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힘, 전기수 이야기

동진은 흰 와이셔츠에 빳빳하게 주름을 세운 양복바지, 조끼까지 제대로 갖춰 입은 모양새였다. ‘나는 모던 뽀이요.’, 온몸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본문에서)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자,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았던 1920년대식 양복바지와 조끼를 갖춰 입고, 맥고모자라도 눌러쓸 것 같은 소년들이 뻐기듯이 걸어 나올 것 같았다. 사랑스러운 소년들. 아이라고 하기에는 삶의 무게가 있고, 청년이라고 힘주어 말하기에는 앳된 티를 벗지 못했지만, 생활 전선에 뛰어든,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소년들 말이다. 그래서 제목에 나오는 ‘뽀이’가 맞을 것이다.

1920년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소년들에게는 시대가 주는 무게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고민이 있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그리고 가장으로서 어떻게 가족의 생계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지. 이런 고민들은 지금의 아이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그저 내가 가르치는 열여덟 살의 평범한 소년들처럼 말이다. 농담을 하면 낄낄거리며 웃고, 농구 시합을 하면 얼굴 벌게져서 달려드는 아이들. 그렇지만 그런 밝은 미소 뒤에는 장래를 고민하고, 대학에 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부모님에게 어떤 아들이 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모습이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졸업을 하고, 문득 연락을 해서는 고맙단 소리를 하는 아이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싶어서 기특하고, 때로 안쓰럽기도 한 보통의 아이들 말이다. 그래서 동진, 수한, 장생의 모습이 그저 걱정스럽고 사랑스러웠다.

전기수의 즐거움과 가치를 알고, 또 우리 옛것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도출의 모습은 슬펐다.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를 지키는 것이 마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도출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 길을 따르려는 수한의 모습이 마음 아팠다. 이청준 작가의 「줄」이나 「매잡이」 등에서 보는 것처럼, 이 책 역시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변화를 읽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했다. 전통과 새로운 문화 사이에서 살고 있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이니까 말이다.

전반적으로 문장이 매끄럽게 전개되고, 전기수들이 읽어 주는 책 내용도 흥미롭게 표현되어서 금방 읽히고 재미있다. 그런데 이야기 구조가 좀 단순한 것 같아 아쉽다.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마음에 와 닿은 구절들이 있었다. 전기수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아이에게 한창 무성영화가 유입되면서 전기수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1920년대의 배경. 그래서 사회에 어떻게 적응해야하는지를 고민하는 사람들. 아직도 전기수의 이야기를 듣느냐고 비웃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가 갖고 있는 힘에 대하여 믿는 소년의 모습에서 왠지 나 자신의 모습이 겹쳐졌다.
 
“근데 넌 왜 이야기가 좋아?”
장생이 뜬금없이 정색을 하고 물었다.
“글쎄…… 이야기 속에서는 가 보지 못한 세상, 살아보지 못한 시간 속으로 갈 수 있잖아. 공자 왈 맹자 왈 어려운 말이 아니라 재미나고 생생한 이야기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이야기가 뭘 가르쳐 준다는 건데?”
(중략)
“사람들이 내 얘기 한 자락에 웃고 오는 모습을 보면 내가 참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지는걸. 게다가 돈까지 생기잖아.”
수한이 이내 밝은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하긴, 이야기 듣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래도 변사가 돈은 많이 번다던데…….”
장생이 수한의 눈치를 보며 뒷말을 얼버무렸다.
“그렇긴 하다는데…….” (본문에서)
 
나는 교사인 내가 좋다. 아이들에게 농담을 해서 “와-” 하고 아이들 얼굴에 함박웃음이 차오를 때, 어려운 개념을 알려 줄 때 아이들이 깨닫는 그 순간의 반짝 빛나는 눈빛이 느껴질 때가 좋다. 진지한 삶의 문제를 얘기할 때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여서 동의의 몸짓을 보일 때,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핫초코’라도 한잔 먹이고 아이가 좀 기운 낼 때도 좋다. 졸업한 아이가 문득 보내는 문자를 받을 때도 참 행복하다. 그런데도 가끔은 내가 하는 이야기들이-수업도 이야기의 하나라고 생각한다-아이들에게 얼마나 오래 기억될까? 내가 읽어 준 시 한 편이 아이의 가슴에 얼마나 오래 남을까? 내가 읽어 준 소설 한 구절이 아이가 선택해야하는 순간에 지혜가 될까를 고민할 때, 그럴 때는 가끔 기운이 빠진다. 나는 수한의 심정에 공감이 되었다. 나는 이야기가 좋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야기를 좋아할 거라고 믿는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나는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내가 속한 사회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아이들 경험의 한 부분을 살짝 바꿀 수 있다. 그러니 열심히 살아야겠다.
 
 
 
글 l 안선희 (황지고등학교 국어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