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고양이』의 위기철 작가 인터뷰




길고양이가 들려준 초록고양이 이야기
 
 
『아홉살 인생』, 『생명이 들려준 이야기』 등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사랑받는 작품을 써 온 위기철 작가가 5년 만에 7-8세를 위한 유년동화 『초록고양이』로 돌아왔습니다. 이 책에는 장난기 많은 초록고양이가 꽃담이네 욕실에 나타난 사연을 그린 「초록고양이」를 비롯하여 아무도 없는 꽃담이네 집에서 꼬마 도둑과 초록고양이가 한판 승부를 벌이는 「꼬마 도둑」, 꽃담이 꿈에 나오는 빨간 모자를 쓴 괴물의 정체를 밝혀 가는 「빨간 모자를 쓴 괴물」이 실려 있습니다. 이 시대의 탁월한 이야기꾼 위기철 작가가 밝힌 『초록고양이』의 뒷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 『우리 아빠, 숲의 거인』 이후로 5년 만에 새 동화책 『초록고양이』를 내셨어요. 주인공 아이를 중심으로 세 가지 이야기가 연결되는데 특별히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 5년 만이라……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마치 5년 동안 이 책만 썼던 걸로 착각할 수 있겠네요. 솔직히 그리 공들여 쓰지 않았습니다. 공들여 책 내봐야 독자들 관심이 웬만한 블로그 조회수만도 못하니까요. 그래도 글 쓰는 법 잊어버릴까봐 스트레칭 하듯이 틈틈이 쓰기는 해요. 이 책도 뭉친 근육 풀어 준다는 기분으로 썼는데, 삽화가는 그것도 모르고 엄청 공들여 그리더군요. 무려 2년 동안이나 곁에서 지켜봤으니 믿으셔도 좋습니다.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너무 열심이어서 감히 참견도 못하겠더군요. 삽화 늦게 그려 편집부에서 싫어하든 말든, 저는 앞으로 책 내면 또 이 삽화가한테 부탁할 겁니다. 이 각박한 인생살이에 저를 위해 뭐라도 해주는 사람은 그저 마누라밖에 없더군요.
제가 몇 년 전 ‘KAIST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이 동화들은 그곳 캠퍼스에서 썼어요. 그곳엔 길고양이들이 유난히 많거든요. 길냥이들이랑 자주 놀다보니 걔들이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세상만물 삼라만상은 모두 나름의 이야기를 갖고 있어요. 그저 귀 기울여 들어주는 여유가 필요할 뿐이지요. 저는 귀 기울여 들은 얘기를 글로 옮겨 적었을 뿐이에요.
 
 
▶ 제목이 평범한 듯 독특해서 초록색인 고양이를 찾아봤더니 털이 초록색인 고양이는 없더라고요. 하하. 상상할수록 궁금해지는데요. 초록고양이는 어떤 캐릭터인지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 길냥이들 얘기로는, 야광 고양이래요. 야광시계나 야광스티커처럼 깜깜한 곳에선 녹색 빛이 난대요. 자기는 엄마가 있다고 부득부득 우기지만, 엄마 아빠에 대해 물으면 늘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는대요. “우리 엄마는 버섯 잎사귀 단추야!” “우리 아빠는 까마귀 아홉 마리 동생이야!” 따위의. 그게 뭔 소리인지, 원.
 

「초록고양이」의 한 장면
 
▶ 그래서 책 속 주인공인 꽃담이에게도 엄마가 있다고 바득바득 우겼던 거군요.^^ 선생님의 동화에는 동시나 동요처럼 리듬감이 느껴져서 소리 내어 읽는 재미가 있어요. 특히 이번에 나온 『초록고양이』에는 리듬감뿐만 아니라 알록달록한 색감까지 느껴지는데 선생님의 특별한 의도가 있으신지요?
 
─ 취학 전 아이들한테 이야기하다 보니 리듬과 이미지를 더 많이 사용한 것뿐이에요. 그 또래 아이들이랑 대화하다 보면 저절로 그렇게 돼요. 참새, 짹짹! 돼지, 꿀꿀! 빨간 사과, 파란 하늘, 노란 병아리…… 반복과 대비도 그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대화법이고요.
 
 
▶ 그렇군요. 「꼬마 도둑」에서 도둑이 노래 부르던 장면도 굉장히 생생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가장 재밌었어요. 해맑게 노래 부르는 꼬마 도둑이 어찌나 귀엽던지…. 제 조카가 유치원에 들어가면 이 부분을 잘 살려서 읽어주고 싶은 욕심도 생기더라고요. 선생님께서는 책 내용 중에 가장 애정이 가는 장면이 있으신가요?
 
─ 그렇게 읽었다면 고맙군요. 저는 제 글 재미있게 읽었다는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달콤해요. 자주 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모든 장면들이 다 마음에 들어 딱히 편애할 만한 부분이 없네요. 큼큼…….
어린 시절에는 별 것 아닌 일에 두려움을 느낄 때가 많아요. 자신의 보호막을 위협하는 낯선 상황들이 그렇지요. 엄마의 부재, 도둑, 악몽 같은 것들 말이지요. 아마 그밖에도 많을 거예요. 어른들은 아이들 겁주는 일을 왜 그리 즐기나 모르겠어요. “너 말 안 들으면 엄마는 집을 나가버릴 거야!” 따위의. 걸핏하면 ‘국가안보’ 들먹이며 위협하는 독재자들하고 너무나 닮았잖아요? 우리를 두렵게 하는 건 현실이 아니라 상상이에요.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지레 겁먹는 것이지요. 독재자나 사이비 종교인들은 그런 불안 심리를 부추겨 자기 야욕을 채우기도 하고요.
미리 겁먹지 말자! 부딪혀 보면 별 것도 아니다! 대략 그런 얘기를 하고 싶어서 ‘공포 유발자’들을 귀엽고 깜찍한 캐릭터로 만들어 봤어요. 도둑이 너무 심하게 깜찍했나요? 그래도 공포, 미스터리, 괴담 따위의 어린이 책들이 넘쳐나는 요즘 서점 선반에 이런 책 한권쯤 꽂혀 있어도 괜찮으리라 생각합니다.
 
                                  

「꼬마 도둑」의 한 장면  
   
▶ 이건 여담인데요. 올해 초에 막을 내린 <응답하라, 1988>에서 주인공 정환이가 94년도에 『반갑다, 논리야』 책을 펼쳐들고 있는 장면이 나왔어요. 대단한 복고 열풍을 일으켰던 드라마라 방송 직후에 이 책이 다시 한 번 관심을 받기도 했었죠. 그래서 선생님이 어떻게 작가 생활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졌어요. 선생님이 처음 어린이 책을 쓰기 시작한 때가 80년대 중반이라고 알고 있어요. 1983년에 계몽아동문학상을 받으면서 등단하셨지요? 이십 대 초반이었네요. 등단한 나이도 놀랍지만, 동화로 작품 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더 놀랍더라구요. 이쪽 세계와는 어떻게 인연이 닿으신 건지요? 또 그때와 지금의 어린이책은 어떤 식으로 변화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솔직히 말하자면, 어른들한테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다고 생각해서 아이들 책을 쓰게 됐어요. 어른들한테 아무리 떠들어봐야 요지부동에 복지부동이고, 아이들이 자라면 세상이 뭔가 아름답게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동화를 쓰게 됐어요. 그때와 지금의 차이? 그때는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동화책을 권했는데, 지금은 학습서만 권한다는 차이가 있지요. 그때 아이들이 지금 어른이 됐는데도 세상이 그리 아름답게 바뀐 것 같지는 않네요. 심하게 허탈해요.
 
 
▶ 실제로 선생님의 책들은 『반갑다, 논리야』 시리즈 말고도 모두 스테디셀러잖아요. 『아홉 살 인생』, 『생명이 들려준 이야기』, 『무기 팔지 마세요』, 『쿨쿨 할아버지 잠 깬 날』 등등 이삼십 년 전에 나온 책들인데도 전혀 낡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읽어도 유치하지 않으면서도 어렵지 않은 것 같아요. 뭔가 선생님만의 전략이 있는지요?
 
─ 책을 잘 쓰는 일은 작가 몫이지만, 책이 많이 팔리는 일은 하늘의 몫이에요. 제 책이 많이 팔렸다면, 아마 제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던 모양입니다. 큰 나라는 못 구하고 읍성 하나 정도는 구했나 봐요. 그런데 내생에는 전쟁 난민 수용소에서 태어나지 않을까 몹시 두려워요. 나라가 나날이 망가지고 있는데도 망연자실 속수무책이니 말이에요.
 
 
▶ 겸손하신 말씀입니다.^^ 다시 『초록고양이』로 돌아와서, 어린아이가 있는 부모님들께 『초록고양이』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간단히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예전에 내셨던 『신발 속에 사는 악어』에서 맨 마지막에 ‘잠자리에서 한 편씩 들려주기’, ‘잔소리를 이야기처럼 부드럽게 하기’ 같은 팁을 주셨던 것처럼요.
 
─ 굳이 활용하려 애쓰지 말고 그냥 책이나 사 주세요. 도서관에 가서 빌려 줘도 되고요. 아이들은 책을 스스로 알아서 활용해요. 애당초 글 쓸 때 그 또래 아이들이 알아서 즐길 수 있게끔 쓰거든요. 꼭 부모 도움을 받아야만 읽을 수 있다면, 그건 작가가 아이들을 싹 무시하고 썼다는 얘기밖에 안 되겠지요. 『신발 속에 사는 악어』의 팁도 그저 제 육아 경험담을 적어놓은 것일 뿐이에요.
그래도 굳이 더 활용하고 싶다면 창의력을 좀 발휘하면 되겠지요. 냄비 받침으로 활용해도 되고, 부채 대신 써도 되고, 둘둘 말아 성가신 파리를 때려잡아도 되겠네요. 뭐, 종이책의 좋은 점이 그런 거잖아요? 아무튼 책은 읽는 것 자체가 최대 활용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공짜로 빌려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도서관에 무더기로 쌓여 있어도 안 읽으니까 문제일 뿐이지요.
 
 
▶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어린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헐! 6, 7세 애들한테요? 그것도 아직 책도 안 읽은? 그 애들한테 저는 그저 모르는 아저씨일 뿐인데요? 그래도 한번 해볼까요?
“얘들아, 모르는 아저씨가 재미난 얘기 들려준다고 유혹해도 절대 따라가면 안 돼. 그럴 땐 엄마 아빠한테 꼭 먼저 물어봐야 하는 거야. 알겠지? 책도 마찬가지야. 재미있어 보여도 해로운 책이 있고, 재미없어 보여도 이로운 책이 있거든. 그러니까 아저씨 책도 읽어도 되는지 엄마 아빠한테 꼭 물어봐. 아저씨가 나쁜 사람일 수도 있잖아? 너희한테 이롭고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한 책을 많이 쓰고 싶은데, 아저씨 재주가 모자라서 미안해. 그래도 열심히 쓰도록 노력할게.”
음, 왠지 오글거리는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