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소설

‘텐텐 영화단’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 십대 아이들로 구성된 청소년 영화 제작단이다. 학교 밖 아이들이 단편영화를 만들어 대회에 출품하고 그 제작 과정을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로 찍어 매주 방송한다. 얼핏 보면 방송사 기획 상품인 오디션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다른 점은 참가자끼리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협동해서 작품을 탄생시킨다는 것이다. 분위기 메이커이자 카메라 담당인 조나단, 영화제 입상 경력이 화려한 감독 지망생 영운, 영운에게 밀리지 않겠다며 당찬 포부를 밝힌 톰보이걸 한빛, 인터넷 얼짱 출신으로 처음 연기에 도전하는 다울, 그리고 그냥 영화가 재미있다는 소미까지. 다섯 명의 아이들이 제도권 교육 바깥에 머무르게 된 데에는 저마다 다른 사연이 있으나 영화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하나로 한데 모였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흥미진진한 제작 과정이 소미의 목소리를 따라 펼쳐진다.

영화 제작의 첫 단계, 시나리오! 한빛, 영운, 소미가 써 온 시나리오 속 주인공은 모두 청소년의 자화상이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하는 열일곱 살 소녀의 하루, 성적 비관으로 분신자살하는 학생,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존재감 없이 좀비처럼 다니는 아이……. 아이러니하게도 탈학교 아이들이 쓴 시나리오가 부적응, 자살, 왕따 등 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세 개의 시나리오를 옴니버스로 구성해 <자화상>이란 제목으로 묶기로 결정하고 시나리오 담당자가 각자 파트의 연출을 맡는다. 순탄하게 진행되는 듯하지만, 배우 캐스팅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영화단 친구들끼리의 사적인 모임에는 전혀 참가하지도 않을 뿐더러 말조차 잘 섞지 않는 다울이, 자존심 강한 영운의 마음에 들 리 없다. 급기야 공개 캐스팅 오디션을 보게 되고 다울도 이에 질세라 오디션에 참가한다.

다울은 온몸에 휘발유를 뿌리는 시늉을 한 뒤 다울이 몸을 벌벌 떨며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떨어뜨렸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분신자살한다, 아니 분신자살 연기를 한다. 다울의 연기를 보면서 소미는 같은 반 아이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한 사건을 떠올린다. 당시 소미는 특목고 반에 떨어진 후 자신감을 상실한 상태였다. 꿈에 자꾸 나타나 불면의 밤을 보내게 하는 죽은 아이의 모습이 자신인 것처럼 느껴지는 착각에 시달리다 대량의 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한다.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지만, 자기 때문에 다투는 부모님이나 불투명한 앞날을 생각하니 답답한 학교에라도 있는 게 안전한 선택이었을까 고민한다.

소미를 보면서 내가 졸업 후 첫 담임을 맡았던 반 아이가 자살한 사건이 떠올랐다. 오래전 일이라 상처는 많이 아물었지만 우리 반 아이들 소풍 사진을 가끔 꺼내 보면 당시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난다. 그때 나는 내가 받은 충격만 생각했지 우리 반 아이들이 겪었을 외상 후 스트레스에 대해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자살의 원인을 철저히 밝히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은 학교와 어른들의 몫이지만 한 교실에서 생활했던 친구의 죽음에서 오는 슬픔과 충격은 온전히 우리 반 아이들이 져야 할 짐이었다. 이성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학년이 끝나자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온 나의 미숙한 처신이 떠올라 남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배우 섭외 후 촬영이 시작되면서 드디어 텐텐 영화단의 활약상이 첫 방송을 타는데, 다큐에서 소미는 우울증 소녀로, 다른 아이들도 몽땅 문제아 캐릭터로 나온다. 시청률 때문에 비밀 보장 약속을 어긴 방송국의 배려 없는 태도에 소미는 방에 틀어박히고 촬영은 중단되고 만다. 그러다 불쑥 집에 찾아온 한빛과 함께 1박 2일 ‘벙개 가출’을 하는데 목표가 분명하고 당차 보였던 한빛에게도 말 못할 고민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위로받는다. 소미의 촬영장 컴백 후 재개된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하지만 다울의 숨은 과거가 검색어 순위권에 오르면서 영화 제작이 중단되는 위기에 처하고 만다. 과연 텐텐 영화단은 그들의 영화 <자화상>을 무사히 상영할 수 있을까? 개봉박두!!!

영화를 소재로 한 소설인데 영화보다 더 재밌다. 영화도 대박이 나려면 스토리가 탄탄해야 한다는데 이 소설, 정말 스토리가 탄탄하다. 책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조나단과 소미 사이에 꽃피는 우정, 영운 오빠를 짝사랑하다 여친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까무러치는 소미, 엄마가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엄마와 소미 사이에 쌓였던 앙금이 풀리는 감동, 촬영을 하지 않을 때도 따로 만나면서 좋아하는 영화 장르와 배우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이야기 등 큰 줄거리 이외에 소소한 사건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책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는 그 사건 이후 나를 보호할 목적으로 학생들 삶에 절대 거리를 두기로 다짐했는데 책을 읽고 몇몇 눈에 밟히는 녀석들이 떠올라 마음이 괴로웠다. 그 녀석들, 부디 텐텐 영화단 아이들처럼 잘 자랐으면 좋겠다.
 
 
글 l 한민아 (청심국제중고등학교 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