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존엄을 외쳐요_김중미 동화작가

《존엄을 외쳐요》 김은하 글 윤예지 그림


어린이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일을 하는 터라 그동안 ‘세계인권선언문’을 읽고 공부해야 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세계인권선언문’을 읽을 때마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한 줄을 비장하게 새기고 밑줄을 그었다. 그런데 공부방 아이들과 인권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대로 인용하기에는 어려운 문장들이 많아서 설명을 덧붙여야 했다. 그러다 보면 말이 장황해지고 의미가 희석되는 것 같아 아쉬웠다. 그런데 세계인권선언을 지금 우리 시대에 맞게 새로 해석하고 쉬운 일상어로 바꾼 《존엄을 외쳐요》를 읽는 순간 그 뜻이 한눈에 들어왔다.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데 가슴이 뛰고 뭉클해졌다.

"내가 존엄한 존재라는 걸 난 가끔 잊어요.
누군가 함부로 나의 존엄을 무너뜨리는데도 알아채지 못해요.

존엄은 
너와 내가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고
감히 누구와도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하다는 마음이에요. 

나의 존엄은 남의 존엄과 이어져 있어요."
_《존엄을 외쳐요》, 5쪽


이보다 간결하고 분명하게 ‘세계인권선언’의 핵심을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세계인권선언’ 30조항의 문장이 시처럼 아름답고 쉬워서 어디다가 대입해도 세계인권선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을 비롯한 약자들은 ‘누군가 함부로 나의 존엄을 무너뜨릴 때 알아채지 못’하고 ‘내가 존엄한 존재’임을 종종 잊는다. 존엄한 나를 자각하고 잊지 않으려면 ‘존엄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나의 존엄을 짓밟는 사람과 제도에 저항해야 한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존엄을 위해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면’ 우리는 서로의 존엄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존엄이 남의 존엄’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올해 우리가 겪은 우크라이나 참사, 기후위기, 아직도 끝나지 않은 팬데믹의 원인, 이태원 참사를 비롯한 억울한 죽음들을 외면하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얼마 전 화물연대의 파업이 예고될 무렵, 주간지《시사인》에서 화물노동자의 노동에 대해 분석한 탐사 보도를 두 주에 걸쳐 연재했다. 그 보도에 의하면 화물차 운전자들은 대부분이 ‘초과로 노동자’였다. 화물운송노동자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월급이 아닌 건당 운임을 받는 개인사업자인 ‘특수고용 노동자’가 되었다. 화물운송노동자들은 낮은 운임과 시간 압박을 견디며 한 달에 200만 원에서 300만 원을 벌기 위해 ‘요일도 밤낮도 없는 24시간 365일 노동’을 해야 한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 화물차 교통사고는 총 29만 9446건이 일어났고 그중 6436건이 사망 사고였다. 1년에 643.6건, 하루 1.8건 꼴이다.’⟨시사인 793호, 변진경 기자⟩
정부도 그 문제를 인식해 3년 전 한시적 안전운임제를 허락했는데 올해 말이면 끝이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지속과 현재 수출입 컨테이너, 벌크 시멘트를 나르는 상업용 특수화물차 등에만 적용하는 안전운임제 품목을 철강재, 위험물, 자동차, 곡물, 택배 등으로 확대하라고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다. 화물운송노동자들의 안전은 다른 시민들의 안전과 연결되어 있다. 화물운송노동자들의 졸음운전과 과속 운전이 지속된다면 도로 위의 우리 모두가 안전하지 않다. 
그런데 정부는 화물연대의 파업을 불법으로만 몰고 있다. 화물운송노동자들의 노동현실, 산업구조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국민과 기업 그리고 정부가 하나가 되어 위기 극복에 전념하고 있는 상황에서 화물연대가 무기한 집단 운송거부에 돌입했다”고 말한다. 취임식부터 자유를 강조한 대통령께서는 이번 파업을 두고 “다른 차량의 진출입을 차단하고 정상 운행에 참여한 동료를 괴롭히는 것은 타인의 자유를 짓밟는 폭력 행위”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거기에 정부의 강경책에 동조하는 언론들은 화물운송노동자들 모두가 고소득자인 것처럼 호도하는 기사를 싣는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마이크를 갖지 못한 노동자들의 파업은 권리이다. 세계인권선언 20조에서는, “우리는 존엄을 지키기 위한 모임을 만들 권리가 있어요. 평화롭게 집회를 하고, 모임에서 결정한 의견을 함께 외칠 수 있어요. 누구도 억지로 우리의 모임을 깨서는 안 돼요.”(46쪽)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23조는 “누구나 자기 일을 갖고 인간적인 환경에서 노동할 권리가 있어요.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하고, 정당한 보수를 받고,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어요. 직장을 잃었을 때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52쪽)다고 선언한다. 이어서 24조에서는 “모든 생명은 쉴 권리가 있어요. 기계나 로봇처럼 공부나 일을 쉬지 않고 할 수 없어요. 충분히 잠을 자고 휴식하고 여가를 누리는 시간이 꼭 필요해요.”(54쪽)라고 명시한다.​

대통령이 쉴 시간과 잘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화물운송노동자도 쉴 시간과 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의 존엄을 지켜 줄 의무가 있다.

 

“다른 이들의 존엄을 해치는 권리와 자유는 제한받아요. 우리는 그렇게 모두가 존엄한 대우를 받는 사회를 만들어 갈 거예요.” 
세계인권선언 29조_《존엄을 외쳐요》 , 66쪽


우리가 지켜야 할 자유는, 경제보다 수출보다 더 중요하다. 경제는 개인의 생명과 우리 모두의 존엄을 지키는 데 필요한 수단일 뿐이다. 경제와 수출 때문에 우리의 존엄이 희생되거나 짓밟혀서는 안 된다. ‘나는 너의 존엄을, 너는 나의 존엄을 지켜 줄 의무’가 있다고 세계인권선언은 말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1조는 “우리는 모두 자유롭고, 똑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져요. 그래서 우리는 서로 소중하게 여기고 연대해야 해요.”(6쪽)이다.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일이다. 중고등학생들의 기말고사가 끝나면 공부방 어린이청소년들과 다같이《존엄을 외쳐요-함께 만드는 세계인권선언》을 1조부터 30조까지 꼼꼼하게 공부해 볼 생각이다. 이 글을 쓰는 11월의 마지막 주말, 인천 서구에서 청소년 두 명이 죽고 부모는 뇌사 상태에 빠진 채 발견됐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누구보다 학교생활에 충실했고 취업준비도 성실하게 했던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죽음에는 기사가 담지 못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어요. 일자리가 없어도 병에 걸렸거나 장애가 있어도 어린이라도 노인이라도 생계가 곤란한 형편이어도 누구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음식과 옷, 집이 있어야 해요. 아프면 치료 받고, 사회 보장 제도를 누릴 권리가 있어요.” 
세계인권선언 25조_ 《존엄을 외쳐요》 , 56쪽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게 존엄을 외쳐야 할 때다. 그래서 이 책이 정말 귀하고 고맙다. 세계인권선언의 첫 장을 가슴에 새기며 소리 내어 읽어 본다. 

나의 존엄은 남의 존엄과 이어져 있어요. 

‘어쩔 수 없잖아.’ 
‘나만 아니면 돼.’ 

이러면 모두의 존엄이 무너져요. 

나는 이 악순환을 끊을 거예요.
존엄하게 산다는 감각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살려 낼 거예요.

이게 그 시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