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줄 아는 마음, 이야기가 되다

한 사람의 세계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수년 동안 지구를 거쳐 간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 그것은 역사가 되어 미래를 예견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결국 과거 사람들 모습에서 미래의 단서가 있다는 것으로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당연해 보인다. 
 
『뽀이들이 온다』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 개인이 하나의 이야기라고 볼 때, 돈을 좇는 이와 꿈을 좇는 이, 그리고 현재의 삶을 좇는 이가 각자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소설에서는 제각기 뚜렷한 성격을 지닌 인물로 묘사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캐릭터가 모두에게 다 내재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낡은 것과 새것, 전통과 현대가 맞서는 1920년대. 서울 광통교 아래에서 『임경업전』을 멋들어지게 이야기하는 소년 수한이 있다. 스승인 도출의 가르침대로 듣는 이의 상황에 따라 이야기 중에서 어떤 부분을 들려줘야 하는지 아는 아이다.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 재주를 가진 아이다. 하지만 동진은 다르다. 옛것은 더 이상 돈이 되지 않기에, 동진은 돈이 되는 이야기꾼으로 변한다. 무성영화의 변사가 되기 위해 스승 도출과 동무였던 최한기를 찾아가는 아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명, 장생. 두 주인공에 비해 어리바리하고, 특별한 이야기 재주도 없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를 사랑한 장생은 그 자체가 이야기이다. 도출은 그러한 장생의 마음을 간파했기에, 동진이 장생을 왜 제자로 받아들였느냐고 물었을 때 아래와 같이 대답한 것이라 본다.
 
“글자는 모르지만 장생은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아이다. 글이야 차차 배우면 되는 거고.”  (본문 중)
 
이야기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 속에서 동질감을 얻기 때문이다. 모두가 똑같지 않은 삶. 그래서 우리는 살아내기 어려울 때 이야기 속에서 나와 같은 처지의 인물을 통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수한과 동진은 능력이 있는 존재로 이상향이라고 본다면, 우리네 보통의 삶과 비슷한 인물은 바로 장생이지 않을까.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장생처럼, 진심으로 뭔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 덕목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천상병 시인의 시(詩)「귀천」에도 나왔듯, 인생은 소풍.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고 그 이야기는 후대에 또 다른 선견지명이 될 것이라 본다. 
 
 
 
글 l 이금순 (전주솔내고등학교 사서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