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터뷰] <엄마는 언제나 돌아와> 아가타 투신스카X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엄마는 언제나 돌아와』
아가타 투신스카X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인터뷰



아가타 투신스카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자신의 가족사를 시작으로 폴란드 출신 유대인들의 삶을 포착하였고,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폴란드의 대표적인 그림책 작가로서 사유하는 그림책을 만들며 그 안에서 사회적 가치를 꾸준히 다루었습니다. 두 작가가 만나 어린이의 시각으로 진술한 어느 유대인의 이야기를 엮었습니다. 『엄마는 언제나 돌아와』를 작업하는 동안 아가타 투신스카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각자의 고뇌를 신중하게 헤쳐 왔습니다. 꿋꿋이 이 에세이를 완성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인터뷰 번역_이지원 / 인터뷰 진행_사계절출판사 그림책 편집부


 
아가타 투신스카 작가 인터뷰
 


조시아 자이칙의 회고록을 두 작가님이 완성했습니다. 세 분의 인연은 어떻게 이어졌나요?

조시아 자이칙의 이야기는 제2차 세계 대전 생존자인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모았던 20년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저는 그 아이들의 이야기와 그 아이들이 독일군이 점령했던 폴란드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저희 엄마가 바로 바르샤바 게토에 살았던 아이였기 때문이에요. 저는 이 사실을 오랫동안 알지 못했어요. 엄마는 전쟁 이후 자신의 출생에 대해 숨기기로 결심했고, 제가 열아홉 살이 되었을 때에야 이 비밀을 말해 주었거든요. 제가 사실을 받아들이기에 그 정도 나이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신 거죠. 그래서 그때부터 폴란드에 살았던 유대인들의 이야기, 특히 전쟁 시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굉장히 많은 인터뷰를 하고 이야기를 수집하고 증언을 모았죠. 이스라엘, 미국 등지에서요. 조사는 사실, 폴란드에서 제일 적게 했어요.

조시아의 운명과 조시아가 그 이야기를 하는 방식은 매우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아주 오랫동안 그 이야기를 서랍 속에 넣어 놓고 차마 쓰지 못할 정도로요. 그걸 다시 꺼내어 글로 쓰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였어요. 그 이야기를 위해 제 자신도 성숙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했죠. 오래 걸렸어요. 그리고 준비가 되었을 때, 이 책을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과 함께 펴내고 싶었어요. 어떻게 그런 확신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꼭 그래야만 했어요. 저는 이보나의 작품과 그녀의 섬세한 감수성을 알고 있었어요. 직접 글을 보내고 이보나의 결정을 기다렸지요. 처음 그녀는 이 글은 글 자체로 이미 충분하고 완성되어 있으며, 너무나 강력하게 독자를 사로잡기 때문에 그림이 들어가서 간섭할 자리는 없는 것 같다고 거절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대답했죠. 책을 내지 않겠다고 이보나를 협박한 거예요. 그렇게라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어떻게, 어디로 우리의 길이 향할 것인지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보나만이 이 책을 완성할 수 있을 거라고 느꼈어요. 이보나는 결국 그림을 그리기로 했어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죠.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수집했던 사연을 좀 더 들려주세요.

우리 엄마, 할리나 프셰드보르스카는 엄마의 엄마인 델라 그리고 가족들과 바르샤바의 게토 지역에 살았어요. 델라 할머니는 돌아가셨어요. 엄마는 살아남았지만 다시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전쟁이 끝나고 엄마는 폴란드 청년과 사랑에 빠져 푸른 눈을 가진 여자아이를 낳기로 마음먹었어요. 누구도 그 여자아이에게 “유대인 계집애야, 가스실로나 가!” 하지 못하도록요. 저희 아빠는 폴란드인이었고 제 눈은 푸른 색이에요. 하지만 엄마는 결국 제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했지요. 많은 이야기를 하진 않았어요. 굉장히 주저하셨고요. 그러나 제가 유대인 가족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기에는 충분했어요. 엄마에게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엄청 노력했어요. 할아버지와 고모 할머니 그리고 엄마 말고는 물어볼 사람도 없었어요. 그분들은 모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싫어했지만요. 저는 프셰드보르스치 가(엄마의 집안)와 골드스타인 가(외할머니의 집안)의 고향인 웬치차Łęczyca라는 작은 마을의 문서 보관소를 뒤졌어요. 4년 동안, 전쟁 후 제 집안인 폴란드-유대인 가족의 운명과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책 『두려움의 가족사Rodzinna historia lęku』를 작업했어요. 그 책을 끝마친 뒤에야 저는 제 출생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어요. 제가 가지지 못했던 가족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지요. 살릴 수 있는 것들은 살려 낸 것이고요. 저는 기억과 과거가 우리를 만든다고 믿고, 그런 이야기들을 쓰고 있어요.


유대인의 삶, 특히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증언을 옮길 때, 인터뷰어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는 무엇인가요?

그들의 운명과 그들이 빼앗긴 삶,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린 그 순간을 멈추려고 애써요. 그들의 가족, 종교, 그들이 소속되었던 세상. 폴란드 땅에서 살아가려 애썼던 그들의 매일매일에 대해서요. 시장, 작은 가게들, 시나고그(유대인 교회당), 결혼식 피로연, 안식일, 음식에 대해서요. 그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삶의 터전으로 고른 폴란드와 그들을 연결시키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요. 저는 그들에 대한 기억을 보전하려고 해요. 그들이 살았던 폴란드의 터전, 그들이 속했던 곳을 뒤지면서요. 그런 이야기를 쓰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느껴요.

 

조시아 자이칙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요?

조시아는 아이를 둘 낳았고, 손자도 둘 있어요. 예루살렘에 살면서 지금도 자수를 놓고 있지요. 폴란드어로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저는 조시아 안에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지하실에 살고 있던 그 아이를 발견했어요. 긴 세월 동안에도 침대
머리맡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사진 속의 엄마 이야기를 하는 것을 가장 좋아해요.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폴란드 독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한국 독자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는 언제나 돌아와』는 폴란드에서 아주 넓은 독자층을 품고 있어요. 아직도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제게 편지를 보내는 일이 많아요. 그리고 2022년 4월 19일에는 바르샤바에 있는 폴란드 유대인 역사 박물관 POLIN에서 이 책을 바탕으로 한 단막극이 공연될 예정이에요. 제2차 세계 대전 때 일어난 일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역사가 교훈이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독자들은 제 책 중 『상실 연습Ćwiczenia z utraty』을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남편의 투병과 그와의 이별에 대한 이야기지요. 조시아의 이야기는 슬프지만 『상실 연습』과 마찬가지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예요. 아이에 대한 엄마의 사랑, 아이를 보호하고 안전하게 지키려는 사랑. 그러니 겁낼 것은 없어요. 그 사랑은 조건이 없으니까요. 저의 사랑 역시 마찬가지예요.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인터뷰

 


이 책의 일러스트 작업을 처음에는 거절하셨어요. 어떤 마음으로 시작을 결심하고 또 마치셨나요?

아가타에게서 글을 받고도 저는 오랫동안 이 책에 그림을 그릴 것인지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어요. 글에 매료되기도 했지만, 너무 끔찍하게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런 글이라면 아무런 그림도, 더 이상의 덧붙임도 필요 없다고 확신했고, 오히려 그림이 작품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어요.
그래서 아가타에게 오랫동안 답장을 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글은 머릿속에, 그리고 가슴속에 남아 있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주지아 원피스의 작은 장미 꽃다발을 그리고 있는 거예요. 뭔가 스케치를 시작했더니 될 것 같았어요. 하지만 이 작품에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저에게는 어렵고 감정 소모가 많은 책이 될 거란 것을요. 제가 좋아하는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가 이런 얘기를 쓴 적 있어요. “이 세상의 모든 짐을 스스로 짊어지길, 그러나 그 짐을 가볍게, 견딜 수 있도록 만들기를.” 이 말은 곧 제게 ‘이 이야기를 너를 통해 걸러서 이 세상에 내놓아야 해. 하지만 사람들이 좀 더 접근하기 쉬운 형태로, 덜 끔찍한 모습으로, 그 끔찍함은 네가 감내하고.’ 이렇게 다가왔어요. 저는 이 책을 빨리 끝내려고 굉장히 노력했어요. 왜냐하면 도중에 제가 아픈 걸 알게 되었고 마지막 장 그림을 끝내기 전에는, 매우 힘든 시간이었던, 첫 번째 항암을 시작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그 시간이 사실 작업에는 도움이 되었어요. 제 스스로 감내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야 했던 때였죠.


주지아 원피스의 장미꽃이 중요한 모티브가 된 것 같아요.

​저는 이 책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악’을 다정하고 따뜻한, 사랑스러운 모티브와 균형을 이루게 하고 싶었어요. 장미꽃 무늬가 있는 원피스의 하늘색 바탕은 몇 년 동안 지하실에 살던 주지아가 보지 못했던 하늘이에요. 원피스는 엄마가 손으로 만들어 준 것이니, 사랑과 희망, 돌봄의 상징이지요.
이 원피스를 입은 인형이 현 시대와 조시아가 지하실에서 살던 시대를 잇는 유일한 물건이라는 것이 중요해요. 조시아는 아마 이 장미꽃들을 항상 보고 있었겠죠. 언제나 함께했던 그 꽃들, 지금은 우리들이 그 꽃들을 보고 있고요. 나머지 지하실 모습이 어땠을지는 알 수 없지만, 주지아 원피스의 장미꽃들은 그 시절의 진짜 증거물이죠.

 

그 꽃이 수놓인 띠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띠지는 전쟁 당시 게토에서 유대인들이 무조건 팔에 차야 했던 표식의 모티브예요. 다윗의 별이 그려진 완장, 수치심의 상징이었던 그 띠가 여기서는 사랑의 상징인 장미 꽃다발과 함께 이 책을 감싸 보호하고 있어요. 띠지는 빼서 팔에 껴 볼 수도 있어요. 그런 표식을 하고 다녀야 했던 사람들과 그 시대를 생각하면서요…. 띠지를 다시 책에 끼우긴 힘들어요. 띠지를 빼면, 그걸로 뭘 할지 생각해야 해요. 저는 이 띠지에서부터, 이 띠지의 꽃을 자수로 만들면서부터 일러스트 작업을 시작했어요. 마치 게토에 갇혀 있던 유대인들이 스스로 팔에 찰 표식을 만들어야 했던 것처럼요.


자수천, 가족 사진 같은 콜라주 오브제들은 이번 작품을 위해 특별히 수집하신 것 같아요.

이 책을 만들면서 폴란드에 살던 유대인들의 사진들을 많이 보았어요. 이 주제에 대한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기도 하고, 인터넷의 도움도 받았어요. 고물을 파는 가게에서 산 옛날 사진 앨범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 앨범을 채운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했어요. 저는 조시아, 야엘이 한 번도 가지지 못했던 가족 앨범을 채워 주고 싶었어요. 진짜 시간의 흐름이 보여지는 오래되고 조금은 상한, 노랗거나 희게 변색된 종이들과 옛날 책의 표지들, 공책들을 모았어요. 저는 여전히 옛날 종이나 옛날 천을 굉장히 좋아해요. 많이 모으지만,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는 잘 몰라요. 그냥 상자 같은 데에 쌓여 있어요.


같은 역사의 단편을 가지고 새로 준비하시는 작업이 있나요?

아가타 투신스카와는 비슷한 주제로 새로운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제목은 ‘검은 손가방’이 될 것 같은데, 아가타 투신스카의 할머니인 유대인 델라(아델라)의 이야기예요. 아델라 할머니는 아리아인 구역에 위장한 신분으로 살았고, 죽은 뒤에야 가족들에게 그분의 손가방과 내용물이 전해졌어요. 지금은 손녀인 아가타가 가지고 있는데, 아가타는 생전에 할머니를 만나 본 적은 없어요. 저도 우리 외할머니를 만나 본 적이 없어요. 외할머니 역시 전쟁 중 바르샤바에서, 엄마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거든요. 그러니 사실, 이 주제는 저희에게 공통된 것이에요. 저희 외할머니와 아가타의 할머니는 똑같이 이름이 아델라였답니다.


 
아름다운 호숫가 마을에서 새해를 맞은 작가님의 안부를 들려주세요.

어쩌면 팬데믹 시대의 선물처럼, 2년 동안 네 개의 호수 사이에 있는 숲속 작은 집에 살고 있어요. 남편과 시내에서 도망친 거죠. 저희 집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다행스럽게 이곳에서 살게 되었어요. 저와 남편, 둘이 지내요. 애들이나 손님들이 찾아오긴 하지만 거의 저희 둘만 있을 때가 많아요. 은퇴한 남편은 집 수리를 계속하고, 여름 별장이었던 이곳에서 겨울을 보낼 수 있게 단열을 하고, 저는 여기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어요. 이미 여기서 책 네 권을 만들었어요. 매일매일 그리고 사계절의 모든 시간 동안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이곳. 숲의 공기도 좋고, 동물보호소에서 데려와 기르고 있는 사랑하는 개 루카와 오래오래 산책하는 것도 정말 좋아요. 저는 이곳이 질리지 않을 것 같아요. 이곳에 대한 감사한 마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정말 특별하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