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다음 달에는』




다음에 마주할 때는
 
글 ✽ 이시내(라키비움J 기자, 초등교사)

매번 작품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전미화 작가의 신간이라니. 어떤 내용일지 기대감을 품고 책장을 넘긴다. 종이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난 면지를 지나 표제지에서 만나는 칫솔. 그러고 보니 표지에서도 아이 위쪽에 있던 칫솔과 컵이다. ‘어디 여행을 간 걸까? 가족 구성원이 둘밖에 없나 보네.’ 그림이 건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마주하는 첫 장은 그림이 아닌 담담한 아이의 목소리다.
“한밤에 짐을 쌌다. 아빠는 이불을 두고 침낭을 챙겼다.”
코팅도 하지 않은, 거칠거칠한 촉감 위에 씩 웃으며 책에 흠뻑 빠진 아이가 독자를 맞이한다. 함께 책을 읽던 아이가 질문을 쏟아 낸다. “제목이 『다음 달에는』이야? 다음 달에 생일이 있나 봐? 게임기 받나? 책을 좋아하는 아이 같으니 기다리는 시리즈 후속이 있나 봐.” 
전미화 작가의 망설임 없이 쭉 뻗은 선과 거침없는 색은 독자의 마음을 단번에 흔든다. 여행을 떠나는가 했는데, 아니다. 불빛 하나 없는 깊은 밤, 집을 나서는 부자의 뒷모습은 고요한 마음속에 수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입은 꾹 다물었지만 그림의 목소리를 따라가느라 시선은 분주하다. 급하게 가방에 꽂은 면도기와 칫솔, 양쪽 팔에 끼워서 하나라도 더 챙겨야 하는 살림살이들. 그리고 아이가 꼭 잡은 아빠 손.

이제 아이는 공사장 앞 학원 봉고차에서 지내며 침낭에서 잠을 청하는 삶을 살게 된다. 빚쟁이를 피해 집을 나왔으니 사람들에게 들키면 안 된다. 학교 친구들이 지나가면 고개를 숙이며 숨어야 한다. 부자의 상황을 말해 주듯 봉고차의 창문은 모두 가려져 있다. 
공사장에서 일하며 아이를 돌보는 아빠는 밤마다 “다음 달에는 학교에 갈 수 있어!”라고 주문처럼 아이에게 말한다. 장마다 등장하는 아빠의 모습은 언제나 눈물과 함께다.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웃고 있을 때도, 모자로 눈을 가렸을 때도 눈물을 흘린다. 아빠가 울지만 않는다면 학교는 다다다다다음 달에 가도 된다는 아이. 아빠가 불쌍하다는 아이의 손톱은 늘 단정하지만, 아빠의 손톱은 점점 길어진다. 손도 거칠어진다. 집을 나오던 밤도 꽉 잡았던 아빠의 손 덕에 아이는 어디에 있든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꾸려 간다. 신문지로 가려졌던 봉고차의 창문에는 커튼이 생기고, 좋아하는 그림을 붙이고, 식물과 길고양이를 돌보는 아이의 오후는 지극히 평화롭다. 

작가는 너무 쉽게 타인의 삶을 상상하며 동정하던 얄팍한 시선 앞에 아이의 시간을 담담히 보여 준다. 각자의 자리에서 가꾸는 가지각색의 일상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며 부자의 힘찬 눈빛을 선명하게 그려 낸다. 애처로이 아빠의 손에 쏙 들어가던 아이의 손은 이제 아빠의 등을 토닥이며 감싸 안는 손으로 자란다. 

이렇듯 어떤 상황에도 변치 않는 애정을 쏟는 올곧은 양육자의 사랑은 틈새로 새어 오는 빛줄기와 같다. 한 줄기 빛에도 꿋꿋하게 자라는 봄날의 새싹 같은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자. 그림책의 아이는 교실 속 우리 반 친구일 수도 있으니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레짐작하며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나와 아이들을 위해 함께 읽어 보자. 아이들이 타인의 삶을 상상할 때 동등하게 바라보는 마음 한 자락 가질 수 있도록. 구조적인 빈곤의 문제가 아닌, 내 마음의 가난함과 어리석음을 그대로 비춰 보이며 올곧은 눈을 키워 주는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