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평] 『물 없는 수영장』 송수연 평론가



살리고 싶은 마음 - 송수연(어린이청소년문학 평론가)
 
100년의 역사를 가진 목현고등학교. 이 학교의 당직 기사들은 모두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둔다. 비 오는 밤에는 외부 순찰을 하지 말라는 전임자의 말을 깡그리 무시한 신임 당직 기사 김 씨는 어느 비 오는 밤 체육관 뒤쪽, 오랫동안 방치된 물 없는 수영장에서 괴이한 소리에 휩싸여 추락한다. 도대체 이 학교에서는, 아니 물 없는 수영장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물 없는 수영장』은 ‘미스터리’다. 소설은 초반에 미스터리의 규약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100년이나 된 학교에 방치된 야외 수영장, 이 물 없는 수영장에서 들리는 괴이한 소리와 여기서 일어나는 각종 사고와 소문. 그리고 홀린 듯 수영장으로 모이는 인물들. 수영장의 비밀을 파헤쳐 웹소설로 쓰겠다는 구기현과 기현이 끌어들인 같은 반 임진호와 계영리. 그리고 이들을 방해하는 현상구와 강동휘. 여기에 기간제 교사로 새로 부임한 체육 선생 이진호도 수영장으로 흘러든다.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비밀, 신비, 수수께끼, 괴기스럽고 불가사의한 것”(위키백과) 자체인 이 미스터리는 독자의 호기심을 한껏 불러일으킨다. 아니, 21세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는 나도 모르게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그리고 이 세계의 일부인 나와 내 삶의 방식을 돌아보게 된다. 실제 2010년 발생한 구제역을 소재로 삼은 이야기는 “진작 했어야 하는 질문을 건넬 존재가 지금은 어디에도 없었다”(100쪽)는 사실을 뼈아프게 반추한다. 2010년 말부터 2011년 4월까지 6개월 남짓, 총 350만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했다는 기록(을 기반으로 한 소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난 이해가 안 가. 가만두면 낫는데 왜 죽여 없애는 거야? 350만 마리면 도대체 얼마야? 목현 인구 몇십 배잖아. 감기 걸렸다고 싹 다 죽여 버리는 거나 똑같잖아.” (105쪽)
 

‘전염성이 강하지만 사람에게는 전염되지 않으며, 성체의 경우 특별한 치료 없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는’데도, 우리는 35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생명을 마구잡이로 땅에 묻었다. 이유는 하나, ‘구제역 청정국’이라는 지위 때문이다. 사건을 파헤치는 아이들 말대로 “결국은 돈”이다. 돈 때문에 이 ‘대량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동물이니 괜찮은 걸까? 그렇다면 이 대량 학살에 동원된 공무원이나 수의사, 외국인 노동자가 살처분 이후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나 내 가족의 일이 아니니까, 나는 몰랐으니까 괜찮은 걸까? 소설은 말한다. 그곳은 ‘지옥’이었다고. 그렇다면 지금, 여기는 어떤가. 그곳과 이곳은, 그때와 지금은 늘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탄 기차는 종말을 향해 폭주 중이다. 이 기차를 멈출 방법은 없는가.

소설은 후반부, 겁 많고 유약한 부잣집 도련님 현상구가 어떻게 지금의 말썽꾼이 되었는지를 보여 줌으로써 우리 세계가 미세한 듯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와 타자는 그리 다르지 않다는 진실을 보여 준다. 소설은 임진호가 듣는 동물의 소리를 현상구도 듣는 것으로(그래서 둘은 같다), 그리고 아무도 보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진호(수영장 바닥에 가라앉은 진호, 어딘가를 떠도는 진호)를 상구만은 보고 듣고 인식하는 것으로 그린다. 상구는 진호를 그냥 싫어한 게 아니라 무서워했고, 그래서 “최대한 애들이 임진호를 싫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179쪽). 진호는 상구가 지우고 싶어 했던 또 다른 나(Double)인 셈이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고 삶의 근본에서 하나이다.

이런 인식은 상구나 김 씨를 몹쓸 인간으로, 악의 근원으로 몰아간 후 그의 가면을 벗겨 독자에게 가짜 카타르시스를 주고 악인으로 분(扮)한 희생양을 단죄함으로 마치 이 세계의 정의를 바로 잡은 척하며 진짜 문제를 덮어 버리는 이야기들과 명확하게 다른 방식의 결말로 나아간다. 소설은 기현의 입을 빌려 “끝이 이상하게 찝찝해요. 뭔가 이야기를 하다 만 것 같고.”(224쪽)라고 말한다. 여기에 “축축하고 어두운 게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끝나는 건 아니니까. 요즘은 찝찝한 채로 사는 게 맞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고 응수하는 체육 선생 진호의 말은 이 세계의 균열을 억지로 봉합하는 대신 현실의 불합리를 명확히 인지한 채 그것을 지켜보며 살겠다는 작가의 다짐으로 읽혀 뭉클하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서 물 없는 수영장의 또 다른 짝패(Double)인 물 있던 수영장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명호는 다이빙대에 서서 환하게, 더 환할 수 없을 만큼 눈부시게 웃어 보였다. (185쪽)
 

소설에서 물이 가득한 시절의 수영장, 햇살이 부서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수영장은 죽은 이명호가 살아 있던 시절이다. 현웅농장의 수많은 동물과 함께 구덩이에 묻힌 진실의 한 조각인 이명호. 그는 “아낌없는 응원과 호의 속에서 빛나던 아이, 세상의 올바른 것들이 다 자기편이고 인생에 그늘이 끼어들 틈이라곤 없는 듯이 행동하던 아이”(187쪽)였다. 그런 이에게 동물을 몰살하는 일을 맡기고, 나아가 그를 동물들과 함께 묻어 버리고 “이 일을 없던 일로 하자고. 모르는 척 살던 대로 살면 되는 것”(205쪽)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비단 김 씨뿐만은 아니다. 우리는 어떠한가. 내 식탁에 오르는 고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우리는 알고 있는가. 이는 단순히 비건이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다. 소설은 묻는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앎에 고의적으로 태만하지는 않은가. 소설은 뒤늦게 참회하는 배봉수 선생과 태 선생을 등장시키고 끝까지 사과하지 않는 현 사장의 모습을 보여 준다. 나는 과연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살아 있는 동물을 포클레인으로 찍어 누르고 밀어서 구덩이에 묻어 버리는 것처럼, “뭐든 묻어 버리는 일, 없는 셈 치는 일”(205쪽)이 우리가, 내가 그동안 해 왔던 일은 아닌가.
 

이명호가 죽고, 수영장의 물은 마르고, 물 없는 수영장에서는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린다. 말할 수 없는 동물들의 절규, 입은 있으되 지워졌던 자들의 목소리. 이제 모두 죽거나 이 땅을 떠나 영영 들을 수 없게 되어 버린 목소리와 묻혀 버린 진실. 『물 없는 수영장』이 미스터리가 되어야만 했던 이유다. 미스터리가 아니었다면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을 이야기와 목소리가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최첨단의 세계, 그리고 그 세계가 지워 버린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고, ‘진작 했어야 했던 질문’을 너무 늦은 지금이라도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아직 아이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진호가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 아이들이 있었다. 오후의 황금색 햇살을 받으며 언덕 위에 서서 손을 흔드는 아이들. 저도 모르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220쪽)
 

오빠 이명호가 부딪혔을 벽과 절망을 마주한 이진호가 ‘저도 모르게 웃을 수’ 있던 것은 그를 향해 먼저 웃어 준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학생 시절 수영장에서 수영하던 이명호처럼 아이들은 수천수만의 죽음이 있었던 언덕 위에서 환하게 웃는다. 이진호는 생각한다. “오빠가 어떤 선택을 했건 그 선택 뒤에는 살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 죽이기 싫은 마음, 죽도록 내버려두기 싫은 마음. 그렇다면 앞으로도 할 일이 많을 것이다. 무덤이었던 매몰지에서도 새롭게 풀과 나무가 자라고, 누군가 죽고 사라지고 졸업을 해도 새로운 아이들은 학교로 계속 들어오니까.” (225쪽)
 

수많은 동물과 이명호가 묻혔던 언덕. 그 원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눈물을 닦아 준 이 아이들이 또 다른 이명호가 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터이다. 다른 사람을 밀치고서라도 빨리 가려 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다 함께 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터이다. 『물 없는 수영장』은 말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