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괴짜 박사 프록토르' 시리즈

 
괴짜 박사,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다!
 
연재화(라이브러리 티티섬 운영자, 사서)
 
우리 잠시 ‘완독’이 주는 어감을 생각해 보자. 마치 겨울 방학 숙제처럼 따분하고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어지는 것은 나뿐인가? 하지만 그 과정을 인내하고 마지막 장을 넘기면 형체를 알 수 없는 뿌듯함으로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마법의 단어이기도 하다. 처음 예비 중학생을 위한 완독 프로젝트를 기획했을 때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200쪽이 훌쩍 넘는 책 한 권을 다 읽으면서 ‘숙제를 겨우 끝냈다’라는 감상이 들지 않게 하는지였다. 그래서 어떤 책을 선정해야 할지가 엄청난 과제였다. ‘조금 두껍지만 용기 내 읽어 보지 않을래?’라고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는 책을 찾아 헤맨 끝에 ‘괴짜 박사 프록토르’ 시리즈의 시작인 『신기한 방귀 가루』(1권)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 책에는 괴짜 박사가 나오는데 발명품은 ‘방귀 가루’이고 기상천외한 모험까지, 아이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요소가 모두 들어가 있었다. 결과는 반전 없는 대성공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한 문학을 좋아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방귀’를 소재로 한 노르웨이의 판타지 동화가 지닌 감성과 웃음 코드가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완독 프로젝트를 끝내며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한 가지 확신은 이 유쾌한 말장난과 엉뚱한 유머가 아이들에게 먹힌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더해 풍부한 묘사와 디테일하고 치밀한 설정들이 어쩌면 황당할 수도 있는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뒷받침해 줘 책을 펼친 순간 완전히 이야기에 사로잡힌다.

그렇게 불레와 리세 그리고 프록토르 박사님이 비누로 시간 여행을 하고(『신기한 비누 거품』(2권)), 세상의 종말을 막아 내는(『달 카멜레온을 막아라!』(3권)) 동안 나 또한 어린이 도서관에서 청소년(12-19세) 중심의 실험적인 도서관으로 한 번의 이직을 했고 한 뼘 더 성장했다. 여전히 도서관에서 엉뚱하지만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만나고 여전히 아이들과 괴짜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눈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괴짜 박사 프록토르’ 시리즈의 결편을 만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와 준 책들은 표지부터 눈길을 끌었다. 시리즈 4권의 표지는 불레가 반짝이는 금괴를 들고 있고,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인 5권은 산타가 끌어야 할 썰매를 불레가 혼자 타고 있어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 멋진 이야기의 피날레에 어울리는 표지가 이번에는 또 어떤 모험으로 나를 이끌지 설레게 만들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펼친 새로운 시리즈 『금괴 도둑과 비밀정원』에서 나는 주인공들과 함께 노르웨이 비밀 정보원이 되었고, 사라진 금괴를 찾아 영국 런던을 누볐다. 그리고 마지막 시리즈에서 ‘크리스마스 소유권’을 사들인 황당한 악당 트라네 씨를 만난다. 이 초유의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며, 『크리스마스를 구하라!』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이 멋진 시리즈를 떠나보내기 아쉬운 마음으로 모든 책을 완독한 지금, 누군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기상천외한 모험 스토리를 이끄는 삼총사 캐릭터’라고 소개하고 싶다. 특히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캐릭터는 아마도 불레일 것이다. 불레는 정말 정말 작은 소년이지만, 위기에 닥칠 때마다 작은 키를 이용해 영리함과 유머로 극복한다. 트룰스와 트륌 형제와의 첫 만남에서 불레는 두 다리를 붙잡혀 음수대에 처박힌다. “음수대의 물줄기가 불레의 코와 입을 정면으로 쏘아 댔다. 불레는 숨을 쉴 수가 없어 죽을 것만 같았다.” 책에서 이 문장을 본 순간 우리는 불레가 얼마나 괴로웠을지, 상처받은 마음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할 것이다. 하지만 음수대 근처에 모인 아이들에게 불레는 “이 음수대는 약해 빠졌구나.”라고 말하며 물줄기가 10미터나 솟구쳐 올라가는 음수대 이야기로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불레의 등장과 함께 나오는 첫 에피소드지만, 그 순간부터 독자들은 쌍둥이 형제의 우악스러운 괴롭힘에도 굴하지 않고 씩씩한 불레에게 빠져들어 열렬히 응원하게 될 것이다. 책에서는 같은 반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통해 불레를 ‘너무 키가 작고 괴짜 같으며, 말도 행동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정신 나간 아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레는 어떤 조롱과 편견에도 당당하고 말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예리한 감각을 지녔으며, 모두의 즐거운 시간을 지키기 위해 생사를 오가는 모험을 하고, 그 순간에도 유머를 잃지 않는 재기발랄한 작은 승부사이다.

불레의 친구 리세는 이야기 초반에는 맞춤법이 틀린 것을 참기 힘들어하고 무슨 일이든 100퍼센트 확신하는 일이 거의 없는 그런 아이였다. 『신기한 비누 거품』(2권)에서 위험에 빠진 프록토르 박사를 구하러 프랑스 파리로 떠나기 전날 밤, 행복한 꿈을 꾸며 꿀잠을 자는 불레와 다르게 리세는 온갖 암울한 걱정거리들을 떠올리며 밤새 뒤척인다. 독자들은 스스로를 리세에게 쉽게 투영하게 되고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을 함께 극복하고 울고 웃으며 리세와 함께 성장한다. 그러고 나면 항상 진솔하고 중요한 순간에 지혜로운 해결책을 제시하는 매력적인 리세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내가 가장 닮고 싶고 애정하는 캐릭터인 프록토르 박사는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했던 연인 줄리엣을 만나기 위해 세상을 놀라게 할 발명을 하는 로맨틱한 어른이다. 사람들은 박사를 철없는 어른으로 바라보고 박사의 발명품도 쓸데없다고 무시한다. 하지만 시리즈를 더할 때마다 점점 더 깊고 넓은 상상력으로 기발한 발명품을 만들어 내고 결국 이 발명품들로 세상을 구한다!

이렇게 멋진 프록토르 박사가 가장 빛나고 매력적인 순간은 단연 불레와 리세와 함께할 때이다. 프록토르 박사는 불레와 리세가 만나는 그 어떤 어른보다 괴짜이고 별나며 매력적인 제3의 어른(제1의 공간인 ‘집’에서 만나는 부모님, 제2의 공간인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보다는 느슨하게, 적당히 거리를 지키며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어른들.)이다. 하지만 자신보다 어리다고 무시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봐 준다. 그런 태도가 시리즈 전반에 걸쳐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드러나는데, 그렇기에 셋은 서로를 진심으로 믿게 되고 ‘달 카멜레온’으로부터 목숨을 걸고 세상의 종말을 막는 모험을 함께하는 진정한 친구가 된다.

이 사랑스러운 삼총사와 프록토르 박사의 부엌 식탁에서 1미터 50센티미터짜리 푸딩을 먹는 상상을 해 보자. 그러다 걷잡을 수 없는 모험을 떠나 보는 것이다. ‘괴짜 박사 프록토르’ 시리즈는 ‘완간’되었지만, 삼총사와 함께 떠날 준비가 되어 책의 첫 장을 넘길 누군가가 있기에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