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에 이른 조선 문화를 본다

동서남북으로 뻗어 나가던 시선을 거두어들여 한양을 훑어볼 차례다. 맨 처음 눈길을 주었던 한강 포구에서 조금만 올라오면 숭례문이 우리를 반긴다. 그 안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은 선혜청의 커다란 창고. 물품을 실은 행렬이 한강 포구에서 이곳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가로변에 즐비한 크고 작은 가게들이 흥청거리는 모습은, “남문 안 큰 모전(毛廛 : 과일가게)에 각색 실과(實果) 다 있고 …… 상미전(上米廛 : 싸전) 좌우 가가(假家)에 십년 양식이 쌓였다”(「한양가」)는 노래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도성 안에는 기와집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길가 집들은 행랑을 개조해 길 쪽으로 좌판을 내고 각종 물건을 진열하여 행인을 손짓하고 있다. 한양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듯이. - 「조선생활관2」 40, 41쪽
 
 
옛날 로마의 그리스 식민 도시에 한 시인이 있었다. 어느 날 그 도시의 부호가 연회를 열고 시인을 초청하여 손님들 앞에서 자기를 찬양해 달라고 했다. 마침 그 부호의 집에는 폴리데우케스와 카스트로라는 쌍둥이 신의 석상이 모셔져 있었다. 시인은 부호를 찬양하면서 그 집에 세워진 쌍둥이 신도 함께 찬양했는데, 부호는 시인에게 약속된 대가의 절반만 지급했다. 자기를 절반만 칭찬하고 나머지 절반은 신을 찬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때 문밖에서 두 신사가 시인을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시인이 문밖으로 나서는 순간 부호의 집은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워낙 심하게 무너졌기 때문에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끔찍한 모습으로 죽었다. 사람들이 몰려왔지만 자기 가족을 알아볼 수 없어서 시인에게 시신 확인을 부탁했다. 시인은 자기를 살린 두 신사가 쌍둥이 신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의 신상이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연회 장소를 되짚어나갔다. 먼저 연회 장소 전체를 머릿속에 그리고 그 장소 곳곳에 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러자 어디에 죽어 있는 시체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긴 사람이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로마의 천재 웅변가 키케로가 ‘기억술(The Art of Memory)’이라는 주제를 논할 때 빼놓지 않는 요소이다. 키케로는 말했다. 기억술은 공간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공간은 다시 말해 이미지이다. 머리 속에 이미지의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 기억할 요소들을 차곡차곡 배치하면 결코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다.
 
 
지식을 공간에 배치해 놓고 보여주는 곳 가운데 하나가 박물관이다. 박물관을 잘 활용할 수 있으면 사람은 누구나 기억의 천재, 지식의 왕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재미있는 게임이 벌어지는 스타크래프트 공간의 구조와 그 안에서 벌어진 일들은 잘 기억하지만 박물관에 대해서는 기억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자극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생활사박물관은 우리나라 역사 지식을 박물관 같은 공간에 배치하여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도록 한 책이다. 그리고 역사 지식을 단순한 시간 순서나 시험에 잘 나오는 순서가 아니라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는 방식으로 배치한 책이다. 따라서 한국생활사박물관을 손에 들면 읽겠다는 자세보다 보겠다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디. 머릿속에 먼저 공간을 확보하고 그곳에 예쁜 한 채의 박물관을 지어 놓을 필요가 있다.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를 보려면 먼저 차례를 펴고 그곳에 그려져 있는 박물관 지도를 살펴 보자. 그리고 이 박물관을 먼저 머릿속에 넣자. 주의할 것은 이것조차 ‘의무감’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순간 모든 흥미가 사라지므로, 그럴 거라면 차라리 자기 맘대로 아무렇게나 박물관을 지어 놓고 책장을 넘겨 가면서 상이 잡히는 대로 부쉈다 다시 지었다 하면 된다.
 
 
공간으로 살펴보는 절정기 조선의 모습
「조선생활관2」에 나오는 박물관 지도를 따라가 보자. 먼저 독자들은 18세기 서울을 빙 둘러싼 원형의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동서남북 사방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각양각색의 18세기 조선 사람들을 만난다. 동쪽에서는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의 멋들어진 금강산 그림을 품에 안고 대관령을 넘어가며, 서쪽에서는 강화도에서 외적을 방비하던 김노진이 김포를 지나고 있다. 남쪽에서는 삼남 지방의 물산을 잔뜩 배게 실은 경강상인들이 포구마다 넘치고, 북쪽에서는 중국 청나라에서 세상의 진기한 물건을 다 구경한 사신들이 무악재 너머 돌아오고 있다. 그렇게 서울로 모여들면 그곳에서는 또 남쪽 한강에서부터 청계천을 지나 양반네들의 북촌과 임금님 사는 창덕궁까지 빙글빙글 돌아가는 만화경이 펼쳐진다.
좀더 나아가면 ‘특별전시실’이 있다. 여기서는 조선 시대 풍속화 속에서 60명이 넘는 캐릭터들이 뛰어나와 제각각 일하고 놀며 사랑한다. 그리고 ‘가상체험실’이라는 곳에 가 보자. 여기에서는 정조와 정약용이 새로운 성을 쌓고 있다. ‘특강실’에서는 한문학계의 입담꾼 강명관 교수가 조선 시대 문학에 나타난 그 시대 풍속의 이모저모를 들려준다.
 
 
조선 후기의 넘치는 의욕과 분방한 삶에 관한 보고서
「조선생활관2」는, 우리에게는 ‘전통 시대’로 기억되지만 당시에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전진이었던 조선 후기의 넘치는 의욕과 분방한 삶에 관한 보고서이다. 이 시대에는 정조와 정약용뿐 아니라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쏟아져 나와 발랄하고 개성적인 ‘새로운’ 문화의 창조로 진군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근대 문화라고 하지 않고 전통 문화라고 한다. 이 시대에 새롭게 형성되거나 변화한 생활 양식, 예컨대 짧아진 저고리, 고추를 양념으로 쓴 빨간색 김치, 전면화된 온돌 문화 등을 일러 우리는 전형적인 ‘전통 생활 문화’라고 한다. 그리하여 18세기는 우리가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의 대부분이 형성된 시대, 이를테면 전통이 완성된 시대가 되었다.
새로움을 추구했으되 ‘본의 아니게’ 전통의 총괄자로 자리매김된 18세기, 곧 후기 조선의 모습은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는 동요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들이 ‘즐겁게 추던 춤’은 화려하고 다채로웠으며 높은 격조를 지니고 있었다. 18세기의 조선이 새로운 시대를 자기 힘으로 열어젖히지 못한 것은 물론 나름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근대화의 격랑 속에서 놓치고 지나온 ‘전통의 힘’이나 ‘전통의 아름다움’을 찾고자 할 때, 18세기 조선은 수량이 풍부한 저수지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의 목마름을 달래 줄 것이다. 독자가 머릿속에서 계속 박물관의 전시실을 채워가면서 책장을 넘기고 나면 나중에 책을 놓더라도 이 사람들, 이 거리, 이 나라의 충경과 사건과 인상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굳이 기억술이란 말을 떠올릴 필요도 없다. 독자는 18세기 조선과 세계를 통째로 삼켰으니까.
 
 
 
글 · 강응천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 주간)
 
 
1318북리뷰 2004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