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5!

판타지 느낌의 제목이나 표지와는 다르게 책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남산 아래 해방촌에 살고 있는 주오와 그의 주변 사람들 일상이 잔잔히 펼쳐진다. 살던 집과 가까워 심심치 않게 놀러 다니던 남산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인지라 ‘미라가 초상화를 그리던 곳은 어디쯤일까? 똘이 만화방은 정말 있던 곳일까?’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더불어 내 어린 시절, 이미 기억에서 희미해져 함께한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은 또렷이 기억나진 않지만 그 골목길, 그 집, 그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얼핏 보면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열일곱 살 사춘기 소년 주오, 남편도 없이 재봉질로 아들을 길러 낸 주오 엄마, 주오의 친구태균과 난희, 그의 마음을 설레게 한 미라, 주오를 업어 키운 연백 할머니, 미모사 누나들……. 책 속 인물들은 저마다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견뎌 내고 있다. 주오는 자의 반 타의 반 이웃들의 삶을 목격하고 직접 부딪치게 되면서 인생의 맛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주오의 생일날 매서운 추위가 무색해질 정도로 푸짐하게 내리쬐던 햇살처럼 그네들의 삶에도 온기가 퍼지길 바랐지만 어찌된 일인지 점점 팍팍하게만 흘러간다. (2014년 현재도 그리 핑크빛은 아니지만.)
 
1985년 남산골 깊숙한 곳에 500년 후에나 개봉될 타임캡슐이 묻혔다. 서울 시민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물건들을 엄선해서 타임캡슐에 담아 지하 깊은 곳에 매장해 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 타임캡슐이 개봉된다 하여도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함께했던 사람까지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오는 남산 해방촌을 떠나며 가슴속에 자신만의 타임캡슐을 하나 만든다. 남산 아래 묻힌 타임캡슐 목록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만이 알 수 있는 추억과 냄새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를 사람들에게 보내는 안부까지 담아 둔다.
 
시간은 멈출 줄 모르고 끝없이 흘러갈 것이고, 우리가 지니고 기억했던 소중한 것들까지도 빛이 바랠 것이다. (243쪽)
 
주오가 남산 아래 해방촌에서 이웃들과 부대끼며 살던 1985년으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30년의 시간 동안 주오의 타임캡슐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졌을지 궁금하다.
 
글 l 전지혜 (단원중학교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