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 세계사 : 세계사 읽기, 이제는 지도다

작년 11월 『아틀라스 세계사』 편집을 힘겹게 마무리하고 지친 몸과 마음도 정리할 겸 홀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적지로 날아갔다. 거기에서 겪은 희한한 일화 하나. 그곳의 주된 이동 수단은 오토바이를 개조한 ‘툭툭’이라는 것인데, 내가 탄 ‘툭툭’의 운전사 티에는 내가 영어로 말하려고 하자 굳이 한국어로 말해 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그는 우리말을 전혀 몰랐다. 이유인즉, 자기의 꿈은 한국에 가는 것이고 그 때를 위해 한국어를 공부해 두려 한다는 것이었다.
 
굳이 티에 청년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는 세계가 1일 생활권에 가까워지고 있는 지구촌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군대는 멀리 서쪽으로 지구의 반을 돌아 이라크에 파병되어 있고, 경제는 뉴욕의 월가 주식 시장의 주가 변동에 실시간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서로를 이해하려면 상대방을 많이 알아야 하고, 그 ‘앎’이라는 것의 많은 부분은 ‘역사’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세계 여러 나라들의 역사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실정에 비추어 보면 오늘 우리의 세계사에 대한 지식은 참으로 한심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거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우리 민족의 남다른 배타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웃 나라들을 무시하고 우리가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배타성은 지난 17세기 중국의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생겨났다. 즉 세계 문화의 중심인 중화 문명이 멸망하고 그 자리를 오랑캐인 만주족이 차지하자 우리 조선의 선비들은 우리나라를 차선의 중화, 즉 소중화(小中華)로 자처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동아시아 문화, 더 나아가 세계 문화의 중심이 조선이며 조선의 문화는 다른 어느 나라 문화보다 수준이 높다는 자부심이 자연스레 다른 문화권에 대한 배타성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전근대적인 가치관은 근대에 접어들면서 극복될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세계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아 오히려 외세를 극도로 경계하고 배척하게 되었다.
 
일제에서 해방되면서 다시 한 번 세계로 나아갈 기회가 찾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남북 분단과 군사 독재 정권의 장기 집권이라는 조건 속에서 정치적으로 해외 여행은 엄격하게 금지되었고, 그만큼 우리 국민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캄캄한 어둠 속에 잠기게 되었다.
 
80년대 이후 군사 독재와 권위주의 통치가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고 전반적인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비로소 세계를 향해 눈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오랜 역사의 뒤틀림 끝에 찾아온 기회를 과연 우리가 잘 활용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면 그리 자랑할 만한 형편이 아니다.
 
이는 이른바 ‘세계화 시대’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1990년을 전후로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하면서 세계 경제가 하나의 체제로 통합되는 격변이 일어났다. 이러한 거대한 시장 경제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각 나라의 문화와 역사는 우열 없이 대등하다고 보는 ‘문화 상대주의’를 터득하기도 전에 너무나 빨리 ‘문화 상품주의’에 빠져들고 말았다. 즉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생각은 없고 단지 우리 문화를 상품으로 가공해 팔아먹을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야 우리가 과연 지구촌 마을의 당당한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는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곳은 바로 학교 현장이다. 그런데 어떠한가. 잘못된 편향을 바로잡아 주기는커녕 오히려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덜어 준다는 이유를 대며 세계사 과목을 희생양으로 삼아 교과 편성에서 추방하고 있다. 이것은 당장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 학생들은 이슬람 문화권이 미국이나 유럽에 대해 품고 있는 뿌리 깊은 증오심이 어떤 역사적인 배경에서 형성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이 우리 고대사를 빼앗아 가려는 동북 공정을 추진하는 데에는 어떠한 역사적 배경이 있는지도 잘 모른다. 이러다가 우리 학생들이 지구촌 시대의 문화 문맹이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까지 한다.
 
『아틀라스 세계사』는 1978년 타임즈 북스에서 초판을 냈고, 그 뒤 16개국에서 번역 출간한 세계적인 명저다. 이 책의 장점은 상세한 역사 지도에 있다. 본문을 읽지 않고 지도만 들여다보아도 엄청난 정보가 담겨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비록 본문은 짧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핵심 지식이 최대한 간략하게 간추려져 있다. 아마도 독자들은 이렇게 짧게 간추린 내용마저 자신에게 몹시 생소하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아직 지구촌에 들어가기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이 책이 그 먼 길을 단축시키는 지름길이 되기를 바란다.
 
 
글 · 김성환 (『아틀라스 세계사』 기획 번역)

1318 북리뷰 2005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