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과 비보잉의 만남, 탁경은 작가와 신여랑 작가 인터뷰

14회 사계절문학상은 힙합을 소재로 세대 간의 소통과 청소년의 꿈을 다룬 싸이퍼의 탁경은 작가가 받았다. 이번 14회 사계절문학상은 비보이의 이야기 몽구스 크루4회 사계절문학상을 받은 신여랑 작가도 심사에 참여하였다. 두 사람이 만나면 정말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러나 제주도에 사는 신여랑 작가와 서울에 서는 탁경은 작가의 거리적 제약으로 서면 인터뷰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작품으로만 만났던 두 사람이 서로 묻고 답하며 싸이퍼 하는 장면이 연출되는, 예상대로 재밌는 인터뷰였다.
신여랑 작가


 탁경은 작가(오른쪽)


싸이퍼의 탁경은 작가가 묻고
몽구스 크루의 신여랑 작가가 답하다
 

탁경은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는 제14회 사계절문학상을 수상한 탁경은입니다. 직접 뵙지 못하고 이렇게 온라인 인터뷰를 하게 되어 아쉽지만 그래도 작가님과 질의응답을 주고받을 수 있어 기쁘고 설렙니다.
   『몽구스 크루는 대부분이 남학생인데요, 저는 남학생들이 나오는 소설을 쓸 때 과연 이게 인물들의 말투인지, 제 말투인지 헷갈려 좌절할 때가 많습니다. 인물의 말맛을 살리지 못하고 제 말투가 끼어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고요. 남학생들의 말투를 실감 나게 쓰는 비법이 있으신가요?

신여랑  그런 게 있을 리가요. 그저 최선을 다해 인물의 느낌을 대화에 실어 보려고 애를 쓸 뿐입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남학생들을 만나게 되면, 아이들의 말투를 유심히 들었다가 메모해 두기는 하는데 그게 작품에서 유용하게 쓰였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저도 작가님과 같은 좌절을 하게 되곤 합니다. ‘이 아이가 과연 이렇게 말할까? 모든 인물이 같은 톤으로 말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인물마다 그 인물이 잘 쓰는 유행어나 비속어(?)를 정해 두기도 합니다. 일종의 꼼수라고 할까요.


탁경은  작가의 말에 보면 비보이 팀 엠비 크루를 직접 찾아가 취재했다고 밝히셨는데요, 부끄럽게도 저는 아직도 취재가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작가님만의 취재 요령과 취재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신여랑  저도 몽구스 크루를 쓸 때 취재라는 걸 처음 해 봤는데요, 처음에는 어색하고 부끄럽고 어떻게 접근할지 막막했어요. 그런데 엠비 크루 멤버들이 저를 황송할 정도로 환영해 주는 거예요. “비보이들 소설을 쓰려고 해요.” 딱 이 한마디 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순조로웠어요. 무작정 연습실에 간식 사 들고 찾아가서 앉아 있다 오고 공연장에 찾아가서 공연 보고, 공연 끝나고 뒤풀이할 때 따라가고 그랬어요. 취재한다는 건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장소, 같은 공간에 같이 있으며 그 분위기를 같이 느끼는 것, 그게 기본인 거 같아요. 내가 아닌 친구들과 말할 때 말투, 차림새, 소지품, 걸음걸이 등등을 유심히 봐 두는 것도 중요하고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 취재인데 이게 참 놀라운 게 취재를 하기 전과 후의 디테일 차이가 엄청나다는 거예요. 작가가 불어넣는 이야기의 생동감, 생생함을 생각한다면 취재는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에요.


탁경은  소설의 결말에서 가장 인상 깊게 와 닿은 문장이 있습니다. 바로 단순하게, 더 단순하게 즐겨라.’ 입니다. 쉬운 말 같은데 글쓰기를 하다 보면 이 말을 실천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글쓰기 과정에서 힘겨움을 느낄 때마다 작가님에게 힘을 주는 문장은 무엇이죠? 최근에 작가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장도 좋습니다.

신여랑  저는 자기비하가 강한 사람이에요. ‘내 글은 왜 이 따위일까?’ 쓰는 내내 자학을 합니다. 지금도 나는 왜 이 따위로밖에 대답을 못할까? 그러면서 쓰고 있으니까요. 어쨌든 그렇게 자학적인 글쓰기를 하면서도 그 시간에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는 그 순간!’의 희열이 저를 작가로 살게 하는 것 같아요.
   『몽구스 크루로 예를 들자면, 진구가 빗속에서 춤을 출 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몽구의 입을 통해 토해 낸,내 것이면서 몽구의 것이기도 했던 말들이 내게 주는 각성의 순간 같은 거예요. 그때 막 울면서 그 장면을 썼거든요. 그래서 이게 질문에 대답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를 쓰다보면 그 순간이 올지도 몰라. 그러니까 써. 써야만 와, 그 순간은! 쓰지 않으면 절대 안 와!’ 그런 생각을 합니다. 글 앞에서 막막해질 때마다.


탁경은  (좀 거창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작가님께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 가장 사랑하는 것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신여랑  이런 질문 당혹스러우면서도 어딘지 사랑스러운 질문입니다. 저도 이런 질문을 할 걸 그랬어요. 우선 대답하기 쉬운 것부터 말하자면 가장 사랑하는 건 우리 집 고양이 은복입니다. 그 아이랑 같이 있으면 그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심하고 태평하고 건너다보는 평화로움이 저를 꽉 채웁니다. 그리고 태생이 소심하고 겁이 많은 편이라 무서워하는 것은 많은데,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하니 그 어감이 주는 무게가 다르게 느껴지네요. 좀 이상하고 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진짜 작가가 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까 봐 두렵습니다. 이생에 한 번은 진짜 작가로 살아 보고 싶은데.
 

 
몽구스 크루의 신여랑 작가가 묻고
싸이퍼』의 탁경은 작가가 답하다

 
신여랑  개인적으로 힙합을 좋아하는 1인으로서, 싸이퍼는 무척이나 반가운 작품이었고, 청소년들도 저만큼이나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작품을 읽은 아이들이 싸이퍼를 하면서 노는(?) 장면을 떠올리면 왠지 실실 웃음이 나옵니다.
   소재가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언제 어떤 경로로 , 이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런 느낌을 받으셨는지, 랩의 무엇에 매료됐는지 궁금합니다.

탁경은  2012년 무렵 습작으로 쓰던 단편소설에 랩을 하는 친구들이 자꾸 모습을 드러냈어요. 그러다가 저 역시 작가님처럼 래퍼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어요. 함께 래퍼를 꿈꾸었지만 각자 사정으로 다른 현재를 사는 친구들을 보면서 무척 공감했어요. 누구는 재능에 대해 고민하고, 누구는 현실의 문턱 앞에 좌절하고, 누구는 랩을 포기하고, 누구는 랩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모습에서 저를 본 것 같아요. 그들의 랩이 제겐 글이었고 그들의 고민은 신기하게도 저의 것과 무척 닮아 있었어요.


신여랑  이 작품을 읽으면서 랩의 용어들을 정확하게 알게 돼서 기쁘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제게 크게 다가왔던 건 스웩과 리스펙트의 공존이었는데요. 그게 반대되는 측면이 좀 있잖아요. 그런 정신이 공존한다는 게 새삼 힙합의 정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랩은 힙합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힙합, 힙합의 정신(?)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탁경은  제가 생각하는 힙합 정신은 당당함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스웩리스펙트도 같은 뿌리라고 생각해요. 당당하게 말해야 해서 스웩이 필요한 거고 내가 당당하기 때문에 상대도 리스펙트할 수 있는 거거든요. 틀려도 좋고, 실수해도 좋으니 일단은 당당하게 내뱉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자신감을 갖고 해 보기. 내가 내뱉는 순간이 존중받는 만큼 당신의 행위와 시간도 존중해 주기. 그게 제가 생각하는 힙합의 기본 정신이에요.


신여랑  작품의 구성에서도 두 명의 주인공이 주고받는 게 싸이퍼의 느낌이 납니다. 저는 도건의 이야기를 킥킥거리면서 읽다가도 정혁의 이야기에 가서는 마음이 무거워지곤 했어요. 정혁이 짊어진 삶의 무게(?), 그러니까 당대 청년 세대의 아픔 때문인 것 같아요. 작가에게는 정혁의 이야기는 쉽지 않고, 조심스러웠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도건의 이야기를 쓸 때, 정혁의 이야기를 쓸 때 작가로서 느꼈을 주인공들과의 교감(?)이 궁금합니다.

탁경은  정혁의 고민은 저의 고민이었어요. 정혁이 짊어진 삶의 무게는 저와 제 친구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였고요. 대학을 졸업하고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도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어 힘겨웠거든요. 무조건 사회의 대세에 따라야 한다는 압박감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 보니 금방 30대가 되더라고요. 반면 도건은 제가 학생 때 가지지 못한, 다시 돌아간다면 한번 그렇게 살아보고 싶은 캐릭터의 총합인 것 같아요. 거침없으면서도 실수를 하면 바로잡으려고 애쓰고 오만방자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요. 그래서 정혁 이야기를 쓸 때는 진지했고 도건 이야기를 쓸 때는 신나고 좋았던 것 같아요.


신여랑  개인적으로 작가가 도건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고, 매료된 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특히, ‘랩이 시라는 진술은 가슴에 확 꽂히더라고요. 그런데 한편 도건과 정혁이 그려내는 랩의 풍경은 랩 혹은 힙합의 가장 긍정적인 측면만 가져온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문학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복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측면만 강조할 때 랩이나 힙합이 이렇게 긍적적이기만 합니까?’라는 비판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탁경은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싸이퍼안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힙합이 아니다. 결국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힙합을 둘러싼 것들이다. 힙합을 둘러싸고 생겨나는 욕심들이다.’ 저는 지금도 이 생각에 변함이 없어요. 화가를 힘들게 하는 것은, 소설가를 힘들게 하는 것은, 가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절대 그림, , 노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둘러싼 자신의 지나친 욕심들이 예술가를 힘들게 하는 거라 생각해요. 힙합판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힘겹죠. 살벌한 경쟁이 있고 랩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을지 불투명해요. 힙합이 자본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는 게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렸고요. 그 가운데에서도 저는 힙합 자체, 랩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봐요. 돈이 화근인 것이 아니라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천사도 되고 악마도 될 수 있는 것처럼. 힙합을, 그림을, 글을, 노래를 진심을 다해소중하게 다루었으면 좋겠어요.


 
 
싸이퍼

저자 탁경은

출판 사계절

발매 2016.08.30.

 
 
몽구스 크루

저자 신여랑

출판 사계절

발매 2006.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