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예의 없는 친구들을 대하는 슬기로운 말하기 사전』



『예의 없는 친구들을 대하는 슬기로운 말하기 사전』
단호함은 나를 지키는 갑옷과도 같은 것


 
글 ✽ 김여진(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 서울 당서초 교사)

 
어른들은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 “마냥 좋을 때다.”, “걱정 하나 없을 때다.”라고 하지요. 그런데 당사자인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주 펄쩍 뛸 것입니다. “얼마나 괴로운 일이 많은데요!”, “모르는 소리 하지 마세요.” 하면서요. 사실 아이들과 제법 많은 시간을 가까이에서 보내는 사람으로서 교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정한 친구들이 가득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친구들을 그저 한곳에 묶어 둔 곳에 가깝습니다. 나와 잘 맞는 친구들끼리만 있으면 좋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지요. 그게 무례한 행동인지 몰라서 서슴없이 하는 친구들도 있고, 그렇게 하면 안 되는 행동인 걸 충분히 알면서도 얼마든지 그러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어른들의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고요.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아이들은 일상 속에서 무례하고 경우 없는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며 살아가게 될 거예요.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을 것이고요. 『예의 없는 친구들을 대하는 슬기로운 말하기 사전』은 나를 단호함으로 단단하게 무장하게 하는 갑옷 같은 책이에요. 한번 떠올려 보세요. 다들 줄을 서서 급식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아이가 슬그머니 새치기를 해요. 그럴 땐 어떤 말을 하면 좋을까요? “야, 내가 네 자리 맡아놨어. 여기 서면 돼.” 하면서 편들어 주는 친구까지 있다면요? 괜히 싸움이 날 것 같아서 모른 척해 보려 하지만 줄곧 찝찝한 마음이 남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용기 내서 한마디 해 보는데 튀어나오는 말이 너무 거친 거죠. “야! 너는 뭔데 새치기를 하냐? 줄 서!” 좋은 시도였지만 안타깝게도 슬기롭지는 못했어요. 감정을 줄이고 사실만 전달 하는 게 바로 슬기로운 말하기거든요. 그럴 땐 화를 표출하는 건 줄이고, 명확히 원하는 걸 전하는 거예요. 가령, 이렇게요. “병주야, 모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 너도 차례대로 줄을 서 줄래?”

아, 이렇게 간단하고 말끔하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다니! 새치기하는 너 때문에 불쾌하고 화가 났다는 건 표현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을 넌지시 전할 수 있는 말이네요. 세 치 혀가 칼보다 강하다더니 정말이에요. 이 책은 꼭 친구가 무례하게 굴 때만 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오늘 학교 마치고 놀자고 하거나, 나를 회장 선거에 추천하는 것처럼 내가 원치 않기 때문에 거절해야 하는 상황 말이에요. 그럴 때 상대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기분 상하지 않게 현명히 거절하는 방법도 책에서 만날 수 있어요.

교실에서 다양한 성격을 지닌 친구들과 생활하며 피로감에 휩싸여 있을지 모르는 아이들을 든든하게 지켜 줄 만한 책이 이제야 나오다니! 저도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아, 그 말은 그때 꼭 해 줬어야 했는데!’ 후회하며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날린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요. 대표적으로 억울했던 사례는 2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용돈이 두둑한 친구 한 명이 선심을 베풀며 모두 종이 뽑기를 시켜 준다고 해서 저도 뽑았지요. 모두 ‘꽝’이 나왔는데 저만 ‘음료수 한 병’ 당첨이 나온 거예요! 기분이 좋아서 팔짝팔짝 뛰며 문방구 아주머니한테 음료수를 건네받았어요. 하지만 이내 뽑기로 선심을 쓴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내가 돈 내 준 거잖아. 그러니까 음료수도 내 거야!”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저는 찍소리도 못하고 음료수를 빼앗기고 말았어요. 속으로 ‘그럴 거면 그냥 자기가 다 하지 그랬어?’ 백 번 정도 외쳤지만,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지요. 책을 얼른 펼쳐 봅니다. 이럴 땐 이렇게 말하래요. “서운하네. 앞으로는 한턱내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면 좋겠어.” 25년 묵은 체증이 이제야 내려가는 기분이에요. 속이 다 시원하다!

단호함은 나쁜 게 아니에요. 마냥 참는 것이 착한 것도 아니고요. 친절하면서도 단호해야 할 땐 단호할 줄 아는 어린이가 자라 건강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