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항체의 딜레마>



이혜영 선생님(전주고등학교) 『항체의 딜레마』
모든 존재와 공생하기 위해

 
요즘처럼 바이러스가 창궐한 시대에 ‘항체’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대화나 언론 보도에 자주 등장한다. ‘항체’는 면역계 내에서 항원의 자극에 의해 만들어지는 물질로, 항원에 대처하기 위해 바이러스나 세균 등의 항원을 비활성화시키고 신체에 침입한 미생물에 대항하는 역할을 한다. ‘딜레마’는 일반적으로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항체가 딜레마를 겪는 상황은 무엇일까? 제목에 대한 일차원적인 궁금증으로 이 책의 첫 장을 열었다. 표지에는 한 소년이 산소마스크를 쓰고 어딘가를 멍하니 응시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또한 책 제목 옆에 제7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과학소설 분야에서 상을 받은 작품들을 묶어 편찬한 것이었다. 제7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수상한 임서진 작가의 「항체의 딜레마」, 수상 작가의 신작인 「반달을 살아도」, 우수 응모작인 소향 작가의 「달 아래 세 사람」, 조윤영 작가의 「외계에서 온 박씨」, 나혜림 작가의 「달의 뒷면에서」, 임성은 작가의 「여름이, 옵니까?」까지 신선하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목을 가진 여섯 편의 단편 소설들이 담겨 있었다.
 
한낙원 선생은 해방 이후 최초의 창작 과학소설로 꼽히는 『잃어버린 소년』(1953)과 『금성 탐험대』(1957) 등 1950년대부터 40년 넘는 세월 동안 수십 편의 과학소설을 발표한 우리 과학소설의 개척자이자 선구자라고 한다. 이 소설상은 그러니까 이러한 선생의 정신을 이어 가자는 취지에서 제정된 것이다. 공상 과학 영화는커녕 과학소설에 대한 관심이 큰 편이 아니어서 이러한 소설상이 있는지도 몰랐다. 한낙원 선생의 과학소설 개척 활동과 관련하여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학기술 지식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제7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수상작인 임서진 작가의 「항체의 딜레마」는 우리가 과학기술을 더 이상 무분별하게 개발하지 말고 그러한 기술이 인류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우리가 가장 우선 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 때로는 AI까지도 인간의 생존을 위해 수단화할 수 있는 것인지, 그 의도를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 동물과 로봇들이 알게 되었을 때 두 존재들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 가야 하는지, 그러한 갈등이 넘쳐 날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에 대한 고민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바이러스, 전염병, 자연 파괴, 인간 우월주의, 상위층과 하위층의 갈등, 인간과 로봇 사이의 신뢰, 망각하는 인간과 세밀한 것까지도 정확하고 기계적으로 기억하는 로봇의 경쟁 등 미래 사회에 등장할 화두들을 제시하며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고도 다소 서정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작가가 수상 소감에서 인용한 구절의 울림이 크다. “가장 어두울 때에도 행복은 존재한다. 단지, 누군가 불을 켜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설레는 기대 속에도 우려와 의심들이 과학기술과 미래 사회에 존재한다. 인간이 무분별하게 인간의 영역을 확장하고 인간 우월주의에 심취해 생태계와 인간이 아닌 모든 생명체들을 수단화하는 등 인간의 삶만 풍족해지고 편리해진다면, 그것이 최고의 이상적 가치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러한 이기주의에 종지부를 찍고, 미래 사회에 밝은 불을 켜기 위해서 지구 나아가 우주의 모든 존재와 공생하려는 마음을 다져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