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이구아나 할아버지>




이구아나와 할아버지 덕분에 다름과 존중을 배웠어요.
 
-이유진(수원영동초 교사)
 
몇 해 전 3학년 우리 교실에 햄스터 가족이 잠깐 왔다 간 적이 있다. 누군가 이사를 하면서 햄스터를 상자째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놓았다는데, 그것을 본 아이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그렇다고 집으로 가져갔다가는 부모님의 날벼락이 떨어질 것 같으니 우선은 교실에 가서 우리 반 전체가 잘 돌봐 주자고 나를 설득할 요량이었나 보다. 간절하고 애절하게 날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과 오물오물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이는 귀여운 햄스터 가족에게 금세 마음을 홀딱 뺏겼다. 그러나 바로 정신을 차리고 ‘학년이 바뀐 후에는 어쩌지? 그 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떠올리며 교실에서는 동물을 키울 수 없다는 말로 그 눈빛들을 외면했다. 다행히 데려가겠다는 반 아이 가족이 나타났고, 그 햄스터 가족은 다른 아이들의 부럽고 아쉬운 눈길을 받으며 우리 교실에서 작별을 했다.
생명을 책임지는 그 중한 일을 맡고 나면 자칫 잘못될까 봐, 그 이후 내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을까 봐 두려워 선뜻 반려동물과의 생활에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런 엄마 마음도 모르는 우리 집 아이들은 이런저런 통로로 집에 동물 친구들을 데려왔다. 달팽이, 가재, 장수풍뎅이, 소라게와 구피 같은 열대어들. 수명대로 잘 살다 갔다고 말하기엔 그것조차 잘 모르겠는 시간들을 살다 간 생명들. 잠깐 시선과 관심을 벗어나면 금세 작은 주검들이 되어 가슴 떨리게 만들었다. 잠깐 슬퍼하고 이내 잊은 듯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영 불편했다. 아이들에게는 그저 호기심과 관심의 대상이었을 뿐, ‘반려’의 대상은 아니었다는 것이 그 생명들에게 오래도록 미안했다. 그래서 아주 단단히 엄포를 놓았다.
“앞으로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마음 없이는 절대! 절대! 동물 키울 생각하지 마!”
 
생명을 키운다는 결정을 앞에 두고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 당장 내 허리가 아파도 새로 송아지를 낳은 어미 소가 걱정되어 한달음에 내려가는 희경이 할아버지처럼. 이구아나를 잃어버린 후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걱정 근심에 사로잡힌 희경이처럼. 생명을 대하는 마음은 그래야 한다. 조금도 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구아나 할아버지』를 읽으며 이 두 사람의 마음이 귀하게 다가왔다. 사람들이 모두 다 이런 마음으로 동물을 키운다면 버려지는 동물들이 없을 텐데, 싶었다. 애완동물이라는 말 대신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더 많이 사용되는 요즘에도 키우기 시작했다가 싫증 나서 버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해 보면 이런 이야기가 앞으로 더 나와도 참 좋을 것 같다.
동시에 이 작품은 다름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유쾌하게 보여 준다. 할아버지에게는 ‘배암’일 수밖에 없는 낯선 반려동물인 이구아나로 인해 그전까지 서로 잘 통하였던 할아버지와 희경이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서면서 갈등이 유발되는 과정이 재미있다. 그리고 그 갈등의 끝에서, 끝내 이구아나를 인정하지 않을 것 같던 할아버지는 ‘이구아나가 희경이에게는 송아지일 수 있겠구나.’ 하고 이해하게 된다. 이구아나를 잃어버리고 나서 주저앉아 펑펑 울면서 ‘나랑 정든 애’라고 우는 희경이의 말에 할아버지 마음이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정이 든다는 것은 깊은 마음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할아버지는 이해하셨으리라. 그래서 무뚝뚝한 할아버지는 희경이 모르게 이구아나를 찾는 쪽지를 써 놓는다. ‘배암이 아니라 이구아나’라고. 혹시 나중에 다시 만나면 좀 반갑게 대해 주실지도 모르겠다. 책 제목이 ‘이구아나 할아버지’니까 말이다.
 
‘성질이 온순한.’ 이구아나에 대해 찾아보면 이런 설명이 꼭 붙는다. ‘뱀목 이구아나과’로 구분해 놓은 말만 보고 낯설고 징그럽다고 생각하여 그동안 이구아나의 매력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작품을 통해 이구아나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곳곳에 나오는 유쾌한 이구아나 그림이 한몫 단단히 하기도 했다.
성질이 온순한 이구아나 씨,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뱀목’이란 말을 빼고 이구아나 씨만의 매력만 보려고 할게요. 추위와 소음에 약하고 상추를 좋아한다는 것 정도는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