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해설_오, 사랑]



김지은 평론가의 『오, 사랑』 작품해설입니다. 조금 긴 글이지만, 소설의 여운을 긴호흡 속에서 느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자, 잠시 숨을 고르시고 이제 글에 집중해 주시면 됩니다.


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정경은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아끼고 돌보고 소중히 여긴다. 사랑하는 상대에게 아픔이 있으면 행여나 더 다칠세라 조심스럽게 위로하지만 기쁜 일이 생기면 몇 배는 뜨거운 축하를 건넨다. 본래 좋은 사랑의 장면들은 내재적 힘이 강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러 사랑 이야기가 그치지 않고 전해 내려오는 것은 사랑 이야기를 대신할 정도로 우리를 일으켜 주는 서사 유형이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많고 많은 고귀한 가치가 있지만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것에 작은 망설임도 없이 동의한다.

『오, 사랑』은 열여덟 살 주인공 오사랑의 이야기다. 그가 한 살 많은 학교 친구 이솔을 만나 첫사랑을 하게 되고 둘만의 세계를 도모하다가 가족의 탄생에 얽힌 비밀과 연거푸 마주치게 되면서 비밀의 실체를 찾아 먼 곳으로 떠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오사랑은 첫사랑을 통해 상자 안에 잠들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자기 존재의 무한한 가능성을 깨닫는다. 그리고 지난 시간 동안 자신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던 조용하고 충만한 사랑이 있었음을 뒤늦게 발견하고 그 힘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뜨거운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훌쩍 자라나게 된다.

『오, 사랑』은 열여덟 살 주인공 오사랑의 이야기다. 그가 한 살 많은 반 친구 이솔을 만나 첫사랑을 하게 되고 둘만의 세계를 도모하다가 가족의 탄생에 얽힌 비밀과 연거푸 마주치게 되면서 비밀의 실체를 찾아서 먼 곳으로 떠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오사랑은 첫사랑을 통해 상자 안에 잠들어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자기 존재의 무한한 가능성을 깨닫는다. 그리고 지난 시간동안 자신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던 조용하고 충만한 사랑이 있었음을 뒤늦게 발견하고 그 힘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뜨거운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훌쩍 자라나게 된다.

유라시아 대륙의 끝을 오가는 오사랑의 여정에 동행하면서 느끼는 독자의 만족감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조건 없는 격려와 위로다. 적은 도처에 있고 사랑은 드물고도 드문 이 시대에 호의와 열정만으로 선뜻 움직이는 놀라운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 일이다. 독자는 사랑이와 솔이가 기착지를 옮길 때마다 그들의 등 뒤를 따르다가 계획에 없이 선량한 인물들을 만나고 그 밝은 얼굴들에 안심한다. “맞아, 세계에는 이런 다정한 사람들이 있었지.”라고 고개를 끄덕이고 사랑이, 솔이와 더불어 그들의 손을 잡는 경험을 한다. “저도 오사랑의 친구에요.”라고 곁에 서서 웃으며 환대를 나누어받는 느낌이랄까. 소설의 화사한 힘이란 이런 것이다. 이 작품 안에는 따뜻함으로 무장한 이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호들갑스럽게 여겨질 정도로 솔직하고 순한 그들에게 둘러싸여 며칠쯤 떠들며 푹 쉬는 것 같은 한 권의 독서를 마치고 나면 오사랑의 말처럼 ‘보리수나무 아래 석가처럼 명확하고 군더더기 없는 깨달음’이 찾아온다. 그 깨달음이란 내 삶을 더 사랑해야겠다는 간결한 다짐이다.

두 번째 만족감은 가족에 대한 이해와 시야가 탁 트이는 경험과 관련이 있다. ‘가족’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청소년기의 양가감정은 대부분 그 개념 주변에 자리 잡은 해묵은 편견과 구속의 관습에서 오는 것이다. 수많은 청소년들이 “너희 가족은 어떤 모습이냐?”라고 캐묻는 정형화된 판정의 태도 앞에서 상처받는다.

“너는 가족 안에서 어떤 사람이냐?”라며 책무를 열람하는 질문 속에서 상대가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런데 『오, 사랑』은 그런 판정과 열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곳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그동안 우리 청소년소설은 가족의 문제를 다룰 때 갈등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변증적으로 화해시키는 일련의 구조에 몰입했던 경향이 있다. 사회로부터 받은 가혹한 차별은 종종 가족 간의 사랑과 믿음을 재확인하면서 인정할 수 없는 비현실적 해피엔딩으로 극복되기도 했다. 그에 비해 사회가 차별을 분명히 반성하는 장면은 찾기 어려웠고 차별 없는 사회가 기본 값임을 천명하는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한 사람의 청소년이 가족으로부터 건강하게 분리되면서 자신만의 독립된 영역을 구축해 내는 이야기보다는 안전한 귀환을 종용하는 이야기가 더 흔했다.

이는 아직도 청소년을 혼자 떠나보내기에는 걱정스러운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장기간의 교육과 학력 인플레, 높은 주거비용과 생활비 등으로 젊은이의 자립이 유예되면서 청소년기는 유년기처럼 여겨지고 원가족으로부터 성장한 개인이 분리되는 것은 아득한 일로 남는다. 양육자는 수능을 앞둔 ‘남아’를 키우고 있다고 ‘육아 게시판’에 적고, 삼십 대에 진입하는 취업한 자녀를 두고도 ‘우리 아이에 대한 고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오, 사랑』은 그 산뜻한 분리를 결행해 낸다. 과거의 서랍 안에서 감추어졌던 비밀의 단서를 찾아낸 오사랑은 뒤돌아보지 않고 이솔에게 그 비밀의 기지인 런던으로 갈 것을 제안하고 이솔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인다. 수십 시간에 걸쳐 두바이를 경유하는 비행기표를 끊고 까다로운 공항 검색을 통과한다. 두 사람의 모습이 가벼운 가출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이들이 그냥 한번 떠나 본 것이 아니며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결혼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다른 가족을 만들겠다는 결심은 원가족과 완전한 분리를 이루겠다는 뜻이고 어리둥절한 일탈과는 애당초 다른 수위의 선택이다. 독립을 통해서 성장을 완수하는 근대적 개인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이 작품의 드라마틱한 전개를 따라갈 수 없다. 오사랑과 이솔의 모험 안에서 가족은 밑바닥부터 재조명되고 진화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가족인가 싶으면 그건 가족이 아니었고 더 크고 넉넉한 가족의 모습이 “내가 가족이다.”라고 말하며 독자를 기다린다. 자유로우면서도 웅장하며 풍요로운 가족의 품이 우리를 반긴다. 오사랑은 그렇게 진화한 가족의 상을 마주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사방은 조용했지만 내 마음은 뜨거움으로 가득 찼다. 만난 적은 없지만 만약 존재한다면 신과, 내 부모와, 내 부모를 있게 한 그 부모의 부모와 인류 전체에게 입 맞추고 싶은 기분이랄까. 그리고 이 기분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 (214쪽)

이 작품을 통해서 독자는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첫 단추부터 다시 맞추는 신선한 경험을 하게 된다. 수많은 형태의 가족이 평온한 나날을 보낼 수 없도록 위협하는, 실재하는 폭력성을 마주하고 그 폭력성을 외면해 왔던 자신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순간도 만난다. 그러나 그 절차는 강압적이거나 선언적이지 않고 경쾌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조우리 작가는 오사랑과 이솔, 이 씩씩한 두 주인공이 내 친구라면, 그들의 엄마와 아빠가 내 친구라면, 그들의 애인이 내 친구라면, 아니 그들이 곧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어떤 선입견도 없이 최초부터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만약 어떤 조건을 갖춘 사람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사랑이 허용되고 다른 사랑은 금지되는 사회가 있다면 어떨까. 이 좋은 사랑이 누구에게는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사회가 엄격하게 정해 두었다면, 그 범주 안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은 사랑을 포기해야 하고, 사랑의 자격을 수시로 검열당해야 하고, 요건과 어긋나는 사랑을 한 사람은 처벌받는 사회라면, 그 사회에서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칭송할 수 있을까. 혈액형 A형과 O형은 절대로 서로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규범이 있다고 상상해 보기로 한다. 그 때문에 사랑하는 이와 어서 헤어져야 한다는 사회적 강요를 받는다면, 아마 우리 주변에도 적지 않게 있을 A형과 O형 커플은 어찌해야 할까. 안타깝지만 사랑을 포기해야 할까. 연봉이 얼마 이상인 사람과 얼마 이하인 사람은 사랑해서는 안 된다거나, 고교 졸업 성적이 몇 퍼센트 이내인 사람과 몇 퍼센트 이하인 사람은 커플이 될 수 없다거나, 이런 조항이 있다면 그건 또 어떨까. 물론 이는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기 때문에 당장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그러나 최상희의 단편 소설 「노 프라블럼」은 여전히 카스트 제도를 뛰어넘는 사랑이 금지된 인도에서 계급이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었다가 비극에 이른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바 있다. SF 같은 상상은 어딘가에서 아직도 차디찬 현실로 남아 있다.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높은 벽이 우리 곁에도 있었다. 불과십 몇 년 전까지도 동성동본 금혼제도가 있었고 서로 같은 성과 본이면 사랑을 포기해야 해서 수많은 커플들이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갈라놓는, 현실과 유리된 민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요구가 이어졌고, 1997년 7월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지면서 동성동본 금혼제도는 효력이 중지되었다. 드디어 2005년 3월 31일에는 남녀평등혼인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받아들여져 민법 제809조가 개정되었다. 같은 성과 같은 본을 가진 수많은 커플들에게 축제와 같았던 이날의 행복한 분위기를 생생히 기억한다.

그런 점에서 『오, 사랑』은 불운한 인류를 구하는 불빛처럼 세상 곳곳에서 깜박이며 쉼 없이 움직이는 사랑의 표정들, 사랑하는 이들의 하루하루에 대한 아낌없는 헌사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어느 사랑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는 평범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동안 떠올려 온 사랑의 면면과 가족의 형태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협소한 범위를 오가고 있었는지도 부끄럽게 깨닫는다. 작품 전체가 밝고 풍성한 사랑의 종합선물세트다. 우리들의 할머니 세대부터 사랑받아 온 장수상품 중에 ‘사랑의선물’이라는 사탕이 있다. 둥근 원통에 구슬 같은 캔디가 담겨 있었는데 그 색과 맛이 다 달라서 새콤한 초록도 있고 나른한 노랑도, 담담한 흰색도 있었다. 어느 하나도 집을 때 망설이게 하는 맛이 없었고 이름처럼 달콤한 사랑의 선물이었다.

『오, 사랑』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런 기분을 경험한다. 가족관계부에 등록된 오사랑의 아빠 오석원 씨는 이런 아버지가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을 갖게 만드는 안정적인 부성애의 소유자다. 그런가 하면 십수 년간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겼던, 지금은 일본에서 모에코 씨와 살고 있는 기린 같은 또 하나의 택이 씨는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발휘되는 가부장적 힘을 1그램도 지니고 있지 않은 것 같은 유연한 영혼의 소유자다. 사랑이를 사랑이의 입장에서 이해해 주는 관대함을 지녔다. 책을 읽는 내내 “어쩌면 이렇게 다들 아낌없이 서로 사랑하고 있지?” 하고 물으면서 주인공과 나란히 웃음을 머금게 된다. 사람이 다양한 만큼 사랑도 다양하다는 걸 고개 끄덕이며 이해하게 된다. 미움과 분노의 에너지가 세계를 압도하는 것 같은 요즘 좀처럼 만나기 힘든 솜사탕 같은 포근함이 작품 안에 꽉 채워져 있다. 로맨틱한 척하는 것이 아니라 로맨스의 정수를 짚는다. 사랑은 존재를 향한 편견 없는 믿음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움츠리지 않고 똑똑히 말한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2004년 CBS에서 방영했던 ‘가족의 발견’이라는 해외특집 다큐멘터리를 떠올렸다. 꽤 오래되었지만 그 작품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스웨덴식 대가족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자녀 둘을 낳고서 부부가 각각 한 아이를 맡아 키우기로 하고 이혼한 가족이 나왔다. 그날은 엄마의 생일이었는데 엄마의 재혼한 남편과 그들이 키우는 자녀는 물론 이혼한 남편과, 그 남편의 새로운 아내와, 그 아내가 데려온 아이들까지 모두 한 집에서 파티를 열고 있었다. 아이들은 함께 어울려 놀았고 남편들은 과거의 아내와 현재의 생일 임자의 앞날을 축복했으며 그들 모두는 새로 결합한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의 양육 고민과 최근의 기쁜 소식을 나누면서 훈훈한 대화를 이어 갔다. 그 다큐멘터리는 험한 세상에서 서로 이해하고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힘이 되는 일이며 그것이 꼭 가부장적 혈연 구조로 이어진 가족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말로 ‘스웨덴식 대가족’의 장점을 설명하고 있었다. 아빠가 한 명 더 늘어난 줄 알았는데 갑자기 대가족이 생겨서 어리둥절한 오사랑에게도 이런 장점 많은 앞날이 기다릴 것임을 믿는다.

물론 오사랑과 이솔, 그리고 다채로운 지점에 서 있는 오사랑의 가족들에게도 힘겨운 순간이 없을 리 없다. 통념의 벽은 예상보다 단단하며 매끄러워서 담장을 넘기가 쉽지 않다. 이솔은 몽글몽글한 감정으로 들뜬 사랑이에게 “사람들한텐 매해 겨울이늘 새롭게 추운 거야.”(53쪽)라는 말로 차별의 벽이 얼마나 견고한가를 넌지시 알린다. 사랑이가 같은 학급 안에서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부딪혔던 순간도 마찬가지다. 오사랑은 “태어나 처음 맞닥뜨리는 압도적인 미움과 그 미움의 끝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88쪽)고 고백한다. 비밀로 감추어져 있던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될 때도 부드럽게 그 감정에 착륙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내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기분이다.”(99쪽)라는 말은 사랑이가 느꼈을 혼란의 깊이를 가늠케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네가 원하면.”이라는 말로 그 갈라진 틈을 건널 수 있으리라는 용기를 안겨 준다. “우리 나이 때 무모하고 용감해야지 언제 또 그러겠어.”(29쪽)라는 말은 청소년소설만이 지닌 호연지기의 건강한 상승 작용을 보여 준다. 용감해서 사랑했고 용감해서 박수쳤고 용감해서 지구 반대편까지 건너가고 용감해서 사랑을 두고 되돌아올 수 있었던 두 인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보게 만든다. “불길한 악령”처럼 봉인해 두었던 섣부르고 어두운 감정들은 그 거침없는 용기 앞에서 무력해진다.

사랑이가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은 “자기의 정원이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영국의 아빠와 밴드를 함께했던 로이를 만나고서 오사랑은 이런 소감을 적는다.

나는 나를 텅 비우며 지켰는데 이 사람은 다 가진 채로 지켰구나. 어른이라 그런 걸까. 아니다, 모든 어른이 다 그렇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자기의 정원이 있는 어른이 되는 거지? (152쪽)

『오, 사랑』이 말하는 가족의 미래는 이런 것이다. 자기의 작은 정원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 웃고 토닥이고 오가면서 이루는 큰 숲과 같은 것이다. 다양한 이주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영국이라지만 엄마가 싸 주는 한식 도시락 반찬이 싫어서 펩시 콜라와 킨 사이다만을 도시락 대신 들고 다녔던 사랑이의 사촌들에게도 자기의 정원이 있을 것이다. 가난한 고국을 떠나 돈을 벌기 위해 간호사가 되어 독일 땅을 밟았고 비틀즈를 찾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런던으로 온 사랑이의 할머니에게도 독립된 정원이 있을 것이다. 한시적 비자로 낯선 나라의 타투 가게에 임시직 일자리를 얻었지만 이미 점장의 사랑을 듬뿍 받는 미래의 타투이스트 이솔에게도, 그 이솔을 떠나온 뒤 다시 다른 사랑을 만나도 될까 흔들리는 오사랑에게도 자기만의 정원이 필요하고, 그런 정원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

이 작품은 그렇게 사랑을 말한다. 그리고 사랑에 답한다. 오사랑이 영국을 떠나기 전에 할머니의 정원에서 모두 모여 가족 사진을 찍는 장면은 그 대답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상한 가족 구성이었지만 완벽한 가족 사진이었다.”는 오사랑의 촬영 소감은 이들의 앞날이 새로운 가족이라는 든든한 토대와 함께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마지막에 인용된 루시드폴의 노랫말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랑의 결을 일일이 간명하게 요약하지는 못하지만 그 사랑의 여운을 잘 보여 주는 역할을 한다. “내가 틔운 싹을 보렴. 오, 사랑.” 이 구절처럼 우리는 이 소설의 다음을 더 사랑한다. 아니, 다음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글|김지은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