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터뷰] 기내식 먹는 기분

Q. 『기내식 먹는 기분』. 특별한 제목입니다. '기내식 먹는 기분', 어떤 기분인가요.

A. 기내식과 똑같은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으면 아마 망할 거예요. 맛으로만 따지면 기내식이 맛있다고 할 수는 없죠. 그런데도 항상 기대가 되고 약간 흥분된 마음으로 기내식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흥분된 마음 아래에 감춰진 핵심은 죽음에 대한 공포고요.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살면서 죽음을 의식하게 되지는 않지요.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시속 800킬로로 하늘을 날고 있으면 죽음의 가능성을 한 번쯤 생각하게 되고, 그때가 살아 있다는 안도감도 가장 크게 느끼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기내식 먹는 기분'은 '내가 지금 여기에 살아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는 기분입니다.


Q 살아 있는데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운 아이러니. 어질하네요. 이 책은 15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한두 달을 생활인처럼 지내다 온 기록이기도 합니다. 여느 여행 에세이와는 사뭇 달랐는데 다른 제목후보도 있었다고 하네요.

A 제목 후보 중에 '나를 보러 갔었어'가 있었습니다. 여행은 다른 동네를 구경하러 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와 거리감을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행을 떠나도 나의 일부는 내가 떠나온 곳에 남아 있게 됩니다. 가까이에서는 잘 안 보이던 것이 거리가 생길 때 잘 보이고 알게 됩니다. 매번의 여행에서 나에게서 내가 아닌 것들을 조금씩 덜어내고 세공하듯이 점점 나인 것만 남게 됩니다. 여행은 나와 거리를 둠으로써, 내가 정확한 내가 되도록 스스로를 찾아가는 작업인 것 같아요. 내가 나 자신과 함께 있다고 할 때 그건 어떤 영혼적 관점이니까 물리적인 공간과는 상관이 없을 텐데 이상하게도 '내 생활 공간'과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었을 때 내가 나를 보게 되더라고요. 그런 걸 자기 객관화라고도 하죠. 처음으로 날짜 변경선을 지나 다른 나라의 도시에 있을 때, 내가 나로부터 물리적으로 떨어져서 나 자신을 들여다본 것처럼 자기 객관화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뒤로 여행은 먼 땅에 거울을 하나 만들어 두고 오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Q 자기 객관화. 말하자면 사진 같은 것일까요. 비슷한 듯 다른 얘기일 텐데 작가님의 수동 카메라 덕에 저희는 가보지 않았거나 갔어도 보지 못했던 장면들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카메라에 담고 싶었는데 끝내 담지 못한 장면이 있나요.

A '누군가의 눈빛'이요. 카메라에 정말 담고 싶은데 늘 실패하는 것이 '눈빛'입니다. 눈빛은 아무리 카메라에 담으려고 해도 다 담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미리 포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땐 1초라도 더 오래 보고 기억 속에 남기는 것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카미노에서 에리히와 개의 모습을 담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웠지만 전 생애를 통틀어 단 한 시간 정도만 마주 볼 수 있는 인연이었다면, 그 시간을 사진 찍는 데 낭비하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생각합니다. 눈빛과 마음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Q 기억에 관해 생각하다 보면 여러 가지 심상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을 때는 '공간이 건네는 말'이 잘 '들리는 듯'했는데요. 아마 작가님이 잘 옮겨 주신 덕분일 거예요.

A 영화를 전공해서 친구들하고 단편 영화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공간의 사운드를 녹음하고, 촬영하는 작업을 하면서 빛과 소리 등에 예민한 감각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영화 촬영할 때는 '앰비언트'라고 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공간의 자체음을 따로 녹음합니다. 아무 소리가 없는 것 같아도 그 공간의 기본음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 영향을 우리가 알게 모르게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감각에 관해서라면 작가님의 첫 책 『산책을 듣는 시간』을 빼놓을 수 없지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이에 관한 명저로서 제16회 사계절문학상을 받은......『기내식 먹는 기분』에는 작가님의 첫 책 『산책을 듣는 시간』의 모티프가 된 장면들이 실제로 나와 전작의 애독자들에게는 큰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책에 보면 순례길을 걷고 나면 작가가 된다는 친구의 말이 나오는데요, 그게 실현된 걸까요.

A 순례길을 걷는 것과 작가가 되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을 하고 싶지만 이렇게 작가가 되어 버렸습니다. 『산책을 듣는 시간』의 많은 장면들은 그 길에서 만난 장면들에서 비롯된 것이 사실이지만, 인생 자체가 순례길이라고 생각하면, 살면서 제가 만난 사람들, 많은 순간들이 모두 작품에 녹아 있습니다. 『산책을 듣는 시간』은 제가 좋아하는 것들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저는 그래서 순례길을 걷든 말든 누구나 책 한 권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스페인과 인도를 지나 미국을 돌고 다시 여기 한국으로 돌아오는 흐름입니다. '지상에서 발이 조금 떠 있는 상태로, 유령처럼 서성이는 마음'에 기거할 자리를 마련해 준 '합정동 359-33번지' 이야기 또한 인상적이었는데요. 작가님께 '커피발전소'란 어떤 의미인가요?

A 커피발전소는 말 그대로 땅에 조금 떠 있던 제 발을 땅바닥에 붙여주었습니다. 커피발전소에서 일한 이후로는 도망치듯 여행을 떠나는 일이 적어졌습니다. 환대의 마음으로 저를 받아 준 곳이고, 제가 저의 모습 그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기분이 들게 해 주었습니다. 그 공간 자체가 좋은 친구였던 것 같아요. 커피발전소가 문을 닫고서 몇 달은 마치 특수복을 잃어버린 히어로처럼 힘이 빠진 채 지냈습니다. 덕분에 명상을 시작했지만요. 현실의 공간 없이도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살 수 있도록 내면을 다지고 있습니다.



Q 뿌리 깊은 나무가 되시길 바랄게요. 아쉽지만 이만 마무리할 타이밍입니다.『기내식 먹는 기분』은 비행기 티켓 4장 값을 주고 읽어도 아깝지 않을 책이란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읽기를 권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A  예전의 저처럼 유령처럼 서성이는 마음을 가진 분들, 땅 위에 발이 0.1밀리미터 정도 떠서 하늘 높이 날아가 버리지도 못하고 어디 한 군데 정착하지도 못하고 그저 그 시간을 서성거리는 사람들, 가만히 서 있는데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슬아슬해지는, 가서 붙잡아 줘야만 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그분들에게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말해 주고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