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사계절문학상 수상작품 『내 청춘, 시속370km』

1997년 본격 청소년문학 시리즈인 ‘사계절1318문고’를 선보인 사계절출판사가 2002년부터 시행해 온 청소년소설 공모 ‘사계절문학상’이 어느덧 9회를 맞았다. ‘홀수 해에는 당선작이 나오지 않는다’는 징크스를 보란 듯이 깨고 등장한 화제의 작품은 『내 청춘, 시속 370㎞』. 바이크에 죽고 못 사는 열일곱 살 동준이의 매 길들이기 프로젝트를 유쾌하게 그린 청소년소설이다. 심사위원(오정희·박상률·이옥수)들은 ‘작가 특유의 세련된 유머 감각과 안정적인 문체, 인물들의 탁월한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는 평과 함께 이 작품에 만장일치로 손을 들어 주었다. 특히 기존 청소년소설에서 다루지 않았던 전통문화를 소재로 끌어와 신선함을 안겨 준 점을 높이 샀다.
수상의 영광을 안은 작가 이송현 씨는 장편동화 『아빠가 나타났다!』로 제5회 마해송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이듬해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호주머니 속 알사탕」이 당선되면서 아동문학 작가로서 실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내 청춘, 시속 370㎞』는 그가 처음으로 도전한 청소년소설로, 우리나라 전통문화인 매사냥을 통해 주인공이 아버지를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보듬어 안기까지의 과정을 경쾌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렸다. 무엇보다 마치 바이크를 타고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속도감 있는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바이크에 목숨 건 열일곱 청춘과 철없는 보라매 ‘보로’의 기막힌 동거
동준은 스피드를 사랑하는 열일곱 살 청춘이다. 자신만의 멋진 바이크를 갖는 것이 일생일대의 목표. 그것이 야마하에서 나온 꿈의 바이크 ‘로드스타’라면 더할 나위 없고. 하지만 그날이 언제 올지는 동준도 알 수 없다. 아쉬운 대로 동네 중국집 만리장성의 100cc짜리 고물 ‘시티백’을 빌려 타는 것이 동준의 유일한 낙이다. 사실 동준이 스피드에 집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응사(매잡이) 노릇에 빠져 가족은 나 몰라라 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참지 못해 집을 나가 버린 엄마를 둔 덕에 인생이 살짝 암울하기 때문이다. 바이크를 타고 신 나게 달릴 때면 우울한 기분 따위, 단박에 날려버릴 수 있다.
 
‘기분 좀 띄워 볼까나?’
심호흡을 한 뒤 손에 착착 감기는 핸들의 감촉을 느끼며 묘기 행진을 벌여 보기로 결심했다. 무게중심을 뒤로 옮기면서 순간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앞바퀴를 들어 올렸다. 무한의 스피드가 주는 흥분과 함께 모든 게 멈추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온 신경을 자극했다. 날개라도 단 것처럼 내 몸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 본문 17쪽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유일한 수제자 응식이 삼촌이 군대로 ‘도망’가는 사태가 일어난다. 응식이 삼촌은 6년 동안 괴짜 같은 아버지 밑에서 매잡이 일을 배우며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인물. 그 일로 아버지는 적잖이 충격을 받는다. 순간, 동준의 머릿속으로 전부터 점찍어 둔 중고 ‘데이스타’가 부릉부릉 지나간다. 동준은 생각한다. 아무리 바이크가 갖고 싶어도 그렇지, 매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것도 억울한데 심지어 매를 돌보고 훈련시킨다고? 동준은 일분일초가 아까운 자신의 청춘을 그깟 매한테 바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하지만 현실은 비정한 법. 결국 동준은 100만 원짜리 중고 바이크에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매달 월급을 받는 조건으로 아직 한 번도 사냥을 해 보지 않은 어린 보라매 ‘보로’를 맡게 된다.
 
“내가 할게요. 내가 해 볼게요.”
“뭐……, 뭘?”
“매요. 매사냥 전수자, 내가 하면 되잖아요.”
“…….”
얘가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아버지의 눈초리. 하긴 내가 생각해도 지금 내 행동은 정상이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매를 죽어라 싫어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본문 51~52쪽
 
그런데 매를 길들이는 일,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닭대가리 주제에 사람 머리 꼭대기에서 놀려고 하는 보로가 동준은 영 마뜩하지 않다. 매번 먹이 챙기고 배설물 치우는 것도 모양 빠지는 일. 설상가상 아버지는 무조건 매 위주로 생활하라며 시도 때도 없이 다그친다. 매에게 아버지를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상전처럼 떠받들어야 하다니. 동준은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중고 바이크를 타고 신 나게 내달릴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니가 제정신이냐! 보로를 두고 어딜 갔다 오는 거야? 매가 얼마나 예민한 동물인지 몰라서 그래?”
고개가 돌아갔다. 뺨에 불이 붙는 듯했다. 방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보로에게 문제가 생겼다. 묶어 두지 않고 방 안에 혼자 둔 것이 화근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유리창에 계속 머리를 부딪친 모양이었다. 멍청한 날짐승! 숲의 제왕이라더니, 꼴좋다. - 본문 119~120쪽
 
동준은 우여곡절 끝에 보로를 자신의 왼팔에 앉히는 데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둘은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음의 반쪽은 여태껏 외면하고만 싶었던 아버지를 향한다. 동준은 아직 야생의 기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보로에게서 자신과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렇게 보로의 첫 사냥을 준비하던 중 뜻밖의 사건이 동준에게 터지고 마는데……. 과연 동준의 좌충우돌 매 길들이기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을까?
 
매는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다. 매를 길들이는 건 사람의 정이 아니라, 배고픔이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보로와 정으로 하나가 되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를 길들인 건 매가 아니라 아버지의 진심이었다. - 본문 281~282쪽
 

우리 청소년문학에 일찍이 이런 캐릭터들은 없었다!
이송현 작가는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구성 작가로도 활동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일까, 『내 청춘, 시속 370㎞』에는 주인공인 동준 말고도 시트콤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개성 만점 캐릭터들로 가득하다.
우선 대표적인 인물로 동준의 아버지인 송인태를 들 수 있다. 그는 아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 장본인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적인 아버지 상과 거리가 먼 인물이다. 매사냥에 자신의 모든 인생을 바친 그는 열정과 신념으로 똘똘 뭉쳐 있는 외골수 무형문화재이다. 하지만 가족 앞에서는 한심하고 무능한 가장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동경과 연민의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묘한 존재감’을 획득한다.
이 소설에서 누구보다 반짝거리는 캐릭터는 바로 똠양꿍과 나예리이다. 동준의 오랜 친구인 똠양꿍은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 인 어머니를 둔 다문화 가정의 자녀이다. 진짜 이름은 전택근이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똠양꿍이라는 이국적인(?) 별명으로 더 자주 불린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똠양꿍은 피부색과는 달리 생각이나 행동 모두 뼛속까지 ‘대한민국 고딩’이다. 내뱉는 말마다 무식이 통통 튀는 데다 어이없는 사고도 곧잘 쳐서 동준의 속을 썩이기 일쑤지만, 누구보다 동준을 아끼고 챙기는 의리의 사나이기도 하다. 작가는 똠양꿍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다문화 가정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한국인임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보여 준다. 또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이중적인 시선에 일침을 가한다.
나예리는 동준의 여자 친구로, 쿨하고 당찬 성격에 끌려 사귀기 시작했지만 보통 여학생들과는 다른 포스로 늘 동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문제적 인물이다. 군인 아버지 때문에 이사를 자주 다녀서 사람들에게 쉽게 정을 주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 어느 날 동준에게도 날벼락처럼 이별을 선언을 함으로써 동준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특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맞춤을 하다가 동준의 입술을 콱 물어 버리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다. 덕분에 동준에게 첫사랑의 기억은 ‘피 맛’과 함께 강렬하게 남는다. 발랄하다 못해 발칙하기까지 한 나예리의 모습은 여태껏 청소년문학에서 접할 수 없었던 ‘팜므파탈’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단순히 재미와 기능적인 역할에서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모두 동준의 삶과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동준을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자신들 역시 성장한다. 작가는 도무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 넘치는 인물들을 문학의 세계로 끌어와 진정성을 불어 넣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인물 한 명 한 명의 잔향이 쉬이 휘발되지 않는 이유이다. 이렇듯 손에 잡힐 것처럼 생생한 캐릭터들의 향연은 『내 청춘, 시속 370㎞』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지금 당신의 청춘은 시속 몇 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나요?
『내 청춘, 시속 370㎞』는 이제껏 국내 청소년문학에서 관심을 갖지 않았던 전통문화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그래서 더욱 반갑고 귀한 성장소설이다. 작가 이송현은 “자칫 고루하고 따분한 옛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매사냥과 새로움으로 대변되는 청소년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작가의 말처럼 ‘모두가 외면하는 전통문화 수호에 인생을 건’ 아버지와 ‘할 줄 아는 일이라곤 힘차게 나는 것밖에 없는’ 어린 보라매, ‘낙이라곤 신 나게 달리는 것밖에 없는’ 동준은 서로가 참 많이도 닮아 있다. 그러기에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조금씩 서로에게 물들어 가는 그들의 모습은 가슴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요즘 청소년소설이 소재주의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을 듣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집과 학교, 학원만을 오가는 청소년들의 삶이 소설에서조차 그대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잊혀져가는 우리의 전통문화에서 소재를 찾아 오늘날 청소년들의 삶과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 할 것이다. 문학평론가 오세란은 “내가 읽은 청소년소설 중에 가장 청소년을 믿어 주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전하기도 했다.
사냥감을 향해 낙하할 때 최고 속도가 시속 370㎞에 이른다는 매, 그 매를 위해 자신의 열정을 쏟는 아버지, 그리고 바이크를 타며 스피드를 즐기는 동준까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청춘은 지금 시속 몇 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