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바꾸는 정치 공부] 2강 - 연극으로서의 대표제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까지 채 한 달이 남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선거를 통해 뽑힌 대표들을 통해 행해지는 정치를 대의 민주제 혹은 의회제 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한번 곰곰이 생각해봅시다. 어느 한 사람이나 정당이 수많은 쟁점에 대해 나의 의사를 완벽하게 대표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복지에 대해서는 이 정당을 지지하지만,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저 당을 지지한다면 나는 어떤 정당의 누구를 나의 대표로 선택해야 할까요?
 
 
이런 모순을 안고 있는데도 왜 우리는 대의 민주제를 유지하고 있을까요? 첫째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규모의 문제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라면 모를까, 이렇게 수백만, 수천만이 모여사는 나라에서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규모의 문제만 있다면 시나 군 등의 작은 자치단체에까지 의회가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전문성입니다. 모든 분야에 전문가가 있듯이, 정치도 전문가가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민주정치보다는 누군가 전문성을 지닌 집단에게 정치를 위임하는 게 낫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전문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왜 보통사람들이 판단하는가 하는 의문도 함께 솟아납니다. 의사나 법률가, 간호사 등을 선거로 뽑지는 않으니까요. 전문가에게 정치를 맡기자는 생각은 자칫 시험을 통해 정치인을 선출하자는 능력주의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쉽고 편안한 정치 입문서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 내 삶을 바꾸는 정치 공부>에서는 정치를 전문가의 영역으로 밀어놓으려는 생각을 이렇게 비판합니다.
 
 
나는 정치인을 법률가나 의사와 같이 전문성이나 기술을 갖춘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것에 강한 저항감을 느낍니다. 정치는 그런 영역으로 환원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의 영역에서는 올바른 지식이나 정확한 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전제가 됩니다만, 정치에서는 '올바름'이 하나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각각 '올바름'을 주장하기 때문에 그중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올바르다고 잘라 말할 수 없습니다. 정치는 가치의 복수성이나 다원성을 전제로 몇 가지의 '올바름' 사이에서 조정이나 타협을 도모하는 행위입니다. _ 48~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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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대체 왜 우리는 대표제를 택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책의 저자 스기타 아쓰시 교수는 이에 대한 답으로 ‘연극으로서의 대표제’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어떤 ‘민의’가 존재하고 그것을 대표가 전달한다는 것이 대표제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사실상 확고한 민의가 먼저 존재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모호하거나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대표들이 의회에서 논쟁하거나 정당들이 대립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의견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테러방지법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던 우리가 '필리버스터'를 보며 쟁점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파악하게 된 것처럼.  
 

 
 
 
 
정치인은 각각의 역할을 연기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논전을 펼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중략) 정치적 쟁점이 어디에 있고, 대립 축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누구의 의견에 가깝고, 어떤 점이 다른가? 대표들이 펼치는 정치극을 보면서 이러한 것들이 명확해집니다. 대표라는 존재가 전혀 없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정치적인 논의를 시작하는 것조차 얼마나 곤란한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_ 50쪽
 
 
대표제가 아무리 잘 기능해도 개인의 입장에서는 늘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직접투표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됩니다. 하지만 직접투표가 대표제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직접투표는 대개 찬반을 묻거나 최소한의 선택지를 제시하기 때문에 대표제를 대신한다기보다는 문제를 단순화시켜 사람들 사이의 토론을 활성화시키고, 민의를 형성해가는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에 대해 직접투표를 해야 할까요? 환경이나 생명, 의료, 정체성 문제 등 정당의 전통적인 대립 구조 안에서 쟁점이 되기 어려운 문제들이야말로 직접 투표에 부쳐야 합니다.
 
 
기존의 정당정치 안에서 매듭짓지 못하는 문제는 직접투표에 부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정당정치를 지키기 위해서도 의미가 있기 때문에 기존의 정당 입장에서도 투표를 실시하는 편이 좋습니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무리하게 정당정치의 틀 안에서 매듭지으려 하다 보면, 각 정당이 쪼개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정당의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는 문제라면, 직접투표에 부쳐 사람들이 결정하게 하는 것이 하나의 지혜가 될 수 있습니다. _ 57~58쪽
 
 
 
​대의 민주제 혹은 대표제, 직접투표에 대해 이제 좀 감이 잡히시나요? 정치는 전문가들이 혹은 대표'만' 하는 게 아닙니다.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우리의 삶입니다. 자, 그럼 4월 13일 모두 투표하러 가실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