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로 문학을 읽으며 창의성을 틔우다.

『이솝우화』에서 양치기 소년은 거짓부렁을 잘 한다. 늑대가 왔다고 외치며 마을 사람들을 놀래키는 식이다. 거짓말이 거듭되자 어른들은 소년의 외침을 무시해 버린다. 마침내 늑대가 진짜로 들이닥친 순간, 양치기의 다급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스토리다. 하지만 『문학 속의 지리 이야기』는 이 이야기를 색다르게 바라본다.
 
이솝이 살았던 지역을 따져보면, 아마도 양치기 소년은 지중해 부근에서 살았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산기슭을 따라 양 떼를 몰고 다니며 키우는 이목(移牧)이 이루어진다. 봄에는 산 중턱에 양을 풀어놓고 풀을 뜯어 먹게 하고, 더운 여름이 되면 시원한 곳을 찾아 더 높은 곳으로 옮겨가는 식이다. 양치기는 이런 과정을 거듭하며 세월을 보낸다. 그는 마을과 동떨어져 지내야 한다. 말벗하나 없는 적적한 생활, 얼마나 외롭겠는가!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람들을 산으로 불러오고 싶지 않았을까?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부렁은 외로움에 지친 절규였던 셈이다!
 
지리교사인 지은이는 문학 작품 속에 숨겨진 ‘지리적인 단서’들을 계속해서 찾아준다. 『플랜더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는 하루도 쉬지 못했다. 네로는 목장에서 생산된 우유를 모아 마을로 옮겨주는 일을 했다. 지은이는 ‘지리적으로’ 주인공의 삶 곳곳을 설명해 준다. 예전에 우유는 너무 빨리 상했던 탓에 ‘하얀 독약’이라 불렸다. 우유는 10도 이하로 냉장 보관을 해도 3~5일이면 못 먹게 되어 버린다. 때문에 우유는 신선도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 네로가 매일 매일 우유 운반을 할 수밖에 없었겠다. 지은이의 해설은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간다. 네로가 살던 시대에는 왜 낙농업이 발달했을까? 우유가 상할 만큼 남아돈다면 젖소 를 적게 키우면 되지 않는가? 하지만 당시는 산업 혁명 때였다. 노동자 계층의 여인들은 아이에게 젖먹일 짬을 내기 어려웠다. 공장에서 오랫동안 일해야 했던 탓이다. 때문에 모유를 대신하는 우유에 대한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문학 작품이 시대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담은 화석같이 다가온다. 그러나 『문학 속의 지리 이야기』는 문학을 통해 지리 지식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리는 단순히 현실을 해석하는데 그치는 학문이 아니다. 공간을 분석하며 더 나은 생활을 위한 해법을 궁리한다. 이 점에서 『허생전』에 대한 분석은 이 책의 화룡점정이다. 허생이 변 부자에게 빌린 돈은 1만 냥, 오늘의 돈 가치로 3억 정도 된단다. 이 돈을 갖고 허생은 ‘매점매석’을 벌인다. 제수(祭需)에 쓸 과일과 갓 만드는 말총을 통째로 사들인다. 이렇게 하여 허생은 큰 돈을 번다. 허생은 벌어들인 돈으로 사문도(마카오)와 장기도(나카사기)에 가서 사람을 사 농사를 짓는다. 가난하여 도적이 될 사람들을 ‘자본을 풀어 구제’해준 셈이다. 허생은 ‘농업 사업’으로 번 100만 냥 가운데 50만 냥을 바다에 버린다. 돈이 너무 많이 풀리면 경제에 좋지 못한 영향이 있음을 알았던 까닭이다. 그리고 나머지 50 만 냥은 불쌍한 백성을 돕는 데 쓴다. 그러고 나서 허생은 변 부자에게 돈을 갚은 후 다시 빈털터리가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지은이는 허생을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해 가는 ‘맨토’로 소개하는 듯싶다. 허생은 “재물을 재앙으로 보며 번 돈을 모두 좋은 일에 희사”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산업을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 경제의 흐름, 지리와 기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허생이 바로 그랬던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허생은 화폐 경제의 원리도 잘 알았다. 그러면서도 돈에 집착하지 않았다.
 
이 외에도 『문학 속의 지리 이야기』에는 『성냥팔이 소녀』, 『80일 간의 세계 일주』, 『시골 쥐와 도시 쥐』 등 널리 알려진 문학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다. 새로운 생각은 뚜렷한 문제의식에서 생긴다. 못을 박아야 하는데
망치가 없던 경우를 떠올려 보라. 도마, 쇠손잡이 등, 평소에는 생각도 못했을 것들이 ‘망치의 대용품’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던가. 『문학 속의 지리 이야기』도 그렇다. 지리 교사는 지리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그렇기에 문학 하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삶의 깊은 면면들이 새롭게 보인다. 창의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영감을 주는 좋은 책이다.
 
 
글 l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_timas@joongdong.org)