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후기] 어린이라는 세계


 
<어린이라는 세계> 편집 후기
김소영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팟캐스트 ‘혼밥 생활자의 책장’을 통해서였다. 성인들이 듣는 도서 팟캐스트에서 부지런히 어린이책을 소개하고, ‘어른책’을 읽더라도 어린이들과의 에피소드에 비추어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시는 면이 좋았다. 방송을 꾸준히 챙겨 들으며 내가 아이들 엄마라면서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들,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마음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저 분 이야기를 잘 들어둔다면 좀 더 좋은 어른,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혼밥’을 들으며 퇴근하는데, 김소영 선생님이 소개하는 한 어린이의 에피소드가 당시 편집하고 있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 등장하는 일명 ‘피부 관리 소년’(무더운 여름날 모두가 계곡으로 뛰어나가고 김원영 어린이만 혼자 방에 남게 되자, 차마 곁을 떠나지 못하고 피부 관리를 해야 한다는 실없는 소리를 하던 소년)의 이야기와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학급과 특수 학급을 오가며 수업을 듣는 한 친구 때문에 시간표를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친구 하나만 손해를 보면 나머지 학생 모두가 만족할 수 있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자 용감하게 그 상황을 제지한 한 어린이의 이야기였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 속한 두 사람이었지만, 이 두 어린이를 꼭 연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속에 잘 담아두었다가 책이 출간된 후에 메일을 드리고 책을 한 권 보내드렸다. 그렇게 서로 인사는 나누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선생님과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는 어린이책 영역에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어린이와 관련해 어른이 읽을 만한 책이 어떤 것일지 별다른 아이디어도 없었다. 그저 선생님의 샤이 팬으로 머물다가 그럴듯한 핑계를 하나 만들어 마침내 선물을 안겼다는 마음 정도였다.
얼마 시간이 흐른 뒤에 또 ‘혼밥’을 들으며 퇴근하는데, 그날은 진행자인 김다은 PD님과 김소영 선생님이 비양육자로서 어린이 이야기를 하는 것의 의미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한참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런 이야기라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를 눈여겨보지 않고 심지어 함부로 대하기까지 하는 사회에서, 어린이를 키우거나 가르치거나 돌보지 않는 사람들도 함께 어린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 책이라면 어떨까 싶었다. 그 방송 직후에 다시 한 번 조심스레 연락을 드렸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고, 뚜렷하진 않지만 뭔가가 시작되었다.
그 시작이 계약서나 기획안 같은 건 아니었다. 정말 운이 좋게도 내가 연락을 했던 시점이 마침 선생님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무렵이었고,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써볼 테니 같이 보며 이야기를 나눠 가자는 정도였다. 그렇게 아주 느슨하고 모호한 상태로 연재가 시작되었는데, 그 글이 특히 트위터를 중심으로 나날이 입소문이 났고, 중간에는 경향신문 연재도 시작하셨다. 편집자가 뭘 어쩌지 않아도 저자 스스로 자기 영역을 넓혀나갔고, 내 주위에만 해도 애독자가 점점 많아졌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기획안도 쓰고 계약서도 쓰는 등 형식적인 절차들을 밟았지만, 이 책은 사실상 그런 형식들보다는 저자 본인의 꾸준함과 의지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 한 가지 더 꼽자면 많은 예비 독자들의 진심 어린 고백과 응원이 있었다.
구체적인 책 소개는 각 온라인 서점의 도서 정보 페이지에 잘 나와 있으니(제가 보도자료를 꽤 공들여서 썼답니다, 여러분) 생략하기로 하고, 한 가지 꼭 언급해두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을 작업하는 내내 혹시 ‘김소영’이라는 이름이 마법의 주문 같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책의 진행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손을 빌려야 할 때마다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아, 김소영 선생님 책이라면.... 해야지요”라며 적극적인 도움을 주셨다.
추천사를 써주신 어린이문학 평론가 김지은 선생님과 영화 <우리들> <우리집>의 윤가은 감독님, 그림을 그려주신 임진아 작가님, 출간 이벤트를 같이 하기로 약속한 김다은 PD님 등 모든 분들이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도저히 거절할 수 없다며 우리의 제안을 수락해주셨다. 내 나름대로는 매번 꽤 긴장을 하고 메일을 썼지만, 사실상 그런 메일은 다 쓸데없는 것이었다. 그냥 ‘김소영’이면 오케이였다! 모두가 하나같이 “해야지요! 하고 싶습니다! 너무 기쁩니다!”라는 반응이었다. 가히 ‘천하무적 김소영’이라 할 만했다. 언젠가부터 내 입속에 ‘마법 같다’는 말이 맴돌았는데, 윤가은 감독님 추천사에 ‘마법’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어서 얼마나 놀라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이 제안과 수락의 과정에서 내가 이런 역할을 꽤 좋아하고, 기꺼이 한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창작자들을 연결하고, 그들이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호감을 전하고, 서로의 창작물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 무척 즐거웠다. 일례로 김소영 선생님과 윤가은 감독님은 (감독님의 표현대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서로의 창작물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결이 되었는데, 중간에서 서로를 향한 좋은 마음들을 전달하면서 나 자신까지 좋은 사람이 되는 느낌이었다.
앞서 ‘마법’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이 마법은 나에게도 일어났다. 마감을 한 달 이상 앞당겨 원고가 입고되었을 때 나는 이미 다른 원고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빨리 내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바람에 나도 모르게 홀린 듯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고 말았다. 크게 손댈 곳이 없는 완성된 원고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그 바람을 모른 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때때로 교정지 두 개를 챙겨서 퇴근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크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잘 마무리를 했다.
우리 팀 동료가 “우주의 기운이 모이고 있어요!”라고 말해준 것처럼, 이 마법의 힘은 아직까지 꽤 강력한 것 같다. 예약판매 이틀 만에 XXX부가 판매되었고(세 자리입니다, 여러분),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은 아마도 홀린 듯이 온라인 서점으로 건너가 예약구매 버튼을 누르게 될 것이다. 자, 이제.... 건너가서... 누른다, 누른다,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