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신들의 전쟁과 인간들의 운명을 노래하다>



이수현 선생님(빛가온중학교)
일리아스에 대한 친절한 해설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신들의 전쟁과 인간들의 운명을 노래하다』

 
“아니 전혀 감동적이지 않아!” 이 책의 첫 페이지 「머리말」에 나오는 문장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자란 사람이 아무 준비 없이 서구 고전을 읽었을 때 받은 충격을 표현한 저자의 말이다. 이름 있는 고전은 대단히 특별할 줄 알았는데 실은 그저 그렇게 다가오거나 실망스럽기까지 해, 가슴 깊은 곳에서 툭 튀어나오는 탄식 같은 말 혹은 어이없이 흘러나온 외침이랄까. 나 역시 공감했다. ‘고전’이라는데, 감동받지 못한 원인을 모조리 나의 부족함으로 돌렸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우리에게 고전은 그런 것이었나 보다.
 
「그리스 신화」는 나에게 「단군 신화」만큼이나 익숙하다. 어렸을 때부터 TV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많이 방영했고, 〈토요 명화〉 같은 데서 보여 주는 ‘헤라클레스’ 같은 인물도 친숙했으며, 그리스 신화의 여러 매혹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는 자라 오면서 틈틈이 내 삶에 자리 잡아 낯설지가 않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몇몇 특정 신화 속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듣고 또 들어도 그 이름이 외워지지도 기억에 오래 남지도 않아, 작정을 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을 읽고 그와 관련된 강의도 한 학기를 신청해 듣기도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이름도 비슷비비슷하고 발음하기도 어려웠으며 익숙한 이름을 제외하고는 누가 누군지 너무도 헷갈렸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또한 한국인이면 모를 수 없는 ‘아리랑’만큼이나 익숙하고 많이 들어 본 책이었지만 읽어 보지 않았다. 고전을 바라볼 때 읽지 않았어도 대충은 알 것 같다는 마음이 작동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게 어렵다는 선입견이 꽉 들어찬 책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도 딱 그렇게 이야기를 해 주어 얼마나 마음이 편해졌는지 모른다. “제1권을 읽으면 기가 질리기 시작” “억지로 참고 겨우겨우”라는 표현들이 진심 어린 위안으로 다가왔다.
 
오래된 혹은 신작 영화의 포인트를 딱딱 짚어 내어 영화에 대한 시청자의 호기심을 한껏 끌어올리는 대표적인 영화 소개 프로그램이 〈영화가 좋다〉라 치면, 이 책은 『일리아스』를 〈영화가 좋다〉처럼 풀어낸 책이다. 방대한 『일리아스』라는 책 속에 숨은 재미와 유익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담은 훌륭한 소개서라 할 수 있다. 총 24권이나 되는 『일리아스』를 읽다가 초반에 포기하는 대신, 448쪽짜리의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일리아스』를 읽지 않아도 읽은 것 같은 충만함과 충족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스토리의 핵심을 쭉 뽑아 올려, 호메로스가 왜 그런 서술과 표현을 했는지도 파악하게 해 주며,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과 상황 설명 tip, 계보까지 친절하게 담아 놓았다. 사실 이 책 또한 분량이 제법 있어서 어느 정도 인내심과 집중력이 필요하긴 하다. 그렇지만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다가 표류하게 되면 이 책이 방향키는 물론 나침반, 등대 역할까지 해 주리라는 믿음과 신뢰가 가는 책이다. 분량에 비해 다행스럽게도 하나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지 않고 짧게 짧게 끊어 놓아, ‘트로이 전쟁’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몰입했다가도 쉬고 싶은 부분에서 편안하게 한 템포 쉬어 갈 수 있게 편집을 해 놓아 좋았다. 영웅 아킬레우스와 트로이 전쟁을 다룬 『일리아스』에 대해, 이제 뭔가 좀 아는 척을 해도 될 것 같다. 다 읽고 나면 성취감과 뿌듯함까지 느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