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세상에 푹 빠진 학생들을 바라보며

지난해부터 ‘사계절출판사 교사 평가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따끈따끈한 신간을 맛보는 기쁨, 평가단 선생님들의 개성 있고 매력적인 서평에 공감할 수 있어 많은 공부가 되고 있다. 더불어 소속 학교에 ‘작가 초청 강연 사업’을 지원받아 예산에 대한 큰 부담 없이 멋진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1. 준비 과정
가. 작가와 강연회 방법 선정
초청 강연 행사는 국어과 협의회 때 처음으로 이야기가 나왔다. 협의회에서 청소년소설 작가 중 박상률 작가를 적극 추천해 주었고, 행사 날짜(2013. 5. 22.)를 정한 뒤 본격적으로 강연회 준비를 하게 되었다. 포항 이동중학교는 다양한 개성을 지닌 1,450여 명의 학생과 감각이 뛰어난 100여 명의 교직원이 생활하는 중소도시에서 보기 드문 거대 규모의 학교이다. 작가 초청 강연회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진행할 수 있다. 우선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작가의 초청 강의 방식을 들 수 있다. 이 방법은 학생 전체가 유명 작가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렘이 있다. 또 하나는 학생을 선발하여 작품을 읽게 한 후, 대화 및 토론을 통해 작품에 대해 깊이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우리 학교는 후자의 방법을 선택하면서 작가에게 독서 강연도 특별히 부탁했다. 일단 학급별로 국어과 선생님들에게 2명씩 추천을 받아 행사에 참여할 학생을 선발하였다. 그리고 작가가 쓴 작품 중 학생들의 수준과 흥미를 고려해 『봄바람』과 『밥이 끓는 시간』을 행사 도서로 선정했다. 평소 학생들이 영혼의 가출 등으로 성장통을 앓는 『봄바람』의 훈필, 어려운 환경에서 작은 행복을 갈망하는 『밥이 끓는 시간』의 순지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나. 행사 질문지 작성
작가 섭외 비용과 교통비 일체는 출판사에서 부담했기에 학교에서는 행사에 필요한 도서와 행사 물품만 구입하면 되었다. 참가 학생 80명에게 『봄바람』과 『밥이 끓는 시간』 중 한 권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책을 나누어 줄 때, 질문지를 함께 주어 책을 읽은 뒤 제출하도록 했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질문지 수거함은 꽉 차게 되었고, 재미있고 기발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질문지는 작품 내용에 관한 것과 작가와 관련한 질문으로 구성해 보았다.
 
 
2. 작가와의 만남
가. 행사 진행 방법
행사는 작가 소개와 특별 강연, 독서 퀴즈 및 학생들과의 대화, 단체사진 촬영, 사인회 순서로 진행했다. ‘중학생에게 독서가 필요한 이유’라는 주제로 진행된 특별 강연은 문자언어와 음성언어를 예로 들어 학생들이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알찬 내용으로 꾸며졌다. 그리고 행사의 흥을 돋우기 위해 책 내용을 중심으로 독서 퀴즈대회를 실시했다. 한 책 당 3문제씩 총6문제를 출제하였는데, 작가가 직접 퀴즈 문제를 읽어 주었기 때문인지 학들의 반응이 한층 더 뜨거웠다.
 
 
작가 강연회 모습
 
독서 퀴즈
 

나. 학생들과의 대화
이번 행사의 백미는 당연 작가와 학생들의 대화 시간이었다. 이것 역시 두 가지 진행 방법이 있다. 하나는 대표 학생을 뽑아 작가와 대담식으로 진행하는 방법이다. 매끄럽고 세련된 행사를 경험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행사에 참가한 학생들의 다양한 반응을 모두 수용할 수 없는 단점도 있다. 또 다른 방법은 학생들의 모든 질문을 책의 내용 순서로 정리하여 사회자가 질문하는 것이다. 책을 직접 읽은 학생들은 자신이 궁금하게 느낀 것에 대해 작가로부터 직접 답변 듣기를 원한다. 그리고 학생들의 질문은 대개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즉석에서 질문하는 것보다 제한된 행사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행사 전에 모아서 정리한 질문지를 토대로 사회자가 대표로 질문하는 방법을 택했다.
 
 
 
박상률 작가와의 단체 사진 촬영
 
작가 사인회 
 
 
학생들의 소중한 질문 하나하나가 이어지면서 작가와 학생들이 한 가지 문제를 가지고 열띤 토론을 펼치기도 했고, 통통 튀는 질문에 응하는 작가의 재치 있는 답변 덕에 모두 배를 잡고 웃기도 했다. 그중 1학년 여학생의 천진한 질문 하나를 여기에 소개한다. “은주 고모가 정말 꽃치의 아이를 임신한 게 맞아요?” 하는 학생의 질문에 작가는 “꽃치한테 물어봐도 말을 안 하니 모르겠다”고 응수했다. 그때 뒤에 앉아 있던 3학년 남학생이 “훈필의 아이!”라고 말하면서 행사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수준 높은 질문도 이어졌다. 3학년 권나경 학생은 “『봄바람』의 ‘꽃치’와 『밥이 끓는 시간』의 ‘순지 엄마’는 모두 말을 하지 않는 인물인데, 작가님 작품에서 특별히 이런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 보았다. 작가는 마치 대학원 수업을 하는 것 같다면서 작품을 제대로 읽었다고 칭찬을 건넸다. 그리고 “순지가 성장한 뒤의 이야기를 알고 싶습니다.”라는 학생의 바람에 “그건 학생이 한번 글로 지어 보세요.” 하고 웃으며 답하기도 했다.
 
 

3. 잔잔한 지적 만족을 맛보다
학생들은 특히 ‘픽션’과 ‘논픽션’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다. 박상률 작가는 “남의 이야기도 자기가 겪은 것처럼 쓰고, 자신의 경험도 남이 겪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게 소설가이고 소설이다. 학생들이 픽션이니 논픽션이니 하는 이론적인 틀에서 벗어나 ‘소설은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 주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이야기’라고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학교 현장에서 진행하는 독서 프로그램이 흥미 위주, 일회성 이벤트 형식으로 많이 진행되는 것 같아 늘 안타깝게 생각한다. ‘어린아이가 얕은꾀로 책 읽는 횟수를 속인다면 훗날 그 아이는 반드시 책과 멀어진다’는 이덕무 선생의 『사소절』 내용을 독서 교육을 담당한 이후로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 이번 작가 초청 강연회도 이벤트성 행사가 되지 않기 위해 나름 많은 준비를 했다. 행사에 참가한 학생들의 진솔한 반응,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이 나왔을 때의 반가운 눈빛, 때론 졸음을 참지 못한 고갯짓까지, 그들이 느낀 잔잔한 지적 만족에 공감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글 l 김주상 (포항 이동중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