를 내릴 수는 없으니까요.” “난 네가 새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해. …… 너는 그곳에서 싹이었던 거야. 그리고 여기에서 뿌리를 내린 거고.” “튼튼한 뿌리들을.” 인따는 확신하듯 말한다. “여행할 때 그걸 분명히 알게 되었어요. 그전까지는 몰랐거든요.”
14년이란 세월, 그리고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가 생모와 인따를 갈라놓았을까? 인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친엄마는 인따에게서 멀리 있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친엄마는 자기 나라에서 자신의 삶을 누리고 있고, 인따는 이곳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몇 년 동안 마음속으로 느끼고 찾았던 것, 곧 친엄마와 자신을 하나로 이어 주는 끈은 존재하지 않았다. 두 모녀를 갈라놓았던 것은 뚝 떨어져 있는 거리도, 언어도, 문화도 아니었다. 그런 것보다는 둘이 함께 보낸 삶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 삶만이 사람과 사람을 묶어 주는 끈인 거야. 인따는 물끄러미 앞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해외 입양인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1989년 MBC에서 해외 입양아의 문제를 다룬 3부작이 방영되어 해외 입양아의 문제가 큰 반향과 관심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그 중에서 수잔 브링크라는 스웨덴 입양인의 이야기는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으로 만들어져 자못 화젯거리로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후 해외 입양아의 문제는 조금도 풀리지 않은 채 15년이 흘렀다.
얼마 전엔 MBC에서 다시 가정의 달 특집으로, 15년 전에 다루었던 입양인들을 취재하여 그들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해 보는 <해외 입양 50년 특별기획 MBC 스페셜 - 어머니, 나 여기 있어요> 유럽 편과 미국 편을 2회에 걸쳐 내보냈다. 10대 미만과 20대 전후의 입양인들이었던 그들은 이제 어엿한 성년과 중년으로 성장해 있었다.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것도 모자라 생김새와 문화가 전혀 다른 머나먼 타국에서 2중 3중의 고통과 극심한 정체성의 위기로 소녀 소년 시절을 힘겹게 보내야만 했던 이들은 과연 15년이 지난 지금, 그 고통과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불행하게도 그들의 처지는 15년 전과 별다르지 않았다. 다만 성년이 되어 나름의 정체성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은 여전히 이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우리 나라는 6·25 이후부터 지금까지 ‘입양 수출국’, ‘아기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국내 입양 숫자가 조금씩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직도 해마다 평균 2200여 명의 아이가 해외로 보내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입양된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집으로 가는 길』(원제:청기와집)은 우리에게 여러 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이 작품의 작가는 특이하게도 네덜란드의 작가 띠너꺼 헨드릭스이다. 1949년 네덜란드의 덴하그에서 태어난 헨드릭스는 사회복지사로 활동했고, 노인을 돌보는 간호사로 일했으며, 입양아 중개소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다. 헨드릭스는 입양아 중개소에서 일하면서 네덜란드로 입양된 아이들을 많이 접해 왔으며, 누구보다도 해외 입양 문제를 가까이서 늘 접해 왔을 것이다. 작가는 이 책의 원서 맨 첫장에 청기와집(한국사회봉사회)에서 온 입양아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그들과 청기와집에서 온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했다. 헨드릭스는 직업상 아마도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고, 한국 입양아들은 물론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으로 짐작된다.
입양아들은 외모가 다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고, 마찰을 빚으며, 소외감을 맛볼 것이다. 또 그러한 것들로 인해 어느 때고 한 번은 자신의 ‘뿌리’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한국에 와서 친부모를 만나고 뿌리를 확인한다 해도 이곳에 와서 적응해 살아가거나 친부모와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 가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뿌리를 찾았다 해도 한국에 뿌리내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바로 이 점에 작가는 주목한다. 이 책의 주인공 인따가 소설의 끝부분에서 깨닫는 것처럼 십수년 간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는 그곳에서 새 뿌리를 단단히 내리는 것, 그것이 입양인에게 가장 바람직한 삶의 방향이 아닐까?
이 책은 한국인 해외 입양이라는 소재를 통해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갖가지 문제점들을 다각적이고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여전히 우리 나라는 해외 입양 3위 국가로 기록된다. 미혼모에 대한 인식과 대책의 미흡, 여전히 양산되는 미혼모와 버려지는 아이들, 청소년 문제, 사회복지 문제 등등……. 『집으로 가는 길』에서도 주인공 인따의 정체성 위기와 힘겨운 싸움은 다른 입양아들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정형성’을 띠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 해결 방법을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제시한다. 이미 입양되어 해외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핏줄보다 ‘삶만이 서로를 연결시켜 주는 끈’이라는 메시지와 ‘현실에 든든하게 뿌리내리는 삶’의 문제이다. 이것은 비단 해외 입양아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작품의 핵이 ‘어느 해외 입양 소녀의 정체성 찾기’라는 주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제든 어느 곳에서든 살아가고 있을 오늘날 청소년들의 ‘진정한 자기 정체성 찾기’이자 ‘진정한 삶의 길찾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 작품 내용
> 나는 누구일까
인따는 지금까지 자기가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니, 오히려 자신을 완전히 네덜란드 사람으로 여겨 왔다. 인따는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달이 차기 전에 아기가 세상에 나온 것쯤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그러나 오빠의 친구 리차드를 짝사랑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어느 날 오빠의 방에서 흘러나온 리차드의 한마디. “금발 머리와 파란 눈에 난 약해!” 이전에도 물론 인따는 자신의 외모가 유럽인들과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입양되어 왔다는 사실까지도. 이제껏 인따는 학교 숙제도 잘해 가고 성적도 괜찮은데다 피아노 치기를 좋아하는 모범생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리차드를 좋아하게 되면서부터 인따는 자신이 남과 다를 뿐 아니라 지독히 못생겼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네모진 얼굴에 툭 튀어나온 광대뼈, 쭉 찢어진 눈. 눈 수술을 하면 좀 나을까 싶어 성형외과를 찾아가지만, 여의사는 인따가 한국에서 온 입양아임을 재차 확인시켜 줄 뿐이다. 오빠 친구의 이상형이 될 수 없다는 생각, 자신의 외모를 주위 사람들과 같게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은 처음으로 인따에게 자신의 뿌리에 대한 궁금증을 일게 한다.
생모는 왜 아이를 버렸을까? 친부모는 어떤 사람들일까? 그리고 문득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낯설어진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까지. 인따는 고민에 휩싸인다. 나는 누구지?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이 사람들은 누구야? 인따는 성형 수술을 포기하고 방 안에 틀어박혀 내면으로 침잠한다. 그러는 동안 양부모가 보관하고 있던 입양 서류에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 이름:김영자 생모 이름:김미숙, 18세.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 생부 이름:모름 인따는 네덜란드의 입양 기관을 통해 서울에 있는 입양 기관으로 편지를 보낸다. 생모에 대해 간단히 묻는 그 편지는 수개 월 뒤 생모의 손에 들어간다. 그리고 일년 뒤 인따는 생모가 보낸 성탄절 카드를 받는다. 인따가 알고 싶어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평범한 안부 인사만 쓰여진 짤막한 편지를.
> 또 하나의 이야기
미혼모 김미숙 미숙은 열여섯 살 꽃다운 소녀이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에 못 가고 재킷 만드는 봉제공장에 다닌다. 미숙의 집은 전통적이고 고루한 집안으로, 할아버지는 벌써부터 미숙의 신랑감을 점찍어 두었다. 하지만 미숙은 그 사람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오래 전부터 좋아해 온 최태수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최태수.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이미 결혼한 사람이다. 미숙은 그를 좋아하거나 가까이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매일 아침 출근길에 보는 최태수를 지울 수가 없다. 태수 역시 언제부터인가 미숙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리고 어느 날 둘은 아무도 없는 태수의 집에서 일을 치른다. “미숙아, 아들 하나만 낳아 줘.”
미숙은 태수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고 자신을 허락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두려워하면서도 마음속으로 바라던 일이 현실로 다가온다.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미숙은 자신이 아들만 낳으면 태수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신의 아내를 떠날 거라 믿고 아기를 낳기로 결심한다. 미숙이 식구들 앞에서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집안은 발칵 뒤집어지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 역시 미숙이 사내아이를 낳기만을 기다려 보기로 한다.
그러나 미숙이 딸을 낳자 상황은 달라진다. 태수는 물론 경제적으로 기반이 잡힌 사위 얻기를 기대했던 집안 식구들은 미숙과 갓난아기를 철저히 외면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아기에게 이름도 지어 주지 않고, 아기는 집안 식구들로부터 짐짝 취급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미숙은 이웃 여자에게서 해외 입양에 대해 전해 듣는다. 남편 몰래 아이를 입양시킨 아낙네였다. 가족의 냉대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심해지자, 미숙은 더는 견디지 못하고 첫돌이 갓 지난 영자를 입양 기관(청기와집)으로 데려간다.
미숙은 아이와 헤어진 얼마 뒤 집안에서 정해 놓은 남자와 결혼한다. 미숙의 남편은 밤늦게까지 리어카에 생선을 놓고 팔지만 마음은 넉넉한 사람이었다. 미숙은 아들을 낳은 후 아들의 미래를 위해 돈을 벌기로 결심하고 버스에서 껌을 판다. 그리고 십여 년이 흐른 뒤, 이름이 달라진 영자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 고국은 인따에게 무얼 보여 주었을까
인따가 자기 방에서 꼼짝도 않고 혼자 틀어박혀 있자, 인따의 양엄마는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그 나이 때 그녀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인따는 친아들 떼이스보다 더 자신을 닮았다. 엄마는 최근 일어난 인따의 변화가 십대라면 누구나 거치는 통과의례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인따의 상태가 심각해지고, 입양 서류를 찾아 확인하는 모습을 보고 우울해진다. 그렇게도 원하고 기다려서 품에 안게 된 딸, 친자식같이 공들여 키운 딸이 이제 자신이 온 곳으로 가려 한다고 생각하자 엄마는 큰 슬픔에 잠긴다. 인따는 엄마와 깊이 이야기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만 자신의 입양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아빠와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을 때, 인따는 비로소 엄마의 기대감과 사랑을 알게 된다.
아빠는 아시아 출장 여행에 인따와 아내를 데려간다. 일본에서 볼일을 끝내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인따. 인따의 심정은 몹시 복잡해진다. 그 동안 인따의 엄마와 아빠는 신문과 방송에 간간이 소개되는 한국 관련 기사를 놓치지 않고 수집해서 인따에게 보여 주며 인따가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애써 왔다. 그러나 인따에게 그런 것은 자신과는 무관한 제3의 보도와 정보일 뿐이었다. 인따에게 남한은 지구상에 있는 하나의 외국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인따는 한국의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엄마는 모든 것이 못마땅한지 계속 툴툴거린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리는 사람들, 주문 내용을 못 알아듣고 제멋대로 차 대신 콜라를 갖다 주는 호텔 종업원, 영어를 하나도 못 알아듣는 택시 기사, 호텔 라운지에서 홀짝홀짝 소리를 내며 차를 마시는 사람들……. 인따 역시 불만은 있지만 엄마가 자신의 고국에 대해 사사건건 툴툴대는 게 영 편치 않다. 인따는 평범한 한국 사람들의 삶을 피부로 느끼고 싶어 김포공항 근처에 있는 허름한 산동네를 찾아간다. 자신이 태어나 입양되기 전까지 살았을지도 모를 그곳에서 인따는 동질감과 함께 이질감을 동시에 느낀다. 인따는 네덜란드에 있을 때보다 더 이방인이 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인따의 진정한 길찾기
어렵사리 생모와 만나게 된 인따. 인따는 청기와집(한국사회봉사회)에서 두 엄마 사이에 앉는다. 인따와 미숙은 얼굴이며 손은 서로 닮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거리감을 느낀다. 이제 서른세 살이 된 생모는 오십이 다 된 양엄마보다도 더 나이 들어 보인다. 통역을 통해 모녀는 몇 가지 의례적인 질문을 주고받는다. 인따는 그토록 궁금했던 사실을 묻는다. 왜 날 보냈나요? 친아빠는 누구죠? 그러나 미숙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잠시 후 미숙은 인따의 양엄마에게 깊이 인사하며 감사의 말을 전한다. 미숙은 인따에게 연락처도 가르쳐 주지 않고 인따가 선물한 사진첩도 의자에 내버려 둔 채 총총히 사라진다. 인따는 이튿날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로 돌아온다. 한국 여행이 인따의 삶에 무엇을 가져다 주었을까? 인따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을까? 너무나도 궁금한 게 많았건만, 그 어떠한 것도 인따는 속 시원히 알아 낼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자신이 친숙하게 여기는 모든 것들이 있는 곳,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고 자신을 사랑해 주는 가족이 있는 곳은 그곳이 아니라 바로 네덜란드라는 걸. 자신의 생물학적인 뿌리는 그곳에 있지만, 생활의 뿌리는 이곳에 있는 것이다.
한국에 다녀온 두 달 뒤, 인따는 따사로운 9월의 햇살을 느끼며 꺾꽂이로 가지치기를 하는 엄마를 보면서 ‘뿌리를 찾아 나선 여행’과 ‘뿌리를 내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묻는다. “식물은 뿌리가 없으면 살지 못하는 거죠, 그렇죠?” “그럼, 물론 못 살지. 하지만 조금만 각별히 신경 쓰면 어린 식물은 새 뿌리를 내릴 수 있어. 근데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 넌 정원 일에 별로 관심이 없지 않았니?” “정원 일엔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뿌리를 찾아 나선 여행’이란 말이 생각났지 뭐예요. 좀 웃기는 말이죠! 내가 여기 사는 한 어차피 그쪽에 뿌리를 내릴 수는 없으니까요.” “난 네가 새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해. …… 너는 그곳에서 싹이었던 거야. 그리고 여기에서 뿌리를 내린 거고.” “튼튼한 뿌리들을.” 인따는 확신하듯 말한다. “여행할 때 그걸 분명히 알게 되었어요. 그전까지는 몰랐거든요.”
14년이란 세월, 그리고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가 생모와 인따를 갈라놓았을까? 인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친엄마는 인따에게서 멀리 있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친엄마는 자기 나라에서 자신의 삶을 누리고 있고, 인따는 이곳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몇 년 동안 마음속으로 느끼고 찾았던 것, 곧 친엄마와 자신을 하나로 이어 주는 끈은 존재하지 않았다. 두 모녀를 갈라놓았던 것은 뚝 떨어져 있는 거리도, 언어도, 문화도 아니었다. 그런 것보다는 둘이 함께 보낸 삶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 삶만이 사람과 사람을 묶어 주는 끈인 거야. 인따는 물끄러미 앞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