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사계절문학상 심사평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이 결정되었습니다. 박지리, 「합, 체」 당선자에게는 개별 통보하였고, 작품은 2010년 8월 사계절1318문고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사계절문학상에 응모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본심 심사평 2009년 사계절문학상 심사평의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내년에는 심사위원들이 기쁜 마음으로 함께 저녁을 먹었으면 좋겠다." 올해도 그러지 못했다. 2009년에는 당선작을 뽑지 못해서였지만 올해에는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아서였다. 몇 시간 동안 이어진 토론은 저녁을 먹으면서도 계속됐다. 심사위원들은 음식을 기다리면서도 최종 후보작들의 장점과 단점을 몇 번씩 검토했다. 어떻게든 빨리 심사를 끝내고 기쁜 마음으로 밥을 먹고 싶었지만 당선작을 선택하는 것은 음식점의 메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므로 대충 끝낼 수는 없었다. 당선작을 고르는 것은 여러 사람의 인생 - 상을 타는 사람, 상을 타지 못하는 사람- 에 개입하는 것이므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시소에 올라탄 최종 후보작들은 각각의 장점과 단점으로 오르락내리락거리며 심사위원들을 괴롭혔다. 마지막까지 남은 세 작품은 「루미키아 루미」, 「합, 체」, 「V.O.I. 보이」였다. 「루미키아 루미」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했다. 병상일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군데군데 감상적인 문장이 많다는 점을 단점으로 지적한 심사위원이 있었는가 하면, 눈물을 쥐어짜던 기존의 병상소설과 달리 시종일관 담담한 어투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평범한 비범함을 장점으로 꼽은 심사위원도 있었다. 문장과 구성 모두 안정적인 작품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지만 수상작으로 밀기에는 단점이 너무 분명했다. 장점으로 단점을 덮을 수 없었다. 단점이 분명하기는 「합, 체」도 마찬가지였다. 한 편의 무협지 같다. 만화 같다. 너무 쉽게 읽혀 묵직한 감동이 없다. 이런 단점들이 거론됐다. 문제는, 장점 역시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만화처럼 잘 읽히는 데다 황당한 이야기가 현실과 부드럽게 녹아 있으며 주인공인 형제 합과 체의 대사는 얼마나 웃긴지 모른다. 심사를 보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큭, 큭, 큭 웃게 된다. 신나게 잘 읽힌다는 점이 때론 단점으로 보이다가 때론 장점으로 보였다. 산으로 들로 혼자서 날뛰는 작품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V.O.I. 보이」는 안정적이다. 사소한 사건 하나를 쥐어준 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이리저리 휘저어 놓는 능력이 탁월했다. 작품을 읽으면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라고 작가에게 계속 묻게 된다.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흔치 않은 재능이다. 단점은 소설 속 인물들이었다. 주인공들의 개성이 모호하다는 점, 방송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지만 정작 방송반의 역할이 크지 않다는 점, 교장의 역할이나 묘사 역시 어정쩡하게 그려졌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합, 체」와 「V.O.I. 보이」, 둘 중 하나여야 했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작품을 사람으로 비유해도 된다면,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하는 동안 「V.O.I. 보이」는 차분히 앉아서 심사결과를 기다렸고, 「합, 체」는 이리저리 날뛰고 있는 듯했다. 한쪽은 결점이 많지만 생동감이 넘쳤고, 한쪽은 흠잡을 데 없지만 생기가 부족했다. 심사위원들은 「합, 체」로 마음을 모았다. 어떤 사람이 읽든 낯을 가리지 않는 「합, 체」만의 서글서글한 매력에 높은 점수를 주기로 했다. 가볍게 읽히다가도 어느 순간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 역시 묻어두기 아까운 장점이었다. 이제 막 수상소식을 들었을 「합, 체」의 작가에게는 부담스러운 말이 되겠지만 심사위원들은 이미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쓸지, 심사위원이 아닌 독자로서 기다리고 있었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오정희·박상률·김중혁·김종광(제8회 사계절문학상 심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