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하라의 세계가 열리면



박윤주(유봉여자고등학교 교사)

개인적으로 성장 소설을 좋아한다. 성장이라는 단어는 성장에 이르기까지의 지난한 역경과 고난, 힘듦을 동반한다. 그렇지만 그 끝은 해피엔딩이라는 것을 알기에, 어떤 스토리든 자기 자신을 고민하고 되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에 특히 마음을 많이 두고 살아온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 하라는 그림을 좋아하는 학생이다. 그저 순수하게 그림을 좋아만 하다가, 여러 어려움을 딛고 본격적으로 입시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여느 이야기처럼 그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꿈과 미래의 길목에서 운명처럼 하라는 다른 세상으로 열리는 문을 열게 된다. 그 낯선 세계에서 자신과 닮은 듯 다른 리온을 만나게 된다.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건 감출 수가 없는 일이니까. 자신처럼 그림을 좋아하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리온을 바라보며 자신을 돌이켜 보는 하라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지난 과거가 겹쳤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목표로 생의 목표를 세우게 된다. 나 또한 그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 결국 내가 잘하는 일일까. 잘하는 일이 아니라면 내가 그 일을 하며 내 인생을 보내도 되는 것일까. 그 의문을 판단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지금 고민하고 있는 이 일이 결국 아무것도 아닌 일로 지나가 버리면 지금의 시간과 과거의 노력은 어떻게 되는 거지……. 삶의 시작점에서 많은 혼란과 더불어 끊임없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고민과 불안을 하라의 목소리로 다시 들으며 지나간 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현실 속 내겐 하라와 같은 환상이 와 주진 않았지만 스스로의 상상과 생각 속에서 수없이 리온과 하라같이 나 자신을 오가며 많은 갈등을 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경쟁이 되고, 정답을 찾는 일이 되고, 결과를 내야 하는 일이 되었을 때 느껴지던 막막함과 무기력함.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하라의 모습을 통해 이미 어른이 된 나 또한 수십 년 전 내 방 모퉁이 한구석으로 돌아가는 경험을 해 보았다. 그 경험은 낯설기도 했지만, 다시금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려 보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하라는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시작하고 싶었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닌 그림 그 자체가 좋아서, 그냥. 우리 모두가 리온을 만날 수는 없지만, 각자의 삶 속에서 리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 그 일을 시작했을 때의 나의 마음, 이미 멀리 지나와 버렸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마음……. 하라에게 그 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해 주고 용기를 주었던 사람이 리온이었다면 나에게 리온은 누구일까, 생각해 본다. 다시 십수 년 전으로 돌아가 어린 나에게 용기를 주고, 지금의 삶을 긍정하게 해 주고, 미래의 나를 위해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을 펼쳐도 된다는 말을 하게 해 주는 사람. 이 책을 읽으며 어딘가에서 그 사람을 발견할 수 있을지, 아니, 누군가에게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나도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하고 싶은 일이 아직은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책에 기대어 더 용기를 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