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터뷰] <다음 달에는> 전미화 작가



“봉고차는 아빠와 아들의 아늑하고 아름다운 유일한 집이다.”

사계절 그림책

『다음 달에는』
전미화 작가 인터뷰
 


Q. 『다음 달에는』을 보면 아빠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곳곳에 느껴진다. 아빠 캐릭터를 그릴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있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아빠는 한눈에 봐도 철이 들다 멈춘 캐릭터이다. 눈물을 달고 산다. 그렁그렁한 눈을 포인트로 다소 과장스럽게 그렸다. 하지만 이전도 그랬고 아들에게는 다정하고 밝은 아빠이다.


Q. 아빠와 아이가 함께 살아가는 봉고차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만약 아빠의 차라면 전에 아빠가 학원 봉고차 운전 일을 했나 짐작하게 되고, 그렇지 않다면 아빠는 어떻게 차를 구했을까 궁금해진다.

초고를 보니 '아빠는 내일부터 회사 말고 공사장으로 일하러 간다고 했다.'라고 써 있다. 육체노동자로 설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전 삶을 언급하기에 지면이 짧다. 앞으로의 아빠와 아이의 삶을 집중하면 될 것 같다. 그래도 유추해 본다면, 도둑 이사를 했으니 갈 곳이 마땅치 않아 겨우 헐값으로 중고 봉고차를 구입하지 않았을까 싶다. 봉고차로 설정한 것은 승용차보다는 공간이 넓어 방 안 연출에 용이한 부분이 있었다.

 

Q. 갱지와 목탄은 그림책 작업에서 처음 써 본 재료라고 들었다. 재료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그림 재료는 책마다 다르게 쓴다. 기획을 하고 더미가 만들어지면 재료와 내용의 유기적 관계를 고려한다. 가급적 익숙한 재료는 배제한다. 이번에 쓰인 재료도 마찬가지이다. 색이 강하고 무거워지면 흐름과 속도가 막힐 수 있다고 봤다. 날리듯이 그려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목탄지 대신 갱지를 쓴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목탄과 콩테는 선을 쓰는 데에 유연한 재료이다. 선에 힘이 있다.


Q. 형태감을 칠해서 만든 뒤 선을 그어 그림을 완성했다. 그리는 방식이 표현에서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

그림을 그릴 때 가급적 손목에 힘을 빼고 형태를 잡는다. 예를 들어 아빠를 그린다면 스케치 없이 면으로 모양을 그리고 머리와 옷에 색을 입힌 후 선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이건 이번 작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작업이 그렇다. 더미가 밑그림이며 80%의 완성을 가지고 있어 이후 진행 속도가 빠른 편이다. 그리는 방식도 일종의 습관이라 본다. 순서를 다르게 한다고 해도 완성해 보면 고만고만하다.

 

Q. 그림책에서 아이는 감정의 동요 없이 담담하게 자기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조숙한 아이와 눈물 많은 아빠의 모습이 더욱 대비된다. 아이는 아빠보다 더 어른스럽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 캐릭터는 어떻게 생각하고 작업했는지?

아이는 감정의 동요가 없는 게 아니다. 평소 아빠와 아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다는 건 중요하다. 또한 아들은 아빠를 사랑한다. 고집을 부리거나 울지 않는다고 해서 의젓한 것이 아니다. 아이의 성격이 차분하고 심성이 곱다. 그래서 아빠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이다. 힘든 상황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Q. 빚쟁이들이 쫓아와 아빠와 아이가 봉고차로 도망친 곳은 공사장이 아니라 공원 같은 고즈넉한 공간이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화분도 키우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 장면은 결말을 예고하면서 아빠와 아이의 일상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좋았다.

더미가 만들어지고 이후 진행하면서 추가된 장면이다. 이곳저곳 떠돌 수밖에 없는 생활이지만 집 밖의 공원이 있는 어떤 날도 있는 것이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작은 화분에 볕을 쬐이는 건 특별한 누군가의 일이 아니다. 사는 곳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건 그야말로 어른스럽지 못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러한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닐까. 삶의 질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본다. 봉고차는 아빠와 아들의 아늑하고 아름다운 유일한 집이다. 거주의 형태가 다를 뿐이다.

 

Q. 아빠가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는 이야기가 울림을 준다. 아빠는 빚을 다 갚아서 약속을 지킨 걸 수도 있고, 빚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누군가의 도움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작가의 의도는?

지키지 못하면 약속이 아니다. 허세일 뿐이다. 또한 상처가 될 수 있다. 아이는 아빠의 반복되는 말 “다음 달에는….”에 실망할 수 있다. 결국 무엇도 기대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아빠의 약속은 눈물을 훔치고 내일에 대한, 아들에 대한, 그리고 자신이 단단해지기 위한 다짐일 것이다. 약속을 지키기 위한 아빠의 노력을 아이도 알 것이다. 하지만 시간 또한 오래 걸린다는 것도 경험상 알 것이다. 한순간에 사라지는 빚은 빚이 아닐 것이다. 단지 아빠의 성격이라면 조금씩 빚을 갚으면서 오늘을 성실히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아빠 곁에는 아들이 있고, 아들 곁에는 아빠가 있다.


Q. 초고 작업한 지 꽤 시간이 흐른 뒤에 책이 나왔다. 이 작업을 시작할 때를 떠올려 본다면?

그간 출간된 책들이 길게는 10년, 짧게는 3년이 넘은 더미가 많다. 이번 책도 2015년에 첫 더미가 만들어지고 2021년 말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머릿속이 까맣게 변해 어떤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장점은 작업을 처음보다 차갑게 보는 것이고, 단점은 처음의 의미가 흐려졌다. ‘대체 이 이야기를 왜 하게 됐지?’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매체를 통해 본 어느 자동차 가족의 모습이 시작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이전 작업보다 밝고 씩씩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과정이 지나면 생각을 버리고 작업에 집중한다. 멀어진 기억을 붙잡고 있다고 해서 그때가 온전히 내게 오는 일은 없었다. 편집자와 디자이너와의 호흡도 낯선 과정이었다. 서로가 낯선 것이다. 그 낯설음을 지나 손톱만 한 더미가 책이라는 물성을 갖게 된다.



Q. 다음 작업은 어떤 이야기?

가을을 배경으로 떠난 것들의 그리움, 상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재 더미만 나온 상태이고 부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막연한 작업일 수도 있겠다 싶다. 나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숨 쉬는 작업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 모든 생각도 책이 완성되면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