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차원의 책읽기, 독서 기술에서 독서 멘토로

하늘에서 악마가 떨어졌다. 지구 중심에 이르기까지, 유성이 부딪힐 때처럼 땅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파인 흙은 반대편으로 밀려나와 큰 산이 되었다. 이렇게 생긴 동굴은 지옥이, 산은 연옥(煉獄)이 되었다. 지옥 갈 정도는 아니지만 천국에 갈 수준도 안 되는 영혼이 머무르는 공간 말이다. 연옥을 이루는 산 정상에는 낙원이 놓여 있다. 죄를 씻으면서 연옥의 산을 올라간 사람들은 드디어 낙원에 이르러 천국으로 오른다. 천국은 지구 둘레를 도는 아홉겹의 하늘과 이를 둘러싼 지고천(至高天)으로 이루어졌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향기로운 꽃잎 사이, 천국의 장미(rosa mystica)에 머문다.
 
단테가『신곡』에서 그린 죽음 이후 세상의 모습이다. 인생은 잠시뿐이다. 영원한 삶이 죽음 다음에 찾아올 테다. 절망만 가득한 지옥은 얼마나 끔찍할까? 착하게 산다 해도 험한 세상에서 티끌 하나 묻히지 않기는 어려운 법이다. 천국에 바로 가는 이는 아주 드물다. 대부분은 연옥에서 죄를 씻는 기나긴 과정을 겪어야 할 듯싶다.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들이 연도(鍊禱,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를 해 주면 연옥에서 지내는 기간이 크게 줄어든단다. 이쯤 되면, 중세 사람들이 왜 가족 가운데 하나 정도는 성직자로 만들고 싶어 했는지가 퍼뜩 이해된다. 면죄부도 마찬가지다. 일단 죄를 지으면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고 해 보자. 그렇다면 구태여 돈 바쳐 가며 교회에 싹싹 빌 까닭도 없었겠다.
 
연옥은 1150~1300년에 비로소 만들어진 생각이었다. (원래『성경』에서는 연옥을 분명하게 그리고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서양 중세 사람들의 생활도 바뀌었다. 내세는 현세의 삶을 재고 평가하는 잣대가 되었다. 교회가 힘을 쓴 데는 연옥이 큰 구실을 했다.
 
 
이번에는『타잔』을살펴보자.『 타잔』은1912년『올스토리(All Story)』라는 15센트짜리 잡지에 연재되던 ‘펄프픽션’이었다. 삼류 무협지 같은 소설이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불량 식품일수록 맛있게 마련이다. 타잔은 이내 큰 인기를 끌었다. 20세기에 만들어진 타잔 영화만도 100편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자세히 보면,『 타잔』에는 속을 불편하게 하는 코드가 가득하다. 밀림의‘왕자’라는 타잔은 놀랍게도 백인이다. 그의 아버지는 유럽인이다. ‘수많은 전쟁에서 이긴 영국인답게 강한 남성미를 풍기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건강한’ 사람이었단다. 그래서인지 타잔은 꼭 영국 귀족같이 움직인다. 수영 선수처럼 매끈한 몸매에 번듯한 외모, 타고난 정의로움으로 여러 동물을 다스려 덜떨어지고 사악한 사람들을 혼내주는 식이다. 그러나 실제 영국 귀족들이 어디 타잔 같았던가. 조금만 날을 세워 살펴보면, 서구인들 특유의 인종 차별적인 생각을 금방 짚어 낼 수 있을 테다.
 
타잔은 지독한 마초(남성 우월주의자)이기도 하다. 여자친구 제인은 금발에 글래머다. 야성의 남자와 백치미가 약간 풍기는 금발 미녀. 여기까지만 해도 벌써 마음이 불편한데, 원작『타잔』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제인은 가슴을 두근대며, 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원숭이와 인간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중략) 터코즈(원숭이의 이름)의 가슴에 칼이 꽂히고 피가 솟구쳤다. 생명의 기운이 다한 거대한 몸뚱이가 쓰러졌다. 그 순간, 제인은 원시의 여인이 되었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원시의 사내에게로 달렸다. 타잔은? 붉은 피가 흐르는 남자답게 본능적으로 행동했다. 타잔은 제인을 끌어안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이어지는 설명은 더 짜증난다. 제인은 타잔의 품에 안기며 ‘상징적으로’ 약간 발버둥치지만, 이내 ‘수컷이 힘으로 짝을 취하는 밀림의 법칙’에 따른다. 어린이용『타잔』에도 이런 부류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좀처럼 불쾌한 느낌을 못 받았을까? 『타잔』은서양 중심의 남성 우월주의를 효과적으로 퍼뜨리는 도구였던 셈이다.
 
주경철 교수의『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를 읽다 보면, 친숙한 이야기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책 읽기의 모델이 되어 줄 만하다. 물론 이 책은 여느 국어 시간처럼 책의 주제 찾기, 생각해 보아야 할 점 말해 보기 등등의 고루한 틀을 따르지 않는다. 역사학자의 눈으로 문학 작품을 보고 설명해 줄 뿐이다. 그럼에도 독자가 느끼는 울림은 책 읽기를 가르치는 여느 서적들보다 훨씬 크다.
 
예전 장인(匠人)들은 대가(meister)의 작업을 어깨너머로 바라보며 기술을 익혔다. 인문학도 별 다르지 않았다. 스승이 공부하는 모습을 사숙(私淑)하며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지 않았던가. 이 책에 나타난 주경철 교수의 독법을 느끼면서 청소년들은 책을 깊고 넓게 보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울 듯하다.
 
주경철 교수의 설명을 읽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책장을 넘어 역사를 바라보게 된다. 예컨대 알퐁스 도데의「별」을 보자. 스테파네트 아가씨와 순결한 사랑을 나누는 목동도 1870~1871년에 일어난 보불전쟁(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을 피해 가지는 못했을 터다. 청년이 된 목동도 전쟁에 병사로 참가하게 되지 않았을까? 알퐁스 도데가「마지막 수업」으로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애국 시인’으로서 거듭났듯이 말이다.
 
『이솝 우화』에서 위화의『허삼관 매혈기』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서 소개한 작품들은 2500년의 세월을 넘나든다. 작품 하나하나에 대해 저자는 역사적인 맥락에서 내용을 짚어 주며 깊이 있는 생각을 깨우곤 한다. 『보물섬』같은 부류의 해적 이야기들은 시대배경이 왜 항상 1700년대인지, 『해저2만리』의 잠수함 선장 이름은 왜 ‘네모’인지 등등. 하나하나 해설을 듣고 나면, 『타잔』처럼 작품에 숨기고 있는 온갖 편견이 여지없이 보이기 시작할 테다.
 
한동안 책 읽기를 다룬 서적들이 유행처럼 퍼졌다. 어찌보면 이 책도 책 읽기를 위한 책으로 소개해도 좋을 듯싶다. 저자의 소개가 없었다면,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이나 월리엄 골딩의『파리대왕』같은 작품을 읽고 싶은 생각이 좀처럼 찾아들 리가 없다. 훌륭한 책 읽기를 위한 책들은 독자를 독서로 이끈다. 책을 전혀 읽지 않던 사람에게는 책을 집어들게 하고, 다독하는 이들에게는 더 깊은 독법으로 안내한다.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는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하는 책이다.
 
 
글 · 안광복 (중동고등학교 철학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